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67화 (67/314)

환관의 요리사 67화

용의 분노가 불길처럼 일어나자 그순간 방안의 모든 공기가 황제가 뿜어낸 기세에 밀려나는 듯했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조차 눈치챌 수 없는, 어금니를 들어낸 맹수처럼 황제는 조용히 일어섰다.

“지금 네가 내온 요리가 무엇이냐.”

마치 최후의 통첩을 고하듯이 황제는 낮은 목소리도 으르렁거렸다. 그순간 소년의 눈에 황제가 신적인 존재로만 보였다. 그리고 그는 오늘, 그 신화의 한 자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 차소(叉燒)입니다.”

소년이 밥과 함께 상에 올린 것은 그 유명한 광동의 명물, 차슈였다.

요즘은 중국 요리보다는 일본의 라멘에 올라가는 고명으로 더 유명한 이 요리는 광동에서 요리를 배운 요리사들에겐 일종의 필살기와도 같은 요리였다.

가장 좋은 돼지 등심을 골라 양념에 재우고 광동 전통의 화덕에서 갈고리에 꿰어 꿀을 발라 굽는다.

그러면 겉은 살짝 꾸덕한 듯 쫀득하고 속까지 양념이 잘 배어든, 달콤짭짤하고 쫄깃 야들야들한 차슈가 완성된다.

계피와 오향분을 넉넉하게 넣은 챠슈는 기분 좋은 향기가 났고 먹기 좋게 따스했으며 겉은 꿀을 발라 구운 영향으로 반지르르 빛났다.

그것이 황제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그래, 돼지고기구나. 칠보절식의 둘째 날에 돼지고기를 올렸어.”

“예, 폐하.”

“변명해 보아라.”

마치 변명하면 경우에 따라 용서할 수도 있다는 듯한 황제의 말에 소년이 입꼬리를 길게 찢었다.

용서받고자 한 일이 아니었으니 용서를 빌 수도 없었다. 이것이 소년이 황제에게 던진 승부수였다.

“폐하. 요리를 드시지 않으시겠다면, 저의 패배로 알겠습니다.”

“……패배. 그래, 네겐 이게 승부였단 말이지…….”

장엄한 산맥처럼 힘있게 뻗은 황제의 눈셉이 일그러지고 분노는 곧 방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효가 되었다. 온몸의 솜털이 오소소 돋는것을 느끼면서도 소년은 고개를 숙일 뿐 뜻을 거두지 않았다.

“네가 황실을 능멸하는구나. 네가 참주패를 하사받았다 한들 모든 죄를 무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당장에라도 소년의 목을 배겠다는 듯이 황제의 손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상 옆에 세워둔 검을 렬 것처럼, 황제의 눈동자에는 서서히 탁한 살기가 어렸다.

좋구나, 전에 마피아 두목 앞에서 요리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심장이 찌릿찌릿하구만.

살기를 품은 용의 아들을 눈앞에 두고 소년은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승부사의 본능이 고개를 쳐들고 용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어금니를 번뜩이고 아가리에 천둥과 번개를 입에 문 용 앞에서 소년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졌다.

“폐하. 이 미천한 놈의 목을 베십시오.”

“뭐라?”

눈썹을 일그러뜨린 황제의 앞에 엎드린 소년이 황제에게 고했다.

“이 미천한 놈의 목을 베어 장대에 걸어 세인들에게 황실의 법도를 능멸한 이가 어찌 되는지 만천하에 알리십시오. 이 미천한 놈의 가죽을 벗기시어 그 죄목을 소상히 적으시고 천하에 그 어리석음을 널리 알리시어 역모를 꿈꾸는 무뢰배들이 제분수를 알게 하십시오. 폐하, 가죽을 벗긴 몸뚱이는 개 먹이로나 주시고 무덤은 커녕 명패 하나 필요 없습니다. 요리를 물리라 하십시오. 그럼이 미천한 놈은 폐하께 기꺼이 이추레한 몸뚱이를 패배의 대가로 내놓겠습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소년은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음을 실감했다. 태감이 자신의 뒤를 봐줄 것이라 믿지 않았다.

황제가 자신에게 연민을 느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죽는다면 자신이 졌을 뿐이다. 자신의 요리가 황제를 탄복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손님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한 것은 요리사의 수치가 아닌가. 소년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자 황제는 더이상 소년의 말을 가벼이 여길 수 없게 되었다.

“하, 이깟 요리에 제국의 황제가 흔들릴 거라 생각했느냐? 이 용의 아들이 네게는 식욕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동자로 보였느냐?”

확실히 꿀을 발라 구운 돼지고기는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윤기가 반들반들한 그것을 입에 넣으면 얼마나 짭조름하고 달콤할까.

과하지 않은 지방 부분은 쫄깃하고 그 아래로 푹신한 살점에는 육즙이 담뿍 담겨 있을 테지.

그것을 쌀밥과 함께 입안으로 욱여넣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황제는 무심코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비약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진주처럼 희고 고슬고슬한 쌀밥에 고기를 듬뿍올리면 그 달콤한 양념이 밥에 배어들 테지.

그것을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입에 욱여넣고 싶다. 저것을 안주로 술을 마신다면 어떨까.

달콤한 양념을 씻어주는 쌉싸름한 술, 마시고 나면 목구멍이 개운해지는 술이라면.

한번 차슈를 보고 나니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욕망은 마른가을 들판의 들불처럼 번져 황제의 위장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는 황제였다.

솔직한 욕망보다도 체면을 우선시해야 하는.

“양 태감을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려 했건만,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구나. 네 죄를 물어야겠다.”

마침내 용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황제는 당장에라도 입에서 불을 뿜어낼 것만 같은 표정으로 손을 뒤로 뻗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검으로 손을 뻗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황제의 손은 검 자루가 아닌 젓가락을 쥐고 있었다.

잠시 실수한 것일까? 상 위로 젓가락을 내던지고 칼을 쥐려 했지만, 황제의 시선은 상 위에서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차슈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황제는 그제야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심중에 저 차슈가 틀어박혔음을 알았다.

“폐하, 식겠습니다.”

“네놈이…….”

이죽거리는 소년의 표정이 황제의 분노 도화선을 간질거렸다. 임계점의 한계의 한계에서 선을 넘는 남자. 소년은 멈출 줄을 몰랐다.

“드시지 않으시겠다면 이만 치우겠습니다. 오늘은 개가 포식하는 날이군요.”

자존심과 고기 앞에서 갈등하던 황제가 신음성을 토했다.

고민하던 황제가 그러쥔 의자의 등받이 귀퉁이가 으스러지며 비명을 지르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귀힘이 얼마나 세면 나무를 쥐어짤 수 있는 것일까?

분명 저 두꺼운 손으로 소년의 목을 조르면 의자 귀퉁이보다도 훨씬 쉽게 모가지가 바스러질 것이다.

기꺼운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오는것을 느끼며 소년은 또 한 번 황제를 도발하려 했다.

“폐하.”

“두어라.”

용의 역린을 건드려 보기도 전에 패배의 선언은 꽤나 선선히, 그리고 제법 홀가분하게 떨어졌다.

자신이 등받이를 바스러뜨린 의자에 걸터앉은 황제는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고 입맛을 다셨다.

“내가 졌다. 그래, 도저히 못 당하겠구나. 위장이 요동치니 버틸 도리가 없어.”

“폐하,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어서 이 비천한 놈의 목을 베시고 황실의 기강을 바로 세우시옵소서!”

애틋한 소년의 통곡에도 개의치 않고 황제는 차슈를 입으로 욱여넣었다.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아니, 실물은 상상 이상이었다. 달콤한 패배의 맛이 혀 위에 사르르 번졌다.

“그래, 칠보절식이니 뭐니 해도 결국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과거의 관례일 뿐이지. 황실의 법도, 무엇도 아닌 오랜 관례에 언제까지 제국의 황제가 얽매이겠는가. 그래, 이번 기회에 칠보절식을 폐하는 것 또한 생각해 봐야겠구나.”

급격히 진보적으로 나아가는 황제의 발언에 이번엔 소년이 매달렸다.

“폐하! 관습이 관습으로 굳어지고 관례가 관례로 전해지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옛 황실의 관례를 지켜 주시옵고 소인의 목을 베어주십시오!”

자기 목을 베어달라 애원하는 놈은 또 처음 본다는 듯이 코웃음 친 황제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소년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리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보는 관례가 과연 올바른 관례인가? 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후궁의 상호 오운은 자신의 승리임을 믿어 의심치 말라.”

“폐하!!”

“이만 퇴궐하라.”

소년에게 축객령을 내리며 황제는 오늘의 달콤한 패배를 곱씹었다. 분노의 감정이 모조리 휘발되어 날아가자 그 빈자리에는 서늘한 만족의 감정이 들어찼다.

양태감과의 놀이와는 다른, 조금더 아슬아슬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황제는 그제야 오늘 소년이 자신에게 싸움을 걸어왔음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높은 신분의 격차 때문에 그 당시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오늘 소년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황제와 싸우려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이것으로 한동안은 승냥이들과 다툴 수 있겠군.”

오늘의 이 감정을 떠올리면 이득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천박한 승냥이들과도 기꺼이 기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박하지 않고, 질척거리지 않고, 이득에 눈이 팔리지 않는. 뜨겁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온 승부사와의 싸움은 황제의 메마른 감정에 새로운 싹을 퇴웠다.

입은 열심히 고기를 씹으면서 황제의 시선은 그가 떠난 텅 빈 공간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고기를 씹어 삼키고, 차로 목을 가다듬은 황제가 수염을 쓸었다.

“즐거웠네! 오운. 언젠가 다시 자네에게 패배할 날을 기다리겠네.”

패배감과 만복감으로 그득해진 배를 두드리며 황제는 다리를 저는 소년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승자에 대한 포상이 없었군.”

기억해 두게 오운. 네가 이긴 것이 누구인지를.

그에게 무엇을 쥐여줄지를 고민하던 황제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 * *

“미쳤구나.”

“예, 그런가 봅니다.”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어떻게 칠보절식의 두 번째 날에 돼지고기를 올릴 생각을 했지? 그것도 대제국의 지배자이며 율법의 수호자이신 황제 폐하께?”

“뭐, 잘 드시던데요.”

“드셨으니까 더 문제지.”

그날 밤, 제국의 황제에게서 승리를 따낸 소년을 기다린 것은 뜨거운 개선 축하 행사가 아닌 허탈한 질책이었다.

그리고 소년 자신도 그 질책이 합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그새 그걸 못 참아서 황제에게 목에 핏대를 세우고 대들었으니.

어차피 둘 밖 없었기에 소년은 의자에 걸터앉아 태감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염병할 동네에 오래 있다 보니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자꾸 자기 목숨을 싸구려 푼돈 삼아 굴리게 된다는 겁니다.”

소년의 말에 태감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황당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 표정은 이내 체념으로 물들었다.

“아니, 여기가 아무리 염병할 곳이어도 자기 목숨을 그렇게 막 굴리는 인간은 없다. 역시 한번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인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여전히 죽음은 무섭다. 아니, 오히려 한번 죽어보았기에 소년의 폐부 깊숙한 곳에는 그 항거할 수 없는 섭리에 대한 공포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소년이 자신의 목숨을 태연하게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죽음보다도 저 큰 이득이 있다면, 당연히 걸어봐야지요.”

눈앞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사내가 자신을 기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결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소년은 혼자서만 키득거리며 웃어 태감은 기분 상하게 했다.

“때론 살아서 후일을 도모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다.”

태감은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에게 다가섰다. 별 무리를 담은것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달착지 근한 숨을 내뱉으며 태감은 소년의 마디가 굵은 손을 잡았다.

물을 오래 만져 트고 갈라진 손, 고된 노동으로 투박한 굳은살이 박인 손을 보드라운 태감의 손이 쓰다듬었다.

“살아야만 이 손으로 결과를 움켜 될 수 있다. 오운. 죽음으로서 날기쁘게 하지 말고 살아서 나와 함께 기쁨을 누려다오.”

마치 고백과도 같은 말이었다. 기이하게도 방안의 공기가 끈적하게 달아올랐고 태감의 우수의 젖은 눈동자가 살짝 촉촉해졌다.

저 입술, 연한 핑크빛 입술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며 소년은 당장 이 분위기를 타파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것은 분노한 황제 앞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섬쩟하고 두려운 예감이었다.

“혹시 고백하는 건 아니죠? 시발 난 전생에 처자식이…… 아 없었지.”

소년의 와락 일그러진 표정에 태감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후후, 이런 표정을 지으며 궁내 나인들에게 ‘부탁’하면 잘 먹히거든. 내 정보력의 원천이지.”

“……천벌 받을 겁니다. 순진한 소녀들을 농락하면.”

“농락이라니, 난 그저 정보를 대가로 꿈을 판 것뿐이야.”

능청스러운 미소를 짓는 태감의 옆구리를 찔러주고 싶어졌다. 소년의 꿈틀거리는 손가락과 힘줄이 돋아난 팔을 본 태감은 멀찍이 떨어져 옆구리를 방어했다.

“아무튼, 앞으로는 함부로 목숨을 낭비하지 말아라. 넌 내게 받아야 할 대가가 있지 않으냐.”

“대가? 그런 게 있었습니까?”

소년이 진심으로 그런 게 있었냐는 듯이 묻자 태감은 온몸의 기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보수를 받을 것이라 믿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관심이 없어서일까. 소년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선물을 준비해 온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고래 등같은 저택에 삼 처사 첩을 끼고 살겠다고.”

“허 참,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적도 있었지요. 근데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고래 등 같은 저택에 삼 처사 첩이라. 분명 처음 태감과 거래를 했을 때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다 잊어먹었지만, 그때는 그런 보증이라도 받아둬야겠다는 불안감이 팽배했을 때이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허리 병신인 놈이 삼 처사 첩을 끼면 어쩔 것이고 저택이 있으면 또 뭐에 쓰겠습니까. 잠잘 방 한 칸에 주방 한 칸, 작은 마당이 있으면 개나 한 마리 풀어 기르면 좋기야 하겠군요. 좀 여유가 있으면 닭장이나 놔서 닭이나 길러 먹고…….”

“이제 와서 소원이 너무 작아진 것 아니냐? 이미 저택을 지을 부지도 마련되었고 소작을 줄 농지도 사두었는데.”

이번엔 소년이 당황할 차례였다.

아니, 도대체 언제 일이 끝날 줄 알고 벌써 땅을 사두었단 말인가?

그러다 중간에 내가 픽 죽으면 어쩌려고. 소년의 말에 태감은 피식 웃으며 소년의 어깨에 짐을 얹었다.

“그러니까 죽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날 보필하란 말이다.”

“거 참, 적당히 부려먹고 낙향시켜 주십쇼. 언제까지 부려먹으실 겁니까?”

“최소한 이미 구매한 농짓값에 저택을 지을 건설비 정도는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 농지야 멀리 있지만, 장원은 이 경사 한복판에 마련되었으니 값이 보통이 아니다.”

“환불 안 됩니까?”

“재주 있으면 네가 환불해 보거라.”

갑작스럽게 분수에 어울리지도 않는 부동산을 강매당한 소년은 무어라 할지 고민하다 결국 한숨만을 내쉬었다.

뭐, 준다니 받아야지.

얼빠진 표정을 짓던 소년은 이내 기세 좋게 기지개를 피며 정신을 다잡았다.

허리가 굽어 무척 볼썽사나운 모습이 되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자, 이제 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자.”

“중요한 이야기. 그렇지요. 해야지요.”

태감의 진지한 표정에 소년도 마음을 다잡았다. 황제 폐하와의 승부는 그저 가벼운 여흥이었을 뿐이다. 앞으로는 질척한 정치판에서 싸워야한다.

작게는 등용문의 기회를 빼앗긴 요리사들과 싸워야 하고 그 후에는 요리사들의 스승이자 안양비의 파벌인 외궁 총괄 숙수를 견제해 안양비 파벌에 균열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소년은 복귀한 후에는 홍엽비의 보양식을 만들어 그녀의 건강을 회복시켜야 하는 일도 있었으니 책임이 막중했다.

“그래서, 폐하의 상엔 무엇을 올렸느냐?”

그렇기에 뜬금없는 태감의 말에 소년은 다시 한번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더없이 진지하고 심각한 태감의 얼굴에 소년은 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얼간이가 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졌다.

“말해봐, 도대체 어떤 음식으로 폐하께 패배를 선사한 것이냐. 아니야, 말로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직접 재현해 봐야겠어. 오운, 당장 요리를 준비해라!”

세상 둘도 없는 중책을 맡긴다는 듯이 자랑스러움을 담아 말하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상쾌하게 웃었다.

“지랄 마쇼 진짜.”

들이받아 버릴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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