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55화 (55/314)
  • 환관의 요리사 55화

    “이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망가뜨린 것이야…….”

    비통에 찬 사내의 한탄이 허공에서 느리게 흘러내렸다. 그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풍부한 성량이 뿜어낸 절규는 대단한 것이었다.

    가게 안의 다른 손님들이 뜸을 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등이 데일 위험을 감수하고 몸을 일으킬 만큼.

    오직 당사자인 소년만이 느긋한 태도로 대나무 돗자리 위에 엎드려 안마의 여운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양아, 이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망가뜨린 거다, 삐나 근육은 아무 이상이 없어. 전설에나 나올 법한 달인이 기와 혈을 막아버린 거야. 어찌 이만한 솜씨의 달인이 이토록 참혹한 일을,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인륜을 저버렸단 말인가?”

    막힌 혈을 되짚어가며 주윤은 점점 더 끔찍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자신이 감시 범접할 수조차 없는 달인의 솜씨는 그야말로 감탄사가 나을 만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이만한 기술을 가진 자가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라도 오체투지하여 그기술을 전수해 달라 애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도로 대단한 기술을 가진 이가 어찌 이리도 잔학무도한 수를 두었는지 주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고로 기술은 비인부전에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이라 하였다. 사람됨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 벼슬이나 재능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재주가 그릇된 자에게 전수되어 세상에 큰 해를 끼칠 것을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 이런 기술을 가진 자가 이리도 모질고 사악하단 말인가, 사람을 살리는데에 재주를 쓰면 능히 천명의 사람을 이롭게 할 기술을 가진 자인데…….”

    주윤 역시 비록 지금은 이렇게 골목의 구석진 곳에서 다 쓰러져가는 시술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때는 알아주는 세도가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이름난 달인이었다.

    비록 젊은 날의 실수로 이렇게 뒷세계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제국에 모르는 이가 없는 고명한 추나요법의 명인인 백운사의 방장 유운 거사에게 사사하여 업계에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했던 그는 그 솜씨만큼이나 보는 눈도 뛰어나 어지간한 의원 나부랭이보다도 정확하다고 스스로 자부할 정도였다.

    과연 이렇게 긴 시간 사람의 혈을 점하여 봉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은 자신의 스승이자 제국제일의 명인이라 불리는 유운거사를 모신다 한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평생 다리를 절어왔다는 소년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십 년 이상을 점혈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주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신선의 일이다.

    “피란 흐르는 것이지, 강물처럼 말이다. 그것을 억지로 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런데 이렇게 치명적인 사혈을 점하고도 목숨을 붙여놓다니…….”

    침통한 표정으로 주윤이 손을 떼자 소년이 옷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잠깐 마사지를 받은 것 같은데 금세 피로가 날아가 몸이 가벼웠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소년의 태도에 오히려 주윤이 황당해할 정도였다.

    “괜찮으냐?”

    “예? 아, 아주 좋습니다. 역시 명인이시라더니.”

    “아니 그거 말고. 내가 한 말…….”

    “아아, 신경 안 씁니다.”

    어차피 인생 한번 살다 가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자신은 어차피 덤으로 사는 생이었다.

    어차피 목이 잘려 죽으나 피가 막혀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 오히려 피가 막혀 죽는 편이 시체가 온전하니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소년은 무덤덤하게 우스갯소리를하여 주윤을 놀라게 했다.

    어찌 이토록 어린아이가 이만한 배포와 담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목숨을 초개(草許)처럼 내놓을 수 있는 기개!

    거기에 양이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 까다로운 미식가 양 태감의 혀를 완전히 사로잡았을 만큼 뛰어난 요리 실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할 만한 기라성 같은 인재가 아닌가.

    어찌 하늘은 이런 인재에게 감당키 버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셨단 말인가.

    사람의 것이 아닌 것만 기술 앞에 그는 한없이 작고 무력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인재가 빛나는 것을 보고 싶은 어른으로서 다해야 할 책무를 느낀 주윤의 눈동자는 거세게 불타올랐다.

    “다시 누워보아라.”

    “예?”

    “내 미력한 솜씨로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불편한 몸으로 살며 쌓인 피로와 독기를 해소해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리에 눕거라.”

    “이것 참 너무 신세 지는 것 같아서 죄송한데요.”

    소년이 다시 엎드리자 주윤이 솥뚜껑 같은 두툼한 손으로 소년의 얄팍한 등을 짚었다.

    머지않아 그의 얼굴에 다시 땀이 솟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식은 땀이 아닌, 사력을 다할 때 몸 안쪽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뜨거운 열정의 땀이었다.

    * * *

    개운하구먼.”

    “정말 잘하시죠?”

    “예. 거기에 자주 와서 받으라 하시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려.”

    소년의 너스레에 이삼은 빙그레 웃으며 소년과 발맞추어 걸었다.

    “아저씨도 오운 님이 요리를 해주셔서 크게 기뻐하셨어요. 원체 맛있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

    “그거 다행이군요.”

    그 퉁퉁하게 붙은 벳살이 다 자신의 인덕이 쌓인 결과라며 호탕하게 웃는 주윤의 모습이 다시 생각나 소년은 피식 웃음 지었다.

    참 복스럽게 먹는 것이 보기 좋은 사람이었다. 한결 몸이 가벼우니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도 나름 흥이 났다.

    그렇게 요리를 할 재료를 몇 가지 골라 철방으로 들어서자 이미 작업을 마무리한 것인지 백윤은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소년을 보자마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연기를 토해낸 백윤이 턱짓으로 모루 위에 올려둔 칼을 가리켰다.

    칼을 보자 소년은 한걸음에 달려가 칼을 쥐었다.

    “허어, 이게 오철로 만든 칼인가.”

    손아귀에 딱 맞게 홈이 파인 물푸레나무 칼자루는 손에 착 감겨 부드러웠다.

    그 위로 웅장한 직사각형의 칼날은 마치 비 맞은 까마귀 날개처럼 윤기 흐르는 검은색이었다.

    전체적으로 들었을 때 가볍고 손목에 부담이 없었지만 장엄하게 흐르는 칼의 예기는 서릿발처럼 냉엄해 대번에 피를 머금을 듯 섬뜩했다.

    소년의 얼굴을 보며 백윤은 옹졸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죽거렸다.

    “어떠냐 이놈아. 끝내주지?”

    “뭐, 쓸만은 하군.”

    “뭐? 쓸만해? 이 호래자식이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염병할 노인네가 바라는 게 많아! 돈이나 가져가쇼!”

    소년이 이삼에게 손짓하여 건네받은 돈주머니를 받아들자 이번엔 백윤이 크게 놀랐다.

    주머니의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만한 양을 전부 은전으로 준비한 것일까?

    만약 철전을 섞어 어른을 놀린 거라면 단매에 때려죽이리라 이를 갈며 주머니를 연 백윤은 그 내용물을 보고 주머니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싯누렇게 번쩍거리는 것은 금과 청아한 은이 주머니 안쪽에서 번쩍거리고 있었다.

    “너……?”

    “뭘 보쇼. 남은 잔금이랑, 다음 일 맡길 계약금이오.”

    “허, 계약금 한번 세게도 치른다. 뭘 주문할 테냐?”

    “철과도 하나 좋은 거 필요하고, 도삭면을 칠 칼도 하나 필요하고. 화덕에 넣고 구울 때 모양 잡을 틀도 여러가지 필요하고.”

    “염병할 놈. 제값을 다 받아가겠다 이거 구만.”

    백윤이 툴툴대며 주머니를 챙기는 동안 소년은 주방으로가 오늘 사온 재료들을 끌러놓았다.

    단단한 두부에 표고와 파, 죽순과 화퇴 약간, 그리고 미리 가져온 삶은 닭고기와 청탕(淸湯) 등등.

    뭐하나 특별한 것 없는 재료들이었다.

    “자, 마침 칼도 손에 들어왔느니 칼솜씨를 선보일 요리가 좋겠지.”

    “네,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하실 건가요?”

    “흐흐, 보고 계십쇼.”

    소년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칼을 번득이자 이삼이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몇 번이나 보고 익숙해진 얼굴이었지만 요리에 집중할 때의 소년의 얼굴에는 아수라가 깃들어 있었다.

    번뜩이는 눈과 번들거리는 매부리코 아래로 얄팍한 입술이 가늘게 길게 찢어진 것을 보면 오금이 다 저려 올 지경이었다.

    이삼이 질겁하든 말든 관심도 없는 듯 소년은 손에 든 칼에게만 관심을 두었다. 전생에 쇠 맛이 남지 않는 다는 세라믹 식칼부터 티타늄 식칼, 심지어는 예리하기로는 견줄 것이 없다는 흑요석을 갈아 만든 칼도 써본 소년이었지만 이런 칼은 쥐어본 적 없었다.

    손에 착 감기는 그 감촉은 어디까지나 함께 갈 수 있을 것만 같아소년을 설레게 했다.

    이렇게 순박한 설레임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얼마 만일까?

    그런 소년의 손에서 칼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오채간사(五彩干絲).

    단단한 두부를 옆으로 뉘여 1.5mm 두께로 얇게 썰어준다. 이것이 기본 레시피였으나 소년은 그보다 더 얇은 1mm 두께로 포를 떠냈다.

    아니, 이보다 더 얇게도 가능할까?

    더 얇게?

    손목에 부드럽게 힘이 들어갔다.

    칼날이 부드럽게 두부 속을 파고든다. 얇지만 손안에 확실한 감촉이 남았다.

    정신을 집중해 칼을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포를 떠내자 두부가 어찌나 얇은지 그 아래로 검은 칼날이 비쳐 보일 정도였다.

    “세상에, 두부가 이렇게나!”

    “이 녀석…….”

    이삼의 탄성과 백윤의 감탄이 소년의 어깨에 힘을 실었다.

    비쳐 보일 만큼 얇게 떠낸 두부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채를 씰어 냈는데 그 한 가닥이 어찌나 얇은지 눈에 잘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중 한 가닥을 집어 든 백윤이 눈앞에 그것을 가까이 대며 그 두께를 확인했다.

    “문사두부라는 두부 요리가 있지. 문사라는 스님이 창안한 요리로 연두부를 실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 끓이는 탕인데 칼로 할 수 있는 기예의 최고봉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많은 요리사가 도전하는 요리야. 달인은 연두부를 실처럼 가늘게 썰어 탕에 풀어내는데 그 촉감이 비단을 마시는 것 같다.”

    눈앞에서 두부실 한 가닥을 비춰보이던 백윤이 그 실을 입에 넣었다.

    “연두부는 아니야, 단단한 두부를 사용해 이렇게나 얇고 가는데도 탄력이 있어. 그리고 이 가늘기는……. 젊은 시절 먹었던 문사두부의 두부실과 대등, 아니, 그 이상이다.”

    “쯧, 이거 너무 과욕을 부렸군. 원래 이렇게까지 가늘게 써는 요리가 아닌데. 흥이 올라서…….”

    나잇값도 못하고 흥이 올라 기예를 선보인 것이 부끄럽다는 듯이 소년이 우물쭈물하자 백윤이 고개를 들어 소년을 응시했다.

    왜소한 체격이 꼭 비루먹은 개만도 못한 것이, 하지만 그 솜씨는 틀림없는 달인의 것이었다. 그 날카로운 솜씨는 자신이 벼려낸 칼에 견줄 만했다.

    그렇기에 백윤은 그 실처럼 가는 두부로 만든 오채간사가 꼭 먹고 싶어졌다.

    “아니, 꼭 이 두부로 만든 오채간사를 해다오.”

    “쯧, 이렇게 가늘게 썰면 조릴 때 가닥가닥 끊어지는데……. 뭐, 한번해볼까.”

    본래 문사두부는 행여나 두부 가닥이 상할라 절대로 펄펄 끓이지 않는것이 원칙이다.

    비록 연두부도다 단단한 두부를 사용했다 하나 뜨겁게 육수를 졸여내야 하는 오채간사를 두부 가닥이 끊어지지 않고 만들어냈다면 소년의 솜씨가 명인의 경지에 이르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장인에게는 나이도 경력도 중요하지 않다. 장인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실력뿐이다.

    소년의 솜씨가 진정 자신과 견줄만 하다면, 저 건방진 태도도 이해하지 못할 것 없지. 백윤의 미소를 뒤로하고 소년은 바쁘게 칼을 놀렸다.

    물에 불려 물기를 제거한 표고와 청파, 데친 죽순과 데쳐 소금기를 뺀 화퇴, 삶은 닭고기는 가늘게 채친다. 육류는 결을 따라 썰어준다.

    두부는 따뜻한 물에 담가준다. 물을 두세 번 갈아주며 물이 하얗게 탁해지지 않으면 채에 건져 물기를 빼준다.

    철과에 기름 두세 큰술을 넣어 달구고 궁에서 가져온 질 좋은 청탕두컵을 넣고 거기에 두부를 넣은 다음 불을 살짝 줄여 삼사 분을 끓여주며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낸다.

    소년은 국물이 졸아들도록 약불에서 졸이며 철과를 부드럽고 신중하게 움직여 국자를 사용하지 않고 내용물이 완만하게 섞이도록 했다.

    고기, 채소류를 넣어 국물에 졸아들 때쯤 기름 약간과 청탕을 보충하고 소금간을 연하게 하여 한동안 더끓여 간이 배게 한다.

    국물과 함께 수북하게 담아내자 백윤이 자신의 쇠젓가락을 들고 와 요리 앞에 섰다.

    “정말 가늘고 부드러워 보이는군.”

    “식기 전에 드슈.”

    “오냐, 알았다.”

    백윤은 젓가락을 쓰려 했지만 재료가 너무 가늘어 끊어질 것만 같아젓가락 대신 수저를 들어 퍼 올렸다.

    가늘고 우아한 두부실은 희고 곱기가 비단 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찌 이 고상한 백색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묵직한 무게감, 이 부드러운 윤기.

    “마치 대리석을 실로 짜낸 것만 같구나. 천 년의 시간을 견디어도 흠이 없다는 상산의 천 년 암과도 같은 묵직한 맛, 하지만 연한 간은 순하고 부드러워 피로에 지친 몸에 달큼하게 스며드는군.”

    나른하게 가라앉은 듯한 백윤의 설명에 소년이 코웃음 쳤다.

    “노인네가 생각보다 감성적인데다가 어휘력도 참 풍부하시군.”

    “이 쌍놈 자식, 넌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난 지금도 마음에 안 들어 이 노인네야!”

    둘의 불똥 튀는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조금 전 서로를 인정하는 듯한 온화하고 상냥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것은 유치하고 추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들의 신경전이었다.

    “이 염병할 놈아 칼 내놔!”

    “노인네야말로 처먹은 밥 도로 돌려내!”

    “이미 처먹은 걸어쩌란 거냐, 토해서 돌려주랴? 어?”

    “뭘 토해 배 째서 꺼낼 테니까 거기 누워 노인네야!”

    결국 그 둘은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였다. 한참을 팽팽하게 맞부딪히는 둘 사이에서 이삼만이 조용히 오채간사를 입에 물고 오물거렸다.

    “염병할 노인네, 칼은 무슨 칼이야 관짝에 박을 못이나 만드시지!”

    “쥐꼬리만 한 어린놈이 반 토막 난 헛바닥이 늘어날 때까지 늘씬하게 두들겨 패주랴?”

    그렇게 유치하고 추한 말다툼은 한 참을 더 이어졌다. 결국 승자 없는 서로가 쓰디쓴 패자일 뿐이었다는것을 깨달았는지 둘 사이에는 말 없는 침묵이 흘렀다.

    먼저 그 침묵을 깬 것은 그래도 연장자인 백윤이었다.

    “염병할 놈, 주가 놈한테 몸은 보여 줬냐?”

    넌지시 짚어보는 듯한 백윤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들어 묘하다는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

    어찌 알았냐는 듯한 말 없는 물음에 백윤이 불 꺼진 곰방대에 새롭게 불을 대며 말했다.

    “이 근방에서 추나요법이라면 그놈이 제일이지. 양지건 음지건 통틀어서. 그놈이 살찐 손만큼이나 솜씨도 신통해서 나도 가끔 신세를 지는데, 오늘 칼을 만들어놓고 허리나 좀 봐달라 할 겸 가는 길에 네가 누워있는 걸 보았다.”

    담배를 뻐끔대며 소년을 굽어보는 백윤의 눈동자에는 젊은이를 염려하는 노인의 서글픔이 담겨 있어 소년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이 염병할 노인네가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정을 붙이고 지랄이야?

    속으로 그렇게 역정을 내면서도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자신도 사람인지라, 어느새 저 옹졸한 노인네에게 불쑥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그 한마디, 그 눈동자에 심금이 녹아내릴 것처럼 아찔해지는 것을 보면.

    결국 정은 정으로 통하는 법이었다.

    소년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찔거리는 동안 백윤은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기다렸다.

    “아무래도 병신도 완전 병신은 아니라 더이다. 뼈가 부러져서 작살난 게 아니라 어느 고명하신 양반이 혈 자리를 점해 병신으로 만들어 놨다는데 그에 뭔 말인지…….”

    “허어, 그거 네 말대로 말도 안 되는 말이구나. 그 주가 놈 스승이신 북악 형산의 백운사 방장 유운 거사께서도 그런 일은 못하실 거다.”

    참, 나 점혈이라니, 저잣거리 소설도 아니고……

    황당하기는 백윤만큼이나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점혈이라니, 이거 원어디 가서 절대 고수라도 한 명 찾아봐야 하나?

    “추나로 안 된다면 약으로도 힘들겠군. 아니, 애초에 후궁에 있는 네가 약을 못 쓸리가 없지. 황궁만큼 약재가 자유로이 드나드는 곳도 없으니…….”

    “뭐, 별수 있겠수? 애초에 어릴 때부터 이 모양으로 살아서 특별히 불편한 것도 모르겠고, 이젠. 다 생긴대로 살아야지.”

    소년의 우스갯소리처럼 뱉은 말에도 백윤은 반응하지 않았다.

    깊은 고심에 잠긴 듯 이따금 곰방대를 물고 깊이 있게 연기만을 빨아들일 뿐.

    긴 시간 아무 반응이 없어 소년은 혹시 이 노인네가 눈 뜨고 자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할 정도였다.

    “후……”

    한참 동안 말없이 연기만을 빨아들이던 백윤이 단번에 연기를 토해내자 마치 용이 구름을 뿜어내는 듯 대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와 소년을 놀라게 했다.

    “노인네 폐활량 끝내주는구먼, 대장장이 맞수? 사실 잠수부인 거 아뇨?”

    “잠수부는 개뿔이, 난 수영 못한다 이놈아.”

    소년이 담배 연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여는 동안 다 탄 담배를 곰방대에서 털어낸 백윤이 소년을 보며 말했다.

    “추나로도 안 되고 약으로도 힘들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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