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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69화 (69/314)

환관의 요리사 69화

휘몰아치는 바람이 온갖 각도로 비들의 경로를 비틀었기에 하늘은 몽환적인 비의 장막에 감싸져 있었다.

어지럽게 흩어지며 열기를 쓸어내리는 장막 너머에선 때때로 천등을 동반한 번개의 섬광이 번득이며 먹구름을 기묘한 색으로 물들였다.

바깥에선 굵은 장대비가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소년은 안락한 천막 안에서 불을 쬐며 죽을 끓이고 있었다.

사나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보글보글 끓는 죽을 보고 있으면 꼭 돌아올 손주들을 기다리며 스튜를 끓이는 할머니가 된 것만 같은 동화적인 기분이 든다.

마침 거센 빗줄기를 뚫고 쫄딱 젖은 손주들이 휘장을 걷으며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표정을 되찾은 태감의 얼굴에는 풍부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볼일 보고 오셨습니까?”

“……이젠 묻지도 않는구나. 궁금하지도 않더냐?”

“궁금해해야 합니까?”

“궁금하다고 하면, 대답해 주려 했지.”

소년은 입가를 비틀었다. 이제라도 물어볼 테냐? 그렇게 묻는 듯한 태감에게 소년은 한없이 조소에 가까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제가 태감님 애인도 아닌데, 굳이 개인적인 비밀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담백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태감은 김이 샜다는 듯이 긴장과 결의가 녹아 나온 숨을 내쉬었다.

노곤하게 풀린 표정으로 빗물을 닦아내는 태감에게 소년이 죽 한 사발을 떠 내밀었다.

“여름인데도 비가 이렇게 오니 날이 초겨울 같군요. 뜨거운 죽으로 몸 좀 녹이시죠.”

“그래, 고맙구나.”

돼지 뼈 사골로 뭉근하게 끓여낸죽은 쌀알이 녹진하게 퍼져 뭉근하고 걸쭉했다.

진득한 쌀은 부드럽게 넘어갔지만, 그 사이에 사이엔 오돌오돌하고 쫄깃한 건더기들이 있어 식감에 다채로운 변화를 주어 이와 혀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뜨거운 죽이 얼어붙은 식도를 넘어차갑게 식은 위장에 내려앉자 그 온기는 극적으로 온몸에 퍼져 모세혈관 가장 말단부까지 따스함을 전달했다.

굽었던 손이 펴지고 날카롭고 짜증이 서려 있던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질 때 즈음. 숨을 몰아쉬며 기지개를 켠 태감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칠성제도 무사히 치러졌고 폐하의 용설(龍舌)도 만족시켜 드렸으니 일차 목표는 모두 완수한 셈이다.”

“칠보절식을 무사히 치러낸 게 가장 큰 성과죠.”

“아아, 그건 정말로 고생 많았다 오운. 덕분에 굶주림 없이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어. 경사로 돌아가면 제대로 포상하마.”

태감은 신뢰감이 듬뿍 서린 표정으로 소년을 치하했다. 그 외에 맞은 바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 장소와 이삼에게도 적절히 포상하겠다 한 뒤, 태감은 의자를 책상에 가깝게 끌어당겨 앉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젠 돌아가는 길 동안 달성해야 할 두 번째 목표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후후, 우선은 제가 적절하게 맞아 앓아누워야겠군요.”

“다시 말하지만, 몸의 안전을 첫번째로 생각하도록. 이삼, 네 역할이 중요하다. 만약 폭행이 도를 넘는것 같다 싶으면 가로막아, 필요하다면 입을 열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죽여도 좋다.”

“네. 알겠습니다.”

다부지게 대답하는 이삼의 표정은 소년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진 언제나 아방한 웃음을 지으며 소년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귀여운소년의 모습은 없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피를 볼 각오를 한 호위무사의 얼굴은 소년에게 강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죄인을 경사로 압송해 간즉시 외궁의 총괄조리장에게 죄를 물어 어떻게 해서든 그를 경질한다.”

“그를 대체할 다른 인원이 있습니까?”

“안양비 파벌의 사람이 아는 다른 외궁 소속 요리사라면 누구라도 좋다. 흠, 이건 위정이 수고 좀 해줘.”

“예. 근시일 내로 적합한 인원을 선별해 보고하겠습니다.”

소년은 태감의 설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등허리 아래쪽부터 쭈뻣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 사람이 하는 가장 기초적인 실수는 바로 자신이 계획한 일이 반드시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가정하에 업무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감은 항상 실패 시에 대처해야 할 다른 계획을 짜는 것은 물론 그 계획이 실패하였을 때를 대비한 대체 계획까지 이중 삼중으로 계획을 짜는 것이 몹시 능숙했다.

그렇게 세부적인 일정을 짠 태감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짠 판의 최종 목표를 그들에게 말했다.

“마지막은 안양비 파벌의 핵심 인물인 옥린비를 견제하고 최선의 경우에는 낙마시키는 것이다. 옥린비는 예부상서의 딸로 마찬가지로 이부상서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안양비와는 어린 시절부터 교분을 나눠온 사이다. 그러니 천운이 따르지 않는한 그녀를 낙마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번 계획의 목표는 가능한 그녀의 입지를 줄이는 것을 성공목표로 한다.”

물론 태감이 말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정치판에서의 일.

요리밖에 할 줄 모르는 소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자에게 맞는 일을 분배하는 것 또한 관리직의 일인 법. 태감은 죽이든 솥을 휘젓고 있는 소년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주었다.

“우선은, 후궁에 도착하는 즉시 홍엽비 님의 원기를 북돋아 긴 시간굶주리신 폐하의 정을 버틸 수 있도록 빈틈없이 기해다오.”

“기간이 짧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부여비를 포섭하는 일이다.”

두 번째 일은 소년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오래전 간을 보기 위해 대면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접점도 없었던 부여비를 갑작스럽게 포섭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감은 두 눈에 강렬한 광망이 번득였다.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한 것일까. 태감은 힘있는 목소리로 소년을 설득했다.

“옥린비가 흔들리면 필연적으로 안양비는 외적인 활동을 줄이고 내부를 단속해야 할 테지. 그동안 우리는 난화비를 필두로 홍엽비와 부여비를 연합시켜 안양비 파벌과 대립시킨다. 안양비의 파벌은 크지만 난화비와 홍엽비, 부여비 셋이 연합한다면 맞수가 될 만하지.”

“하지만 홍엽비 님이야 권력욕이 없으시니 괜찮으시겠지만, 부여비님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한 집단에 머리가 두 개라면 단결할 수 없는 법입니다.”

소년의 의문에 태감은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소년의 판단을 칭찬했다.

하지만 소년의 걱정은 불필요한 우려였다.

“부여비는 네 생각처럼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예? 하지만…….”

“부여비에 대한 첫인상은 잊어도 좋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궁의 비로서 체면치레한 것일 뿐이니. 도찰원 우도어사의 자녀로 태어난 부여비는 손에 인형보다 책을 먼저 쥐었다고 일컬어지는 재녀다. 그녀는 편집증에 가까울 활자 중독에 탐구심강한 학자이지. 아마 목숨을 보전할 수만 있고 풍부한 서적만 제공해 준다면 그녀는 기꺼이 난화비에게 협력할 거야.”

소년은 태감이 말하는 부여비가 과연 자신이 처음 본 부여비와 동일인물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 부여비의 첫인상은 도도하고 차가운 후궁의 비였으니까. 그렇게 개성적인 여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겠습니까?”

“그녀가 모르는 지식,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줘라. 그녀의 탐구심은 병적일 정도지. 한번 호기심을 끌고 나면 일을 진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게야. 네가 저번에 했던 재담을 풀어보는 것도 괜찮겠구나.”

“아…… 그러고 보니 금마단주 나리와…….”

또 병사들 앞에서 생지랄을 떨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아려오는 듯했다.

얼굴이 시커멓게 죽은 소년이 닥쳐 올 고난을 예감하며 손을 떠는 동안 두 번째 죽 그릇을 비운 태감은 세번째 죽을 뜨기 위해 국자를 집어들었다.

* * *

세상엔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있다. 가장 친한 줄 알았던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겼을 때. 부모님에 관한 모욕을 당했을 때.

그리고 온갖 구타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선임들의 뒤꽁무니를 빨아주며 돈과 술을 상납해 가며 얻어낸 기회를 어떤 X도 없는 절름발이 새끼가 날름 채갔을 때.

외궁 식방각의 요리사, 방철은 스스로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돌아버릴 용기 조차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술로 허송세월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회를 뺏어간 절를 발이 놈은 승승장구하며 자신이 잡을 수 없는 곳까지 훨훨 날아갈 테지.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집단이 된 그들은 분기탱천하여 맹렬하게 그들의 주적인 절름발이 곱사등이 놈을 씹었다.

모인 자들은 평소에는 전부 같은 직장에서 식방각주의 눈에 들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경쟁자였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아 껄끄러운 놈, 실력이 일천해도 아부를 잘해붙어 있는 놈, 인맥빨로 들어온 놈.

모두 방철 그가 혐오하는 종류의 인간이었으나 이 자리에선 한뜻으로 묶인 동지였기에 그는 부담 없이 술잔을 나눌 수 있었다.

걸쭉한 탁주 한 모금으로 목을 데운 이가 끈적이는 숨을 토해내며 떠들었다.

“그 염병할 놈은 도대체 뭘 대주고 거길 쑤시고 들어간 거야?”

“쌍판을 보니까 뒷구녕을 대준 건 아닌 것 같던데?”

“또 모르지, 그놈 윗대가리는 꽤 반반하던걸?”

“분명 밸도 없는 놈들이 가진 건 돈뿐이니 오지게 쑤섰겠지.”

여기 모인 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다 하나같이 상사들에게 호주머니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 상납해 자리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게 그렇듯이 남이 한 부끄러운 일은 천인공노할 짓이라도 자신이 했으면 떳떳한 실력이 되는법. 자리에 둘러앉은 이 중 자신의 과오를 되짚어 보는 이는 없었다.

하나같이 소년에 대한 천박한 욕설이 두서없이 난무했을 뿐. 그들은 신나게 소년을 욕하면서도 정작 누가 손을 쓰겠냐는 말이 나오면 하나같이 헛기침을 하며 꽁무니를 뻤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이 볼썽사납고 아니꼬워 방철은 애꿎은 탁주만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결국 누구하나 나서서 총대를 메겠다 하는이 없어 어색한 침묵만이 으슥한 방안에 감돌았다. 결국, 참다못한 방철이 고함을 지르며 술잔을 내던졌다.

“이럴 게 아니라 다 함께 가서 그 절름발이 놈을 족칩시다!”

“아니, 그래도 그럼…….”

“그럼 댁이 가시겠소?”

“크흠……그건…….”

우물쭈물하며 난색을 표하는 이들을 둘러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던 방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들을 독려하는 장수처럼 고압적인 태도로 호통을 쳤다.

“이 답답한 사람들아, 그깟 절를발이 놈 하나 때려잡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겠소? 두 다리 멀쩡한 놈이라도 이만한 인원이 달려들면 손도 발도 못 쓸 거요. 우리가 복면을 쓰고 달려들면 제깟 놈이 정신이나 차릴 수 있겠소?”

“그거 대담한 계책이군.”

그 순간 천장 쪽에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자신의 묘안에 푹빠져버린 방철과 일당들이 눈치챌만한 소리는 아녔다.

그들은 이미 소년은 흠씬 두들겨패주고 난 후의 이야기를 논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 건방진 손모가지를 똑 부러트려 줘야지.”

“남은 다리 한쪽도 작살을 내서 평생 앉은뱅이로 살게 해줘야 해.”

“병신이 돼서 궁에서 쫓겨나면 한 번 더 밟아주자고.”

“그땐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느긋하게 손봐줘도 되겠지.”

흥분에 찬 고성이 오가고 지분거리는 욕설 섞인 대화가 깊어지는 동안 방철은 호롱불에 흔들리는 그림자 속에서 음흉한 미소를 감추었다.

병신들, 그렇게 한 치 앞을 못 보니 계속 그 모양 그 꼴로 사는 거다.

속으로는 저들을 깔보면서도 겉으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방철은 음홍한 흉계를 꾸몄다.

연거푸 들이켠 술과 증오로 달아오른 공기는 그에게 점점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불어넣었다.

이번 기회에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자신이 자리를 밟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백일몽.

자신을 다를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늘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고 설마는 늘 사람을 잡는다. 하지만 거나하게 취한 지금은 모두가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잘 풀릴 거라 믿었다.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있다 보니 몇 순배 돌기도 선에 술동이가 전부 동나고 말았다.

그러자 푼돈이 좀 있는 이들이 돈을 모아 술 몇 동이를 더 사 오고 싸구려 육포 따위를 긁어와 허세와 음담패설이 뒤섞인 천박한 연회가 벌어졌다.

더 이상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다.

그들을 지켜보던 시선은 조용히 천장 안을 빠져나왔다.

은밀하게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빠져나와 문설주에서 뛰어내려 소리없이 바닥에 내려앉는다.

경멸과 혐오가 뒤섞인 표정을 한 장소는 이내 얼굴을 주물러 표정을 부드럽게 풀어주고는 태감에게 보고하기 위해 달려갔다.

하늘에서 쏟아붓는 것 같던 장대비는 아니지만, 여전히 하늘에선 가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단련된 몸이어도 몸이 젖은 채로 오래 있으면 분명 감기게 걸리리라.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 역시 호위무사로서 중요한 일이다. 호위가 질병 따위로 쉬게 되면 그만큼 구멍이 생기게 되고 호위대상의 안전을 위협하게 되니까.

태감은,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다섯.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그만큼 태감이 쓸 수 있는 손발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호위라면 그 어떤 순간에서도 자신의 건강을 챙겨야한다.

우선은 가자마자 옷을 갈아입어야지. 그리고 뭔가 따뜻한 것을……

따뜻한…….

그 순간 장소는 자신도 모르게 침샘에서 흘러넘치는 침을 삼켰다. 그동안 오운이 해준 요리가 뇌리에 스치고 지나가며 참을 수 없을 만큼 위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큰일이야, 더 이상 예전처럼 배고 픈 걸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수련 중에는 굶주림을 버티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한 자리에서 긴 시간 버티거나 지속적으로 추적, 감시해야 하는 일에선 많은 양의 음식물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배변량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는데도 머릿속으로 뜨거운 음식이 떠오르자 맹렬하게 위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뭔가 뜨겁고, 속이 든든하게 차오를 만한…… 가급적이면, 가급적이면-

“고기!!!”

“으어 ?! 뭐야, 습격인가?”

더 이상 차오르는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초저공 다이빙으로 휘장을 헤치고 장소가 천막 안으로 난입했다. 뭉근한 수증기와 진한 고기 삶는 냄새로 가득한 천막 안에선 둘러앉은 이들은 하나같이 작은 그릇에 일사불란하게 무언가를 뜯어 넣고 있었다.

“어 씨 깜짝이야, 적인 줄 알았네. 괜찮아요?”

“오운 님, 저 너무 배고파요. 춥고…….”

“예, 예. 일단 젖은 옷부터 좀 말립시다. 머리도 닦고.”

두꺼운 모직물로 머리를 닦아주며 소년은 장소의 앞에도 작은 그릇과 두꺼운 빵 쪼가리를 가져왔다.

자세히 보니 아까부터 태감과 이삼, 심지어 위정 까지 말없이 일사불란하게 빵 쪼가리를 작게 뜯어 그릇에 넣고 있었다.

“아, 포마(泡馍)! 포마구나!”

“예, 날이 추워서 뜨끈뜨끈한 양육포마(羊肉泡馍)를 만들어 봤어요.”

오늘의 야식은 섬서의 명물인 포마(泡懷)였다.

포마란 딱딱하게 구운 병(餠)을 잘게 쪼개 그 위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부드럽게 해 먹는 음식인데 딱딱했던 병(餠)이 뜨겁고 기름진 국물을 흡수해 부들부들해진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딱딱하게 구운 병은 보존 기간이 기니까 여행길에 먹기도 좋죠. 오늘은 비가 오기도 하고 뜨거운 국물음식이 먹고 싶을 것 같아서 만들어 봤어요.”

그 뜨겁고 기름진 유혹 앞에서 장소는 보고하는 것조차 있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올라 진지하게 병을 찢었다.

쪼가리가 수북하게 쌓일 때쯤 소년은 양고기가 듬뿍 들어간 기름이 둥둥 뜬 국물을 넘실넘실 부었다.

마시고 싶다, 지금 당장 저 뜨거운국물을 들이켜고 싶다! 욕망에 시달리는 장소의 손목을 태감의 섬섬옥수가 막아섰다.

“참아라, 장소! 진짜 맛있는 포마를 먹기 위해선 국물 속에서 병이 촉촉해지기까지 기다려야 해!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자세로 기다리는 거다!”

“하…… 하지만……”

“생각해 봐라. 지금 들이켜면 당장은 따끈하고 기름진 국물이 네게 만족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후에 남을 딱딱하고 버석버석한 병은 어찌할 생각이냐.”

“크윽!”

가혹하고 격렬한 태감의 질타에 장소는 무릎을 꿇었다. 뜨거운 사나이의 눈물이 융단위에 점을 찍었다.

“태감님…… 하지만…… 국물이 마시고 싶어요!!”

“……그럼 마셔요. 더 줄 테니까.”

왜 이 인간들은 쓸데없는 것에 열을 내는 걸까?

장소를 위해 국을 한 국자 더 뜨며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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