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66화 (66/314)

환관의 요리사 66화

인간은 어째서,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미 수많은 철학자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 이제는 더 이상 단물 한 방을 나오지 않을 주제에 대한 답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정중하게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현대인들의 무관심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질문을 조금 바꿀 필요성이 있다.

모든 인간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하는 객관성을 조금 배제하고 그 대신그 사람 개인에 대한 주관적인 질문이라면 조금 더 영양가 있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무엇을 목표로 사십니까.

이제 그는 대답할 수 있었다. 한번죽고 나서야, 사바세계의 밑바닥을 기어보고 나서야 김승조는 대답할 수 있었다.

“인생은, 투쟁이다.”

한번 죽고 나서야 소년은 자신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목숨의 미련을 버리고, 진정 목숨을 조개처럼 내놔야 하는 정치판을 뛰어다니며 심장을 움켜쥐는, 작두날을 눈앞에 둔 것만 같은 소름 끼치는 나날속에서 그는 결국 그 상황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 한번 죽어보니까 별거 없더라.

남의 불의는 보고 참아 넘겨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불의는 참지 못하는 선택적 분노조절장애의 옹졸한 인간이 바로 김승조라는 인간이었다.

만약 그가 그럭저럭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나 정치판을 마주했다면 이런 미쳐버린 무대 위에서 기를 쓰고 벗어나려 했으리라.

그러나 어이없는 죽음과 십 년에 가까운 밑바닥 인생은 그의 비틀린 투쟁본능을 일깨웠다.

미쳤다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실제로 미쳤다는 평가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는 꽤나 돌아버렸다.

자극이 없는 무료한 나날을 숨죽이고 보낼 것인가, 싸우고 상처입히며 통쾌하게 죽을 것인가.

이미 늙을 대로 늙은, 살 만큼 살 늙은이에겐 더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구차한 목숨 오래 유지해 봐야 결국 눈뜬 송장 신세에 불과하다.

한낱 요리사 나부랭이가 언제 대제국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놀아보겠는가.

그 어떤 사내도, 그 어떤 인간도 경험해 보지 못할 거대한 판 위에서 노쇠한 심장은 젊은이의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잠들지 않아도 졸리지 않았다. 심장에선 불꽃이 혈관을 따라 스며 나오는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꼭 어렸을 때 보드카에 에너지 드링크를 섞어 먹었을 때 같구먼.”

굳어진 목을 풀어주며 소년은 마지막으로 늘어놓은 것들을 점검하고 새카맣게 빛나는 칼을 들어 올렸다.

검은 칼날에 비치는 야차 같은 얼굴을 뒤에서 지켜본 태감은 잠시 소년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류했다.

그 불타는 듯한 눈동자와 스산한 입꼬리를 본 태감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소름 끼치는 모습은 살점을 씹는 짐승의 것이었으며 목표를 눈앞에 둔 살수의 것이었다. 태감은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 일단 너 폐하를 만나러 가는 거다? 표정 관리해야지.”

“제 표정이 어떻습니까?”

“……폐하를 암살하러 가는 거라고 해도 믿겠다.”

“하하, 재미있는 농담이었습니다.”

귀밑까지 입꼬리가 찢어지자 태감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더 이상 미소라고 부를 수도차 없는 흉측한 얼굴, 귀신을 눈앞에 두고 있어도 이렇게 놀랄 일은 없을 것이다.

태감은 애써 마음을 다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슬슬 폐하를 봬야 할 시간인데…….”

“예, 바로 준비하지요.”

칼을 칼집에 넣는 소리가 유난히 소름 끼치게 들렸다. 온몸에서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는 소년은 상당시간을 유혈 속에서 지내온 위정 조차도 질리게 할 만한 힘이 있었다.

입꼬리는 길게 올라갔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불길한 눈동자는 기묘한 빛으로 희번덕거렸고 손은 당장에라도 황제의 심장을 탐할 것처럼 핏줄이 꿈틀거렸다.

“기대되는군요. 폐하께 상을 올릴수 있다니. 삼생의 영광이 아닙니까.”

“그렇지.”

“제 최선을 다해 폐하를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소년의 다짐이 태감과 위정의 귀에는 ‘반드시 황제의 멱을 따오겠습니다’라고 들렸다. 당장에라도 저 미치광이를 뜯어말려야 하지 않을까태감이 고민하는 사이에 소년은 이미 단정한 환관복으로 옷을 차려입고 폐하께서 거하시는 임시 거처인 용궁으로 향했다.

미리 언질이 있었는지 평소였다면 다섯 걸음에 한 번 해야 할 검문도 프리패스였다. 아니, 거처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어야 할 호위들이 단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소년이 왔음을 알려야 할 환관조차 보이지 않아 소년은 할 수 없이 자신이 직접 문을 열고 폐하의 거처로 들어가는 영광을 누려야 했다.

설령 후궁의 비들이라 한들 폐하께서 거하시는 거처의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갈 수는 없는데, 이 무슨 호사란 말인가.

내부는 약간 어두운 편이었다. 서류업무는 보지 않으시는지 창문은 전부 닫혀 있었고 내부는 은은한 등이 온화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특별히 호사스러운 장식도 없이, 넓은 상에 단출한 의자만 존재하는 그곳에 대제국의 지배자가 있었다.

“왔느냐?”

“존귀하신 용의 아들을-”

“과례는 필요 없다. 관두거라.”

사적인 자리여서인지 황제는 위엄있는 용포 대신 다소 편안한 복장으로 앉아 있었다.

상 위에도 차를 우려낸 다관을 제외하면 그 흔한 화병 하나가 없었고 벽에도 족자 한 점 그림 한 점이 없었다.

의외로 검소한 성격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물욕이 없는 것일까.

어쩌면 손만 뻗으면 무엇이든지 거머렬 수 있는 자리이기에 오히려 물욕이 없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년은 황제의 명에 따라 공손히 허리를 숙이기만 했다.

“자, 네가 원한 대로 장소는 마련해 두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과례는 그만두래도.”

황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 바로 소년이 황제에게 요구한 주방이 있었다.

멀쩡한 방의 절반을 불을 피울 수 있는 주방으로 개조해 달라 했으니 담당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지.

하지만 그 덕분에 소년은 황제의 바로 눈앞에서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호위는 두지 않으신 겁니까?”

소년의 타당한 질문에 황제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옆에 둔 검을 들어올렸다.

“왜? 암살이라도 한번 시도해 볼테냐?”

“하하, 설령 저 같은 놈이 백 명이 있다 한들 폐하 한 분을 당하지 못할 테지요. 그러니 오늘은 시도하지 않겠습니다.”

자칫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는 농담을 하며 소년은 태연하게 요리를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만든 것인지 불을 피우자 환풍구가 연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자세히 느껴보면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환풍구로 순환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신기하게 보고 있던 소년에게 황제가 질문해왔다.

“그래, 일단 내가 도전자인 몸이다만, 승부는 어떻게 가를 생각이지?”

“후후, 그것은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자연스레 알게 되실 겁니다. 자, 첫 번째 요리를 내겠습니다.”

“첫 번째 요리?”

보통 제국의 식사 문화는 많은 요리를 한 번에 차려내고 다 함께 음식을 즐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고객은 오직 황제한 명이었기에 소년은 제국식이 아닌 서양의 코스요리 기법으로 요리를 내기로 했다.

“만약 많은 요리를 한 번에 차려내면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폐하께서 드시는 동안 다른 요리가 식지 않겠습니까?”

“과연, 혼자서 하는 식사라면 오히려 서양의 방식이 합리적인 부분도있군.”

제국의 경영자답게 황제는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그는 서방의 무기와 축성기술, 조선기술에 관해 관심이 많아 그런 쪽으로는 지식이 얄은 소년에게 진땀을 흘리게 했다.

“호오…… 확실히 다양한 민족이 각축전을 벌이는 서방은 배울 점이 많아. 우리 제국 또한 마음을 놓고 안주하는 순간 패권경쟁에서 낙마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후후,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식사 시간입니다. 자, 첫 번째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소년이 첫 번째로 낸 요리는 식용 비둘기를 윤기 나게 구운 소유합(燒乳鴿)이었다.

“비둘기 구이라, 식사를 시작하기 전 입맛을 다시는 전채 요리로 그만이지.”

비둘기는 네 조각으로 갈라 머리와 함께 내었는데 바삭바삭한 껍질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속살은 담백해 보이면서도 존존해 보였다.

황제는 보는 눈이 없어서인지 고민하지도 않고 맨손으로 비둘기 조각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얇은 비둘기의 껍질은 고소하고 바삭하며 껍질 밑으로 은근한 피하지 방이 끼어 있어 고소함이 진했다.

금이야 옥이야 곱게 기른 식용 비둘기의 섬세한 풍미는 다음 요리가 뭐가 나을지를 기대하며 입맛을 다시 기에 적절한 요리였다.

“난 늘 비둘기 구이를 먹을 때면 손으로 덥석덥석 집어 먹고 싶다고 생각했지. 가뜩이나 작은 것을 굳이 잘게 쪼개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이것 봐, 얼마나 연하고 부드러운가. 뼈조차도 바삭바삭하니 씹어먹을 수 있어 좋군.”

“이빨만 튼튼하다면 메추라기나 비둘기 정도는 씹어 드셔도 괜찮지요.”

특히 고온에서 익힌 다리뼈는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 또한 별미였다.

황제는 먹으면 부가 찾아온다는 메추라기의 머리까지도 이로 갉아먹으며 다음 요리로 무엇이 나을지 기쁜 마음으로 기대했다.

흠, 이 정도 요리라면 일부러라도 살짝 져줄 마음이 드는군. 앞으로도 이런 요리를 맛보려면 오늘은 살짝기를 살려줄까?

황제는 살짝 코웃음 치며 소년은 따사로운 눈으로 응시했다. 확실히 소년의 요리는 기대했던 만큼 훌륭했고 황실에서 먹던 요리보다도 나은 면이 있었지만 용의 혀를 가진 황제가 탄복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요리로도 황궁에서 즐기던 식사보다는 빼어나니 오늘은 아직 어린 소년의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심정으로 황제는 소년에게 패배를 인정한다고 말해줄까 고민했다.

소년이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제아무리 용의 화신이자 대 제국의 지배자라 할지라도 말보다 주먹이 먼저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황제의 오만한 생각은 두 번째 요리가 상에 오르자 온데간데없이 소거되었다.

“홍소연반어권(紅燒官燕斑柳) 입니다. 제비집과 석반어(石斑魚, 농어과 물고기)를 진하게 졸여낸 청탕으로 익혀냈습니다.”

투명한 제비집 위로는 도톰하게 살을 떠내 둥글게만 석반어의 뽀얀 살이 올라가 있었고 그 주위를 촉촉하게 적시는 것은 진한 황금빛 청탕이었다.

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소년이 올린 요리는 보기만 해도 사람을 압도 하는 패기가 있었다.

수저를 들어 요리를 뜨는 것조차 요리에게 허락을 구해야 할 것만 같은 장엄함.

웅장한 백악질의 산을 눈앞에 둔것만 같은 암담함 앞에서 황제는 침을 삼키고 어금니를 악물었다.

황제가 밀린다는 것은. 작게는 금룡 진가가 밀린다는 것이요 크게는 황실이, 이 제국이 한낱 요리 앞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고작 한 끼 식사 거리요 배를 채우고 혀를 즐겁게 할 여흥 따위 앞에서 대제국의 주인이 밀린다니?

황제는 소년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고 바로 수저를 들었다. 촉촉하게 익은 석반어의 살은 쉽게 잘렸고 그 아래 제비집과 함께 떠올리자 투명함과 백색의 대비가 조화로웠다.

혀를 가져가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은 신성함 앞에서 황제는 기꺼이 불가침의 영역에 발을 디 댔다.

무거웠다. 참으로 묵직하게, 밀도 있게 요리는 황제의 혀를 적셨다.

몽글몽글하고 오돌오돌한 식감의 제비집과 부드럽고 촉촉한 석반어의 살점은 채 씹기도 전에 혀 위에서 스러졌으나 그 그윽한 맛의 정수는 찰나를 영원처럼 확장하며 황제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에 황제는 아득함을 느꼈다.

“다음 요리를 올릴까요?”

“……이제 막 첫술을 뜬…… 음?”

분명 첫술을 떴을 터인데, 접시는 이미 국물 한 방울 남지 않고 텅비어 있었다.

의식은 끝없이 맛의 지평선 너머를 헤엄치고 있었으나 무의식은 끝없이 요리를 탐한 것이다. 당황에 빠진 황제의 앞에 다음 요리가 올랐다.

다음 요리는, 꼭 꽃게의 껍데기 같은 모양이었다.

“껍데기 맞습니다. 정확히는 가장 싱싱한 꽃게의 살과 달콤한 맛이 살도록 볶아낸 양파를 합쳐 약간의 크림과 녹인 버터를 더해 꽃게의 등껍질에 채워 튀겨낸 요리지요.”

취양선해개(脆釀鮮蟹蓋).

조금 전 요리가 고상하고 담백한 요리였다면 이번에 대놓고 혀에 기름칠하겠다 선언하는 듯한 폭력적인 향기가 황제의 코점막을 점거했다.

홍콩의 특급 호텔에서 처음 선보여져 지금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꽃게 튀김 요리가 시공을 넘어 황제의 상에 올랐다.

“자, 드시지요. 식기 전에.”

“그래…… 먹어야지…….”

방금 전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황제는 쉬이 수저를 들지 못했다.

입에서는 혀가 지금 당장 저 요리를 집어삼키라고 명령하고 있었지만 뇌는 아직 방금 전 요리를 해소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평소에는 결코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지 않았을 명석한 황제였지만 오늘은.

혀가 이겼다.

파사삭 하고 빵가루를 입힌 튀김옷이 바스러지며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달콤한 향기가 뭉근하게 수증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마치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우아한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황제는 자신의 내면에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짐승이 태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 정도라면 기를 살려줄 겸 져줘도 괜찮겠지.

스스로의 오만한 생각을 되새겨볼새도 없이 황제가 수저로 그 내용물을 그득하게 퍼 올렸다.

채를 썰어 단맛이 나도록 진득하게 볶은 양파, 겉은 불그스름하고 속살은 새하얀 결이 엿보이는 달콤한 게 살과 노오란 알.

제아무리 자제력 강한이라도 일단삼키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그윽함이 황제의 입안을 점령했다.

또 한 번 황제의 시간이 농밀하고 밀도 있게 흐르기 시작했다. 슬며시흐르는 바람마저 한없이 느릿하게 흘러가고 혀의 모든 미뢰에 그 맛이 각인되었다.

한입, 두 입, 마르지 않은 황금을 퍼내던 것처럼 거침없이 움직이는 황제의 손을 제지하며 소년이 작은 병을 내밀었다.

“적식초입니다. 느끼한 음식이니 아주 조금만 뿌려 드셔보시죠.”

본래 이 음식에는 광동식 우스터소스를 곁들이는 것이 정통이나 그 소스를 재현할 시간이 부족했던 소년은 그 대신 최고급 적식초에 살짝 단맛을 가미하는 것으로 우스터 소스를 대체했다.

이 완벽함에 도대체 무엇을 더하겠다는 것인지, 황제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소년의 병을 받았다. 하지만 병을 기울이는 황제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엿보였다.

괜한 일을 해 이 완벽함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 속에서 한 방울 두 방울 식초 방울이 떨어져 튀김옷 위를 적셨다.

식초의 시큼함이 이 경이로운 고소함과 녹진함을 망가트리는 것은 아닐까?

황제의 의문은 자연스레 혀를 긴장시켰고, 마침내 적식초를 뿌린 게살이 입안으로 들어온 순간 황제는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것은 진리의 새로운 측면이었으며 보편타당함을 뒤집는 금단의 열쇠였다.

그 아릿한 새콤함이 더해진 순간꽃게의 달콤함과 알의 기름진 맛, 양파와 크림의 녹진한 맛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도약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완벽했던 요리에 더해진 불완전함이 황제의 미식 영역을 보다 진보적인 형태로 이끈 것이다.

“만족스러우십니까?”

“만족스럽냐고?”

내가 패배를 입에 담기를 원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말해주마. 내가 졌다. 나의 패배다.

황제는 진심으로 소년에게 패배했음을 실감했다. 이런 요리 앞에선 제아무리 황제라 할지라도 자존심을 세울 도리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소년의 악의를 몰랐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황제는 소년이 얼마나 악랄하고, 치밀하며, 지독한 존재인지 몰랐다.

선선히 수저를 내리고 패배를 입에 담으려는 황제를 만류하며 소년이 입을 열었다.

“다음 요리로, 승패를 가를까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이미 내 패배이거늘.”

단아한 미장부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결과에 승복했음이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비열한 독을 혀에 문 소년은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승부는 처절한 것이다.

“이 요리를 드시지 않는다면, 제 패배임을 인정하겠습니다.”

“먹지 않는다면?”

“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 소년이 요리를 상 위에 올렸을 때 황제는 소년의 악의를, 그 흉악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제국의 지배자를 능욕하겠다는 그 사악한 간계와 모욕당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에 황제는 옆에 세워 둔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네가 지금 이 요리를 상에 낸 것이, 무슨 의미인 줄 아느냐?”

방 안의 공기를 밀어내는 듯한 황제의 농밀한 살기 앞에 온몸에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소년은 입꼬리를 귀밑까지 찢으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예 폐하. 이 미천한 놈의 목을 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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