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48화
몸에는 아직 피로감이 남아 있었지만, 정신은 맑고 또렷했다.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해방감과 태감에게 은연중 느끼고 있었던 부채감을 모조리 털어버린 소년은 더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연회장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 소년의 뒤를 오늘의 일일 도우미인 장소와 이삼, 그리고 소소가 따라붙었다.
“자, 가면서 다시 한번 오늘 할 일을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장소 님은 연회장 경호, 이삼 님은 반주, 연습 다 끝나셨죠?”
소년의 질문에 이삼은 대답 대신 오현의 우아한 현악기를 부드럽게 켜 보였다.
소년이 주문한 그대로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지 않으며 과하게 음악에 몰입되어 음식에 집중하지 않을 정도의 은근한 운율이었다.
소년은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마지막으로 소년은 소소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소년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다짐을 받았다.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요. 아니, 하겠습니다.”
소년의 눈을 응시하며 소소는 주먹을 굳게 쥐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 왔을 때의 의기소침하고 불행에 젖어 있던 그녀는 이제 스스로의 손으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공작에 참여할 만큼 마음에 굳은살이 박인 어른이 되었다.
“할 수 있어요. 제가 홍엽비 님의 식사 시중을 들게요.”
“그래. 그럼 사전에 말해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소년은 각오를 다진 소소의 머리를 머리칼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살살 쓰다듬으며 자신이 꾸며낼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함을 담아 그녀를 격려 했다.
“실패해도 괜찮아. 나와 태감님이 뒤를 봐주실 거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이 이 살벌한 후궁에서 그 얼마나 달콤하고 따뜻하게 들렸는지.
선배들의 괴롭힘과 연이은 실패에 찌들어 나약해지고 스스로 설 힘마저 빼앗긴 소소는 그 한마디에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소년이 해준 따뜻한 밥과 장소와 이삼이 베풀어준 사소한 관심.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그 한마디.
소소는 더 이상 주저앉아만 있는 나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손을 뻗을 준비가 된 힘이 있는 여인이었다.
소소와 장소, 이삼을 한 번씩 돌아본 소년은 이내 힘주어 주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젯밤 늦도록 손질해두었던 재료들은 여전히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밑간해 절여둔 고기, 손질해둔 채소.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해산물을 제외한 다른 재료들은 전부 준비되어 있었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장소님은 미리 감시하기 좋은 장소 탐색해 두시고 이삼 님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연습해 두세요. 소소는…….”
“네. 뭘 할까요?”
“앉아 있어.”
소년의 말에 소소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자신의 얼굴에 겁먹고 벌벌 떨기만 하던 것이 어느새 이렇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소년은 소소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아야!”
“내 주방 시다바리를 하려면 최소한 경력 십 년에 국내대회 입상 경력 정도는 가져와라.”
어리둥절해서 하는 소소에게 달콤한 짭짤한 군립거리를 던져주고 소년이 도마 앞에 섰다.
우선은 미리 만들어둔 돼지껍질 묵을 곱게 다져 돼지고기와 새우살 약간을 섞어 소롱포의 소를 만들어볼까.
돼지껍질을 생강과 파, 약간의 술과 함께 푹 끓여 식힌 껍질 묵을 소에 넣어 익히면 뜨거운 불에 녹아내리며 얇고 탱탱한 껍질 안쪽에 뜨거운 육수가 왈칵 솟아나는 소롱포가 된다.
소통포야말로 딤섬의 왕자가 아닌가. 소년은 일반적인 돼지고기 소롱포 말고도 신선한 게 알과 게살을 넣은 소롱포에 거위 육수를 사용한 소롱포을 준비했다.
이제 각기 다른 육수 묵을 다지고 소와 섞어야만 하는데 어째서인지 식재료에 손이 가질 앉았다.
“……왜지?”
소년은 스스로 되물으며 준비된 식재료 하나하나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기색도 없고 어젯밤 준비한 그 모습 그대로 였는데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한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이유를 곱씹어본 소년은 한창 운율에 빠져있던 이삼을 불러들였다.
어차피 말을 해도 욕을 먹고 말을 안 해도 욕을 먹는 사회생활의 특성상 차라리 말을 하고 욕을 먹는 편이 낮다는 경험에서 도출된 결과였다.
“이삼 님, 이게 아무리 봐도 식재료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이상해요? 잠시만…….”
어려 보이지만 후궁의 암투라는 수라장을 거쳐온 경호원답게 이삼은 숙련된 자세의 조교처럼 절도있는 동작으로 독의 유무를 확인했다.
오감으로 가능한 관능검사에 평소 가지고 다니는 약물을 이용한 반응검사까지.
심지어 소량 먹어보기까지 했는데도 독은 드러나지 않았다.
“휴, 제 기우였나 봅니다.”
“……아니요, 잠시만요. 한 가지만 더 검사해 볼게요.”
안심하고 칼을 들어 올린 소년을 제지하며 장소가 품 안에서 작은 원통을 꺼내 들었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작은 흑단 통 안에는 옥을 깎아만든 듯 청옥 빛의 침이 들어 있었다.
“만 독을 감지한다는 기물, 옥룡침(獄龍針)이에요. 만약 이거에도 걸리지 않는다면 정말로 기우로 끝나는 것이겠지만…….”
이삼이 신중하게 채소의 표면에 침을 문지르자 대번에 침의 끄트머리가 검게 변색하였다. 더 이상 말할 필요 없는 명확한 증거에 이삼과 소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젠장,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더라니!”
“어쩌죠? 이제 와 다시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일단 장소 님을 불러서 독이 있는 재료와 없는 재료를 가려주세요. 아니다, 이삼 님은 저랑 같이 식재료 창고로 가서 다른 재료들을 검사합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보려고 어기적거리며 다가온 장소에게 식재료 더미를 맡긴 채 소년이 식재료 창고를 향해 달렸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어찌나 날래게 움직이는지 따라가던 이삼이 발을 헛디딜 지경이었다.
방대한 식재료가 보관된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이삼이 옥룡침을 꺼내들고 조사에 착수했다.
“어…… 이것도 괜찮고, 이것도 괜찮고 요것도…… 식재료 창고까지는 독이 풀리지 않은 모양인데요?”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지요. 이것도 한번 검사해 보세요.”
소년은 이삼을 이리저리 잡아끌며 신선한 해산물에 양고기와 일을 시키지 않고 곡식을 먹여 살찌운 소고기, 약간의 채소와 밀가루 등을 챙겼다.
새우에 가리비, 신선한 생선류를 약간. 그리고…….
“굴?”
“아, 복건성 포하강에서 온 강굴이네요. 그쪽에 바닷물과 강물이 섞이는 지류에서 건져 올린 굴인데 바다굴이랑은 다르게 여름이 제철이래요.”
전생의 섬진강 명물이었던 벚굴과 비슷한 걸까? 크고 아름다운 크기였던 벚굴과는 다르게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아담한 크기였지만 포하강의 강굴은 짭조름함과 달콤함이 절묘하게 떨어지는 훌륭한 굴이었다.
그윽한 굴의 풍미를 음미하던 소년이 눈을 번쩍 뜨며 이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확 끌려온 이삼은 소년이 숨결이 섞일 만큼 얼굴을 들이밀자 무심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뒤로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지금 당장 연좌궁의 주방으로 달려가서, ‘그것’을 가져와요. 있는 대로 왕창!”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이삼이 창백해진 얼굴도 되물었다.
“그거라면…… 설마 요즘 태감님이 완전히 빠져 버리신 ‘그것’을 말하는 건 아니죠? 태감님이 아시면 완전 노발대발하실 텐데…….”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가져와요. 당장!”
이삼을 떠밀어 보낸 소년은 바구니에 식재료를 한가득 챙겨 들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주방으로 향했다.
“흥, 젊은 시절에도 이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이제 와 식재료가 좀못 쓰게 된 정도로 당황할 것 같아? 이 정도 일로 흔들리면 프로소리 못 듣지.”
프로란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재료가 못쓰게 되었다면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라도, 그것이 안 된다면 재료를 빌려와서라도 손님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런 역량을 위해 서 비싼 돈을 내고 주방장을 고용하는 것 아닌가?
프로의 가치란 역경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여유로운 말을 입에 담으며 입꼬리를 올린 소년의 입에선 이가 갈리는 소리가 섬찟한 소리가 울렸다.
그렇다 한들 재료를 망가트리고 지난밤의 노동을 힛수고로 만든 놈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가죽을 벗기고 소금을 뿌려 식재료의 복수를 해주겠다고 맹세하며 소년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연회장의 주방으로 달렸다.
* * *
그 안이 추악하고 치졸한 암투의 복마전이라 할지라도 바깥의 속인들이 보기에는 지상낙원답게 후궁에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한숨이 나을 만큼 아름다운 장소가 많이 있었다.
오늘 난화비와 홍엽비의 연회장으로 선택된 송죽림(松竹林) 또한 규모는 작았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취가 후궁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우아하게 굽은 소나무와 곧은 대나무의 고즈넉한 정취 아래로는 키 작은 야생화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혹여나 꽃들을 밟을까 조심조심 걸어가다 보면 숲 깊은 곳에서 나지막한 현악기의 음색이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앞으로 나선 난화비가 숲의 중앙에 들어서자 숲 한가운데에 차려진 광경에 나지막한 탄성을 질렀다.
숲 한가운데의 작은 공터엔 흙이 옷자락에 묻지 않도록 대리석을 깔아 단을 쌓았고 그 위로 소년이 밤새 준비한 우아한 식사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순결한 흰색 방석을 올린 향나무의자에 봉황 장식을 새겨넣은 식탁에는 소년의 자신작인 난초 센터피스를 올렸고 갈대를 꽂아 넣은 청아한 화병과 석제 수반이 곳곳에 불규칙하게 놓여 있어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숲 한가운데라는 분위기를 중화시켜주었다.
반대편에서 온 홍엽비와 묵례를 하고 자리에 앉자 한쪽 뺨이 살짝 붉은 소소가 물수건을 가져왔다.
“어머나, 고마워요.”
난화비는 화사하게 웃으며 물수건을 받아들며 소소의 뺨을 유심히 보았다.
단순히 부끄러움이나 긴장에 의한 홍조나 화장에 의한 발그레함이 아니었음을 눈치됐으리라. 그런데도 난화비는 말하는 대신 눈짓으로 그녀의 뺨에 시선을 주는 척하며 홍엽비의 시선을 소소의 뺨 쪽으로 끌었다.
의기소침해 말은 못했지만 홍엽비의 시선이 소소의 뺨 언저리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며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사전에 언질도 없이 어디까지 알아차리신 걸까?
오늘 소년이 소소를 전면에 내 세운 것이 노골적이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그 짧은 사이에 이미 자신과 태감의 의중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참으로 소름 끼칠 만큼 깊은 심계에 소년은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오늘은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는 바, 야외에서 즐기기 좋은 철판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본래 낼 요리를 준비하지 못해 대책으로 준비한 것을, 마치 일부러 준비한 것인 양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소년은 자랑스럽게 오늘의 요리를 소개했다.
“어머, 정말 기대되는걸요.”
“네…… 기대되네요…….”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발랄한 웃음을 짓는 난화비의 익숙하지 않은 난화비가 어려운지 소심한 홍엽비의 시선을 받으며 소년이 크게 피운 불위에 두툼한 철판을 올렸다.
“자, 우선은 신선한 해산물의 버터볶음입니다.”
마치 광대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재료를 선보이는 소년에게 뭐가 그리도 좋은지 깔깔거리며 환호하는 난화비의 경쾌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뜨겁게 달아오른 팬에 버터 한술을 듬뿍 떠올렸다.
이 버터야말로 소년이 태감의 투정과 꼬장을 들을 것을 알면서도 장소에게 가져오라 시킨 비장의 무기였다.
최근 요리뿐만이 아니라 버터의 본래의 역할 그대로 속이 들어가지 않은 만두에 버터를 발라 먹는 것을 즐기게 된 태감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피눈물을 흘리며 막으려 했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고 버터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어머나…….”
“좋은 향기가…….”
유제품을 즐기지 않는 제국 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달콤한 유지방의 향기에 사람들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제과점에서 막 오븐이 열리는 순간, 갓 구워낸 빵의 그 풍성한 버터향기에 지갑을 열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나 다이어트를 하는, 담백하고 무미건조한 식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버터의 향기는 악마의 속삭임보다도 치명적이고 절벽 위에서 내려온 동아줄보다도 간절하다.
황궁의 담백한 식사에 길든 비들에게 버터의 향기는 인류의 불의 발견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신선한 새우와 가리비, 그리고 굴과 문어에 전복까지!”
달콤한 버터 향기에 짭조름한 바다의 향기가 더해지자 혈관에 코카인을 주사하는 것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뇌하수체에서 밀려나왔다.
두 비 모두 자제력을 잃고 무심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아직 요리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둘의 뇌에선 이미 요리를 입에 밀어 넣을 준비가 끝나 있었다.
여기에 소년의 마법 같은 향신료가 더해졌다. 철판의 구역을 나누어 새우에는 돌소금과 곱게 다진 마늘을 듬뿍, 가리비와 굴에는 살짝 매콤한 풍미의 향신료를 듬뿍 뿌리고 문어에는 신선한 파와 새콤한 폰즈 소스를 더하고 하이라이트인 두툼한 전복은 깔끔하게 버터와 소금만으로 익혀 냈다.
나긋나긋한 향기가 손에 잡힐 듯이 농밀하게 공기 중에 퍼진다.
그 향기에 취해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자 소년이 악동 같은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쭉 뻗었다.
비들 모르게 불이 붙을 만큼 독한 술에 손가락을 담그고 헛기침으로 비들의 시선을 주목시킨 다음, 밑에서 치솟는 불꽃에 손을 뻗자 순간적으로 손가락에 불이 붙었다.
“어머!”
비들의 시선이 확 쏠린 순간 소년이 손가락의 불을 철판으로 털어내자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불이 철판위에서 솟아올랐다.
여인들이 새된 비명을 지르고 크게 솟아오른 불에 잠잠해지자 철판 위로 노릇하게 익은 해산물들이 그 황금 같은 자태를 드러냈다.
역시, 철판 요리의 꽃은 화려한 불쇼지.
“이런, 너무 놀라게 해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년이 접시에 가지런히 해산물들을 담아내자 그 고혹적인 자태와 코점막을 잠식하는 듯한 달콤한 향기에 놀라움도 잊었는지 난화비와 홍엽비는 품위도 잠시 잊고 입안의 군침을 삼켰다.
“자 드시죠!”
소년의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젓가락이 경쟁적으로 접시 위에서 춤을췄다. 그런 비들의 반응을 유심히 보며 소년은 두 번째 요리를 준비했다.
이번에 볶을 재료는 표고, 느타리, 꽤 꼬리버섯 등 식감이 꼬들꼬들하고 버터와 잘 어울리는 버섯류와 볶으면 달콤해지는 양파와 당근 같은 채소들.
철판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다시금태감의 피눈물 같은 버터를 듬뿍 퍼올리자 비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정말 달고 신선한 해산물이네요, 바다가 먼 경사에서 이렇게나…….”
“이 매콤한 향신료가 절묘하네요…… 산초의 아릿한 맛은 아니지만… 몸이 달아오르는 듯해…….”
젓가락이 바쁘게 접시와 입을 왕복할 때마다 뒤에 선 시녀들에게선 마치 프로 방청객 같은 환호성과 애달픈 탄성, 안타까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맛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손을 뻗을 수 없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런 시녀들의 반응을 면밀하게 주시하던 소년의 시선이 일순간한 곳에 멈춰 섰다.
유난히 몸을 떠는, 유난히 왜소한 체구의 나인.
그녀의 안색은 당황에서 분노, 그리고 공포의 순서로 빠르게 변했다.
마치 물러터진 썩은 과일 같은 표정의 시녀를 보고 소년은 몰래 소소를 불러들였다.
“저기 저 나인이 누군지 아니?”
“네…… 남양궁의 주방을 총괄하시는 소묘라는 분인데…….”
“호오…… 그렇단 말이지…….”
범인은 반드시 사건 현장에 돌아오는 법이라고 했던가?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말을 속으로 읊으며 소년은 불길에 표정을 숨기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은 본 소소가 무심코 질겁한 체 물러나자 서둘러 표정을 지우고 다시 가식적인 미소를 띄웠지만, 소년의 불타는 시선은 소묘라는 나인에게 고정된 체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 이제 되었다. 장소 님에게 저 여인의 이름을 알려주고 이 쪽지를 전달해 주렴.”
“장소 님에게요?”
“그래.”
저 소묘라는 나인이 이 일의 주범인지, 아니면 그저 끄나풀에 불과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환관들에게는, 사람의 입을 여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다양한 도구와 방법들이 있었으니까.
소소가 총총걸음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며 소년은 다시금 만면에 미소를 띠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요리는 화덕에 구운 만두와 소와 양의 두 가지 볶음요리를 할 생각인데,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