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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64화 (64/314)

환관의 요리사 64화

상 위에서 달콤한 향기를 뽐내는 황금 향로는 과연 황실의 물건다운 품격이 있었다.

아직 봉오리가 전부 벌어지지 않은 연꽃을 비늘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황금용이 휘감은 형상. 그 달콤한 연기는 용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불을 피우는 안쪽은 청동이나 그외부는 전부 두터운 황금이었다. 황실의 보물 중 하나로 칠성제, 상선제, 우사제 등 황실에서 주관하는 제사가 있을 때 황제는 이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온몸에 쐬어 속세의 탁기를 씻어낸다.

속세의 지배자. 제국의 군주에서 신앙의 대변자, 용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용에 다가서기 위해 임시로 세운 용궁(能宮)에서 두문불출하는 황제와 유일하게 독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심복인 태감 양단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오직 황제만이 누릴수 있는 용각단(龍殼植)의 향기를 맡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뭉근한 연기를 몸에 휘감은 황제가 숨을 내쉴 때마다 방안에 안개처럼 깔린 연기는 크게 요동치며 황제를 향해 수렴과 확산을 반복했다.

마치 연기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처럼 자율의지를 갖추고 황제를 수호하는 듯했다.

그런 연기 일부를 나눠 받은 양단역시 연기가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고 흐르고 있었다.

온 제국에서 오직 그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 태감은 익숙한 듯이 몸을 감싼 연기의 잔향을 즐기며 찻잔을 기울였다.

“금모화차(金毛花茶)도 제법 향이 무르익은 것을 보니, 여름이 오긴 온 모양이군요.”

무더운 여름에 그 향이 가장 무르익는다는 꽃차는 그 이름답게 찻물에 미세한 금색의 솜털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상산의 험준한 절벽에서만 채취할 수 있다는 금모화를 말려 꿀에 절인차는 그 가격만큼 그 고상한 향이 일품이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은은한 향기가 입에 감돌다 삼키고 난 후 내뿜는 숨에 그 그윽함이 스며 나온다.

“역시 좋은 차군요. 폐하의 모자란 솜씨로도 이 정도 맛을 내다니.”

양단의 직설적인 비꼼에 발끈한 황제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어허, 네 세 치 혀로 황실의 권위를 능멸하려 하느냐. 훌륭한 솜씨기에 좋은 차도 빛을 발하는 게지. 어찌 차에만 시선을 두고 차를 우려낸 짐의 솜씨에는 인색하게 구느냐?.”

풍성한 수염을 쓸며 거드름을 피우는 황제를 보며 태감은 고개를 저었다. 때론 신하로서, 충신으로서 군주에게 쓴 말도 아낌없이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군주의 비위를 맞추며 입안의 꿀처럼 감언이설만을 내뱉는 이를 충신이라 할 수 있을까.

태감은 사약을 눈앞에 둔 것만 같은 비장한 표정으로 황제에게 충언을 올렸다.

“아무리 후하게 평가한다고 해도 폐하의 다도 솜씨는 평범하다 하기도 면구스러울 수준입니다. 그러니 다도의 깊이에 영향이 없는 금모화차를 내신 것 아닙니까.”

태감의 말은 사실이었다. 금모화차야 구하기 어렵고 맛이 뛰어나 상산의 명물로 인정받는 명차이지만 우려내는 것이 어려운 차는 아니었다.

애초에 말린 꽃을 꿀에 절인 것이니 그저 꿀에 절인 꽃송이와 꿀을 끓는 물에 넣고 말린 꽃송이가 벌어질 때까지 두기만 하면 되는, 물의 온도조절과 찻잎을 관찰하는 안목에 구애받지 않는 차가 금모화차였다.

그렇기에 지식인 중에는 우스갯소리로 만약 다도에 조예가 없는 이가 다도회에 나가 체면을 차려야 한다면 금모화차를 내라고 할까.

태감의 날카로운 충언에 황제는 그저 이마를 꾹꾹 누르며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그 녀석은 어떻더냐?”

“그 녀석이라 하시면 어떤 녀석을 말씀하시는 겝니까?”

태감이 모르는 척 의뭉스럽게 굴자 한껏 웃음 지은 황제는 다시금 진지한 표정으로 태감에게 되물었다.

“네 이름을 준 아이 말이다. 오운.”

동창의 제독이자 사례감의 태감, 그리고 양단이라는 환관 명을 쓰는 그의 본래 이름이 바로 오운이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본명에 쓴웃음을 지으며 차를 들이켠 태감을 보며 황제가 다그쳤다.

“그 당돌한 녀석이 내 상에 무엇을 올리겠다고 하더냐?”

결국 황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그것이었다. 값비싸고 화려한 음식에 질린 황제는 이제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감이 자신의 이름을 준그 아이라면 틀림없이 황제의 오랜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호기심과 기대감이 깃든 황제의 용안을 마주 보며 태감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조심스레 생각을 가다듬었다.

조금 더 농을 해볼까, 아니면 솔직담백하게 대답할까. 태감의 선택은 후자였다.

“오리찜 요리라더군요.”

“오리 찜이라?”

“예, 오리를 한번 살짝 튀겨진한 간장양념에 조려 올리겠답니다.”

듣기만 해도 기름이 줄줄 흐를 오리고기와 짭조름한 양념이 혀 안에 감도는 듯했다.

분명 틀림없이 맛이야 있겠지마는,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런 요리가 아니란 것을 알지 않느냐.”

“오, 그럼 어떤 요리를 원하시는지요? 제가 바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탕으로 할까요? 아니면 튀김이나 구이로 할까요?”

태감은 넉살 좋게 웃으며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황제로 하여금 역정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미소였다.

저 대리석처럼 희고 고운 이마를 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을 갈무리하며 황제는 사람 좋은 얼굴로 다시금 말했다.

“그 친구와 너 사이의 긴밀한 유흥, 그 관계에 나도 한 다리 끼고 싶구나.”

일국의 주인답지 않은 저급한 표현이었으나 태감은 그것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의 측근으로서 평소 황제가 근엄하고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야 하는 황제다운 어투에 염증을 느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허어, 너무하시는군요. 제가 그 친구와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날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아십니까? 어찌 그 수고스러움을 무시하시고 달콤한 알맹이만을 취하려 하시나이까.”

태감이 눈꼬리를 촉촉하게 적시며 서운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자 황제는 헛기침하며 공연히 빈 찻잔만을 기울였다.

잠시 후 황제는 자신을 더 궁색하게 할 변명을 늘어놓았다.

“흠, 짐은 나랏일에 바빠 개인의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쓸 수는 없지 않으냐.”

평소 사석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당황스러움을 숨기려 하는 황제에게 태감이 그 독사 같은 이를 들이댔다.

“흑, 너무하십니다. 폐하. 그렇지요, 저희 같은 미천한 것들의 일에 신경 쓰실 여유는 없으시겠지요.”

마치 상처받은 여인처럼 토라지는 모습에 어찌할 줄을 몰라 하던 황제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들어올렸다.

벌써 수년째 지속되어온 그들의 은밀한 대결에서 황제는 단 한 번도 태감에게 승기를 잡아 본 적이 없었다.

“오늘도 기나긴 패배의 역사에 새로운 한 장을 쓰게 되었군. 내가 졌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탓인지 승리도 그리 감미롭지는 않군요. 아, 승리의 미주를 한잔 더 주시겠습니까?”

“많이 드시게. 나의 심복.”

황제는 태감의 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라주었다. 잠시 소년과는 별 상관없는 주제의 이야기가 오갔고 제국의 외교에 관련된 잡담을 나눈 끝에 황제는 다시 한번 자신의 복심을 드러냈다.

“난 지쳤다, 오운. 내게 달콤한 말만을 속삭이는 이들 사이에서 그들의 진심을 들춰내는 것도, 황실의 고상하기만 한 음악과 쓸데없이 값비싼 재료로 치장하기만 한 담백한 음식도, 길고 긴 관습에 얽매여 간결함이라는 미덕을 잃어버린 이 제사조차도. 내게는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해.”

네가 너의 진명을 준 그 아이 같은.

서로를 시험하고, 경쟁하고, 대립하고, 물어뜯을 수 있는. 그런데도 적은 아닌.

어쩌면 애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관계는 대제국의 지배자이자 혈관에 피 대신 녹은 쇳물이 흐른다는 철혈의 지배자가 담기에는 너무나도 유약한 말이었다.

용의 아들의 유일한 인간적인 면을 앞에 두고 고민하던 태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존귀하신 용의 자손이시여. 전 두렵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그는 타고난 투사입니다. 그와 동시에 오만하기도 하지요. 제가 감히 평하건대 이 제국에서 그보다 뛰어난 요리사는 없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대제국의 지배이자 살아 있는 용의 화신이 아닌, 한 명의 미식가로서. 진정으로 음식을 사랑하는 이로서 그와 대면하고자 하신다면.”

태감은 다시없을 불경을 입에 담아야 할지 다시금 고민했다.

하지만 황제의 뜨거운 시선은 그 고집스러운 입술마저 열리게 했고 태감은 결국 달콤한 숨을 토해내며 불경을 범해야 했다.

“진정한 그를 대면코자 하신다면, 폐하. 당신께서 그에게 도전하셔야 할 겁니다.”

그 무거운 한마디에 황제는 그가 자신에게 농을 한 것인지, 그러니 썩 괜찮은 농담이었다며 웃어줘야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태감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 했기에 황제는 태감이 전한 말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대 제국의 지배자이며 용의 아들이자 금룡기의 당대 기수. 황제가 누군가에게 도전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일인가?

상대는 비천한 환관, 그것도 절름발이에 곱사등이이다. 태감은 그런 자에게 도전하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가?

“도전이라, 이 내가 말인가? 이 황제가 도전할 만한 인물이라 이건가?”

황제의 얼굴에 서서히 핏줄이 솟아올랐다. 그 앞에서 태감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긍정을 표시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황제는 허탈하다는 듯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꺾어 천장을 보았다.

“세상 먹어보지 못한 산해진미가 없고 마셔보지 못한 술이 없다. 황제란 자리는 딱히 그럴 의향이 없다고 해도 자연스레 미식가로 배양되는 자리지. 나 스스로 입맛이 까탈스러운 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런데도 내 혀가 둔감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황제의 혀는 곧 용의 혀와 다름이 없었다. 그 어떤 독도 구별해 낼 수 있다는 용의 혀.

그런 혀를 가지고 세상 둘도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황제는 자연스레 미식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진정으로 그럴 가치가 있다면?

황제는 자신의 혀만큼이나 태감의 혀 또한 믿었다. 눈앞의 호리호리한 사내가 실은 자신 이상의 대식가라는 것을, 그런 주제에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입에 대느니 차라리 굶겠다고 말하는 까탈스러운 미식가라는것 또한.

가만히 고개 숙인 태감을 보던 황제는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가늘고 곧은, 그것은 대대로 황제가 칙서를 작성할 때 사용한다는 용필(龍筆)이었다.

그것을 꺼내 든 것에 의아해한 태감이 그 의중을 묻자 황제는 그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 네 말이 옳다면 내가 도전해야지. 도전자라면 당연히 도전장을 보내어 나의 뜻을 상대에게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

보통의 황실에서 사용하는 종이나 목간이 아닌 최고급 독피지(犢皮紙,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종이)에 용사비등한 굵은 필체로 황제의 도전장이 적혔다.

그것을 말린 다음 손수 말아 금실을 맣아 만든 끈으로 묶은 다음 태감의 손에 친히 쥐여주며 황제가 그 고른 치아를 들어내며 웃었다.

“전하게. 이 황제가, 제국 제일의 미식가가 그대에게 도전하겠노라고.”

태감을 응시하는 황제의 눈동자 속에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호승심이 빚어낸 광기 어린 환희가 타오르고 있었다.

* * *

태감의 직속 호위들이 머무르는 천막 앞, 북적거리는 나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선 소년이 부산스럽게 불 위에 내건 석쇠 위에서 무언가를 굽고 있었다.

하나는 큼지막한 흰 소시지였고 그옆에는 그보다 조금 작은 불그스름한 색의 소시지였다.

장소의 이야기를 들은 소년이 그를 위하여 특식을 만들어 주기로 한 것이다.

특식의 이름은 홍콩의 야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장포소장(大腸包小腸).

그 직설적인 이름을 풀어 보면 큰창자로 감싼 작은창자라는 뜻이었다.

“정확히는 대장에 찹쌀을 채워 구운 것에 소시지, 그러니까 향장을 끼운 일종의 중국식 핫도그라고 할 수 있죠.”

“핫도그는 또 뭔데요?”

“빵에 소시지를 끼운 건데…… 흠, 이것도 나중에 한 번 만들어 줄게요.”

백번 설명해줘 봤자 한번 먹어보는 것만 못한 법. 그가 처음 요리를 배울 때 그의 스승님이 항상 강조하신 말씀이었다.

전엔 참 많이도 얻어먹었지…… 덕분에 식비는 안 들어서 좋았어.

성질은 괴팍하고 주방에선 사람을 대할 때 말보다 발길질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의 스승은 참 큰 사람이었다.

레시피를 알려주기 전에 먼저 직접 요리를 해 맛을 알려 주었고 맛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싫은 기색도 없이 몇 번이나 다시 요리해주었다. 그것이 아무리 비싼 식재료라 할지라도.

“아무리 그래도 낙타 혹 같은 건 두 번 얻어먹을 엄두는 안 나서 필사적으로 익혔지.”

그 부채감 덕분인지 요리는 참 빨리 늘었다. 어쩌면 그것도 스승님 나름의 교육법이었을 지도. 소년은 지금은 흐릿해진 스승님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며 찹쌀을 채운 대장을 뒤집었다.

대장의 기름이 찹쌀에 배어들고 흰표면이 노릇해질 때쯤에 소년은 대장을 꺼내 세로로 길에 칼집을 넣었다. 거기에 매콤한 소시지를 끼우고 꿀을 조금 섞은 겨자를 뿌린 다음 접시에 담아 장소에게 내밀었다.

“앗 뜨거!”

“당연히 불에서 방금 꺼낸 거니까 뜨겁죠. 천천히 먹어요.”

“네, 천천히, 앗 뜨거! 천천히……. 앗 뜨!”

“뜨겁다니까…….”

종이 같은 거에 싸주면 좀 좋을 텐데, 종잇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니 어쩔 수가 없었다.

장소는 손가락이 데는 것 보다 뱃속의 허기를 달래는 것이 우선인지 잠시를 참지 못하고 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 모습이 꼭 고양이가 앞발로 장난을 치는 것 같아 퍽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년은 문명의 이기인 칼과 젓가락을 이용해 우아하게 그것을 한입 크기로 썰었다.

“자, 한입 해요.”

우선은 장소의 입에 한입 넣어주고 소년은 그다음이었다. 약간 딱딱한 겉과 그 안쪽의 쫄깃쫄깃한 찹쌀은 매콤하고 기름진 소시지를 받쳐줄 든든한 지지대가 된다.

거기에 살짝 달콤한 맛을 낸 알싸한 겨자, 심플하기에 완벽한 삼중주.

길에서 마주친다면 지갑을 꺼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유혹은 다른 세계에서조차 건재했다.

장소가 정신없이 탐닉하던 사이에 이제 막 휴식을 허락받은 이삼도 슬그머니 소년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소년과 장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첸 이삼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말없이 배시시 웃으며 장소가 또 한 명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을 축복할 뿐이었다.

“혹시 제 것도 있나요?”

“있죠. 근데 좀 뜨거워요.”

데인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는 장소를 돌아보며 이삼은 비장한 표정으로 대장포소장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먹기 좋게 자르고 젓가락 하나를 꼬치처럼 사용하여 품위 있게 입에 집어넣었다.

“근데 태감님은 어디 가셨는데 안오십니까? 슬슬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저녁은 돼지고기가 좋겠다. 앞으로 한동안은 못 먹을 테니.”

소년도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태감에게 먹기 좋게 썬 대장포소장을 건네었다.

“흠, 이건 또 색다른 음식이구나. 먹기는 좀 불편하지만, 맛은 아주 좋군.”

“원래는 종이 같은 거로 포장해도 통째로 베어 먹는 음식인데,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죠?”

“그야 그럴 테지. 발상이야 나쁘지 않지만 그러면 요리값보다 포장지값이 더 나올 게야. 하지만 댓잎 같은 대체재를 사용한다면 괜찮을지도…….”

그렇게 대장포소장 세 개를 먹어치우고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은 태감이 일순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오운의 이름을 불렀다.

그 서릿발 같은 기세에 오운 또한 발뒤꿈치를 붙이고 기립한 채 태감의 말을 경청했다.

“후궁의 상호 오운, 용의 진언을 받으라.”

용의 진언. 다시 말해 어명이었다.

소년은 즉시 오체투지하고 태감의 말을 기다렸지만, 태감은 어명을 읽는 대신 그것을 직접 소년에게 넘겼다.

금줄로 묶은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만든 편지지는 소년이 살던 곳에서는 거의 사장되다시피했기에 소년에게는 몹시 낯설었다.

매끄럽지만 조금 우툴두툴하고 갈라진 면도 있어 글을 쓰기에는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소년은 이미 종이가 개발된 시대에 이런 양피지 같은 것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실효성을 의심하며 끈을 풀렸다.

일순간의 경악,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지나고. 고개를 든 오운이 태감에게 물었다.

“이거, 사실입니까?”

“그럼 거짓일까. 틀림없는 사실이다.”

“허, 이것 참…….”

코웃음을 치고, 무어라 욕지거리를 내뱉은 소년이 눈을 떴을 때 그 교환한 눈썹 아래에선 매서운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황제가 아닌 단순히 미식가 나부랭이로서의 도전이라면 피할 수 없지요. 폐하껜 도전을 승낙하겠다 전해주십시오.”

장소와 이삼을 경악시킬 만한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으며 소년은 신경질적으로 목을 꺾어 우두둑 소리를 내었다.

“자신 있느냐?”

어딘가 걱정 어린 태감의 물음에 소년은 그를 비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말은, 도전자에게 해야 할 말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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