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70화 (70/314)

환관의 요리사 70화

마치 울분을 토해내듯이 땅거죽에 쏟아지면 거센 장대비도 물러가고 다시 고개를 든 해는 본연의 계절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듯 뜨거운 열기를 아낌없이 방출하고 있었다.

질척했던 땅도 메말랐고 날카로웠던 칼바람의 매서음도 누그러져 계절이 완연한 여름임을 실감하게 했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의 날씨. 두들겨 맞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이왕 맞을 거라면 무더운 날이 제격이다.

날이 추우면 상처가 오그라들고 몸이 식어 회복이 더디다. 날이 더우면 상처에 파리가 꼬이는 것만 제외하면 상처 회복도 더 빠르고 피를 흘리더라도 몸이 식을 일도 없다.

그러니 오늘은 집단구타를 당하기에 좋은 날이다.

소년은 맞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부드럽게 풀어주었고 든든하게 밥을 먹었다.

배가 든든하면 지속적으로 얻어맞아도 쉬이 지치지 않는다.

다만 복부를 걷어차이면 구토가 나온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볼썽사나운 모습 보이기 싫다고 최후의 만찬이 될지도 모르는 식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년은 일부러 상처 회복에 좋은 철분이 듬뿍 들어 있을 선지 요리를 준비했다.

산서성의 명물인 돼지 피순대 저혈관장(猪血灌腸)과 오리고기와 오리 피를 볶아 만든 호남의 명물 초혈압(炒血鸭)이 바로 그것으로 피는 불결한 것으로 여겨져 제를 올리는 기간에는 입에 댈 수 없는 천한 음식이었기에 남모르게 조리했다.

속이 든든하고, 몸도 유연하게 풀어 졌으니.

시비 좀 털어볼까?

살기 등등하게 걸어오는 열 명의 패거리들 앞을 척 막아선 그는 그야말로 서부극의 악당 그 자체였다.

그것도 노상강도 따위의 싸구려가 아니라 은행을 털고 감옥을 폭파시킨 정도는 되는, 마지막에 정의로운 주인공과 마주하고 최후의 결투를 펼칠 법한 흉악한 악당.

그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표정은 절로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세가 있었다.

“여, 패배자 나리들이 단체로 오붓하게 어디들 가시나? 서로 똥꾸멍이라도 빨아주려고? 하하 밑바닥 인간들 끼리 다정하게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구려. 평생 여자 손모가지는 구경한 형편도 못될 테니 남다른 취향을 개발한 모양이오? 이거 참 내가 선구자분들을 몰라됐군.”

“뭐?!”

“이 개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떠드는구나!”

성인군자라도 분개하게 할 만한 천박한 욕설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이번엔 부처라도 벌떡 일어날 만한 원색적인 욕설로 그들을 충동질했다.

“그러게 진작에 실력을 좀 쌓지 그랬소. 선배들 뒷주머니에 돈 찔러넣을 시간에 칼질 한번을 더 했으면 이렇게 자리를 빼앗길 일도 없었을것을. 하긴, 세상에 유혹이 얼마나 많소? 노름도 해야지 술도 마셔야지, 아. 옆자리 친구분들과 우애도 나누셔야겠지. 그러니 요리에 신경쓰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내 이해하겠소이다.”

이렇게 시비를 걸어보는 건 또 얼마 만인가.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소년은 도열한 이들의 표정을 훑어보았다.

꼭 달아오른 석탄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거무죽죽한 것이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딱 좋구만.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을 수 있겠어.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이가 마치 엽문의 견자단처럼 맹렬하게 날아차기를 날려왔다. 주방에서 칼질하던 시간보다 객잔에서 싸움박질한 시간이 더 많은지 자세가 제법이었다.

이건 가슴으로 받기는 어렵겠군.

소년은 즉시 몸을 틀어 오른팔 상박부분을 내밀어 발차기를 받아냈다.

팔에서 살이 가장 많은 부분이었기에 깡마른 소년이 그나마 내밀 수 있는 부위였다.

와장창!

만화처럼 요란스럽게 날아간 소년이 우물 두레박 따위를 부수며 나동그라졌다. 발로 찬 이가 머쓱해질 정도로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형편없이 나자빠졌는데도 소년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그들을 도발했다.

“찌질한 놈들이 발재간도 시원치않구나! 네놈들에게 죽느니 차라리 내가 목을 매는 게 더 빠르겠다!”

제아무리 대단하다는 합기도의 방어술도 바닥에 깔린 자세로는 손쓸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긴 투쟁의 역사에서 본능적으로 배운 방어술로 자신을 지켰다.

소년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팔로 머리를 가렸다. 내장기관이 있는 배를 땅에 붙여 보호하고 머리는 팔로 막아 중요한 부위의 치명상을 막는 철통방어의 자세!

근육이 조밀하게 얽혀있는 등은 쏟아지는 발차기에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건장한 성인이라도 겁에 질려 벌벌떨집단구타를 당하면서도 소년은 더욱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놈…….”

“누가 몽둥이를 가져와!”

“병신들이 영 하체가 부실하구나! 그러니까 계집질도 못하지 찌질한 놈들아!”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격렬하게 움직여 몸에 부담이 오는것은 물론 사람을 때린다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심리적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허리춤에 나오는 어린 소년을 둘러쌓고 때리는 건데도 열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숨이 턱턱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기세등등한 것은 오히려 발길질에 걷어차이는 소년이었다.

“까악!”

“거기 누구 없어요? 사람이 죽겠어요!”

어디선가 새된 비명이 들려왔을 때 소년은 마침내 이삼이 임무를 성공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입 가볍고 소문을 좋아하는 나인들을 잔뜩 몰고 온 것이리라.

소년은 때가 되었음을 느끼며 왈칵 속을 게워냈다.

“피…… 피가!”

때리던 이들조차 놀랄 만한 시커먼것을 게워낸 소년이 그 위로 철퍽 엎어졌다.

사방으로 시커먼 죽은 피와 내장조각이 튀는 꼴은 지옥도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다.

소름 끼치는 광경에 질겁한 이들이 뒷걸음질을 칠 때 나인들에게 소문을 내고 돌아온 이삼이 말도 없이 비수를 던졌다.

파르르르르륵!

얇은 철판이 봉황의 날개처럼 펼쳐 지며 허공을 나르자 마치 수백 마리새가 일제히 날갯짓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비수는 모두 어깨나 무릎 같은 자칫 잘못하면 불구가 될 수 있는 치명적인 급소에만 틀어박혔다.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지는 이들을 눈앞에 두고 이삼은 냉엄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감히 후궁의 상호를 공격하고도 살기를 바랐느냐!”

호통을 치는 이삼의 추상같은 기세에 바닥에 엎어져서 있던 소년도 속으로 찔끔 놀랐다.

말보다 칼이 먼저 나가는 걸 보니 저 친구도 제법 성깔이 있구만.

이삼은 피가 철철 흐르는 이들을 내버려 두고 소년에게 달려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세요? 미리 의원님을 모셔왔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제 피는 얼마 안돼요. 다 아침에 먹은 것들 게워낸 거라…….”

“거짓말! 이 새빨간 피는 뭔데요?”

거무죽죽한 팥죽 같은 게워낸 토사물 위로는 선명한 선홍색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년은 그것들을 보며 코웃음 쳤다.

“쯧, 십 년만 젊었어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니, 일단 누워 계세요. 의원님이 곧 오실 테니까.”

터진 상처를 싸매느라 정신이 없어 이삼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가슴절절해지는 걱정은 소년에게 전해졌다.

남에게 걱정을 사는 것은 얼마 만인지, 그 민망하기 그지없는 감정에 속이 진탕이 되었는데도 소년은 얼굴이 벌게졌다.

도대체 저런 놈들에게 조금 두들겨맞았다고 피를 토하다니. 낯부끄러워 살 수가 없다.

자신이 본래 몸이었다면 오십이 넘었든 육십이 됐든 저딴 얼간이들에게 꿈쩍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웃기는군. 나이가 들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것이 이 몸뚱이라니.

소년은 비참함을 곱씹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칫하면 내장이 터질 수도 있다는 이삼의 말조차 무시하고 토사물이 묻은 겉옷을 벗은 소년은 비수를 뽑지도 못하고 바닥을 구르고 있는 얼간이들을 비웃으며 일어섰다.

“그러다가 정말 죽어요!”

“죽어요? 뭐 살다 보면 죽을 수도있지.”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것들을 굽어보며 소년은 어쩌면 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삼에게 빙그레 웃어주며 소년은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난 말입니다. 성격이 이 모양이라 언젠가 칼 맞아 죽던가 맞아 죽더라도 할 말이 없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만약 죽더라면 최소한 날 죽인 놈을 늘씬하게 두들겨 패주고 그놈을 내려다보며 죽겠다고 다짐했죠.”

“아니, 왜 하필!”

“끌끌…….”

혀를 차며 무릎을 짚고 일어선 소년이 주먹을 쥐고 하늘로 팔을 뻗었다.

“내 인생! 한 점 후회 없도다!!”

마치 유언을 토해내는 듯한 장절한 포효였다. 인생의 최후의 최후에, 더이상 남은 미련도 후회도 모조리 날려버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쓰러지는 소년은 이삼이 안아 들었다.

“안돼, 아무리 그래도 그런 유언은 너무 심하잖아요…….”

“후후…… 남자의 로망을…… 아직…… 모르는…….”

점점이 이마 위로 떨어지는 뜨거운 물방울이 그를 깨우려 했지만, 육신의 사슬은 그를 깊고 어두운 곳으로 잡아끌었다.

* * *

첫 번째 죽음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도리가 없다. 번갯불처럼 순식간에 흩어지고 파도처럼 밀려와 집어 삼켜졌다, 밀려들었다, 잠겼다, 가라앉는다?

표현할 수도 없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그렇기에 두 번째로 감겨드는 죽음은 조금 더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장님.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참 어이없이 죽어버렸군. 임무는 어떻게 잘 완수되었으려나?

늘 단기적인 목표만 눈앞에 두고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지 못하는것은 내 고질병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고쳐지지 않으니 천성이 이 모양이다.

사실 그렇게 사람이 많이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기껏해야 두 세명일 거로 생각했지 누가 열 명이나 올 줄 알았나.

두 번째로 예상 못한 거라면 내 몸이 상상 이상으로 허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잔병치레는 적어 튼튼한 줄알았는데, 이렇게나 허약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실장님.

……이왕이면 좀 더 이것저것 해주고 싶었는데. 아직 에그타르트도 만들어 주지 못했구나. 그리고 그걸……가능하면 그 요리를 해주고 죽었으면 좋았을…….

“실장님!”

“……음?”

투박한 얼굴을 들이밀고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었다. 실장님? 실장님 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 만이지?

실장이란 이름은 그가 서른 후반, 마흔 쯔음에 듣던 이름이었다. 그쯤에 분명 호텔 주방에서 일하며 실장 자리를 꿰차고 있었으니까.

그는 퇴적된 기억의 흔적 깊은 곳에서 저 투박한 주먹코 사내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문중, 박문중이었지.

“문중이냐?”

“잠깐 조신 거예요? 아까부터 예약이…….”

“아…… 그래그래. 뭐부터 해야 하지?”

“유산슬이랑 동파육이랑…… 깐풍기요.”

“깐풍기.”

“예…… 괜찮으세요? 어디 안 좋으시면…….”

예약 손님이 밀고 들어오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걱정이 뒤섞인 얼굴을 밀어내고 그가 도마 앞에 섰다.

지금 보니 익숙한 공간이었다. 익숙한 도마, 익숙한 얼굴들. 칼마저도.

그가 가장 요리사로서 힘 있고 왕성했을 때. 마흔의 나이에 한창 일했던 호텔의 중식당 홍화의 주방이다.

“문중아, 거울 하나만 가지고 와봐라.”

“예? 거울은 갑자기 왜요?”

“가져와 새꺄.”

바쁘게 팬을 돌리던 문중이 투덜대며 가져온 거울에 비춰진 얼굴은 틀림없이 마흔의 자신이었다. 슬슬 흰머리가 나고, 아직은 주름이 적은 얼굴.

그는 팔을 들어 올렸다. 구릿빛 피부에 힘줄이 시퍼렇게 선 팔뚝은 묵직한 근육이 꽉 들어차 있어 조리사복을 터뜨릴 것처럼 밀어 올렸다.

틀림없이 자신의 몸이다. 그것도 가장 힘과 경험이 가장 조화로웠던 시절의 자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 실장님! 저희 지금 진짜 바쁘…… ”

“문중아. 뭐부터 나가야 하냐.”

“예? 일단 코스 중에 유산슬이 제일 급하긴 한데…….”

“팬에 불 달궈놔라.”

손안에서 칼이 놀았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재봉틀 박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채 썰린 재료 하나하나가 금형으로 찍어낸 것처럼 소름 돋을 만큼 일정했다.

표고에 죽순, 돼지고기에 해삼과 가리비, 새우에 부추 등등. 호텔에서 나가는 유산슬답게 재료도 고급스럽게 들어갔다.

기름에 생강 향을 입히며 먼저 익혀야 하는 재료 순으로 넣고 닭 육수, 간장, 굴 소스 등을 넣어 간한다.

양념이 적당히 졸아들고 채 썬 재료들에 맛이 밸 때쯤에 물 녹말을 풀어 걸쭉하게 점도를 맞추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살짝 둘려 향을 낸다.

막 요리 하나를 끝내고 다음 요리를 준비하려 하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문중이 마치 귀신을 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안 바쁘냐?”

“아니, 바쁘긴 한데…… 그…… 뭐 약이라도 먹고 오셨나 해서.”

“약? 뭔 약?”

“아니 그 있잖슴까. 스테로이드나…….”

“스테로이드랑 요리랑 뭔 상관이냐? 운동선수도 아니고.”

가벼운 핀잔을 던지며 그는 두 번째 요리를 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두 번째 요리는 깐풍기.

유산슬처럼 한국화된 중화요리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이런 한국화된 중화요리 말고 정통 중화요리로 메뉴를 바꿔야겠다고 고집을 부렸지. 멍청한 짓이었어.

막상 수십 년간 외국을 떠돌며 본토의 요리를 배워보니 정작 그리워지는 것은 설탕 잔뜩 들어간 촌스러운 짜장면 탕수육이었다.

결국 한국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것은 한국화된 요리인 것이지. 본고 장의 맛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늘상 먹다 보면 어딘가 영혼 한구석이 그리움으로 몸부림치게 된다.

그리고 깐풍기는 특별한 음식이니까. 다른 요리보다 훨씬 더 공을 들이게 된다.

그가 맨 처음으로 요리를 생업으로 삼겠다 마음먹었을 때.

그가 부모님께 맨 처음으로 요리를 해드렸을 때.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요리를 해줬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요리가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꼽을 요리.

팬에서 양념이 춤을 추고 녹말 옷을 입고 튀겨진 닭고기가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팬 안으로 착지한다.

간장이 졸아드는 향기, 매콤한 고추기름의 향기 속에서 살짝 균형을 잡는 식초의 새콤함.

“시, 실장님.”

“문중아, 요리 안 하냐? 예약 손님 밀렸다며.”

“저…… 하나만 먹으면 안 되겠습니까?”

“……이게 미쳤나…… 야, 내가 아니라 네가 아픈 거 아니냐?”

접시에 소복하게 깐풍기를 담아내는 그의 손목을 잡은 것은 손가락두 번째 마디까지 털이 숭숭 난 문중의 손이었다.

마치 독한 고량주 한잔을 넘긴 것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홀린 듯이 깐풍기를 들여다보는 문중을 보며 그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야, 주방 시다 때도 안 하던 일을……”

“진짜 한입만요. 예?”

“그래 먹어라. 먹어. 거참……”

문중은 깐풍기 한 조각을 보물처럼 받아들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보던 그는 남은 요리를 하기 위해 칼을 집어 들었다.

다리를 절고 허리는 굽은 참담한 몸이 아닌 젊고, 튼튼하고, 강인한 몸으로 칼을 잡으니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꼭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이라도 한 것 같은걸.

고산지대에서의 심폐기능 강화 훈련처럼 허약한 몸에 갇혀 살아서인지 그의 몸은 상상 이상으로 능률적으로 움직였다.

“맛있어…….”

“그러냐? 다행이네. 손님상에 낼…… 이 새꺄! 다 먹으면 안 되지 임마!”

“실장님, 혹시 여기에 약 같은 거 타신 거 아니죠?”

“이게 진짜 어디 아픈가…….”

한조각 먹으라고 줬던 깐풍기를 그릇 바닥이 보일 때까지 싹 비워버린 문중을 보며 그는 한숨만을 내쉬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먹어치워 버리니 화낼 기분도 들지 않았다.

“아니이…… 제가 실장님 평소 요리를 안 먹어 본 것도 아닌데……. 이건 너무 맛있다고요.”

“맛있으면 좋은 거지.”

“좋은 거긴 한데요.”

“이 시끼 아까부터 농땡이 부리네. 빨리 안 하냐?”

일부러 문중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그는 고뇌에 빠졌다. 설마 ‘평범하게 만들어도 이상할 정도로 요리가 맛있는’ 능력이 딸려온 걸까?

애초에 그건 뭐 였을까? 잠깐의 백일몽이었을까. 무더운 주방의 열기에 잠깐 홀렸던 걸까.

그렇다면 분명 악몽이있겠지. 그 끔찍했던 나날들을 잊기 위해서 그는 더욱더 정열적으로 요리에 몰두했다.

고생스러웠던 것도 잊고, 슬폈던 것, 아쉬웠던 것도 전부 잊었지만.

어째서인지 한가지가 잊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문중이 모조리 먹어치운 깐풍기 접시로 향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 친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는 요리.

이 요리를, 꼭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고,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구만.”

꿈은 아직 달콤할 때 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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