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59화
그날의 저녁은 여행길 분위기 나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태감의 요청에 따라서장 위구르족 스타일로 양념에 꼬치에 꿰어 구운 양고기와 양고기탕, 그리고 화덕 대신 철 냄비에서 구워낸 납작한 빵 낭(攮)이었다.
태감의 식사량을 생각하면 꼬치 수 십 개로는 부족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심지어 평소보다 먹을 입도 많다) 소년은 일찌감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식사가 끝나면 조금 늦게 식사하겠다 말해두고 천막에서 조금떨어진 곳에서 꼬치를 굽는데 열중했다.
소년의 보조 겸 호위로 이삼이 옆에 붙어 있었지만, 솔직히 다 구운꼬치를 나르는 것 외엔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소년은 꼬치 중 가장 고기가 크고 잘 구워진 것을 골라 이삼에게 내밀었다.
뜨겁지도 않은지 매콤한 양념이 솔솔 뿌려진 꼬치를 허겁지겁 뜯는 모습을 보며 소년은 피식 웃었다.
“미안해서 어째요? 저녁을 먹기엔 자리가 영 불편하지 않아요?”
“그루터기도 꽤 편한데요, 거기다 방금 구운 뜨거운 꼬치도 먹을 수있고.”
입가에 양념과 기름을 묻히고 씩웃어보는 이삼이 귀여워 소년은 다구워진 꼬치 몇 개를 추가로 추려 이삼 쪽으로 두었다.
바삭바삭한 낭을 접시 삼아 꼬치를 먹는 모습을 보면 역시 그가 서장출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된다.
그루터기 하나를 둘이서 나눠 앉으니 조금 좁기는 했지만 이삼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달이 밤의 끝자락에서 고개를 드는 시간, 번화한 경사보다 조금 빨리밤이 찾아든 숲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으니 퍽 운치가 살았다.
멀찍이서 경계를 서고 있는 금군의 병사들을 물끄러미 보던 소년이 운을 띄웠다.
“숱한 밤을 채우던 뜨거운 추억도~”
익숙한 노랫가락에 소년을 보던 이삼도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비 맞은 까마귀 같은 소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는 다른 청아한 미성이 한 밤중의 숲을 뚫고 달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들꽃처럼 왔다 들꽃처럼 간다 내 이름을 묻지 말아주오~”
이삼의 노래에 양 기름 떨어지는 모닥불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박자를 맞추는 듯했다.
멀찍이서 경계를 서던 병사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이는 것을 확인한 이삼은 소년이 고기를 꿰지 않은 꼬치로 석쇠를 두드리며 본격적으로 박자를 타자 목에 힘을 주고 노랫가락을 뽑아냈다.
최백호의 집시, 그 구성진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아름답고 깨끗한 목소리로 들으니 또 다른 맛이 살았다.
멀찍이서 병사들이 휘파람을 불거나 나지막이 감탄사를 터뜨리자 가인(歌人)으로서의 피가 끓는지 이삼이 꼬치 하나를 마이크처럼 잡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엔 집시 여인이 듣고 싶네, 나중에 가사를 알려줘야겠다.
소년이 다른 생각을 하며 꼬치를 돌리는 동안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들은 어느새 하나둘 본연의 임무를 잊고 이삼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휴, 이 노래만 부르면 항상 옛날생각이 난다니까요.”
노래를 열창한 이삼의 눈동자는 어느새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지난날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말없이 눈가를 비비는 이삼에게 꼬치 두어 개를 더 내미며 소년은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했다.
소년의 우중충한 얼굴은 본 이삼은 억지로 웃으며 꼬치를 베어 물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궁에 들어오면서 가족들은 다 자리를 잡았거든요. 집도 있고 밭도 조금 있고, 장사도 하고.”
자기 아들뻘인 아이가 오히려 자신을 신경 쓰는 것이 안쓰러워 자꾸 이삼에게 꼬치를 내주며 소년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물었다.
“장사를 해요?”
“네, 경사에서 포목점을 해요. 궁납도 좀 하고…….”
“궁납하면 뭐, 걱정은 없겠네.”
“그렇죠. 그래서 지금은 제법 살아요. 밭도 소작 줘서 나름 지주 소리도 듣고…….”
그 가족의 안정을 대가로 궁에 들어온 소년은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발그레 웃고만 있는 이삼이 안쓰러워 무어라 위로를 하고 싶어도 소년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제 괜찮아졌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과연 그게 위로가 될까? 소년은 비겁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뭘 주제로 이야기할지 고민이네요. 솔직히 사내놈들 우글거리니 야설이나 쫙 풀면 편하긴 하겠는데.”
“에이, 그러면 황실 모독죄로 참수당하실걸요?”
“참 나……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충이니 예니 떠들면 가뜩이나 쉴 시간에 불려나와 짜증 나는데 욕이나 먹을 게 뻔하고…….”
그렇다면 영화를 적당히 이야기로 바꿔야 하는데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것은 그걸 적절히 현시대에 맞춰 개작할 자신이 없었다.
시간도 너무 부족했고. 무엇보다 소년이 자신에게 그만한 문학적 소양이 있을지 확신이 가지도 않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국영수가 70점을 넘어본 적이 없었으니 소년이 자신의 머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다고 초한지나 삼국지는 명장들의 이야기가 재미는 있어도 본래의 목적인 전우애를 고취하고 사기를 올린다는 측면에선 조금 부족한것이 아닌가 싶다. 전우애, 전우애.
전우애라면…….
“역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최곤데…….”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이 적당히 각색한다고 해도 2차 세계대전 배경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그건 내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년이 모닥불을 응시하며 주절주절 혼잣말하자 이삼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의 책임이 막중함을 알기에, 그를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하지는 않겠다는 그 착한 생각, 그 착한 생각이 소년의 마수에 걸려들게 된 원인이었다.
소년은 이야기를 대충 정리했는지 눈을 번득이며 반응을 볼 희생양을 찾다 이삼을 보았다.
“어…… 오운 님?”
천진난만한 이삼의 물음에 소년이 히죽 웃었다. 모닥불빛이 벌어진 입 안쪽의 이빨을 번뜩이며 괴기스러음을 연출했고 소년은 이삼의 손목을 잡고 그를 가까이 끌어 귓가에 속삭였다.
“이삼 님, 잘 들어요. 이건 저 머나먼 나라, 미합중국이라는 색목인 나라의 이야깁니다.”
“색목인이요?”
“예…… 피부가 희고 머리가 금빛이 나며 눈이 푸른 사람들이요. 그곳에 라이언 가문의 사형제가 살았는데 그중 막내만을 제외한 셋이 전사하고만 겁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이삼의 순박한 반응이 소년의 이야기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당시 군을 지휘하던 대장군은 그 막내아들마저 전장에서 잃게 하는 건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라 생각하여 그를 전역시키기로 합니다.”
“예, 당연한 일이죠. 병사이기 전에 사람인걸요!”
“그래서…….”
모닥불빛에 음산하게 늘어지는 그림자와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속삭이는 소년의 목소리, 그리고 흥미진진한 내용은 아직 어리숙한 이삼을 완전히 매료시키고 말았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한 가까운 거리에서 이삼은 소년의 소매를 꼭붙잡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이야기는, 마침내 금마단주가 소년을 부르러을 때까지 끝나지 않아 이삼이 그의 소맷자락을 잡고 늘어지게 만들어 소년에게 이야기의 성공 여부에 확신을 주었다.
“제발, 제발 라이언 일병이 어떻게 되는지만, 그것만 알려주세요! 네?”
“음…… 보시다시피.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삼 군을 보기만 해도 그 효력이 느껴지는구려…… 확실히 병사들의 사기도 고취되겠지.”
소년은 붙잡는 마누라를 매정하게 뿌리치는 남편처럼 이삼이 잡은 소매를 뿌리쳤다.
앞으로 큰일을 해야 하는데 어찌 사소한 정에 흔들려 대사를 그르치겠는가!
사내라면 때론 비정하리만치 단호해야 할 때도 있는 법. 소년은 뒤내용이 궁금하며 간질환자처럼 떠는 이삼을 뒤로한 채 단호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조오오오오오오온!!!”
새들도 잠들고 달도 구름에 숨어온 화한 정적이 감도는 숲에 때아닌 절규가 숲의 잠을 깨웠다.
감수성 예민한 어린 나이도 아니고 눈물 흘려 마땅한 슬픈 사별을 경험한 것도 아닌데 죽이는 것보다 울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금군의 병사들이 뜨거운 남자의 눈물을 오뉴월 소낙비처럼 흘리고 있었다.
조금 전처럼 일일이 전사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절규하듯이 부르는 이.
말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멈추지 못해 어찌할 줄 모르는 이.
가슴에 파고든 긴 여운에 전율하는 이.
과연 라이언 일병의 선택은 올바른것이었는지 동료와 주먹을 동반한 토론을 나누는 이들로 인해 금군의 주둔지에는 대낮의 도떼기시장보다도 소란스러운 활기가 감돌았다.
그들을 보며 소년은 과연 자신의 연기력이 너무 출중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재가 좋았던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오래전에 본 영화라 기억에 누락도 조금 있었고 현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은 고치기도 했거니와 영상매체를 말로 전달하는 것의 한계도 있어 제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진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감수성 예민한 병사들의 과도한 반응은 소년을 당황하게 했다.
“정말 뜨거운 이야기였소, 이렇게 가슴이 흔들린 것은 무과에 합격하고 난 이후론 처음이요.”
“아…… 그러시군요.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금마단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덩치가 산만 한 장년의 사내가 수염을 적시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쉬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소년에게 거듭 인사하며 감사를 표한 금마단주는 한차례 대갈일성(大喝一聲)을 질러 혼돈의 도가니 같았던 장병들을 일깨웠다.
“정신 차려라 이놈들!!! 우선은 오늘 이야기를 베풀어주신 오상호께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먼저 아니냐!!”
“아뇨 뭘 그렇게까지…….”
그보다 내일 아침을 생각하면 조금 일찍 자고 싶은데, 먼저 들어가 자면 안 됩니까?
유감스럽게도 소년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주의 포효에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하고는 단주의 구령에 맞춰 오른손을 들어 가슴을 치며 경례했다.
거의 오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일제히 자신에게 경례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어서 두 시간이 넘게 악을 지르며 피폐해진 소년의 가슴에도 감동과 전율이 스며들었다.
과연, 이 정도 경의를 받는다면 목이 쉬도록 고함을 지른 보람이 있다.
“정말 감사하오, 덕분에 금마단의 사기가 크게 오른 것은 물론이요. 전우애 또한 돈독해졌으니 더 바랄나위가 없소.”
“제가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더없이 진중한 단주의 태도에 소년은 어딘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 짠 판에 제대로 걸려든 것만 같은, 발버둥 칠 수 없는 덫을 밟은 것만 같은 기분.
두 개의 태양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단주의 눈동자를 보며 소년은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안돼, 하지 마. 피곤해 죽겠다, 이놈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상호께서 괜찮으시다면 또 부탁을 드리고 싶소만…….”
그 선의와 굳센 믿음으로 가득 찬단주의 말에 소년은 정신이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전력으로 소리를 질러본 적 있는가? 두 시간 동안?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해도 두 시간이나 혼자서 떠들면 지친다.
거기에 소년이 작게 이야기했는가?
오십 명이나 되는 관중을 상대로 전쟁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치열한 긴장감, 그 뜨거운 전쟁을, 그 참혹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소년은 그야말로 안간힘을 다했다.
고함을 지르고, 표정을 찌푸리고 손짓·발짓 다 동원해서. 총을 맞는 부분에선 비명을 지르고 실제로 쓰러져가며 열연을 펼친 것이다.
그렇기에 바짓단은 흙투성이였고 목은 따끔따끔해 지금 내일이면 제대로 말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 번은 못 할 짓이다. 아니, 두 번 하라고 하면 하라고 한 놈을 때려죽여서라도 못할일이다.
하지만, 금마단주가 아닌가.
금군의 실무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자 차세대 금군 별장 후보.
그가 가진 힘, 그가 가진 인맥, 그것을 그냥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그에게 빛을 지울 절호의 기회를?
소년은 지그시 눈을 감고 태감을 생각했다. 그 쓸데없이 얄상하게 빠진 곱상하고 얄미운 얼굴, 솔직히 한대 후려갈겨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만.
그는 태감의 사람이 아닌가.
자신의 안위보다 태감의 이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다.
소년은 입꼬리를 웃음에 가까운 형태로 일그러뜨렸다.
“그럼요, 제 목이 회복되는 대로 다시 한번 해 보지요!”
식은 땀으로 젖은 소년의 온몸은 제발 시키지 말라고 무언의 항의를 해왔지만, 소년의 목과 얼굴은 육체를 배반하고 감언이설을 내뱉었다.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현장이었다.
단주라 하여 어찌 모르겠는가. 자신도 병사들을 훈련시킬 때면 고함을 지르느라 목이 아플 텐데 여물지 않은 소년은 어쩌겠는가.
단주는 그 투박하고 큰 손으로 소년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작지만 힘줄이 솟은,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노동하는 자의 손.
평생 자기 손으로 농사 한번 밥한번 지어본 적 없이 무술만을 단련해온 자신을 꾸짖는 존경스러운 손을 잡고 단주는 고개를 숙였다.
“이 악 모가 다시없을 큰 빚을 졌습니다. 상호.”
“하하, 이 비루한 몸으로 황궁의 자랑인 금군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바라는 바입니다! 얼마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겉으로는 호탕하게 호언장담을 했지만, 소년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금방이라도 쉬어야 함을 알기에 단주는 소년을 놓아주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고 소년이 간곳은 당장에라도 쓰러져 누울 이부자리가 아니라 몸을 씻을 물이 있는 우물가였다.
1년에 한 번은 칠성제를 치르기 위해 대규모 인원이 이동하기 때문에 목적지인 칠성단이 있는 곳까지 연결된 대로에는 일정 주기로 우물이 파여 있어 그곳을 기준으로 하루이동 거리가 결정되었다.
“으, 쌍. 여름이라도 밤 되니까 꽤 써늘한데.”
소년은 벌벌 떨면서 대충 물을 몸에 끼얹고 수건 대용의 천으로 몸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온종일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씻지도 않고 자면 땀 냄새가 나옆 사람이 불쾌하지 않겠는가?
한밤중에 냉수마찰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소년은 서둘러 대충씻고는 옷가지를 걸쳤다.
“오늘 수고했다.”
“니미 씨……! 깜짝이야. 못 본 새에 관음증이라도 생겼습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냥 배가 출출해서 깬 참이다.”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소년이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고개를 돌리자 천연덕스럽게 태감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밤의 어둠을 믿기 때문인지, 가면을 쓰지 않은 그는 창백한 달빛에 얼굴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채 서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야식거린 없습니다.”
소년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하자 태감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른 표정을 바꾸며 아닌 척해 소년을 빈정 상하게 했다.
“안다, 내가 설마 고생하고 온 네게 야식거리라도 대령하라 할 만큼 몰인정한 놈으로 보이더냐?”
“그래 보입니다만…….”
“커흠…… 뭐, 혹시 주전부리라도 있으면…….”
“……꼭 이 닦고 주무십쇼. 누누이 말하지만, 양치를 열심히 해야 이가 튼튼한 겁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이빨 다 썩으면 뽑아야 하는데 그럼 좋아하시는 고기도 못 먹어요. 예?”
“안다 알아.”
소년은 이때를 틈타 태감에게 같은 잔소리를 하며 절뚝거리며 천막으로 돌아가 마차에 실린 짐칸에서 간식봉투 하나를 꺼내 태감에게 건넸다.
육포와 건과일, 견과류 정도면 야식으로 훌륭하겠지. 물론 태감이라면 탄수화물이 없다는 것에 섭섭해 하겠지만 그걸 신경 써줄 정도로 소년이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다.
태감이 봉투를 열어 견과류를 씹는 동안 소년은 아직 꺼지지 않은 모닥불 불씨에 추워진 몸을 말렸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기나긴 여정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을 알았기에 짐칸에서 조금 도톰한 옷을 꺼내 입었다.
“어떠냐?”
넌지시 물어온 태감의 질문에 겉옷에 팔을 끼워 넣기 위해 낑낑대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뭐,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신의는 있어 보이더군요. 최소한 저희가 아쉬울 때 박정하게 굴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후후,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지. 특히 황궁에선 더더욱.”
“그건 그렇지요.”
소년은 음울한 눈동자로 꺼져가는 모닥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그른 어떤 사람일까.
궁에서의 관계이니 신뢰를 주고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만, 최소한 준만큼은 받을 수 있는 사람일까?
그 황소처럼 크고 우직한 눈동자를 떠올리면 그런 사람을 의심하는 자신이 하염없이 못된 놈이 된 것만 같아 한숨만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라도 빛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정치적 아군이라고 할 단계는 아니지만, 관계가 가까워진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고생은 제가 다 했는데 이득은 어째 태감님이 보신 것 같군요.”
“원래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고생은 실무진이, 이득은 경영자가. 어디나 마찬가지 아니냐.”
이 빌어먹을 놈의 관계는 세상이 달라져도 바뀌는 법이 없었다. 툴툴 거리는 소년을 보며 태감은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유능한 부하를 둘 수 있는 나는 참 행운아야. 어떻게, 뽀뽀라도 해서 치하해 주랴?”
그 선녀 같은 외모를 두고 아니오라 할 자는 많지 않으리라. 설령 남자라도 반해버리고 말 태감의 미소를 두고 소년은 웃었다.
“만약 하면 그날이 댁과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만 알아두쇼.”
아직 후려치지 못한 소년의 주먹에선 핏줄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