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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54화 (54/314)

환관의 요리사 54화

구름이 높고 쾌청한 날. 연좌궁의 한켠에서 소년은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베이컨으로 만들어깨살과 삼겹살, 돼지와 양의 창자에 채워 넣을 다진 고기를 만드는 등 힘이 드는 일인지라 옆에서 장소와 이삼이 소년을 거들고 있었다.

“좋은 고긴데 아깝네, 오돌뼈를 다 발라내 버려서.”

정식 명칭은 늑연골. 일명 오돌뼈는 한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부위로 소년으로서는 오돌뼈를 발라내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게 느껴졌다.

“뭐, 이것도 먹을 거지만.”

“어? 이것도 먹어요?”

한쪽에서 열심히 고기를 다지고 있던 장소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며 물어왔다.

“예, 먹죠. 이것도. 얇게 썰어서 맵게 무쳐서 구워 먹으면 맛있어요.”

일명 오돌뼈 볶음인 셈이다. 물론 한국에서 소비되는 오돌뼈의 대부분은 진짜 오돌뼈가 아니라 돼지의 귀지만, 사실 돼지 한 마리에서 오돌뼈가 얼마나 나온다고 그것만 떼서 팔겠는가.

소년은 고기를 다듬으며 나온 자투리고기, 현장에선 기레빠시라고 하는 부분들을 추려두었다.

“이따 이거 꼬치에 꿰서 구워 먹죠. 보기는 좀 그래도 맛있어요.”

“와, 그럼 불 좀 피워놓을까요?”

“예. 아 그리고 주방에 가면 꼬치용 석쇠 있거든요? 그거 좀 가져다줄래요?”

장소가 서둘러 손을 털고 주방으로 달려가는 동안 이삼에게 대나무 꼬지를 부탁한 소년은 고기에 양념을쳤다.

소금과 후추에 매콤한 고춧가루, 산초가루, 백리향에 마늘가루와 생강가루 약간씩, 한국에는 쯔란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자연(孜然) 가루, 향채 가루 등등 소시지를 양념하기 위해 준비해 둔 향신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슥슥 넣는데 그 동작이 막힘이 없었다.

뭐 막힐 게 있겠나. 수십 년을 해온 것인데. 손에 잡히는 대로 넣는것 같아도 이미 손에 익은 무게감으로 감각적인 계량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여기 꼬치 가져왔어요!”

“어이구 많이도 가져오셨네. 일단 소독 한번 하고…….”

이삼이 가져온 꼬치를 끓는 물에 삶아 한번 소독한 다음 양념해 둔 고기들을 끼우자 제법 그럴듯했다.

야외에서 꿈지럭거리기 좋은 날.

여름임에도 비교적 북방에 위치한 경사는 아직 무더운 더위가 밀려오지 않아 비교적 선선한 날씨였다.

장소가 꼬치를 올릴 석쇠를 가져오고 이삼이 숯을 가져다 은근한 불을 피우자 소년이 줄줄이 고기를 꿴 꼬치를 올렸다.

“좀 쉬면서 합시다.”

소년이 불 앞에 걸터앉아 꼬챙이를 늘어놓자 이삼과 장소도 쪼르륵 달려와 불 앞에 모여앉았다.

뜨거운 숯불 위에서 뜨거운 기름은 향신료를 머금고 떨어져 숯불 위에서 화르륵 소리를 낸다.

소년은 행여나 그을음이 묻올라 조심스럽게 꼬치를 다루었다. 맵싸한 향신료의 향기가 기름을 타고 흘러나와 코점막을 스치고 지나간다.

맥주 한잔이 간절해지는 시간, 애석하게도 살얼음이 얼 정도로 차가운 맥주는 커녕 찬물 한잔 구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은 늘 소년에게 절망을 안겨줄 뿐이었다.

두개골을 울릴 만큼 차가운 술 한 모금은 아니었지만, 때아닌 숯불 꼬치구이에 흥이 올랐는지 이삼의 시원한 미성이 숯불 연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박자를 맞추는 것은 조리대용으로 가져온 식탁을 두드리는 장소의 젓가락 장단.

둘은 한두 번호흡을 맞춘 것이 아닌지 장소의 박자와 이삼의 목소리가 딱 떨어졌다.

“나쁘지 않은데.”

온통 담장에 둘러싸인 궁 안인데도 어쩐지 탁 트인 곳으로 놀러 나온듯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진 것은 몸이 젊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젊은 활기가 기껍게 느껴질 만큼 늙어버렸기 때문일까. 이삼의 청아한 미성은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청명한 하늘, 우아한 노래와 부드러운 박자. 피어오르는 매콤한 연기.

모든 게 완벽했던 시간은 의문의 방해꾼을 만나 끝나고 말았다.

“오, 맛있는 거 먹고 있구나.”

“아 거. 방금 점심 먹고 저희 기레빠시 남은 거 좀 먹겠다는데 그것도 뺏어 잡수시려고요?”

“기레빠시는 또 뭐냐? 아무튼, 고기 추가 반출 해줄 테니까 내 것도 좀 다오.”

넉살 좋게 이삼과 장소 사이에 끼어들어 엉덩이를 걸친 태감은 흥미롭다는 듯이 석쇠 위를 관찰했다.

그래도 상관인지라 무시할 수 없었던 소년은 가장 잘 익은 꼬치 두어개를 추려 태감에게 내밀었다.

“자투리 고기 추린 거라 보기는 좀 그래도 먹을 만은 합니다.”

불그스름한 향신료가 묻은 고기는 뜨거운 기름이 뚝뚝 떨어져 보기만 해도 술 한잔을 간절하게 했다.

하지만 태감은 그 뜨거운 고기를 베어 물며 술 대신 다른 것을 찾았다.

“하얀 쌀밥 먹고 싶다…….”

입가에 칠칠치 못하게 흐르는 기름마저도 고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마성에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에 고봉밥 네 그릇을 먹어치우고 후식으로 찹쌀떡 다섯 개를 먹어치운 사람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소화가 빠른 것 아닌가?

소년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게눈 감추듯이 줄어드는 고기에 비명을 지르며 꼬치에 고기를 끼워 석쇠에 올렸다.

“가끔은 이렇게 밖에서 먹는 것도 괜찮구나.”

“많이 드십시오. 날 더 더워지면 못하니까.”

“그래도 날이 가장 더울 무렵에는 경사를 떠나 있으니 다행이구나.”

“그쪽은 더 시원한가 봅니다.”

“시원하지. 경사보다 더 북쪽이니.”

태감의 두 눈은 저 먼 북방의 평원과 장대한 산맥을 그리고 있었지만 입은 쉴 새 없이 꼬치를 빼물고 있었다.

원체 잘 먹는 태감에 성장기 소년둘이 붙으니 고기가 굽는 족족 사라져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말없이 훈제하려고 빼둔 고기를 집어두툼하게 썰었다. 얄팍한 자투리 고기로는 저들의 식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엄지 한마디쯤 되는 두께의 고기들이 향신료 양념을 입고 불 위에 걸리자 송골송골 떨어지는 기름과 함께 태감의 침도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고기를 먹고 배가 불러 항복한 장소와 이삼이 만복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늘에 몸을 누이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한결느긋해진 소년에게 태감이 말문을 열었다.

“후궁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뜬금없이 서열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소년의 말에 태감이 짓궂은 미소를 띄웠다. 그 기이한 미소에 소년은 또 다시 자신에게 일감이 들어왔을 음 직감했다.

“결국 후궁에서 비들의 서열을 결정하는 것은 폐하와 시침(時寢)하는 순서다. 칠성제를 기리는 연회가 끝난 후, 가장 먼저 폐하의 침소에 드는 여인이 후궁의 권력 순위 1위인 셈이지.”

잠시 뜸을 들이고 입가에 흐르는 기름을 닦은 태감이 뜸을 들이며 소년을 기다리게 하자 소년은 그를 재족하는 대신 꼬치 하나를 더 쥐여주었다.

손에 든 꼬치를 물어뜯으며 태감이 입을 열었다

“그 1순위이신 홍엽비께서 네 요리를 청하셨다. 기간은 칠성제에서 폐하가 환궁하신 이후 연회 기간인 삼일간. 목적은 몸의 기를 돋구고 양기를 채워줄 약선요리. 가능하겠느냐?”

“삼일이면 요리가 아니라 약을 써도 효험보기가 쉽지 않은 시간이지요. 뭐, 홍엽비 님이시면 아마 건강보다는 순전히 제 요리를 드시고 싶으셔서일 테니 상관은 없을 겁니다.”

이제 슬슬 황궁의 담백한 식사가 물리기 시작했으리라. 맵지 않은 요리는 쳐다보지 않는다는 호남 출신인 홍엽비에겐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태감은 사천과 호남의 매운맛의 차이를 물어 소년을 고민에 잠기게 했다.

그 둘은 비슷하나 차이가 없지는 않았다.

“호남과 사천의 차이란 역시 주된 매운맛은 고추에 두느냐, 산초에 두느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추와 산초의 차이라.”

“물론 두지방 다 고추와 산초를 함께 사용하지요. 하지만 호남지방에선 고추를 주로 사용하고 산초는 향을 내는 정도로 그친다면 반대로 사천에선 산초를 매운맛의 주재료로 삼고 고추는 향과 색을 내는 정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천의 매운맛을 마(麻)와 랄(辣) 이라 표현한다면 호남의 매운맛은 신(辛)으로 표현하지요.

아, 그리고 호남은 매운맛과 동시에 신맛 또한 두드려지는 편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그렇다면…….”

태감이 말을 잇기도 전에 소년이 태감의 말허리를 끊고 들어왔다.

“다만 애석하게도 타지 사람들은 사천과 호남의 매운맛만을 높이 사맵지 않은 음식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사천과 호남의 매운맛에만 정신이 팔려 그 진정한 풍미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통탄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번엔 태감이 소년의 말을 이어받았다.

“좋다. 오늘은 호남과 사천의 진정한 풍미를 맛보도록 하자. 과연 이름난 매운맛에 견줄 수 있는지 기대되는구나.”

태감의 호기로운 미소에 소년도 따라 도전의 욕구를 다졌다. 저 오만한 표정은 소년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젊은 시절의 패기와 활기를 솟구치게 했다.

서로 간에 동의는 없었지만 때때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이 경합은 우중충한 후궁 생활에서 태감과 소년의 소중한 자극제였다.

저녁에 한판 붙으려면 꼬치는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겠지. 배가 너무부르면 혀도 둔해질 테니.

소년은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다 익은 꼬치 중 하나를 자신의 입에 물고 나머지는 전부 태감의 앞에 몰아준 다음 석쇠 아래에서 타고 있는 숯에 모래를 부어 불을 꺼뜨렸다.

불이 꺼진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신 태감은 남은 꼬치를 입에 넣었다.

“홍엽비께서는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어온 소년의 질문에 고기를 꼬치에서 빼던 태감이 대답했다.

“아아, 원래 맨 처음 폐하의 침소에 시침하는 비는 연회에 참석하는 대신 몸을 정양하며 대비하는 것이 후궁의 관례니까.”

소년은 대면했던 황제의 용안을 떠올렸다. 인자한 미장부도 밤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짧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과연,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대단하시고 말고. 용의 피를 이으신 분 아니냐.”

과연, 용의 피에는 노화가 느리고 질병에 강한 것뿐만 아니라 절륜한 힘마저 따라온단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소년은 홍엽비의 상에 올릴 음식을 가급적이면 보양에 좋은 것으로 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선은 칠성제를 마무리 짓고 난 후의 일이겠군요.”

“뭐, 여정이 길어 고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황실의 행사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테니 안심하거라.”

“예, 아무렴요.”

산에서 심심치 않게 산적이 나오고 호랑이가 나와 호환을 당하는 것이 농담이 아닌 세계에서 여행이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최소한 황실의 행사에 끼어들 간큰 도적은 없을 테니 그들의 여행길 걱정이라고 해봐야 비포장도로와서 스펜션 따윈 찾아볼 수 없을 마차에 혹사당할 엉덩이 정도일 것이다.

“방석이라도 하나 챙겨두는 게 좋을까요?”

순진한 소년의 말에 이미 수차례 경험하며 통달한 태감은 쓴웃음을 지으며 만류했다.

“챙겨봐야 번거로울 뿐이다. 어차피 방석이 있으나 없으나 흔들리는건 똑같으니.”

“그렇게 흔들리면 잠도 못 자겠군요.”

“자다가 떨어져서 목이 부러질 것을 각오할 수 있다면야.”

태감의 살벌한 말에 소년은 멀미의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졌다는 사실에 암담함을 느꼈다.

* * *

다시 찾은 수상한 골목길을 오늘은 이삼과 함께 왔다. 손에는 달콤한 빙당호로를 하나씩 들자 사뭇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받을 수 있었다.

시큼한 산자 열매가 썩 맛있지는 않았지만, 활짝 웃으며 맛있게 먹는 이삼의 얼굴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돈을 값어치가 있었다.

역시 애들은 잘 먹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

“아, 여기 안쪽으로 가면 거기에요.”

“여기 아편굴 아니에요? 연기가 영 수상한데…….”

이삼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유난히 수상한 가느다란 연기가 뭉게둥게 피어오르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다 쓰러질 것만 같은 지붕에는 반쯤 무너져 내릴듯한 기와가 걸쳐져있었고 처마 아래로는 저것이 과연 합법적인 것일지 의심스러운 약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신비로움을 부각한다기보다는 미심쩍은 느낌을 주었다.

소년이 발걸음을 옮기길 꺼리자 이삼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에이, 뜸 뜨느라 연기가 나서 그런 거예요.”

“뜸 뜰 때 연기가 이렇게 나나?”

오늘은 백윤의 철방에 칼을 찾으러온 김에 이삼이 입궁하기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추나(推拿)요법의 달인에게 추나 시술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혹여나 굽은 허리나 다리가 펴지진 않을지라도 최소한 몸은 좀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는 이삼의 배려에 소년도 군말 없이 따라온 것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건물의 외관은 소년의 마음속에서 이삼에 대한 신뢰도를 흔들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보기와는 다르게 넓은 내부에는 기이한 약 향이 나는 수증기가 마치 안개처럼 자욱했다.

그 아래론 드러누운 사람들이 쑥인지 무엇인지 모를 뜸을 어깨나 허리같은 곳에 붙이고 있어 소년을 안심시켰다.

최소한 아편굴은 아닌 모양이군.

소년이 안심할 때 이삼은 목청을 높여 안쪽의 누군가를 불렀다.

“아저씨! 저 왔어요!”

건물의 안쪽에서 울림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을 헤치며 등장한 중년인은 꼭 속이 꽉 찬 만두 같은 체격으로 보기 좋은 선량함과 넉넉함이 묻어나와 사람은 편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 봤던 영화 중에 팔선 반점이었나? 하는 인육 만두를 만들어 파는 호러 영화 주인공이 딱 저렇게 생겼었지.

젊은 시절 술김에 봤던 공포영화가 어째서 다시 뇌리에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한번 찜찜한 기분은 떨어지질 않고 소년의 뒷덜미에 달라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처럼 퉁퉁한 중년인은 그 비대한 몸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이삼을 안아 들었다.

“어이구! 우리 양이 이제야 왔어!”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양이?”

소년이 의문을 표하자 사내에게 안겨 있던 이삼이 고개를 돌려 소년에게 설명했다.

“양은 제 본명이에요. 조양. 궁에 들어가면서 이삼이란 환관 명을 받았거든요.”

“어이구 요 어린것이 궁에 들어가서 얼마나 애를 썼어, 응?”

마치 일 년 만에 손주를 안아본 할아버지처럼 이삼은 안아 들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풀어놓던 사내는 한참이 지나서야 이삼을 내려주고 소년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변변치 않지만 추나 시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주윤(珠玧)이라 하네. 그래, 다리와 허리가 불편하다고?”

“예, 보시다시피…….”

“허어…… 이것 참…….”

소년의 앙상한 다리와 굽은 허리를 유심히 보던 주윤이 그 살찐 허리를 숙여 소년의 다리를 잡았다.

퉁퉁한 손이 다리를 움켜쥐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놀랐다. 소년의 표정을 보자 주윤의 표정이 헤실헤실 풀어지며 빙그레 미소가 걸렸다.

“내 저 잘난 의원 나리들에 비하면 잘난 것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추나술 하나로 여태껏 밥 벌어 먹고산 사람이니, 너무 걱정 말게.”

“예,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우선 자리에 누워보게나. 한 번 자세히 봐야겠으니.”

주윤의 재촉에 소년이 어깃걸음으로 돗자리 위에 올라가 옷을 벗었다. 그 깡마른 몸 뭐가 볼 것이 있을까 싶어 별 부끄러움 없이 옷을 벗자 그 볼품없는 몸이 세상에 드러났다.

“세상에…….”

“허어…….”

세상을 방랑하며 오만 것을 다 봤다고 자부하는 이삼도, 당장 죽을 날을 저당 잡아놓은 환자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환자들을 봐온 주윤도 이런 몸은 처음 본다는 듯이 탄식을 터뜨렸다.

건강함과 병약함이 공존하는, 참으로 세상에 어떻게 이런 몸이 존재하는 것인지 인체에 대해선 전문가인 주윤조차 섣불리 진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볕을 못 본 것 같은 창백한 피부는 생기가 없이 거슬거슬했다. 깡마른 몸은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지만 기이하게도 팔과 어깨에는 얄팍한 근육이 삭정이 같은 뼈에 말라붙어있어 괴이했다.

“허어…… 이것 참…….”

“제 등에 뭐라도 있습니까? 문신같은 걸 한 기억은 없는데…….”

“아니…… 그건 아니고…… 허……”

금방이라고 뉘여야 할 환자의 몸이라곤 하기엔 핏줄선 근육이 너무나도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하다 하기엔 툭 불거진 뼈의 흔적이 너무 강렬했다.

도대체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보기만 하던 주윤이 한숨을 토해냈다.

“이것 참 보기만 해도 공부가 되는 몸이군.”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아니, 심각한 게 아니라…… 거참. 이건 나도 도저히 모르겠네. 한 번 만져보기 전에는…….”

속이 꽉 찬 소시지처럼 퉁퉁한 손가락이 부드럽게 소년의 경혈을 누르기 시작했다.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아플 줄 알았던 소년은 의외로 부드럽게 녹아드는 시원함에 눈이 스스르 감길 만큼 몸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표정이 풀어지는 소년과는 반대로 소년의 등을 주무르던 주윤의 얼굴에선 걷잡을 수 없는 땀이 비 오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몸에 열기를 띠어 내뿜는 땀이 아니었다.

식은 땀. 공포에 질린 사람이 분비하는 땀이 주윤의 이마를 적시고 있었다.

그 기이한 모습에 이삼이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도 소년의 뼈마디를 짚는 주윤의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경악스러운 것을 목도한 비운의 주인공처럼, 경이로운 신비를 목도한 학자처럼 흔들리는 동공을 감지조차 못하고 주윤은 소년의 등을 어루만졌다.

“아저씨?”

“아냐…… 이건…… 하지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주윤의 두툼한 입술을 비집고 단말마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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