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51화
황제 폐하께 뱀탕 회사갱(膾蛇藥)을 올리고 남은 부산물로 마라화과(麻辣火鍋)를 만들었다.
발라낸 뼈를 고아 육수에 더하고 남은 껍질이나 꼬리, 간 같은 내장류는 익혀 먹기 위해 손질해 두고, 물론 이것만으론 아쉬우니 뱀 몇 마리를 잡아 뼈를 발라내 고기도 추려냈고 양고기도 좀 얇게 썰어두었다.
“그리고 이것만으론 너무 아쉬우니까 새우 완자(招牌 䖾滑)도 있습니다.”
“오오! 새우 완자!”
“어? 완자가 아니네요?”
“이걸 숟가락으로 떠서 국물에 넣으면 즉석 완자가 되는 거죠.”
얇은 사기그릇에는 회백색 새우 반죽이 그득하게 들어 있었다. 이걸 기름을 바른 사기 숟가락으로 뚝뚝떠서 국물에 먹으면 이빨이 밀릴 정도로 탱글탱글한 새우 완자가 완성!
어쩐지 뱀고기보다는 새우 완자가 더 주메뉴인 것 같지만, 어쨌든 소년은 화과 냄비 아래에 숯을 넣어 데우고 뽀얀 사골육수에 뱀고기 육수를 섞어 얼큰한 마라 양념을 풀었다.
“향기가 좋네요…….”
“보기는 좀 흉하지만 뱀처럼 좋은 육수가 나오는 것도 드물죠. 구수하면서도 맛이 깔끔하죠. 그렇다고 비린내나 누린내가 심한 것도 아니고.”
채소는 배추에 청경채, 쑥갓에 팽이버섯, 숙주와 목이버섯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도톰한 것이 식감 좋은 두부피와 얼려서 말린 동두부(凍豆腐) 또한 화과에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여기에 당면도 넣고 반죽도 해놨으니까 마무리로 납면을 넣어 먹죠.”
“그럼 이제 고기 넣을까요?”
“예, 뱀고기는 충분히 익혀야 해요. 기생충 죽을 때까지.”
“뱀 머리도 넣을까요?”
“에헤이 버려.”
이삼이 들고 있던 뱀 머리를 뺏어다 아궁이에 던져넣은 소년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육수에 고기를 쓸어 넣었다.
얄팍한 고기며 꼬리, 비늘을 벗겨낸 껍질이 붉은 육수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꼭 지옥 유부에서 끓어오르는 유황탕을 연상시켰다.
“보기는 좀 그렇네요…….”
“보기는 이래도 맛은 좋아요. 아, 고기가 얇으니까 먼저 먹읍시다.”
칼집이 얇게 들어간 뱀의 등 부분살을 건져 이삼과 장소의 접시에 올려주자 이삼과 장소는 각자 다른 방법으로 고기를 먹었다.
이삼은 다진 파와 땅콩을 넣은 마장(麻醬, 참깨장)에 고기를, 이삼은 매운 육수에 끓여낸 것으로 모자라 따로 덜어낸 고추기름에 고기를 찍어먹었다.
“생각보다 잘 먹네요?”
이삼은 그렇다 쳐도 개구리에 질색했던 장소가 생각보다 뱀고기를 맛있게 먹어 소년은 짐짓 놀란 투로 말했다.
“원래 귀주성도 운남만큼은 아니지만 뱀이 많이 나거든요. 어렸을 땐 자주 잡아다 구워 먹었어요.”
“전 어릴 때 잠깐 도피 생활을 한 적이 있어서……. 사막에서 나는 뱀이랑은 좀 다르지만 맛있네요.”
멸망해가는 일족의 후손인 이삼의 참담한 경험담에 소년은 목 안쪽이 까끌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족의 숙명을 어깨에 지고 있을 소년은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이 후궁에 들어온 것일까?
그에 비하면 자신은 편하게만 살아온 걸지도 모르겠다는 심정이 들어 괜스레 부끄러워진 소년은 잘 익은 고기를 이삼의 고기에 덜어주었다.
“저만 주지 마시고 오운 님도 드세요.”
“예, 예. 먹어야죠.”
고기를 덜어주며 소년은 자신의 그릇에 목이버섯과 껍질을 집어 들었다.
미끈하며 아삭아삭한 목이버섯과 쫄깃한 껍질은 궁합이 잘 맞는다.
여기에 찍어 먹을 것은 고소하고 텁텁한 마장에 고추기름을 듬뿍 넣어서, 여기에 땅콩가루와 다진 파, 마늘을 더한다.
매콤 고소한 소스에 껍질을 푹 찍어 입에 넣자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껍질의 식감과 껍질 밑의 피하지방이 녹아 나오며 구수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슬슬 돼지고기랑 새우완자도 넣을까요?”
“채소 좀 더 넣을까요?”
“배추는 이따 면 넣을 때 같이 넣게 좀 남기죠.”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며 건더기를 집어먹다 보면 매운 국물에 자연스레 땀이 나고 몸속의 진액에 들끓는 듯했다.
다들 무더운 여름밤에 땀을 뻘뻘 흘리며 냄비 앞에 달라붙어 있는 꼴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하니 너희들, 날도 더운데.”
“아, 태감 오셨습니까.”
황제께 올린 뱀탕이 자기가 혼자 다 먹었는지 태감의 피부는 반질반질하니 윤기가 돌았다.
그것을 소년이 지적하자 태감은 피식 웃으며 장소들 사이에 끼어 앉아자기도 젓가락을 들었다.
“방금 뱀탕 드시고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탕으론 부족하더라고. 고기 좀 팍팍 넣어라. 두부도 좀 더 넣고.”
“예이, 장소 님, 냄비 좀 봐주세요. 양고기라도 더 썰어와야겠네.”
잘 먹는 사람이 식탁에 붙자 냄비안에서 끓던 재료가 금세 동이 나기 시작했다. 소년은 서둘러 활활 타는 숯으로 냄비 아래를 갈아 끼우고 고기를 담뿍 가져왔다.
뱀고기가 끓던 육수에 양고기가 풍당풍당 들어가고 채소가 듬뿍 들어가자 비로소 지옥에서 끓이던 것 같은 탕이 사바세계의 음식으로 돌아온 듯했다.
“육수가 점점 더 진해지는 것도 화과의 매력이네요.”
“여기에 면을 넣어 먹으면 세상 다시없을 별미지요.”
뱀 육수가 진하게 우러난 육수에 양의 기름기가 더해지자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진득한 풍미가 느껴졌다.
여기에 면 반죽을 늘려 넓게 펴고 엄지 한마디 정도 너비로 썰어 넣자국물이 걸쭉해지며 칼국수처럼 쫄깃한 면발이 떠올랐다.
“자, 면도 다 익었으니까 먹지요.”
고명으로 양고기와 새우 완자를 올리고 걸쭉한 국물과 함께 면발을 퍼을리자 마무리 요리로 만든 국수치고는 꽤 그럴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너에게 줄 것이 있었지. 자, 황제 폐하의 성은이니 감사히 받도록.”
“예, 성은에 망극하옵니다.”
한 손으로 국수 그릇을 들고 성은을 받아든 소년은 그릇 자락에 입을 대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솜씨 좋게 한 손으로 목함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뭡니까 이 돌덩이.”
“돌이라니, 운남에서 들여온 귀한 오철(烏鐵)이다. 옛부터 오철은 색이 검고 광택이 흐르며 일반 철보다 무게가 가볍고 두드려 피면 튼튼하며 얇게 날을 세워도 깨지는 법이 없이 튼튼하고 유연하다 했다. 보통 공을 세운 장수에게 내릴 보검을 만들 때나 쓰이는 철을 내려주신 것이니라.”
“줄 거면 칼로 주시지…….”
“유감스럽게도 황궁 병기창에서 오철을 솜씨 좋게 다룰만한 사람은 한 명뿐인데 그 양반은 자존심 센 검장이라 말이지. 검장에게 식칼을 주문할 수는 없지 않으냐.”
아니, 식칼은 칼 아니랍니까? 그거 까탈스러운 양반일세.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소년 역시 요리사답게 좋은 칼 욕심은 있었다. 거기에 아직 미성숙한 몸에 기존의 무거운 칼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소년은 마음속으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지저분한 욕설을 내뱉었다.
염병할, 칼이 무겁다니!
늘 느껴온 거지만 이놈의 몸은 도저히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표정이 오락가락하는 소년은 신기한 듯이 보며 국수를 후루룩 넘겨버린 태감은 슬며시 다음 국수를 퍼 올렸다.
“뭐, 이 경사에는 실력 좋은 장인이 많으니 개중에는 오철을 다룰 수 있는 장인도 있을 거다. 넌 한 번도 후궁 밖으로 나선 적이 없었지? 이번 기회에 휴가라 생각하고 다녀와.”
지난 십여 년을 후궁에서 단 한 번도 나서본 적이 없었다.
늘 똑같은 담과 똑같은 그늘에서 똑같은 풍경을 보고 살아온 인생.
그 답답한 삶에서 탈피할 기회가 소년에게 다가왔다.
무엇을 할까? 경사의 명물이라는 야시장을 구경해도 좋고 도박장에 홍등가의 기루 같은 불건전한 밤놀이부터 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는 하는 것도 운치 있으리라.
태감은 지난날의 보상으로 소년에게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선사해줄 생각이었다.
돈, 그리고 돈으로 넘을 수 없는 곳이라면 동창의 제독이라는 권력.
이 두 가지만 있다면 경사에서 가지 못할 곳이 없으며 누리지 못할것 또한 없었다.
자, 말해봐. 뭘 하고 싶니. 태감의 눈동자가 소년의 흉금 안쪽에 숨어있는 욕망을 흩어냈다.
나이를 먹었다고 욕망이 줄어드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지위를 누려본 사람이 더 뚜렷하고 깊은 욕망에 허덕이게 되는 법.
전생에 높은 지위를 누렸던 소년이라면 당연히 억눌러진 욕망이 크고 깊을 수밖에. 뭐가 좋을까? 술? 도박? 아니면 역시…….
여자.
비록 그런 유흥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태감은 직업상 경사의 내로라 하는 기루를 다 꿰차고 있었다.
고위관직자를 접대하는데 기루만큼 편한 곳도 없으니 자연스레 태감은 경사 밤거리의 큰손으로 통했다.
태감은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느물거리는 눈으로 소년을 보았다.
보통의 소년에게라면 여자를 권할리가 없지만 속은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은 중장년의 사내.
여자가 고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태감과 눈이 마주친 소년이 씩 웃어 보였다.
“거- 꼭 나가야 합니까? 그냥 적당히 요구서 보내고 배달받으면 편하겠는데.”
“좀 나다녀. 그러다 곰팡이 핀다.”
“에이, 괜히 나가면 돈 쓰고 피곤한데.”
우리 어머니랑 똑같은 소릴 하시네?
젊은 날 쉬는 날이면 방구석에 눌어붙어 있으면 어머니가 하시던 말을 다시 듣자 새삼 감회가 새로워졌다.
이런 소리까지 들었는데 안 나갈 수가 있나. 소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예, 그럼 내일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넌 경사가 처음일 테니 호위 겸해서 안내인도 한 명 붙여주마.”
태감의 말에 소년의 시선이 열심히 국수를 먹고 있는 장소와 이삼에 돌아갔다.
가끔은 동심으로 돌아가 놀아보는것도 괜찮겠어, 가뜩이나 하고 싶은것 많은 나이일 테니…….
어느새 입가에 푸근한 미소를 띤소년은 살짝 불은 국수를 마시듯이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일은 제법, 즐거운 휴가가 될 것같다.
* * *
“…….”
“…….”
경사의 심장이라 불리는 가장 크고 넓은 길, 대원로에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가뜩이나 왜소한 체격에 허리가 굽고 다리를 절어 더욱더 볼품없는 소년과 보통 남성보다 머리 하나가 더큰 사내인 위정.
둘은 기가 막힐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거…… 빙당호로(冰糖葫蘆)라도 드시렵니까?”
소년은 말을 꺼내자마자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근엄한 표정의 과묵한 사내에게 권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소년은 애써 산사나무 열매를 꿰 설탕 옷을 입힌 빙당호로에서 시선을 돌려 그 옆의 찻잎과 회향 씨, 간장양념으로 삶아낸 차단(茶蛋)을 파는 노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저것도 길에서 까먹기는 조금 불편하겠어. 그냥 무난한 닭고기 꼬치 같은 게 좋지 않을까?
“아니, 먹고 싶으면 너나 사 먹거라.”
위정은 고개를 저으며 소년에게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주머니는 작았지만 손에 쥐어보면 부피에 비에 지나칠 정도로 묵직했다. 분명 상당량의 금전이 들어 있으리라.
주머니를 살짝 끌러 속을 확인한 소년은 잠깐 노점을 둘러보다 이내 허리춤에 주머니를 차고는 위정에게 갈 길을 재촉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자 번듯한 가게에서 점점 수상하고 기이한, 심지어는 간판마저 제대로 달리지 않는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취두부나 각종 절임 요리를 진열해놓은 냄새는 이상하지만 비교적 정상적인 가게에서부터 온갖 미술품과 잡동사니를 늘어놓은 장물아비에 그림부터 공문서까지 붓 한 자루면 못 그려낼 게 없다는 위조꾼들, 도대체 뭘 파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정육점까지.
사람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비단궁장을 차려입고 연지를 곱게 바른위정보다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사내부터 소매가 기이하게 넓은데 안쪽에선 금속이 철그렁 소리가 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이, 대낮부터 호객행위에 나선 기녀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야말로 인외마경이였다.
“뭐, 아편이나 장물이라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솜씨 좋은 장인을 보기에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 나으리.”
“기다려 봐라. 내 오랜 단골 철방이 있는 곳이니.”
“허어…… 거 누군지는 몰라도 이런 곳에 철방을 차린 걸 보면 보통 괴팍한 양반이 아니겠군요.”
“그건…… 그렇지.”
소년의 핀잔에 위정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정말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벌써부터 한숨이 튀어나오려 하자 소년은 입술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의식적으로 더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도 원체 보폭이 큰 위정을 따라가는 것이라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의 것인지 의심스러운 해골이 꿰여 매달린 차양 아래를 지나 음흉한 표정의 쥐 수염이 난 상인이 호객행위를 하는 약재상에서 꺾어다시 골목으로 들어가자 간신히 낫이나 쟁기 등을 앞에 걸어둔 철방이 눈에 들어왔다.
“참……. 후미진진 곳에 있군요.”
“이래 보여도 저 철방의 주인은 그옛날 당대에 따를 자가 없다는 제국제일의 야장 철왕 당백에게 사사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엔 차돌을 세워놓고 반으로 가를 만큼 뛰어난 명검을 만들어내 명성을 얻었지. 성질이 조금만 유순했으면 번화한 곳에 철방을 차렸을 텐데……
위정의 목소리에 서린 짙은 아쉬움에 소년은 속으로 혀를 찼다. 가끔그런 사람들이 있다.
실력은 좋은데 성격이 모나 크게 되지 못하는 사람들.
실력이 원체 좋아 남에게 굽실대질 못하는 건지, 아니면 원체 성격 모난 인간들이 고집이 있어 실력이 좋은 것인지.
본인도 비슷한 체질이면서도 소년은 제 주제도 모르고 혀를 찼다.
포럼처럼 드리운 잡동사니를 헤치고 들어서자 쇠를 긁는 듯 걸걸한 목소리가 그들을 반겼다.
“뭐야, 아직 뒤지지도 않고 용케살아 있었군.”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본래는 백색이었을 때와 검댕에 찌든 회색 작업복에 곰방대를 거만하게 입에 문 노인은 허리가 굽은 소년만큼이나 왜소했다.
머리는 반쯤 벗겨져 있었고 옹졸해보이는 가는 수염은 군데군데 그을려 있어 볼썽사나웠다.
눈매는 쭉 찢어진 것이 성격이 고약해 보이고 코는 주먹코에 입술은 얇고 입은 크니 그야말로 보기 드문 인상이었다.
‘나만 한 흉물을 여기서 또 보는군.’
짐짓 감탄하는 소년만큼이나 노인장도 소년을 보더니 하, 이거 쌍판이 이 모양인 놈은 처음 본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욕하는 꼴이었다. 분명 서로서로 똥 묻은 놈이라고 욕했으리라.
“그래서, 오늘은 뭔 일로 왔나. 설마 얼마 전에 만들어준 걸 부숴 먹고 찾아온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런 거라면 이 쇠메 맛을 보여주겠다고, 노인장은 그 앙상해보이는 팔에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아뇨, 오늘은 이 친구의 물건을 주문하러 온 겁니다.
“흐음…….”
“반갑습니다. 후궁에서 일하는 오운이라고 합니다.”
소년이 서둘러 포권을 취하자 노인장은 그 모습을 아니꼽다는 듯이 흘겨보며 소년을 관찰했다.
“흥, 곱사등이에 절름발이인데 뭘쓴다는 거지? 검이나 창을 쥘 만한 몸은 아닌데…….”
“아니요, 오늘 이 친구가 만들려는것은 주방에서 쓸 식도입니다.”
“식도? 이놈이?”
코웃음을 친 노인장은 거만한 태도로 담배를 뻐끔거렸다.
입에 한가득 머금은 연기를 솜씨 좋게 고리 모양으로 뱉어내고는 아직 얼떨떨한 표정으로 포 권을 취하고 있는 소년을 가리켰다.
“몸 성한 것들도 버텨내질 못하는게 주방일인데 어디서 반편이를 데려다 일을 시킨다는 거냐 멍청한 놈아. 반편이한테 내줄 칼은 없으니 썩 의원이나 데려가.”
“어르신, 이 친구가 이래 보여도…….”
“듣기 싫네.”
완고한 태도로 고개를 젓는 노인네에게 쩔쩔매는 위정을 보며 잠시 고민을 한 소년은 이내 거나한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렸다.
“갑시다. 나리. 딱 봐도 칼은 커녕지 관짝이나 짤 노친네에게 뭔 칼은 주문합니까. 그냥 가다가 적당한 곳에 맡깁시다.”
“이봐, 그래도…….”
위정의 말을 끊고 목에서 가래 끊는 소리와 함께 걸걸한 목소리가 으르렁 댔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제 관이나 짤 노친네라 그랬소만. 나이가 드니 가는 귀가 먹었나 보오?’
“허, 이 쥐 X만 한 절름발이 새끼가 곱게 봐주니 천지 분간을 못하는구나.”
“댁은 보아하니 갈 날 잡아둔 것 같은데 슬슬 관에 박을 못이나 만드시지 그러쇼.”
위정을 사이에 두고 노인과 소년의 눈이 허공에서 불똥을 튀겼다. 노인장은 당장에라도 들고 있던 정으로 소년을 내려칠 듯싶었다.
“앞으로 남은 생 편히 살게 아예 앉은뱅이로 만들어주랴?”
노인장이 으름장을 놓으면,
“늙으신네 슬슬 사람 구분 못하고 앞뒤 구별 못하는 걸 보면 벽에 똥칠할 날 머지않은 것 같은데 곱게 가시게 좀 도와드려야겠어.”
소년이 지지 않고 맞불을 놓았다.
서로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만 같아 위정이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그를 곁눈질한 노인장이 손아귀에 힘을 풀고 덜컥 주저앉았다.
“오냐, 네 쥐 꼬리 반 토막 만한 혓바닥만큼 솜씨도 되나 보자. 쓸만하면 칼 한 자루 벼려주지.”
“늙으신네 공짜 점심 먹으려고 수 쓰는 거 아닌지 몰라. 주방에 철과는 있수?”
“철과 없는 철방도 있더냐?”
노인장의 대꾸에 소년이 혀를 차며 밖으로 나섰다.
“위정 나으리, 여기 가까운 시장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