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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60화 (60/314)

환관의 요리사 60화

여정을 시작한 치 삼 일 차.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소년은 나른한 표정으로 등받이게 기대앉아 있었다.

그럭저럭 목소리가 돌아오기는 했지만 아직 정열적으로 이야기를 풀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재담을 면제받은 그는 그저 멍하니 앉아 때때로 꾸벅꾸벅 졸거나 눈앞의 태감을 멍하니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창밖의 풍경이라도 감상하는 등 지극히 평화로운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조는 것도 괜찮고 마차의 속도에 맞춰 느릿하게 흘러가는 바깥도 볼만은 했지만 가장 유쾌한 구경거리는 태감이었다.

태감은 아침부터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듯했다. 심지어는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으니 그를 보좌하는 이들이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태감님이 식욕이 없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오직 소년만큼은 그런 태감을 비웃을 뿐 그를 염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감은 식욕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식욕이 넘쳐서 문제지…… 문제라면.”

그는 식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식욕은 넘쳐 흘렀다. 넘쳐 흐르기 때문에, 넘쳐 흐르는 그 식욕을 가두고 극한까지 기다리는 것이리라.

공복이라는 조미료를 뿌릴 시간을, 자신의 기대감으로 위장이 최고로 달아오르는 그 순간을.

무리도 아닌 것이, 오늘에서야말로 소년은 마침내 비장의 식재료이자 태감이 그토록 기다려 왔던 후궁에서 훈제해온 납육과 향장을 넣고 보자반(㷛仔飯, 중국식 영양밥)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제 슬슬 여정의 첫 번째 도시도 가까워졌고 신선한 식재료도 거의 떨어졌으니 비축해 둔 저장식품을 먹기에 가장 적기였다.

그리고 소년은 태감의 앞에서 그것을 꺼내고 말았다. 내일 점심은 이것을 먹을 거라고, 직접 절인 것이니 시중에 나도는 것과는 맛이 다를 거라고 자랑스럽게 소년이 내보인 것은 바로 소금에 절인 오리 다리였다.

소금에 절인 오리 다리. 허벅지살까지 통째로 붙어 있는 큼지막한 놈이었다.

수분이 빠져나가 존존해 보이는 육질, 노르스름하고 광택이 흐르는 기름과 선홍빛 보석과도 같은 육질은 태감의 심장을 움켜쥐기에, 충분했으리라.

홍옥보다도 깊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극상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운 예술품은 심지어 먹어치우는 것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시켜 미의 덧없음을 인간에게 일깨워주기까지 한다.

그 순결하고 고결한 예술품에 빠진것은 죄가 아니다.

소년은 단순히 부하 직원이 아닌한 사람의 애호가로서, 또 다른 광증에 빠져든 애호가를 먼저 그 업계에 발을 디딘 선배로서 이끌어 줘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태감은 초조해 보였고, 기다림에 지쳐 있었기에 초췌해 보였다.

부족한 아침식사로 위장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물을 제외한 다른 어떠한 간식도 입에 대지 않아 뇌의 포만중추는 태감에게 강압적인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참아내는 태감의 표정은 구도자의 고뇌마저도 엿보일 만한 숭고함을 띄고 있었다.

실은 배고픔을 참고 있는 것인데 말이지. 역시 잘생긴 놈들은 뭘 해도 좋게 보인다니까.

마치 고통을 참는 순례자 같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부동자세를 유지하는 태감을 보며 소년은 은근슬쩍 창밖을 내다보았다.

“태감님, 선두 행렬이 멈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근엄하게 감은 태감의 눈이 떠지고 그 안에서 식욕으로 가득 찬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굶주린 짐승과도 같은 포악한 기세, 입안에서는 삼키지 못한 침이 넘실거렸다.

점심을 먹기 좋은 날이다.

“예, 점심시간입니다.”

소년이 공손히 대답하자 태감은 더이상 참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만 같은 욕망을 온 힘을 다해 억누르며 태감은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마치 뛰쳐나가려는 자신에게 스스로 빗장을 걸듯이.

“……나를 너무…… 기다리게 하지마라.”

태감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소년은 비호처럼 뛰쳐나갔다. 그보다 한발 빠르게 이삼과 장소가 마차에 실린 짐을 내리고 화십자로 불을 피웠다.

삽시간에 큰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넓적한 돌 위에 소년의 두툼한 나무도마가 마련되었다.

주인의 굶주림을 알기 때문인지 그들의 동작은 평소보다 배는 더 민첩했다.

이삼이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 것을 보며 소년은 자신의 독문병기(?)인 오철 식칼을 꺼내 들었다.

언제 손에 쥐어도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검 보랏빛이 감도는 칠흑의 칼날은 이제는 손에 완전히 익어 자신의 다섯 번째 수족처럼 놀릴 수 있다 자부했다.

우선은 가장 먼저 훈연한 베이컨을 꺼내 납작납작하게 썰었다.

연한 부위라고는 하나 염장하고 훈연하는 과정에서 수분지 빠져 조직은 치밀해지고 단단해졌으니 그것을 감안하여 충분히 얇게, 하지만 고기 맛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두께로.

두 번째로는 향장(香腸, 소시지)는 베이컨보다는 조금 도톰하게 썬다.

가장 질 좋은 돼지고기만을 골라 살코기와 비계의 황금비로 배합한 다음 사천풍으로 매콤하게 양념한 향장은 숯불에 굽기만 해도 최고의 술안주이자 밥반찬이 된다.

오늘처럼 밥 위에 올려 찌면 그매콤한 기름이 밥에 배어들어 최고의 별미가 되어 줄 것을 소년은 의심치 않았다.

“쌀 다 씻었어요!”

“불도 다 피웠고 어…… 솥도 가져왔어요!”

“수고했어요. 이젠 내가 할 테니까 좀 쉬어요.”

이삼은 거의 반 가마니에 가까운 양의 쌀을 씻어왔고 장소는 여행길에 어디에 싸 왔는지 의심스러운 큰 가마솥을 가져왔다.

그 육중한 돌을 쌓아 만든 화덕위에 걸치는 것을 보며 소년은 최후의 식재료에 손을 가져갔다.

소금에 절인 오리 다리. 이날을 위해 소년이 한 달 전부터 오리를 고르고 손질해 준비한 명품을 마침내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하여 소년은 일말의 아쉬움을 느꼈다.

장성한 딸을 시집보낼 때 이런 기분이 들까?

우선은 허벅지 부분과 다리 부분을 토막 친다. 그다음 뼈를 분리하는데 어차피 생것이 아닌 염장하여 말린 것이기 때문에 살점이 완전히 떨어지도록 발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밥을 지을 때 뼈도 함께 넣어 육수를 우려내고, 마지막에 밥을 풀 때 뼈를 빼는 것이 합리적이지.”

뼈를 발라낸 오리고기도 납작하게 썰고 준비가 끝나자 소년은 지체 없이 반 가마니 불량의 쌀을 솥에 쏟아 넣고는 그 위에 질서정연하게 준비한 납육을 올렸다.

“자 이제!”

“이제?”

“이제 뭘 할까요?”

뭐든지 시켜만 달라는 듯이 눈빛을 빛내는 둘을 보며 소년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이제 밥 다 될 때까지 좀 쉽시다.”

배고픔에 굶주린 주인이 야수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데도 소년은 천연덕스럽게 간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소년은 심지어 안절부절못하는 장소와 이삼에게 주전부리로 육포를 꺼내 주기까지 했다.

“아침부터 태감님 신경 쓰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프죠? 하여간 그 양반은 윗사람이 불편해하면 아랫사람은 더 불편하다는 걸 몰라. 밥 되려면 시간 좀 걸리니까 이걸로 허기라도 좀 채워요.”

장소와 이삼은 육포를 받아들고도 뒤쪽의 간이 천막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태감이 신경 쓰이는지 섣불리 입에 육포를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지 않으면? 어차피 재촉한다고 쌀이 밥이 되지는 않아요. 맛있는 밥을 먹으려면 기다려야지.”

“그래도…… 그럼 다른 뭐라도 해다 드려야 하는 게…….”

거 참, 그 양반 은근히 인복은 있다니까. 소년은 어찌할 줄 모르는 둘이 퍽 귀여워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주기로 했다.

아 내가 원래 이렇게 친절하게 이런 거 저런 거 다 말해주는 사람이 아닌데…….

“태감님은 그저 배가 고픈 것이 아닙니다. 제 보자반이 고픈 것이죠. 그러니 다른 어떤 음식을 가져다 드려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실 겁니다.”

그는 아무 음식으로나 배를 채우는 대식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든, 자신이 먹고 싶은 것만을 먹는 긍지 높은 미식가였으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공복마저도 조미료로 활용할 줄 아는 교활한 사냥꾼이기도 했다.

그는 아마 죽는다고 하여도 다른 음식을 입에 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최고의 식사를 대접하는 것뿐.”

재촉한다고 쌀이 밥이 되지는 않는다. 소년은 그 당연한 세상의 진리로 둘을 위로했다.

저 멀리 천막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손자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듯한 표정으로 소년은 세심하게 솥 아래의 숯을 관리했다.

* * *

밥 준비를 마치고 소년이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미 천막안에는 식사 준비가 전부 끝나 있었다.

식탁과 사람 수대로 준비된 의자, 하지만 식탁 위에는 오직 수저 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제국의 상류층에서 수저란 오직 국물음식이나 도저히 젓가락으로는 먹을 수 없는 같은 극히 일부의 음식만을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

젓가락이야말로 모든 식사 도구의 제왕이었다.

자고로 품위 있고 우아한 젓가락질 이야말로 상류층의 소양 아니던가.

제국인 치고 있는 집 자제라면 글을 배우기도 전에 예법 교육으로 젓가락질하는 법을 배울 정도로 제국인은 젓가락을 사랑하고 또 집착했다.

품격있는 제국인이라면 다른 세간엔 돈을 아껴도 좋은 젓가락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축제나 식사에 초대되어서도 자신만의 젓가락을 챙기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태감의 젓가락은 흑단 재질에 끝에 금테를 두르고 옥을 박아넣은 최상품질의 것.

평소 소년도 무척이나 우아하다고 생각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젓가락이 없었다. 오직 넓적하고 품위 없는 수저뿐이었다.

그것에서 소년은 오늘 태감의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훌훌 날리는 볶음밥도 아니고 찰기 있는 밥을 굳이 수저로 먹겠다는 것은, 오늘 식사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 두었던 체면 따위의 모든 제약을 모조리 집어 던지겠다는 태감의 각오였다.

그 정도란 말인가?

그 정도로 오늘 요리를 기다렸단말인가?

소년은 고개를 들어 의자에 앉은 태감을 마주 보았다. 굶주렸을 텐데도 눈가에는 정기가 넘쳐 흘렀다.

평소의 부드럽고 능글맞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지금의 태감은 그야말로 살점을 씹은 야수이자 수컷이었다.

“요리는, 다 되었나?”

무겁고 낮게 깔리는 태감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오금을 저리게 만들 만한 묵직한 힘이 있었다.

평소 가볍고 유쾌한 모습만을 보여줬기에 더더욱 그 대비가 심하였다.

아마 이것이 그의 본 모습일 테지.

소년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휘장을 걷었다.

물수건으로 양 끝을 잡고 장소와 이삼이 솥단지를 날라왔다.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닐 텐데도 둘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마치 귀빈을 모시듯 정중한 자세로 솥을 날라와 소리 없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소년은 태감이 크게 움찔하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그 어떤 찬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자제력으로 참은 것이리라.

소년은 더 이상 굶주린 맹수를 자극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솥뚜껑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솥 안의 도원 향을 목격한 태감의 소리 없는 포효가 천막 안을 진동시켰다.

불그스름한 고기의 평야 아래론 진주 같은 쌀알이 첫눈처럼 잠들어 있었다.

허공으로 뭉근하게 피어오른 김마저 짭조름한 감칠맛을 담고 있어 천막 바깥에서 경계를 서는 병사들의 위장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베이컨, 소시지, 그리고 오리고기로 삼등분된 속 재료를 균일하게 퍼올려 그릇에 수북하게 담자 그 고칼로리, 그 고염분의 위용에 현대인이라면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귀찮게 팩팩거리는 건강검진도, 양심을 사정없이 난도질하는 헬스 트레이너도 없었다.

오직 고삐 풀린 식욕의 망자뿐이다.

그릇이 식탁에 놓이고 소년이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순간 태감의 수저가 질풍처럼 내리꽂혔다.

처음으로 느낀 것은 자극적인 소금기와 그런 날카로운 짠맛을 한없이 관대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어주는 쌀의 푸근한 단맛.

이제는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다시 그리게 만드는 미성숙한 유년기의 어리광과도 같은 맛.

하지만 달콤한 추억에 젖는 것도 잠시였다. 그 뒤를 이어 향신료에 둘러싸인 자극적인 기름기가 사정없이 태감의 혀를 짓밟았다.

인간성의 밑바닥을 드러나게 만드는 마성의 맛, 혈관을 배신하게 만드는 맛의 폭력!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숙성되어 쫀쫀해진 육질과 그 내부에 잠들어 있는 감칠맛은 혀를 아리게 만들 정도였다.

첫술을 뜨고 그 맛을 혀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동안 침묵했던 태감은 반개했던 눈을 완전히 뜨며 수저를 들어 올렸다.

“젓가락이 아닌 수저를 선택한 것은 정답이었다.”

젓가락은 결코, 이렇게 천박하게 쓸어 담을 수 없지.

태감은 사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치 저잣거리의 노동자처럼, 입안으로 밥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라면 창피한 일이라며 손가락질을 할 일을 태연하게 저지른 태감을 비난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 밥공기를 받아든 그들 모두,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사회적 체면과 그들이 평생토록 연마해온 예의범절이 그 실낱같은 이성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감은 그 모든 구속을 벗어던지고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식사를 했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앞장서서 그러했으니 그들에게는 면죄부가 들어온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나둘 눈치를 보며 사발을 들어올리고 이내 다들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거 참, 여기가 공사판도 아니고…….”

전쟁터 한복판 낭인들도 댁들보다는 품위 있게 먹겠수다.

복스럽게 먹어 좋다고 해야 할지, 자신이 만든 음식이 너저분한 모습으로 소비되는 것에 슬퍼해야 할지 고민하던 소년은 전자 쪽으로 생각을 기울이고 자신도 사발을 들어 올렸다.

항상 몸가짐을 신경 써야 하는 후궁에서 이렇게 밥을 먹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최소한 몸가짐을 신중히 할 필요는 없었던 구더기 시절을 떠올리며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최소한의 불편함마저 참기 힘들어 옛날을 그리워 하는 것을 보면 나란 놈도 참 간사한 놈이구나 싶다.

거의 반 가마니 분량의 음식을 했는데도 솥 안은 텅텅 비어 구수한 누룽지만이 쓸쓸해진 솥 안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짭조름한 기름이 살짝 배어 있는 누룽지는 꽤나 별미였다.

“이제 좀 정신이 드시나 봅니다.”

“배가 그득하니 정신에 총기가 돌아오는군.”

태감은 조금 전 품위 없이 밥을 폭식한 것이 부끄러운지 괜히 헛기침하며 농담을 던졌다.

조금 전 태감은 꽤나 사내답고 볼만 했는데, 그것이 못내 아쉬워진 소년은 언젠가 한 번 그를 굶겨봐야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어차피 칠성제 때 하루는 무조건 단식을 해야 하니, 용의 아들께서도 단식하시는데 제아무리 대단하다는 태감이라도 단식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소년의 야심을 은연중 느낀것인지 태감은 한기를 느낀 것처럼 몸을 떨며 팔짱을 꼈다.

“아무튼 이제 여행 중 처음으로 방문하는 주인 유주가 코앞이군.”

처음으로 방문하는 도시라는 말에 소년은 짐짓 기대된다는 얼굴로 태감에게 물었다.

“거긴 뭐 유명한 것 없습니까?”

“아무것도 없다. 솔직히 매년 황제폐하가 납시는 걸 빼면 볼 것도 없고 특산품도 없는 평범한 동네야.”

인구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곳. 그런 곳에서 일 년에 한 번 황제 폐하가 방문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영광일 것이다.

또 그 피곤한 행진에 진땀을 뺄것을 생각하자 소년은 얼굴이 핼쑥해졌다.

자신은 가만히 마차에 앉아 있기만 할 텐데도 열광하는 군중들 사이를 느릿느릿 나아가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자신이야 창을 닫으면 그나마 좀 괜찮다지만 황제 폐하와 각을 잡고 행진해야 할 병사들은 어떨까?

소년의 표정을 읽었는지 태감은 과도한 자기애가 엿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쳤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누구냐? 천안감의 총괄자 아니냐. 이미 황제폐하께 행렬을 우선적으로 이탈하여 사전에 폐하께서 머무실 장원을 정돈해 두겠다고 허락을 받아두었다.”

“그렇다는 말씀은?”

“우린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가서 장원에 미리 짐 풀고 발 뻗고 누워있으면 된다는 말이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만한 성과였다. 소년은 태감의 등 뒤로 성스러운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은 환상을 보았다. 태감의 말은 그 정도로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역시…… 후궁의 짬은 공으로 드신 게 아니시군요…….”

“짬은 또 뭐냐?”

태감에게 먹인 밥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그 한순간만큼은 태감은 마음껏 칭찬했다.

“이제 유주를 지나서 세 개 주를 더 지나면 칠성단이 나온다.”

먼 곳을 바라보는 태감의 시야는 이미 칠성단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칠성단에 도착하면 제사를 드리기 전 절식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해야하지. 아마 페하께서는 이틀째에 너를 부르실 것 같구나.”

“이틀째에 말입니까?”

“그래. 외궁의 총괄조리장의 제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를 부르신단 말이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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