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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71화 (71/314)

환관의 요리사 71화

근육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뼈마디는 우그러들었다. 키가 줄어들고, 다리는 굳고 척추를 구부러진다.

핏줄이 시퍼렇던 구릿빛 피부는 창백해진다. 당장에라도 세상을 향해 달려들라 명령하는 것 같던 심장, 전신으로 질주하던 뜨거운 피도 식고 남은 것은 추레하고 보잘것없는 옹졸한 소년이 남았다.

달콤했던 꿈은 일그러지고 둥그러져 역겹고 고통스러운 현실만이 남아 그를 반겼다. 낡고 삐걱거리는 육신의 감속 속에서 눈 뜬 그를 반긴 것은 내장과 뼈마디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짙은 통증이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유리 망치 같은 작은 망치로 뼈를 두드리는 것 같은, 개미가 뼈 안쪽을 기어오르는것 같은 감각.

그 기이한 고통 속에서 눈을 뜬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자수가 놓인 천막의 천장이었다.

X 발

짧지만, 행복한 꿈이었다. 자신의 기억 속 그 굵고 튼튼한 팔이 자꾸만 아른거려 소년은 자신의 보기 싫은 얇은 팔을 이불 안쪽으로 숨겼다.

마디마디마다 납덩이를 휘감은 것처럼 움직이기 힘겨워 그 동작을 수행하는데만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 콜라 한 잔만 마시고 올걸. 후회는 늘 뒤늦게 찾아오는 법이었다.

마시지 못한 그 한 모금이 간절해소년은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절망했다.

“음? 일어났나?”

“아, 태감님.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려.”

“오냐.”

살짝 초췌해 보이는 안색의 태감은 소년의 용태를 더욱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소년이 누운 침상 옆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제가 꽤 오래 누워 있었나 봅니다?”

물끄러미 천막 안의 풍경을 힘겹게 둘러본 소년은 이것이 칠성단에서 연회를 여는 동안 사용했던 천막이 아닌 여행길에서 사용한 간소한 이동식 천막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더욱 간소한 형태라곤 해도 황실의 고관이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보통사람이라면 가정집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튼튼하고 안락했다.

“그래, 이틀이 넘었다.”

“저런, 제 병수발은?”

“장소와 이삼이 돌아가면서 들었지.”

“허이고…….”

소년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이 나이를 먹고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해 남의 손을 빌렸을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고 전신에서 식은 땀이 배어나오는 듯했다.

환자가 똥오줌 못 가리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만 이 나이를 먹으면 체면 때문이라도 그렇게 의연하게 넘기기가 어려운 법이다.

“후, 나중에 뭔가 맛있는 거라고 해줘야겠군요. 고생했을 테니.”

“나는?”

“예? 태감님도 제 병수발 드셨습니까?”

“난 네 고용주 아니냐.”

“이참에 노동조건에 대해서 한번 심도 깊게 토론해 볼까요?”

소년의 말에 태감은 식은 땀을 흘리며 헛기침을 했다. 솔직히 전생에서였다면 블랙 기업은 커녕 헬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괴악한 조건이었으니 소송을 건다면 틀림없이 압승이리라. 소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그 녀석들이 도망가기라도 했습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야 태감님이 이렇게 쓸데없는 사담을 하시며 시간을 끄시는 것은 뭔가 있다는 뜻 아닙니까.”

담담하게 이어지는 소년의 말에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쉰 태감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놈들은 전부…… 죽었다.”

“흠, 내부에 안양비 파벌의 암살자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것도 현장에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직위의.”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골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비록일은 실패했지만, 그 대신 안양비의 세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정치란 얼마나 성공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실수하지 않느냐에서 승패가 갈린다. 비록 이번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정보를 얻었으니 다음의 실패를 방지할 수 있었으니 이득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까?”

“긍정적이군.”

“부정적인 것보다야 낫지요.”

소년은 끌끌거리며 우중충한 분위기의 태감을 비웃었다. 그답지 않게 의기소침한 모습은 남들이라면 절도 위로하고 싶은 욕망이 들게 만드는 처연함이 있었지만, 소년에겐 좋은 놀림 건수일 뿐이었다.

잠깐 더 빈정거려볼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상관이니 소년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감시를 뚫고 열 명을 죽였다면 보통 사람은 아니겠군요.”

비록 갇힌 상태라고 해도 열 명의 사내들을, 그것도 금군의 감시를 피해 그 짧은 시간 안에 살해했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무관일 것이다.

소년과 태감은 서로의 의견이 일치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소년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진실이 달갑지 않은지 씁쓰름한 침을 삼켰다.

“그나마 제가 금마단주와 친분이 있어 다행이군요.”

그들은 홍엽비를 포섭함으로써 지방군과 정치적 동맹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라갔다.

지방군의 수장인 당량대장군이 홍엽비의 외가였으며 홍엽비는 태감의 계획의 큰 축이니 대장군과 그들은 정치적 동반자인 셈이다.

하지만 안양비 쪽에서 금군 쪽 인물을 포섭하고 그 인물이 금군의 중추적인 위치까지 올라간다면 아슬아슬하게 그들 쪽으로 기울었던 무게 추가 쏠릴 가능성이 높았다.

안양비라면 금전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 금마단주와 친목을 돈독이 다져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소년은 벌써부터 목이 따끔따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금마단주와의 친목은 필연적으로 목의 희생을 야기했으니까.

달갑지 않은 미래였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껍게 받아드리리라.

소년은 이미 실패의 쓰라림을 이겨내고 다가올 미래를 향해 거칠고 사납게 미소 지었다.

그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미소는 태감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야성적인 투쟁심이 담긴 미소를 앞에 두고서도 태감은 우중충한 얼굴로 의기소침하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학의 날개처럼 우아한 검미는 일그러졌고 피로와 고뇌에 절은 표정은 우울함에 젖어 펴지지 않았다.

태감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떨꿨다.

그것을 보다 못한 소년이 말을 건넸다.

“거 장부가 고작 한번 실패한 것 가지고 너무 의기소침해 하는 것 아닙니까? 술이나 한잔하고 잊어버립시다.”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느냐.”

잠깐 사이에 태감의 목소리는 물기가 감돌았다. 손을 내린 태감의 눈동자가 살짝 충혈되어 있었기에 소년은 설마 그가 눈물을 보인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설마, 하지만. 태감이? 그와 교분을 나눈 이래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그의 약한 모습은 소년을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다.

“멍청한 짓이었다. 다 잡은 고기를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이 놓쳐버렸지. 안양비를 어찌할지만 생각해 주의를 게을리했다. 암살자의 실력이 뛰어났다는 것은 변명거리도 되지 않아. 이건 온전히 나의 실책이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태감은 소년에 대한 부채감에 짓눌린 채로 소년에게 고해를 시작했다.

무거운 책무에 짓눌려 마음 편히 신세 한탄 한번 하지 못했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지금 오직 소년밖에 없었다.

소년은 자신이 오랜만에 연장자 행세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네가 온몸을 바쳐 만들어준 기회가 그렇게 허무하게 날았는데, 내가 어찌 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겠느냐?”

“네가 실려 돌아온 그 날. 난 놈들을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명분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증거물로 세우기 위해서 참을 수밖에 없었지. 그것만으로도 난 널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어.”

거참,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더럽게 감수성 예민하네. 소년은 목구멍 언저리까지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평생을 거친 사내들의 세계에서 살아온 소년에겐 이런 뜨뜻미지근한 분위기가 낯설었다.

아니,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그거 가지고 오지게 끄네. 그냥 소주한 병 까고 잊어버리지.

하지만 상관께서 그러시다는데 부하 된 도리로 나서기도 뭣해 소년은 잠자코 태감의 고해를 듣는 과묵한 신부 노릇을 했다.

“내가 밉지 않으냐? 화가 나지 않느냐? 네가 목숨을 담보로 얻어낸것을 어이없는 실수로 날아가 버렸는데.”

“거참…….”

소년은 마치 애원하듯 그를 보는 태감을 빤히 보며 진저리를 쳤다.

분명 태감은 무식한 소년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유능하고 유식한 인간임은 틀림없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애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완숙한 어른으로서 여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치열한 궁중의 암투를 이겨냈으며 살아온 만큼, 분명 어린 시절부터 좋은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만큼.

외적인 부분은 바늘 하나 들어갈틈 없이 단단했지만, 내적인 부분.

가까운 사람과 터놓고 이야기하는것은 한없이 여리고 약한 것이 태감이었다.

과연 태감에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그는 오직 상관과 부하, 그리고 적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뉜 이분법적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자신과 동등한 존재. 친구라는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인간관계에는 한없이 미숙한 것이다.

소년은 문득 피지도 않는 담배 한 대가 간절해졌다. 도대체 이 나이를 먹고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거, 자고로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그렇지만…….”

“하…….”

소년은 도대체 뭐라 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내 포기했다. 그는 이런 낯간지러운 말로 남을 위로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명쾌한 사나이의 방법으로 나서기로 했다. 분명 남들은 무식하다 평할 행위였다.

“아 X팔 말 더럽게 기네.”

소년은 삐걱대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오히려 도발적인 미소로 자신의 썩어빠진 육체를 비웃으며 소년이 휘장을 거치고 밖으로 나섰다.

“밥 먹읍시다.”

“무슨 소리냐. 넌 아직 환자다. 요리는 커녕 대소변 가리는 것도 조심할 만큼 상태가 위중한.”

“개소리.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압니다.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지.”

사람의 정신은 육신을 초월할 수 있는가? 현대 의학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분명 소년의 육신을 잡아끄는 것은 맹렬한 짜증과 분노였다.

한없이 잘난 척이나 하고 있어야 할 태감이 약한 모습을 보이며 징징짜는 것도.

이 거지 같은 몸뚱이도.

그리고 태감에게 그럴듯한 위로 한 마디 해주지 못하는 염병할 자기 자신에게도.

소년의 분노에 삐걱거리고 비명을 지르던 육체도 호응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것인지 소년은 천막 앞에 큰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솥을 걸었다.

솥이 달궈지는 동안 아수라 같은 표정으로 칼을 빼든 소년이 닭의 뼈를 발라냈다.

섬세한 작업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둔중한 칼이 마치 수술용 메스처럼 예리하게 닭의 뼈마디를 파고들어 마법처럼 잔뼈를 발라냈다.

그를 말리기 위해 따라 나온 태감조차 그 귀기 어린 표정과 환상적인 기술에 압도되어 말을 잃었을 정도였다.

닭은 사치스럽게도 다리 살만을 발라냈다. 그것들을 밑간한 다음 계란흰자로 푼 녹말에 재운 소년은 기름이 끓어 오르는 동안 깐풍기 양념을 만들었다.

건팽계(乾烹雞).

철과에 소량의 기름을 두르고 달궈지면 다진 마늘과 청, 홍피망, 다진 파와 마른 고추를 넣고 향을 낸다.

향신채의 향이 우러나을 때쯤에 간장과 설탕, 굴 소스 약간과 식초, 조리용 술로 맛을 잡는다.

소스가 부르르 끓어오르는 동안 소년은 녹말 옷을 입은 닭고기를 기름에 빠뜨렸다.

한밤의 공기를 달아오르게 하는 튀김옷이 자지러지는 소리는 태감의 흉금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걱정과 양심의 감정마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했다.

자글자글 끓는 기름 속에서 바삭해진 튀김을 건져내면 뜨겁게 달궈진 철과 안에서 끓고 있는 소스에 모조리 때려 넣는다.

그 순간 밤공기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폭발적인 향기는 잠들어 있는 사람마저 깨울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멀찍이서 이삼과 장소가 놀라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도 태감은 더 이상 소년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설령 하늘에서 야차나 신장이 내려온다 한들 귀기 어린 살기를 뿜어내며 팬을 휘두르는 소년을 제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힘찬 손목의 스냅에 맞춰 철과 속의 내용물은 우아한 달빛 속에서 허공으로 비상했다.

그것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른 순간, 그것들이 떨어지는 것이 태감에게는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마치 찰나를 영원처럼 유영하던 것들이 다시 철과 안으로 빨려 들어왔을 때 태감은 자신의 위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근심과 걱정에 세 끼 식사를 입에 대는 둥 마는 등 하여 그런 걸까. 아니면 그저 순수하게 소년의 요리가 다시 없을 식탐을 끌어낸 걸까.

소년을 때려서라도 다시 눕히기 위해 결연한 의지를 품고 달려온 이삼과 장소 역시 악귀나찰을 씹어 삼킬것만 같은 소년의 얼굴 앞에서 멈춰섰다.

그야말로 현세에 강림한 아수라와 같은 표정과 아수라처럼 머리가 셋에 팔이 여섯 개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실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묘한 이끌림을 발휘했다.

마침내 요리가 완성되고 크고 넓은 접시에 깐풍기를 듬뿍 담아 올린 소년이 태감에게 그것을 내밀자 태감은 자신의 젓가락을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허등지등 그것을 손으로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대단히 새롭거나 특이한 요리는 아니었다. 요리 과정은 단순했고 식재료 또한 익히 알법한 것들이었기에 태감 역시 그 요리가 어떤 맛이 날지 익히 상상이 갈 정도였다.

그리고 요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태감의 상상을 꿰뚫고 나가 상상그 이상의 벅찬 감동을 그에게 선사했다.

익숙하기에 더욱더 가치 있고 감미로운.

태감의 눈에선 그 감동을 참지 못하고 지금껏 쌓였던 모든 울화의 감정이 녹아내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짭짤함과 매콤함 속에서 조화롭게 제 역할을 하는 신맛과 아주 살짝, 그 신맛을 누그러뜨리는 단맛은 빈틈없이 정교했다.

거기에 향긋한 향신채에서 배어나오는 풍성한 향기와 아릿한 감칠맛을 선사하는 고추. 그리고 양념에 볶았는데도 여전히 바삭함을 유지하고 있는 닭고기.

오직 다리 살로만 만들어졌기에 태감은 어떤 고기를 집어 들더라도 관능적인 바삭함 너머에서 어금니를 희롱하고 송곳니를 도발하는 다리살의 쫄깃함을 맛볼 수 있었다.

손이 데는 것도 개의치 않고 정신없이 깐풍기를 먹어 치우는 것을 보며 소년은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오직 저 요리를 해주기 위해 그에게 돌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요리.

그가 맨 처음으로 중화요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요리.

부모님께 처음으로 해드린 요리.

그 요리가 태감의 불안과 죄책감을 해소해 주기를 기도하며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가 극복하기 만을 기다리는 것뿐.

소년은 물끄러미 태감을 보며 히죽웃었다.

“맛있습니까?”

“……말 시키지 말아라. 바쁘니까.”

“거참 매정하기는.”

그래, 결국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 나면 고민도 걱정도 대부분은 해소되는 법이다. 그것이 소년이 깨달은 인생의 진리였다.

깐풍기를 탐닉하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장소에게 손짓해 그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왜 갑자기 요리하신 거예요?”

그를 부축하고 선 장소가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어지간히 큰 목소리가 아니면 지금의 태감이 알아차리지 못할 거로 생각했지만 소년 역시 장소에게 맞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양반이 뚱한 얼굴로 허구한날 궁시렁대는 꼴이 꼴 보기 싫어서요.”

“그래도 몸이 좀 회복되고 난 다음에 해도 되잖아요?”

“에이, 그걸 언제 기다립니까. 원래 윗사람이 죽상 쓰고 있으면 아랫사람도 덩달아 죽상이 되는 법이에요.”

소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침상까지 걸어갔지만 이내 침상에 몸을 뉘자 걷잡을 수 없는 피로와 통증이 그를 내리눌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보다 못한 장소가 수건을 가지러 간동안 이삼의 그의 발치에 앉아 그의 다리를 주물렀다.

“어이구…… 이거 미안해서 원…….”

“너무 무모한 일이셨어요.”

“저번 일 말입니까? 아니면 오늘 일말입니까.”

“둘 다요.”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팩 돌리는 것이 꽤 귀여워 뭔가 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발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기에 소년은 잠자코 이삼의 타박을 들었다.

한참 동안 팔다리를 정성스럽게 주물러 주고 수건으로 식은 땀을 닦아준 이삼이 천막을 나가기 전 마치 지금까지 퉁명스럽게 군 것이 못내 부끄러웠는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저희도 저 요리, 해주셔야 해요?”

“예, 배가 터지도록 양껏 해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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