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56화
“하지만 침이라면,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른다.”
막힌 혈 자리라고 해도 직접 침으로 뚫어버린다면 어떨까. 수십 년간철을 다뤄오며 검과 창 같은 병장기 만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도검류보다 더 날카로워야 할 의술에 사용될 도구들, 그리고 날카롭고 가는 침 또한 그의 장기중하나였다.
순금으로 만들어 낸 금봉침(金鳳針), 날카롭기가 양피지 열장을 겹쳐놓고 찌르면 두부 박히듯이 박힌다는 천인침(穿璘針), 너무 얇아 두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우모침(牛毛針) 같은 의원들에게 전설처럼 회자하는 명침들을 만들어낸 그인 만큼 내로라하는 침술의 대가들과도 안면이 있었다.
“화산의 의선 자운 도사, 사천성 최고의 의원 조광, 상산명의 대중. 일단 당장 연락이 닿을 법한 사람은 이 셋이 있구나. 젊은 시절 내 이자들의 침을 벼려준 적이 있으니 내 부탁을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대단해 보이는 의원들의 이름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그중 몇 명은 이삼도 알 만큼의 걸물인지 이삼의 비명 같은 탄성이 들려왔다.
소년은 깊이 있는 눈동자로 그를 굽어보는 백윤을 향해 질문했다.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과한 호의를 베푸는 거 아니우?”
소년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확실히 소년과 백윤은 만난 지 얼마안 된 사이였고 그렇게 각별한 후의를 가질 만큼 깊은 사연을 나눈 사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백윤은 고개를 저었다.
“네 재주가 아까워 그런다. 몸만 조금 더 멀쩡했으면 네 재주가 크게 쓰일지도 모르니.”
“허허허, 이것 참…….”
소탈하기 그지없는 백윤의 호의에 더 이상 의심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지라 소년은 계면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참 고마운 말씀인데…….”
“고마우면 갚아라.”
툴툴거리며 소년에게 마음을 깊게 쓴 것이 드러난 것이 불편한지 괜스레 곰방대를 난폭한 손길로 털어내는 백윤의 모습을 보며 소년은 너털웃음을 짓던 입가에 씁쓰레한 미소가 번졌다.
좋은 분위기에 자기 스스로 찬물을 뒤집어씌우는 꼴이 스스로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말씀 참 고맙기 그지없소만, 애석하게도 그 제안은 거절할 수밖에 없수.”
소년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그것을 제안한 백윤이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이삼이었다.
기대에 가득 찬 눈동자로 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그는 태감의 호위무사라는 자리가 공으로 딴 것은 아니었는지 비호같은 몸놀림으로 뛰어올라 소년의 옷깃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왜요? 어째서요?!”
“어허, 얼굴이 가깝습니다.”
숨결이 간질거리는 거리까지 다가온 이삼을 밀어내며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나서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이번생도 헛살지는 않은 모양이다.
염치없는 소리기는 하지만 이 순진한 소년이라면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위해 울어주지 않을까.
순간 소년은 자신의 그 소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소망에 경직되었다.
남겨줄 것도 없이 오히려 짐만을 떠안기고 자기 혼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그 천박한 생각은 소년은 자신이 이렇게나 나약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늙어보니 젊은 시절처럼 다부지게 결심할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에서 광야를 떠돌다 객사한다 한들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하며 세상천지 무서운 것 없이 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약해진 탓인지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런 마음이 변질되어 명예욕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그 소망은 남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는가.
나이를 먹었으면 뭐 하나라도 더해줄 생각을 해야지. 짐만 떠안길 생각을 해서 되겠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충동을 억누른 소년은 이삼을 밀어내며 백윤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시겠지만, 후궁이라는 곳이 그렇수다. 멀쩡한 놈이 병신이 되면 신경 안 써도 병신이 멀쩡해지면 이목이 모이지.”
“허, 그럴듯한 이유구나.”
백윤은 씹어뱉어 내듯이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뱀이 뒤엉키는 것 같은 후궁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나름의 동정이 포함되어 있어 소년을 유쾌하게 했다.
소년은 내친김에 자신의 속내를 조금 더 털어놓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달밤에 청승맞게 술로만 삭이기에는 너무 격한 사연이었다.
“생각이나 되우? 전설 속의 신선과도 같은 재주를 가진 인간이 내가 어미 품에서 옹알이를 할 나이에 내 허리와 다리를 점혈했다는 거야. 염병할, 사람이 도대체 뭔 재주로 핏줄을 막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수. 근데 그런 재주를 가진 놈이 내 근처에서 날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괜한 모험을 해서 풀숲의 뱀을 건드릴 수는 없는 거 아니우.”
그의 말은 기이하게도 자신의 말을 하면서도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객관적인 연민과 분노를 담고 있어 이삼과 백윤을 혼란스럽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김승조였으니까. 나이 오십을 넘긴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중화 요리사 엮으니까.
그러니 오운이자 구덕인 소년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지언정 여전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현실감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여전히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고는 했다.
그렇게 한참 혼자서 열변을 토하고 맥이 빠졌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소년은 움직이지도 않는 주제에 뻐근한 왼 다리를 주물렀다.
“그러니 이 다리가 갑자기 펴진다면, 그 전설적인 신선인지 무공고수인지 뭔지 모를 양반이 이번엔 뭔일을 할지 모르지 않수?”
소년은 어렴풋하게 자신을 점혈한 사람이 누구인지 예상하였다.
아마도, 전 동창 제독이라는 문일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살벌했다는 대전 때 동창 제독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가 선황의 오른팔이라 불린 남자라면.
그 내로라 하는 장수들을 제치고 황궁 제일의 고수라 불린 자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곳 선황 폐하의 뜻이라는 소리였다.
그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도 아직까지 그 그늘을 다 걷어내지 못하셨다는 그분, 그분께서 지켜보고 계시는 거라면 도저히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선황 폐하. 그 이름을 말할 때면 어두워지는 태감의 표정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니 마음은 고맙수다.”
“허이구, 어쩔 수가 없구먼.”
“어쩔 도리가 없으니, 밥이나 먹을시다.”
어찌 못할 일을 고민해 봐야 뭐할까. 일단 배만 부르면 고민은 없어지는 법이다. 소년은 우중충한 얼굴로 고개를 떨군 둘을 보며 철과를 들어 올렸다.
소년의 태평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에 백윤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이놈아 넌 걱정도 안 되냐!”
“걱정해서 뭐합니까, 해결도 안 될것.”
“안 되면 해결이 되도록 궁리를 해봐야 할 것 아냐 이놈아!”
백윤은 자신의 옹졸한 수염을 푸들푸들 떨었다. 앙상한 노인네가 얼굴을 대추처럼 벌겋게 물들이는 꼴은 퍽 우스웠지만, 소년은 그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백윤의 손에는 어느새 손때를 먹어 반질반질한 쇠메가 들려 있었다.
“거 참, 어차피 궁리는 내가 안 해도 태감님이 알아서 할거요. 나보다 몇 배는 더 똑똑한 인간인데 어련히 알아서 할까?”
“이…… 이놈이…….”
대추처럼 벌건 얼굴에 핏줄이 솟기 시작하자 마음 착한 이삼은 행여나 화병에 백윤이 쓰러지기라도 할까 어쩔 줄 몰라 했다.
소년은 그 꼴이 퍽 우스웠던 고로 작게 코웃음 치며 철과에 기름을 둘렀다.
하여간, 자기 일처럼 생각해 주는건 좋다만 그러다 훅 가시겠소. 나이도 있는 양반이 화병을 조심해야지.
“이놈아 니가 화병을 부추기잖아!”
“아 거 밥에 침 들어가겠네.”
백윤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소년은 창밖을 내다보며 어느새 벌게지고 있는 하늘을 보았다.
이제 내일이면 십여 년간 떠난 적없는 황궁을 떠나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될 테니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여행에 흥미를 느끼고 가슴 설레하던 나이는 지났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고 돈이나 쓰게 되니 가급적 집에만 있는 것이 안전하고 좋겠지마는, 밖에서 뭘 먹고 돌아다닐 줄 알고 태감을 혼자 보내겠는가.
어느새 들어버린 정에 발목 잡힌 자신의 꼴이 우스워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일은 뭘 먹어야 하나…….
* * *
제식은 곧 전투력이다. 이 말을 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 할지라도 제국군의 질서정연한 모습에는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황궁의 앞. 황제 폐하를 호위하기 위해 선정된 자랑스러운 금군의 정예병들은 같은 제국인으로 하여금 무한한 자긍심과 긍지를 가지게 만드는 모습으로 도열해 있었다.
“하, 이거 대단하구만.”
그 모습을 창고로 사용되는 삼층전답의 창으로 내려다보며 소년은 그 완벽한 각과 삼엄한 군기, 도열한 장병들의 하늘을 찌를듯한 사기에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군인으로서 복무하며 수많은 열병식을 치렀고 국군뿐만 아니라 미군이나 중국, 소련의 열병식을 경험했는데도 이렇게나 훌륭한 군인들은 처음 본다고 찬사를 아끼지 못했다.
“대단하지. 일 년에 소모되는 세금이 얼마인데.”
위정과 장소, 이삼이 바쁘게 짐을 확인하는 등의 업무로 뛰어다니는 동안 태감은 다리가 불편하여 업무를 면제받은 소년과 함께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열병식을 구경하고 있었다.
태감은 예산에 관하여 빈정대는 사이에도 떡을 세 개나 먹어치워 소년으로 하여금 다른 의미로 탄성을 지르게 했다.
“아, 저길 봐라. 용의 아들께서 타실 난여가 있다.”
황제의 수레인 난여(鑾輿)는 그야말로 웅장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수레에 벽을 세우고 아치형의 지붕을 얹었는데 그 크기가 작은 집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었다.
그것을 스무 마리의 힘 좋은 말들이 끌었으니 황실의 위용은 감히 서민의 감각으로는 짐작지도 못할 정도였다.
“저것만큼은 아니지만, 우리가 탈수레도 좋은 것을 준비했다. 사두마차이니.”
“허어, 황실의 마차라니, 제 궁둥이가 호강하겠군요.”
“네 궁둥이만큼 내 입도 호강시켜다오.”
“예 예. 떡이라도 더 드시렵니까?”
소년이 떡을 더 내오는 동안 마침내 용포를 입고 관을 쓴 황제가 단상에 올라섰다.
성대한 환호성과 악단의 연주가 한 차례 이어지고 도열한 병사들은 놀라을 만큼 오차 없는 하나의 동작으로 창을 들어 바닥을 찍으며 경례를 올렸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커녕 이 시대의 사람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소년조차 절로 뭉클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저 속을 들여다보면 군대란것으로 보는 것만큼 유쾌하고 보기 좋은 곳이 아님을 알 수 있겠지만 그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군 생활을 하며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 소년은 저렇게 근엄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각자고 서 있는 저들의 고충이 이해가 되었다.
“물론, 저 친구들은 다 직업 군인이겠지만…….”
“그럼, 금군이면 군에서도 지위가 높은 편이다. 그러니 그 값을 해 줘야지.”
태감의 시선은 단상 위에서 대중을 향해 웅혼한 목소리로 연설을 하는 황제에게 향했다.
거리가 멀어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꼿꼿이 선 자세와 절로 배어나오는 품격은 과연 대제국의 지배자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용안을 올려다보며 연설을 들었다면 분명 없던 애국심도 끓어오르게 할 훌륭한 연설일 테지.
저 훌륭한 장병들을 보며 군중들과 함께 환호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세 군중심리에 휩쓸릴 것이다.
하지만 한 발짝 멀리서 떨어져 보면 저 광경도 결국 한편의 희극이었다.
더운 날 철 투구 눌러쓰고 각자고 서 있는 저 친구들은 얼마나 더울까.
그래도 용의 아들이라고 더운 여름에 얇게 입지도 못하고 용포를 껴입은 황제 폐하는 지금 얼마나 열불이 나실지.
여름에는 역시 까슬까슬한 삼베가 최고다. 아랫것들의 얼마 안 되는 행복을 느끼며 소년은 금방 쪄낸 떡에 따끈한 흑설탕 시럽과 콩가루를 끼얹었다.
“요즘 들어서 콩가루의 매력에 눈을 뜬 것 같아. 전에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거든.”
“그거 다행이군요. 콩가루는 여분을 챙겨두었으니 여정 중에도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떡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아닌가? 여행 중인데도 만들 수 있다고?”
“예 뭐 손이 많이 가는 떡이라면 힘들겠지만…… 힘쓸 사람이 많으니 약식으로 찰떡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저번에 만들었던 삼대포(三大炮) 정도는요.”
삼대포야 설탕과 콩가루, 그리고 떡을 내려칠 철과 하나면 만들 수 있으니 불가능할 것도 없다.
태감은 벌써부터 여정 중 먹을 음식을 생각하고 있는지 앵두처럼 빨간 입술에 침이 고여 있었다.
“아, 그리고 가는 중에 먹을 간식도 조금 준비해 놨습니다.”
“간식?”
“등영우육(燈影牛肉) 입니다.”
너무나도 얇아 등불마저 비쳐 보인다고 하는 소고기 육포.
얇고 매콤한 맛이 일품인 사천의 별미인데 등영우육이라는 우아한 이름은 당나라 시절 원진이라 하는 시인이 붙인 이름이었다.
원신은 높은 관직에 올라 있었는데 간신의 미움을 받아 벼슬길에서 쫓겨나 사천 지방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한다.
유배를 가던 도중 작은 가게에서 술을 한잔하게 되었는데 술안주로 나온 육포가 실로 훌륭한 것이었다.
그것은 불그스름하고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나는데 씹어보면 얼얼하니 매콤하고 짭짜름한 것이 실로 별미였다.
거기에 놀랍게도 젓가락으로 쇠고기를 집어 등불 앞에 대니 벽에 비친 그림자 속에서 얼기설기한 쇠고기 결이 보일 정도였다.
그러자 그는 당시 유행되던 그림자극 등영희(燈影戲)가 생각나서 쇠고기포에 등영우육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한다.
“이 등영우육은 그 명성만큼이나 만들기도 까다롭지요.”
만드느라 고생 좀 했다는 듯이 으스대며 소년은 턱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으며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그 모습이 우스운데도 한 수 접어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태감은 웃음을 삼키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어찌 만드느냐?”
“커흠…… 우선은 소고기에서 가장 좋은 등심만을 추려 기름을 모두 발라내고 순수한 살코기만을 남깁니다. 이를 칼 기술을 한껏 발휘하여 얄팍하게 저며낸 다음 정향초를 비롯한 비법의 향신료로 절여 대나무발 위에 펼쳐 햇볕에 말리지요. 잘말랐으면 이것을 화덕에 구운 다음 참기름과 산초가루를 뿌려 밀봉하면 됩니다.”
“그것 참 말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감도는구나.”
“그리고 그것들을 추려 만든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소년은 종이를 접어 만든 작은 봉투를 꺼내었다.
아직도 목간을 쓰는 시대에 값비싼 종이로 만든 것이 고작 간식 봉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봉투 위에 굵은 붓을 써 용사비등한 필체로 적어낸 간식이라는 두 글자는 마치 어린 날 선물을 받는 것처럼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견과류와 건과일, 그리고 육포를 배합한 봉투입니다. 견과류만 먹으면 너무 느끼하여 물리고, 건과일만 먹으면 너무 달아 물리고, 육포만 먹으면 너무 짜고 매워 물리지요. 그러니 그 세 가지 맛을 하나로 맞물리게 해 완벽한 맛의 삼각관계를 만들어낸 겁니다!”
“더 이상 못 참겠다! 당장 먹어야겠어!”
“안 됩니다! 여정을 면밀하게 계산해서 수량을 맞춰둔 건데!!”
소년의 만류를 무시하고 태감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소년이 서둘러 회수하려 했지만 허리가 굽고 왜소한 소년은 훤칠한 태감이 봉투를 집어 들자 감히 빼앗을 수 없었다.
이걸 그냥 태클이라도 걸어버려?
마운트 포지션으로 쥐어 패버리고싶다.
소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감은 주저 없이 봉투입구를 주욱찢어 내용물을 꺼내 들었다.
얄팍한 소고기 육포와 호두, 아몬드, 개암나무 열매와 건포도, 건살구등이 손바닥에 놓이자 태감은 본능적으로 육감적인 붉은 빛 선명한 육포를 집어 들었다.
쫄깃하고 마른듯한 식감 안쪽으로 겹겹이 쌓인 향신료의 향, 그 풍성한 자극이 입안을 난잡하게 할퀴고 지나가면 그 안쪽에 견과류를 던져넣어 고소한 풍미와 부드러움으로 입안을 살포시 감싸 안는다.
거기에 달콤한 건포도가 들어가니 달콤한 활기는 입안에 짜릿한 자극제가 되어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완벽하게 계산된 맛의 함정이야! 끝없는 선순환 구조를 그리며 입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군! 그야말로 황금 장방형의 맛이다!”
“칭찬은 고맙지만 두 번째 봉투는 손에서 놓으시죠.”
“한 봉지만 더 먹으면 안 되겠나?”
“더 먹겠다면 차라리 날 죽이십시오.”
소년의 결사반대로 태감은 봉투를 내려놓았지만 아쉬운 눈초리는 떠날줄을 몰랐다. 그 모습이 한심했는지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제 곧 떠나기만 하면 마차 타고 온종일 먹을 수 있을 텐데 그 새를 못 참으십니까?”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이지. 나는 매 순간에 충실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태감의 훌륭한 철학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소년은 끗꿋이 자신의 간식 봉투를 지켜내었다.
머지않아 여행이 시작될 터인데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간식을 다 먹어버리면 여행 도중에는 어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