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의 요리사-50화 (50/314)

환관의 요리사 50화

결국 인간이란 망각이라는 간사하고 염치없는 축복 속에서 사는 동물이었다.

본격적으로 무더워지는 계절감을 느끼며 소년은 느긋하게 기름 속에서 튀겨낸 새우들을 건지고 있었다.

소소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며 가슴속에 박혔던 가시의 날카로운 통증도 잊히고 정치노름을 하며 날카롭게 날이 선 마음의 각도 따스한 여름 날씨에 누그러졌다.

소년은 완연한 여름의 햇살 속에서 일상의 여유를 되찾았다.

큰 연회를 준비하느라 밤잠을 잊고 뛰어다닐 일도 없고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는 자신이 부주의하게 한 말이 나중에 정치적인 실책이 되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계산을 거듭하며 피 말리는 온화한 설전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평범하게 태감의 식사를 준비하고 장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되는 평범하고 자극 없는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태감의 점심으로 준비한 요리는 길하고 상서로운 복건성의 새우튀김 요리 길리하(吉利蝦).

달콤한 소스를 끼얹은 새우튀김은 그 맛만큼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사랑스러웠다.

오래전 옛날, 전란을 피해 이리저리 떠돌던 두 가문이 복건성 하문(廣門)의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한다.

한 집은 성이 길(吉)씨이고 다른 한 집은 리(利)씨였다.

길씨가문에 아들이 한 명 있고 리씨가문에 딸 한 명을 두었는데 두집은 서로 오가면서 화목하게 살다가 아들딸이 크자 둘이 결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잔치에서 신랑과 신부는 신선한 새우 두 마리를 잡아 그것을 계기로 영원한 사랑의 언약을 맺은 것을 기념해 새우로 음식을 만들어 잔칫상에 올려달라고요리사에게 주문했다.

그러자 요리사는 두 사람을 축복하는 의미로 달콤한 새우튀김 요리를 만들었고 두 사람의 성에서 이름을 따 길리하(吉利蝦)라 이름 붙였다.

“그러자 결혼식의 하객으로 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새우요리를 크게 칭찬했고 오늘날까지 이 새우요리와 함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말입니다.”

“그렇구나……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네요. 맛있겠다…….”

“넉넉하게 들어왔으니 이따 장소님이 오면 같이 먹읍시다. 아, 한 마리 먹을래요?”

“그래도 돼요?”

오늘 비번인 이삼은 아침부터 소년에게 간식거리를 얻어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일족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날 노래, 요즘 저잣거리에서 유행하는 노래, 그리고 소년이 알려준 노래들.

아직 변성기가 지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청아하게 탁 트인 소년의 미성이 끝도 모르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전생의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를 연상시켰다.

비슷한 나이인데도 목소리가 낮고 갈라져 비 맞은 까마귀 같은 자신과는 너무 대조되었다.

저쪽은 저게 생업이었다니 부러워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얼굴과 저 목소리, 저 성량에 심지어 한 번 불러준 노래는 완벽하게 따라 하는 것은 물론 자기 방식대로 편곡까지 해버리는 절대음감은 시대를 탓하게 했다.

저 정도 재주라면 아이돌을 시켰으면 분명 팬들의 통장을 탈곡기로 털어버릴 수 있을 텐데.

속으로 하는 생각에 혼자서 웃으며 소년은 점점 높아져 가는 이삼의 노랫가락을 들었다.

새우를 튀기며 듣기에는 아까운 노래야.

길리하(吉利蝦).

깨끗하게 손질한 바닷새우는 껍질을 벗기고 꼬리를 잡아당겨 둥글게 말아 공처럼 만들고 소금과 술에 재운다.

고추는 표고버섯, 죽순, 양파, 당근, 파와 함께 실처럼 가늘게 썰며 마늘은 다진다.

육수를 뜨겁게 데워 간장과 식초, 술, 설탕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고소한 향기를 낸다. 여기에 녹말 물을 풀어 걸쭉한 점도를 내준다.

기름이 뜨겁게 데워지면 오리 알에 적셔 빵가루를 입힌 새우를 튀겨준다. 바싹하게 튀겨지면 소량의 기름에 마늘을 볶아 튀겨진 새우를 살짝 볶아줘 향을 입혀주고 소스와 함께낸다.

요리를 완성하자 소년은 서둘러 허리춤에 단지 하나를 껴들고 서둘러 태감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 요리는 뭐니 뭐니 해도 방금 만들어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자, 방금 튀겨낸 따끈한 새우튀김이 왔습니다.”

“왔나.”

평소에는 서류를 올려놓는 책상에는 이미 점심으로 먹기에는 산해진미가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평소보다 배는 더 부루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는 태감이 있었다.

“이제 먹어도 되냐?”

“그걸 못 참아서 그렇게 삐진 겁니까? 거 사람 참. 이제 드십시오.”

한창 바쁜 업무를 끝내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태감에게 그 잠깐의 기다림은 하루하루 전역 날을 기다리는 말년 병장보다도 간절하고 길었으리라.

태감은 옥을 박아넣은 자신의 젓가락을 들고 마지 간질환자처럼 손을 떨며 새우를 집어 들었다.

동글게 말린, 약지 정도 크기의 오동통한 새우를 한입에 씹어 삼키는것은 어쩐지 배덕 감이 든다. 비록머리와 껍질을 제거하였어도 살아있는 생명을 한입에 삼킨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 달콤한 소스에 젖어있는, 바삭바삭한 튀김을. 희고 고른 이가 조심스레 씹어 삼켰다.

달콤한 소스에 젖어 있는데도 튀김은 여전히 그 바삭한 식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입천장에 델 만큼 뜨겁고 혀가 간드러질 만큼 바삭한 튀김옷 안쪽으로는 바다의 은은한 짠맛이 섬세하게 배어 있는 바다 새우의 감칠맛이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했다.

봄의 서리를 뚫고 자라난 새순처럼 연한 짠맛은 단맛을 휘감고 혀 위에서 달콤하게 움텄다.

볼에 연지를 바른 새신부 새신랑처럼 풋풋한 청춘의 맛, 하지만 태감은 그 속에서 짙은 위화감을 눈치했다.

“이 녀석, 또 나를 시험하는구나.”

은은한 간은 언뜻 밥반찬으로 손색이 없어 보이나 태감은 그 밑에 깔린 소년의 음흉한 계략을 눈치챘다.

아니, 그것은 음흉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무슨 시험입니까. 대놓고 단지를 보여줬구먼.”

소년은 틀틀대면서도 별다른 말 없이 단지를 상에 올렸다. 엄중하게 봉해진 단지를 열자 그 속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봄의 향기가 여름의 무더위를 밀어올리며 방안에 가득퍼졌다.

“지난봄에 담가뒀던 매실주입니다. 제맛이 들려면 두세 달은 더 묵혀야겠지만 그래도 구색은 갖춰져서 한 번 가져와 봤습니다.”

작은 대나무 국자로 술을 뜨자 단지 입구에서 맴돌던 매실 향기가 코끝으로 훅 치고 올라왔다.

술에 무관심한 태감도 절로 시선이 갈 만큼 매실주의 향기는 고혹적이었다.

태감조차 이럴 지경인데 숨겨진 애주가인 위정은 어떨까? 태감은 위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숙련된 호위무사는 늘 그렇듯이 마을 어귀에서 낯선 재앙을 막아주는 장승처럼 굳건한 모습으로서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 부동심은 틀림없이 호위의 귀감이리라.

하지만 태감은 부동명왕과도 같은 수호신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잔에서 찰랑거리는 매실주에서 떠나질 않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이라면 암살시도도 성공할지도 모르겠어.

태감은 쓴웃음을 숨기며 잔을 들이켰다. 매실의 진한 향기와 새콤달콤한 매실의 풍미 안쪽으론 확실히 여물지 않은 풋풋한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확실히 잘 익은 농염한 술의 맛은 아니지만, 이 매실주에서는 젊고 풋풋한 활기와 생명력이 느껴지는군.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이 풋내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군.”

“잘 익은 술은 언제나 맛볼 수 있지만, 이 풋풋한 술은 지금밖에 마실 수 없지요.”

“마치 청춘 같구나.”

지나고 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달콤함이여.

연한 연듯빛 섞인 황금빛 수면을 부드럽게 요동치게 하며 그 속을 응시하던 태감은 수면 위에서 번지는 자신의 얼굴에 미소 지으며 다시금 술을 들이켰다.

이 새우튀김에 더할 나위 없이 잘어울리는 술이다.

잠시 설익은 추억에 젖어 있던 태감은 이내 잔을 비우며 추억을 털어냈다. 그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나?”

“예, 틀림없이 최상품으로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래 최상품이란 말이지…….”

자부심으로 빛나는 소년과는 다르게 태감의 얼굴에는 짙은 수심이 어렸다. 누가 보아도 탐탁지 않아 하는 모습에 소년의 미소가 진해졌다.

“운남성에서 들여왔는데 아직도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살아 있습니다.”

“그래…… 그거 잘됐군.”

소년의 자부심과 비례하여 태감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어졌다. 물기에 젖은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드는 그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했다.

물론 미인의 처량함은 보듬어주고 싶은 법인지라 보는 사람의 동정심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나왔지만, 소년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저 표정에 당하기에 소년은 이미 태감과 너무 친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담대함에 태감은 현기증을 느꼈다.

“양호유환(養虎遺患) 이라더니…… 강해졌구나.”

“제가 호랑이 새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태감님의 식탁에 올라갈 것은 확실히 뱀이지요.”

태감을 탄식하게 하고 소년을 기쁨에 떨게 한 그 재료. 개구리에 이은 두 번째 괴식.

바로 뱀이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으며 정력에는 최고를 다툰다는 바로 그 재료.

그리고 오늘 밤 황제의 식탁으로 올라갈 재료이기도 했다. 그 양반은 참 호기심도 강해. 굳이 먹지 않아도 될 걸 찾아 먹는 걸 보면.

저번의 개구리도 그렇고, 그전에 올렸던 자라도 알고 보니 이 경사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재료였다고 한다.

어쩌면 맨 처음 올렸던 탕으로 자라를 선택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평범하게 사슴의 힘줄이나 곰 발바닥 기러기 같은 것을 골랐으면 이런일은 없있겠지.

“그러니 오늘 저녁은 회사갱(膾蛇藥)과 초염사단(板鹽蛇段)을 준비하겠습니다.”

“뱀탕에 뱀 튀김이냐? 휴, 그래. 알아서 해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눈앞에 두고 결국 태감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였던가?

태감은 도저히 옛 성현의 고리타분한 말씀을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질겁했던 개구리의 맛을 떠올리면 그럭저럭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맛은 있을 테지.

분명.

“그보다, 칠성제는 정확히 언제부터입니까?”

“그것은 왜 묻느냐?”

소년의 질문에 개구리와 뱀의 악몽에서 벗어나 새우 꼬리를 입에 물고 있던 태감이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그로서는 강제적으로 하루를 채식하고 심지어 하루는 금식해야 하는 칠성제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 칠성제가 후궁에서 열리는것도 아니고 먼 여정이 될 텐데, 태감께서도 가신다면 당연히 그 긴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요리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년의 말에 태감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여행길이 보통 여행길인가?

자그마치 황제의 행차다. 호위하는 병사들과 시중을 드는 나인, 환관들, 보필하는 신하들을 다 합치며 오천여 명에 이르는 대인원이 움직이는 것인데 그것이 어디 여장을 꾸려서 될 일인가?

거기에 그들이 모시는 것은 다름아닌 대제국의 지배자인 것이다.

이미 가는 도시마다 황실 소유의 장원이 늘어서 있고 도시의 유력자들은 앞다투어 황실에 진상하기 위해 몸 둘 바를 모를 것이다.

오천 명이라는 인원은 단순히 숨만 쉬고 있어도 물을 쓰듯이 돈을 소모한다.

상대적으로 문명이 발달한 세계에 살던 소년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일 것이다.

소년의 말대도 극도로 개인주의가 발달한 시대라면 이렇게 거대한 행사를 두 눈으로 볼 일이 몇이나 있있겠는가?

단편적인 지식으로 판단한 태감은 소년을 가여운 눈으로 보았다.

소년의 질문은 황실의 행사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소시민다운 소박한 것이었기에 태감은 소년의 질문을 비웃지는 않았다.

코끼리를 모르는 맹인에게 코끼리의 모습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바다를 모르는 농민에게 바다를 설명할 수 있을까?

맹인에게 코끼리를 만져보라 한들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습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바다를 모르는 농민에게 바다란 그저 크고 짠 호수일 뿐일 것이다. 소시민의 관점으론 황실의 거대한 행사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직접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황제를 수호하는 금군의 기마 병사들이 길을 열고 창칼을 번뜩이는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행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거대한 용이 움직이는 것처럼 장관이다.

그런 광경을 설명하는 태감의 표정에도 자부심이 떠올라 있었지만 정작 소년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뭐 겨우 오천 명 움직이는 거 가지고 놀라요. 우리 동네 축구장도 그 정도 인원은 수용하겠구먼.”

“어?”

확실히 오천 명이 캠핑하러 간다면 놀라운 이야기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축제가 있을 때면 국가적으로 수만 명씩 유동인구가 출렁거리는 세계에서 살다온 세계에 황제의 행차로 4~5천 명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생각보다는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아니, 이 시대에 전쟁도 아닌데 오천 명이나 움직이는 건, 대단하지만요.”

“아니……. 오천 명인데? 거기에 출발할 때가 오천 명이지 지방에서 합류하는 이들을 다 통틀어보면 거의 팔천에서 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아. 대단하네요. 네.”

어이구 그깟 만 명 정말 대단하십니다. 예, 제가 뭐랬습니까?

소년의 업신여기는 표정에 태감은 말을 잃었다. 그 비열한 매부리코 아래에 걸린 얇은 입술이 비죽이는것을 보고 있자니 태감으로서는 드물게도 밥맛이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정말, 네가 살던 곳을 한번 가보고 싶구나. 인류가 발전하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 것인지…….”

왕과 신의 지배 아래에서 사는 이들에게 미래란 그야말로 별천지의 세상일 것이다. 발 없는 말이 포장된 도로를 달리고 사람이 하늘을 날며 법적으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동등한 세계. 소년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글쎄요, 늘 그렇듯이 좋은 게 있으면 나쁜 법도 있는 법입니다. 방사능에 황사에 미세먼지에…… 어쩌면 당신들에겐 매일 독을 마시며 살아가는 우리가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한 멍청이들이라면서요.”

소년의 눈동자 속으로 아련한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지만, 태감이 그것을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점멸하듯 사라졌다. 그리움을 지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소년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럼 굳이 여정 동안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렇지…… 근데 뭘 준비하려 했느냐?”

그저 호기심에 묻는다는 투의 태감에게 소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야 뭐… 가면서 먹어야 할 테니 오래가는 훈제한 베이컨이나 소시지…… 그리고 제국식 향장(香腸)종류겠지요?”

“호오, 맛있겠구나.”

“그럼요, 맛있지요. 납작납작하게 썰어 볶다가 기름이 배어나오면 거기에 채소를 볶아 밥과 먹으면 훌륭하지요. 국물을 낼 때 보태도 좋고, 밥을 지을 때 그대로 넣고 지으면 그게 또 최고지요. 저번에 연잎밥을 할 때 드셔보셨겠지만 훈제 육의 짭짤한 기름기가 배어든 밥은 정말 끝내주는 별미이니 말입니다.”

거기에 중국인들은 여행의 비법으로 볶지 않고 말린 생콩가루로 두부를 만들어 여행길에 먹기도 했다.

길고 고된 여정 중 만들어 먹는 뜨끈뜨끈한 두부 맛은 분명 최고의 별미이리라.

“두부에는 박하와 양파를 다져 넣은 고추기름 양념을 얹으면 좋고, 또 여행길에도 자리만 있으면 즉석에서 국수를 뽑아도 운치가 있지요. 딱딱하게 구운 만두를 찢어 국에 풀어 먹는 섬서성 서안의 명물 포마(泡膜) 또한 여행길의 훌륭한 동반자이며, 즉석에서 피운 모닥불에 고기를 꼬치에 꿰어 굽고 밀가루를 반죽해 얄팍한 전병을 즉석에서 만들어 말아먹으면 즐겁겠지요.”

“호오…….”

여행이 곧 생존과 연결되는 험난한 세상인 이곳에서 아웃도어에 대한 로망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몽롱하게 풀린 태감의 표정은 휴일에 가족과 캠핑을 즐기고 싶어 하는 서글픈 사십 대 가장의 그것과 똑같았다.

“역시 여행길은 유비무환이지.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태감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났다. 괜히 입을 열어 안 해도 될 일이 늘어난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본인 또한 퍽 기대했는지 주방으로 향하는 소년의 얼굴에는 웃음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