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65화
칠성제를 앞두고 몸을 깨끗이 할 칠보절식의 첫날은 앞으로의 고행을 위로하기 위한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다.
엄청나게 많은 돼지와 양, 소는 물론이거니와 닭과 오리, 거위, 꿩, 을 비롯한 온갖 날짐승들, 내륙에선 구하기 힘든 바다 생선류도 충분히 준비되었다.
고관대작들이야 상에 온갖 음식을 올리고 궁인들이 시중들 들었지만, 그 아래 궁인들, 병사들에게 충분한 술과 고기가 베풀어졌다.
요리를 준비하는 궁인들, 나인들을 제외한 모두가 행복한 연회였다.
금마단주는 병사들을 단속하고 경비 인원들을 점검한 다음에서야 그 호화찬란한 연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날이 덥지 않아 장소는 야외에 차려졌는데 지위가 낮은 이들은 맨바닥에 돗자리를 펴 앉고 지위가 높은 이들은 바닥에 나무로 단을 올려 그위에 양탄자를 깔고 그 위로 상을 올렸다.
금마단주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맨바닥에 앉아도 서늘함이 기분 좋을 텐데 굳이 이 더운 날 양탄자를 깔아야 했을까?
지위를 과시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광대 노릇에 동참하게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튀지 않는것 또한 궁내생활의 일환. 단주는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방석을 깔고 그 위에 앉았다.
오동나무로 만든 크고 좋은 상에는 이미 그를 기다리는 안줏거리가 즐비했고 그 앞으로는 요리를 든 나인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차가운 소 혓바닥 요리, 오리 혀를 넣고 굳힌 투명한 효육(肴肉)에 통으로 삶은 닭을 든 나인들이 차례로 지나는 동안 악단주는 주안상으로 차려진 것 증에서 소량의 암염만을 입에 조금 넣고 술을 입에 머금었다.
술은 식사와 함께 즐기는 가반주(加飯酒)로 유명한 절강의 황주로 수수와 기장을 원료로 만들어 살짝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황색이었다.
살짝 달콤하고 증류를 하지 않아 도수는 낮지만 잘못 걸러낸 술이 으레 그렇듯이 텁텁하거나 큼큼한 맛은 입에 남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임무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취기가 과지 않고 맛이 깔끔한 술이었다.
소금에 절여 삶은 오리, 구운 거위와 돼지고기와 물냉이로 끓인 탕, 꿀을 바른 돼지고기 구이, 초절임한 연근에 볶은 장어요리 등이 줄줄이 나왔지만, 단주는 그것들에는 손도 대지 않고 암염 부스러기와 소금을 약간 넣어 볶은 땅콩만을 술안주로 즐겼다.
그리고 그가 손도 대지 않은 요리들은 다음 요리가 나을 때면 자연스럼게 치워졌고 그의 상에는 새로운 요리가 올라왔다.
술로 찐 민물 농어에 밀가루 옷을 입혀 지져낸 소고기, 달콤하게 조린 돼지고기 완자와 뼈를 발라낸 닭 다리 구이.
단주는 역시 그 요리들도 걸렀다.
그 요리들 역시 이내 치워져 병사들에게 돌아갔다.
옆자리에 앉은 무관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술 한 병을 비우자 이번엔 본격적인 악사들의 음악이 연회장의 소음을 잠재우며 새로운 술과 새로운 음식이 준비되었다.
술은 목 넘김이 화끈하기로 유명한 귀주의 모태주(芽合酒)로 증류주인 백주 중에서도 도수가 높고 뒷맛이 깔끔하기로 유명한 술이었다.
과연 황실의 연회에 어울리는 술이었다.
부하들에게도 이런 술이 돌아가길 바랄 수는 없을 테지. 하다못해 경계 근무로 연회에 참석도 못하고 있을 부하들에게는 좋은 술 한 병을 안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악 단주는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
처음으로 집은 것은 바삭하게 튀긴농어였다. 바삭한 튀김옷이 촉촉해지도록 새콤달콤한 당초를 넉넉하게 끼얹었고 당근과 무로 화려한 꽃으로 장식해 보기도 좋았다.
그것이 이 과묵한 군인의 유일한 불만이었다.
이 장식은 과연 필요한 것일까?
젓가락을 대자 파삭한 껍질이 부서 지며 그 안으로 뽀안 흰 속살이 드러났다. 속살은 기름지고 부드러웠으며 즙이 많았다.
끼얹어진 당초의 새콤달콤함과 아직은 바삭함을 유지하고 있는 튀김옷, 그리고 쫄깃하고 기름진 껍질.
훌륭한 요리였다.
분명 시중에서 먹으려 한다면 적지 않은 금액을 내야 하리라.
하지만 이 장식은 어떤가?
먹을 수도 있고, 아니. 먹을 수는 있지만, 굳이 먹을 필요 없는 장식은 과연 이 요리에 얼마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
먹지 않으니 버려질 것이고 버려진다면 돼지나 닭의 것으로 돌아갈 것에 이렇게까지 공들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철저히 합리성만을 추구하도록 교육받은 무관의 관점에서 본생각이었다.
미의식, 장식의 가치에 대해 아는 문관이라면 이 고지식한 무인의 생각에 반박해 줄 생각으로 신이 났으리라.
유감스럽게도 문관들의 자리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덕분에 그는 친한 이들과 어울리며 방해받지 않고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무관들 사이에 술이 몇 순배 돌고 악단주의 젓가락이 농어에서 옮겨가 튀겨서 진한 장에 조린 돼지갈비로 옮겨갈 때쯤에 그의 시선이 연회장 한구석에서 바구니 두 개를 들고 뛰어다니는 어린 소년을 포착했다.
고양이 상의 귀여운 소년은 두 손에 바구니를 들고 문을 열지 못해 끙끙대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군.
단주가 술잔에서 입술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옆자리의 무관이 짓궂은 농담을 하였다.
“어이쿠, 벌써 취한 건가? 자네 안본 사이에 간이 쪼그라든 거 아닌가?”
“실없는 소리 하기는, 아, 혹시 나없는 사이에 새끼돼지 구이가 나오면 치우지 말라고 해주게.”
핀잔을 주며 장소에게 다가선 단주는 그의 바구니 하나를 받아들며 연회장 바깥으로 향하는 임시 벽의 문을 열었다.
“아, 단주님.”
“손에 바구니를 둘이나 들고 있으면, 문을 열지 못하겠군.”
“네, 발로 밀어서 열기도 좀 그래서…….”
“하하. 그랬다간 시설을 관리하는 나인들에게 혼쭐이 날게야. 문에 발자국을 남긴 녀석은 누구냐! 하면서.”
장소가 향하는 곳은 연회장의 주방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숲의 공터였다. 병사들의 숙영지에서도 제법 떨어진 곳에선 커다란 솥이 몇 개나걸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선 절름 발이 소년이 광기에 찬 재료 손질을 하고 있었다.
“흠, 무시무시한 모습이군.”
“저…… 재료 가져왔는데요…….”
재료라는 말에 소년의 광기가 타오르는 눈동자가 장소를 응시했다. 마치 맹수 앞에 선 것처럼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시선에 장소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그 시선에 단주는 자신도 모르게 장소의 앞을 막아서며 그를 보호해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그 스산한 눈동자는 단주를 알아보았다. 그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입은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련간 군부에서 수라장을 거쳐온 단주조차 소름이 쭈뻣 돋는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이거 금마단주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쩌신 일로?”
“아아, 장소 군이 혼자서 짐을 들고 있길래…….”
“오오-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황제 폐하께 올릴 음식을 차질없이 준비할 수 있겠군요.”
“……폐하의?”
소년의 말에 금마단주는 탄성을 질렀다.
“설마 둘째 날의 상을 차리는 것이 당신이었소?”
“예, 그렇습니다만…….”
“대단하군, 칠보절식의 두 번째 날이야말로 모든 황궁 요리사들의 등용문이 아니오.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줄이야. 물론 솜씨가 훌륭한것은 알고 있었소만…….”
과연, 그렇다면 이렇게 전투적인 자세도 이해가 가는군. 인생에 단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상대의 의중을 굳이 캐묻지 않는것 또한 궁에서는 중요한 처세술이었단.
단주는 소년의 살기 어린 기세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대신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연회의 화려함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제국의 모든 특산물은 다 이곳에 모인 것 같소.”
“예, 네발 달린 것은 빼고, 말이지요.”
소년은 장소가 가져온 말린 관자들을 물에 불리며 대답했다. 말린 관자에 말린 해삼과 전복, 제비집에 상어 지느러미까지.
금마단의 단주인 그로서도 자주 접하기는 어려운 고급스러운 식재료들이 마치 어시장에 널어놓은 생선처럼 아무렇지 않게 널려 있었다.
분명 여기 있는 건해산물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의 몇 달 치 봉급이 되고도 남으리라.
마치 돈이 굴러다니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지만 단주는 강직한 군인의 자긍심으로 그것들을 무시했다.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년이 손에 쥔 오철 식칼이었다.
“……맙소사, 혹시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 식칼은 혹시…….”
“예? 아…… 이것 말씀입니까.”
“틀림없군, 오철이라니.”
병장기를 알아보는 그의 눈은 틀림이 없었다. 비 맞은 까마귀의 날개와도 같은 광택이 흐르는 검은 빛.
사람을 해치는 병기가 아닌 식칼임에도 불구하고 은은하게 흐르는 섬짓한 예기. 틀림없는 오철제 칼이었다.
“오철을 하사받을 정도라면 그 실력이 천의무봉의 경지에 오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 그렇다면 두번째 날의 상을 담당하게 된 것도 이해가 가오.”
“뭐, 덕분에 외궁의 요리사들과는 한동안 껄끄러울 것 같지만 말입니다.”
“아아, 그들 역시 피나는 경쟁을 뚫고 쟁취한 자리였을 테니. 하지만 누가 폐하께서 하사하신 오철 식칼의 권위에 반항하겠소? 평생을 궁에서 봉사한 총괄 숙수도 오철을 하사받지는 못했다 들었소.”
“그렇기에 더 문제인 것이지요.”
소년의 말에 단주는 그제야 문제를 알아차렸다. 권위를 내세운다 한들, 그는 너무나도 어렸던 것이다.
총괄 숙수는 물론 그의 제자들 보다도 어린 나이였으니, 쓴웃음을 짓는 소년을 보며 단주는 침음을 흘렸다.
“……과연, 군에서만 오래 지내서 그런지 머리가 굳어 있었던 내 잘못이오.”
“하하, 이게 어찌 단주님의 탓이겠습니까.”
단주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소년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 뜨겁고 근엄한 사내의 눈동자 앞에서 소년은 한없는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한없이 선량한 사람 앞에서 도둑질을 한 듯한,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이 된 기분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두툼한 손으로 소년의 손을 마주잡고 금마단주는 열정이 뚝뚝 떨어지는 강렬한 어조로 소년에게 약속했다.
“약속하오, 당신이 그저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부당한 대우와 적대를 당한다면, 이 악모는 당신의 편에 서겠소.”
그의 지지를 받는 것이야 바라마지않는 일이었지만, 이것은 너무 과했다.
소년은 자신의 정치역량으로 감당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그를 만류했다.
“단주님, 단주님 같은 무관 나리가 이런 하잘것없는 분쟁에 끼시면 체면이 상하십니다.”
“어찌 체면이 무서워 지인의 고통을 참겠소. 비록 잘난 것 하나 없는 우둔한 자이오만, 그래도 오 상호의 어려움을 못 본 척할 정도는 아니오.”
그 불타는 젊은 패기는 늙고 초라해진 소년에게는 너무나도 눈부신 것이었다.
아직 젊은이 소리를 들을 만한 나이인 단주는 이제는 너무 늙어버린 소년이 잃어버린 찬란함이 있었다.
뜨겁고, 맹렬하지만 동시에 세상경험이 쌓여 어느 정도 유연하고 부드러운.
그 뜨거움과 강직함은 소년으로 하여금 새카만 질투심마저 느끼게 했다.
하지만 질투심은 이내 가라앉았다.
소년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부드립게, 하지만 단호하게 단주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단주님의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단주님, 제 뒤에 어떤 분이 계시는지, 잊으신 건 아니시죠?”
소년의 뒤를 받쳐주는 것은 후궁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인 태감이었다.
금마단의 단주조차 고개를 숙여야 하는 권력의 총아. 그런 이의 앞에서 권력을 자랑했으니 실로 용의 앞에서 비늘을 뽐낸 격이었다.
단주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 헛기침을 했다. 그것을 이해한 소년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침묵을 지켜 단주를 더욱더 부끄럽게 했다.
“그래, 그랬지. 내가 주제넘은 말을 했소.”
면구스러워 하면서도 단주는 끝까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으라며 두 번 세번 소년에게 당부했다.
그는 도대체 자신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그 사실을 의심한 순간 소년은 자신이 너무나도 늙었음을, 후궁이라는 복마전에서 너무 오래 밑바닥을 굴렀음을 실감했다.
사람의 호의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이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적이라 할지라도. 호의에는, 호의로 답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그리고 금마단주는 적도, 처음 보는 이도 아니었다.
소년은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태감에게조차 몇 번 보여준 적 없는 복심을 모조리 토해내겠다는 듯 이, 갈라진 목소리에는 다시 없을 진심이 서렸다.
“단주님께서 보여주신 후의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비록 모시는 주인이 있으니 견마지로를 다한다고 약속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단주님께서 원하시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가겠습니다.”
“오 상호…… 내가 오히려 상호께짐을 지운 것이 아닌가 싶소.”
“이런 짐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년은 그에게 강한 호감을 느꼈다. 그는 같은 남자도 감탄을 나오게 할 만한 진짜 남자였으니까.
이런 사내이니 거친 병사들을 이끌고 금군의 일각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는 사내의 마음을 끄는 사내였다.
하지만 그에게 인간적인 감탄은 둘째 치더라도 소년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서로를 위해 얼마든지 나서겠다는 약속을 나눈 사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서로가 아직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신지요?”
“음? 아아.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한 것인데 생각보다 늦게 생겼구려. 이거 타박을 듣겠군.”
멋쩍은 웃음을 짓는 단주에게 소년이 작은 호리병을 내밀었다. 뚜껑이 밀랍으로 엄중하게 봉해져 있는, 단주는 첫눈에 그것이 술임을 알아챘다.
“초여름에 담가뒀던 산딸기주인데 제법 맛이 들었습니다. 가져가시면 타박은 듣지 않으실 겁니다.”
“산딸기! 이거 귀한 술이군. 상호께 끝까지 신세만 지게 되어 몸 둘바를 모르겠소.”
멀리 배웅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소년에게 손을 흔들며 연회장으로 돌아간 그를 맞이한 것은 싸늘하게 식은 새끼돼지와 이미 불과하게 취해 기우뚱거리는 동료 무관이었다.
“어우…… 취기가 확 오르는군…… 악단주, 왜 이렇게 늦었어? 속이라도 안 좋았나?”
“아아. 잠시 술 한 병 얻어 오느라 늦었네.”
“술? 여기 널린 게 술인데 또 무슨 술인가? 거 얼마나 대단한 술인지 궁금하구먼.”
“산딸기술이라는데…….”
단주는 품 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밀랍을 뜯어내고 뚜껑을 뽑아냈다.
뚜껑을 뽑아내자마자 근사한 초봄의 달콤함이 피어올라 이미 상당히 취기가 오른 동료 무관마저 취기가 확 날아간 표정으로 그 향기를 탐닉했다.
“하, 이거 대단한 물건이군. 이거 악단주가 시간을 내서 맞이하러 갈만한 명주임이 틀림없어.”
“근데 이거, 그냥 산딸기술인지는 모르겠군. 향기가 여러가지 섞인것 같은데…… 걸러낸 후라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겠고…….”
뜸을 들이며 향기의 정체를 분석해보는 단주가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동료 무관이 그에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아니, 그거야 마셔보면 알 것 아닌가. 술은 마시라고 있는 물건일세. 사소한 의문 따윈 집어치우고 일단마셔 보세!”
“흠…… 근데 내 새끼돼지가 싸늘하게 식어서…… 다른 안주가 올 때까지 좀 기다리는 게 좋겠어.”
“내 안주를 함께 먹으면 되지 않는가. 아니,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그깟 안주를 아까워하겠나.”
껍질이 바삭하게 익은, 갓 내온 듯 따끈따끈해 보이는 새끼돼지 구이를 내밀며 동료 무관이 다시금 조르자 단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잔에 술을 따랐다.
흰 잔에 투명한 다홍빛 술이 파도 치자 아련한 봄의 추억이 사람의 심금을 뒤흔들었다.
“이거, 향도 요물인데 빛깔은 또 끝내주는군.”
“일단 마셔보세.
“그럼, 마셔봐야지. 하이고, 흘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동료 무관이 호들갑을 떠는 동안 단주는 이미 술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강렬한 첫 번째 달콤함은 산딸기와 함께 넣은 꿀의 단맛이었고 그 뒤로 새큼한 산딸기의 소박한 맛이 첫 단맛을 부드럽게 중화시켰다.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쯤에는 달콤한 향기가 비강을 가득 채웠고 술이 완전히 목구멍 아래로 넘어가고 그 숨을 토할 때면 차가운 박하의 향이 비강을 쓸고 지나가며 온몸에 활력을 전했다.
깊은 여운마저 함께 쓸고 내려가는 그 향기는 마치 그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미련을 남기지 말라고. 앞을 보고 걸으라고.
“…… 좋은 술이군. 정말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았어.”
단주의 눈이 상에 놓인 새끼돼지에게 향했다. 이런 안주와 함께 먹기 엔 너무나도 과분한 술이었다.
가능하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좋으리라. 은근슬쩍 뚜껑을 닫으려 하는 그의 손목을 보통 사람보다 배는 더 크고 두툼한 손이 잡았다.
털복승이 산적 같은 얼굴을 들이밀며 동료 무관은 마치 첫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러는가?”
“큼…… 흠흠. 이왕 딴 거 그냥 다마시는 게 좋지 않겠는가?”
“미안하지만, 이 좋은 술을 나 혼자 마시기에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서 말이야. 남은 술은 아내와 함께하고 싶네.”
“그…… 제수씨는 술을 그리 즐기지 않으시잖나. 내 차라리 다른 선물을 준비할 테니 그 술은 오늘 나와 함께 즐기세.”
이런 달콤한 술은 사내보단 여인과 함께 즐겨야 하는데…….
집에서 노심초사 자신만을 기다릴 아내를 생각하며 단주는 달콤한 제안이 거듭 들여오는 자신의 귀를 굳게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