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62화
인구 대부분이 밀 농사에 종사하는곳. 칠성제를 드릴 때 폐하가 가장 처음 밟는 곳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특별함도 찾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유주라는 도시였다.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푸른 밀밭은 바람결에 따라 기이한 짐승의 털처럼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제국의 강북지방에서라면 어디서나흔히 보이는 모습이었기에 소년은 그 고상한 바람의 장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생에서였다면 그 장대한 풍경에 저절로 마음을 빼앗겨 스마트폰을 들어 아마 다시 찾을 일 없을 사진을 찍는 것에 열중했으리라.
먼저 도시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덕분에 소년은 기나긴 행렬에 끼어도시로 들어설 때까지 긴 정체기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벌써부터 폐하의 용안을 될 생각에 가슴 설레하는 군중들을 지나 곱게 늙은 노부부가 관리하는 소박한 장원에 들어서 짐을 풀고 나자 그제야 소년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숨을 내쉬었다.
장원은 규모는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탁 트인 정원은 노부부가 공들여 기른 여름꽃이 만발했고 작은 연못에는 크고 색 좋은 잉어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잉어.
소년의 시선이 색색의 비단잉어 사이를 헤매었다.
“오늘은 잉어가 좋겠다.”
그 말을 들은 태감이 한가롭게 정원을 산책하다 말고 소년의 어깨를 붙잡았다.
“난 고기가 먹고 싶다.”
“그러십니까? 오늘 점심은 이어배면(鯉魚焙麵) 입니다.”
“난 고기가 먹고 싶구나. 이왕이면 돼지고기를 조린 것. 아니면 튀긴닭도 좋고.”
“그러시군요. 오늘 점심은 잉어입니다.”
태감과 소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불똥을 튀기며 부딪혔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닌데도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둘은 마치 생사 대적을 눈앞에 둔것처럼 진지하기만 했다.
“내가 ‘명령’하게 하지 마라. 오운. 오늘 점심은 고기다.”
“제가 ‘항명’하게 하실 생각입니까? 오늘 점심은 잉어입니다.”
위정은 둘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싸움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마 소년의 실제 나이가 위정 자신의 큰형님뻘이라는 것을 알면 혈압이 올라 뒷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저……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냥 둬라…… 태감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이삼이 큰 눈을 끔뻑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위정은 아직 못다 푼 짐을 점검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장소도 일을 위해 자리를 비우고 점점 가열하게 맞붙는 둘 사이에 오도카니 남은 이삼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어제도 고기, 그 전날도 고기였으니 오늘 하루, 아니, 점심 한 끼 정도는 생선을 먹어도 좋지 않습니까! 어차피 저녁에는 고기를 드실 테니 점심 정도는 양보하시지요.”
소년이 융화책을 내놓자.
“그렇다면 주요리를 고기로 하고 다른 곁들이를 생선으로 내놓아도 될 일이다. 너의 알량한 계략에 내가 속을 것 같으냐? 네 그리 청한다면 주요리를 고기로 놓되 다른 생선요리 한 가지를 곁들이는 것 정도는 내 허락하마. 하지만 고기와 생선의 자리를 바꾸어 식탁의 강상의 법도를 어지르는 일은 허락할 수 없다!”
태감은 단호하게 의지를 피력했다.
팔짱을 굳게 끼고 고개를 팩 돌리는것이 퍽 귀여워 순간 소년은 말문이 막혔으나 이내 더욱더 불타는 의지로 피를 토하듯이 열변을 토해냈다.
그는 역전의 전사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해냈던 투사였다.
“어찌 고기와 생선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강상의 법도를 어지른다는 말씀입니까! 삼강과 오상이 다 무엇입니까! 말은 번지르르 하나 결국사람이 지켜야 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고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원리 원칙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식탁에서, 식재료의 삼강오상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을 배부르게 하고 건강하게 하며 살찌우는 것이야말로 이미 죽은 가축과 어류들이 그 주검으로 덕을 쌓는 공양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식탁에 앉은 이가 그들에게 다해야 할 도리는, 강상의 법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편식 없이 골고루 가리지 않고 먹음으로써 목숨을 바쳐 자신을 공양한 가축이, 생선이, 채소가 덕을 쌓아 열반에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사람 된 자로서 해야 할 도리요 식탁에 앉는 자로서 해야 할 도리이옵니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둘은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 순간, 칼을 꼬나쥔것 같은 진지한 서로의 표정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식탁의 주도권을 쥔 주종 간의 유흥은 서로를 이해할 수록, 깊이가 더해질수록 강렬하고 유쾌해졌다.
제법 먹물 티가 나는 소년의 열변에 태감은 결국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했다.
“그렇다면, 오늘 점심은 네 말대로 잉어를 올리도록.”
“예, 그리하겠습니다.”
태감과 소년의, 기나긴 투쟁이자 장난의 역사서에 한 장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오랜만에 맛보는 승리가 달콤한지 들뜬 목소리로 이어 올릴 요리를 말했다.
“예, 그럼 오늘 정신은 이어배면과 도삭면, 새로 담근 조매(雕梅)와 소채볶음, 그리고 도구소계(道口燒鷄)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해라.”
태감은 한참의 실랑이에 기운이 빠졌는지 의자에 축 늘어졌다.
가슴 쓰린 패배를 곱씹으며 다음에는 승리하여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뜨거운 고기를 움켜쥐리라 다짐이라도 하는지 주먹을 그러쥐고 입으로는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를 중얼거렸다.
“……잠깐만. 도구소계면 통닭을 튀겨 조린 요리가 아니냐.”
“예, 그렇지요.”
“고기 요리는 올리지 않는다고…….”
소년은 그야말로 승자의 아량이 묻어나는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생선을 주요리로 올리겠다 했지 고기 요리를 올리지 않겠다 한 적은 없습니다.”
결국 승자는 있으나 패자는 없는, 뜨뜻미지근한 결착이었다.
* * *
이어배면(鯉魚焙麵).
그날 최고로 크고 좋은 잉어를 고른다. 소년이 고른 것은 길이가 팔뚝만 하고 두툼한데 모래톱에서 자라 흙냄새가 나지 않는 최고로 좋은 놈이었다.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꺼낸 다음 살에 두껍게 칼집을 넣는다.
소금으로 살짝 밑간하고 냄비에 기름을 넉넉하게 넣어 잉어를 바싹하게 튀겨낸다.
칼집을 넣은 살이 수축하고 그것이 노르스름하게 튀겨지면 꺼내고 달콤새콤한 탕추 소스를 만든다.
설탕, 식초, 간장 조금에 맛술, 다진 생각을 넣고 졸여 걸쭉한 농도가 되도록 전분을 풀어 넣는다.
실처럼 가늘게 뽑아내는 용수면은 감자전분으로 만든다. 밀가루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굵기도 전분으로 하면 가능하다.
실처럼 가늘어지면 검지만하게 끊어 기름에 바삭바삭해지게 튀긴다.
마지막으로 튀겨낸 잉어에 당초를 끼얹고 용수면을 그 위에 얹어낸다.
그 수려한 자태는 생선에 별 관심없어 하던 태감도 절로 눈이 돌아갈만한 것이었다. 소년은 여기에 여정을 떠나기 전 막 걸러 병입한 술한 병을 꺼냈다.
“얼치기 솜씨로 만든 건데 제법 맛이 들었더군요. 생강으로 향을 낸 증류주입니다.”
소년은 말년에 나름 전통주 문화원에서 전문가 과정을 이수할 만큼 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삼대 명주로 유명한 이강주를 배울 때 만드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기간이 길어 약식으로 흉내내본 것이었는데 생강과 계피로 향을 낸 탁주를 증류하여 마른 생강과 계피를 넣어 향을 침출한 다음 꿀로 가당을 한 것이었다.
진짜 이강주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생강과 계피의 향이 진하게 우러났고 또 꿀맛이 달콤하여나름 괜찮은 리큐르 정도는 된다고 자부했다.
태감이 기대감에 병을 열어 할 때 위정이 나서 태감의 손에 손을 얹고 점잖게 밀어냈다.
“다른 술이라면 모를까. 증류주는 미숙한 자가 만들면 심하면 실명을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술입니다. 전문가의 솜씨가 아닌 이상 함부로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섭섭하기는 했지만 소년은 위정의 단호한 말에 수긍했다. 고대에도 여과나 숙성에 실패한 양조주가 사람을 실명시킨 이야기는 흔했고 심지어 근대에도 금주법 당시 얼치기로 밀주를 하다 사고를 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는 했다.
증류 과정에서 메탄올이 에탄올보다 끓는점이 낮아 메탄올이 먼저 증류되는데 이것을 모르는 이들이 간혹 실수하는 것이다.
과연 술에 해박한 위정 다운 지적이었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자신이 먼저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술의 안정성을 시연하기로 했다.
하지만 위정이 한 발 더 빨랐다.
마치 전날 소년의 주먹을 막아섰던 금나수와도 같았다.
유려한 동작으로 술병을 집어 든 위정은 희생을 각오한 순교자의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러니 제가 먼저 맛을 보아 안전성을 확인하겠습니다.”
……이 새끼?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거룩한 성자의 표정을 한 위정을 보며 소년은 그 말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을 떨쳐 내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면 합리적인 의심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소년은 그럼에도 이 과묵한 무인이 설마 술이 마시고 싶어 그랬을까 싶어 정중하게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나리가 그러실 필요는 없지요. 제가 마시겠습니다. 양조한 제가 맛보아 확인시켜 드리는 게 도리겠지요.”
그러자 위정은 부도덕한 소년을 꾸짖었다.
“어허, 어찌 나이도 안 찬 네가 술을 먹겠다는 것이냐.”
“아니 그래도…….”
“가만히 있거라. 이것은 연장자인 나의 의무다.”
뭔 개소리를 하고 있어 이 미친놈이…… 소년은 욕설이 목젖 끝을 톡 차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으나 공자도 감탄할 만한 인내력으로 욕설을 삼켰다.
그러는 사이 위정은 태감의 허락을 받아 우아한 자세로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흠…… 맑고 투명한 것이 보기에는 좋군. 그리고 은은한 생강 향기가 벌써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구나.”
처음 향을 맡았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생강이었지만 그 밑으로는 톡 쏘는 계피의 고상한 향기가 깔려 있었다.
“어디, 한번 마셔볼까.”
입에 넣자 코끝을 톡 쏘는 두 가지 향기가 가장 먼저 입안을 가득채웠다.
이대로 입을 벌리면 그 향긋함이 모조리 날아가 버릴까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원히 입에 머금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목으로 넘기는 순간 증류주라면 응당 따라야 할 화끈한 목 넘김이 뒤따랐다.
좋은 술이다. 식사 반주로 쓰기에는 아까울 만큼 좋은 술이다. 이런 좋은 술이라면 당연히 절제된 소량의 안주만을 준비해 술의 맛만을 즐기는데에 몰두해야 옳을 것이다.
술이 목으로 넘어가고 그제야 숨을 내쉬기 위해 입을 연 순간 입가엔 달콤한 벌꿀의 맛이 백일몽처럼 덧없이 스치고 지나가 위정의 심장을 애달프게 했다.
이 술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줄이야. 이런 좋은 술을, 술맛도 모르게 무절제하게 식사의 반주로 소비해 버릴 자신의 주인을 원망스럽게 보며 위정은 무뚝뚝하게 술에 이상은 없음을 밝혔다.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하마터면 바삭한 용수면이 촉촉해질 뻔했어.”
위정의 끓는 속도 모르고 태감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술을 콸콸 잔에 따르고는 젓가락을 들어 생선 위에 흰 나비처럼 곱게 내려앉은 용수면을 집어 들어 당초에 콕 찍었다.
바삭. 바삭. 바사삭.
극도의 섬세한 식감은 턱뼈를 타고 온몸의 뼈 말단부까지 그 관능적인 소리를 전해지는 듯했다.
몸의 말단부까지 충실해지는 환희, 그 찰나의 아름다움은 청각과 촉각의 중간적인 형태로 태감의 두개골을 가득 채워 내이에 영원토록 감도는 듯했다.
그러나 세상 형태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시간 앞에 스러지듯이 용수면은 빠르게 소스의 수분을 흡수하며 점차 눅눅해졌다.
마치 아름다운 것은 유한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듯이. 태감의 젓가락질은 더욱 바빠졌다.
용수면을 다 먹었으면 이제 잉어에 젓가락을 가져갈 시간이다.
먹기 좋게 칼집이 잘 들어가 있어 태감은 어렵지 않게 두툼한 살점을 집어올릴 수 있었다.
색은 대리석처럼 희고 매끄러운 광택이 있었으며 육즙이 가득 차 있어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하지만 젓가락으로 집은 육질은 존존하게 결대로 찢어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새콤달콤하고 진한 탕추의 짜릿한 쾌감도 잠시. 아직 순결한 바삭함을 간직한 잉어는 조금의 잡내도 없이 무구한 그 속내를 내보여 태감은 부끄럽게 만들었다.
분명 수질 좋은 곳에서 살던 잉어이리라. 삿된 것을 가까이하지 않고 먹이도 좋은 것을 먹었을 테지. 품격 떨어지는 것은 입에 대지 않았으리라.
분명 급류가 심한 곳에서 자라는 깨끗한 물이끼와 작은 민물 게, 새우 따위를 먹으며 자란 잉어였으리라.
그러니 이토록 담백하고 순할 테지. 거친 급류를 이기며 자랐을 테니 살은 이처럼 존득할 테지.
그런데도 먹는 사람을 배려하여 뱃살 부분에는 은은한 기름기가 있다.
성품어진 물고기였다. 그런 물고기가 오늘 자신의 상에 올라와 있다.
더러운 진흙탕에서 지분거리는 것들과는 격이 달랐다. 태감은 소년이 말한 식재의 삼강 오상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을 이해했다 하면 오만한 말일 것이다.
그저 가슴 깊은 곳으로. 쑤욱 하고 밀고 들어와 어느새 가슴 안쪽, 빗장뼈 사이에 슬그미니 자리 잡아 버렸다.
“맛있구나. 정말 맛있어. 여태껏 이보다 맛 좋은 잉어는 먹어본 적 없구나.”
“예, 시장에 가니 가장 먼저 그 잉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쉬이 구하지 못할 잉어였습니다.”
잉어의 여운이 짙게 남아 가슴을 저리게 만들어 태감은 술을 한 모금들이켰다.
달콤새콤한 당추와 잘 어울리는 화한 생강 향기, 그리고 그 생강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콧속의 패권을 다투는 계피의 절묘한 조화.
그리고 그 너머에서 너무 긴 여운은 사람을 슬프게 한다고 말하는 듯한, 짧게 스며들고 썰물처럼 사라지는 벌꿀의 달콤함.
그 복합적인 맛의 연계는 태감에게 잠시지만 고기에 대한 애달픈 사모의 감정을 잊게 만들었다.
“후후, 지금 잠시만은. 고기에 대한 집착을 잊을 수 있었다.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된 것일까.”
태감의 우수에 젖은 눈동자는 깊은 현기가 느껴졌다. 그 모습에 감명받은 소년은 깊게 읍하며 말했다.
“그럼 도구소계는 올리지 말까요?”
“……애써 준비한 요린데 먹어는 봐야지. 올려 보아라.”
“예.”
도구소계(道口燒鷄)는 모양을 잡는 법도 특이한데 닭발을 잘라내고 닭다리를 닭 뱃속에 넣어서 반달 모양으로 다듬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을 껍질에 꿀을 발라 껍질이 노랗게 되도록 튀겨낸 다음 생강, 진피, 계피 등 여덟 가지 향신료를 넣은 육수에 반쯤 잠기게 해 세 시간 가량을 푹 조려낸 요리로 윤기가 자르르 돌고 살이 푹 물러 뼈에서 쉬이 떨어져 먹기도 좋고 맛은 더 좋았다.
소년이 먹기 좋게 닭을 손질해 내놓자 태감은 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닭고기를 집어 들었다.
아직은 잉어의 감동이 그를 휘어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놓은 요리를 버리기는 아까우니 먹는다는 듯이, 한점. 두 점.
먹는 속도에 점점 탄력이 붙더니 태감은 어느새 닭고기가 든 단지를 밥그릇 앞까지 끌어왔다.
“역시 고기만은 못한가 보군요.”
“내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어찌 조강지처를 버리고 첩에 눈을 돌렸을까.”
“영웅은 삼처사첩이라는데 다른 처도 좀 들여보시지요. 생선이라던가. 버섯이라던가.”
“난 영웅이 될 그릇이 아니지 처는 하나로 족하다.”
하나뿐인 처라고 하기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지 않습니까? 정작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양고기다 올려주면 다 좋다고 할 거면서.
소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태감의 넉살에 항복했다. 저 좋다는 걸 어찌 말리겠는가.
그렇다고 생선은 먹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싹 먹어치우니 더 이상 뭐라 잔소리할 것도 없었다.
“뭐, 잘 드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단 해주면 뭐든 잘 먹으니 그이상 바라는 것도 사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