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41화
행복은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법.
행복이 영원하다면 그것이 행복임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같은 금언을 지금 두 사람 앞에서 한다면 분명 몰매를 맞을 것이다.
텅 빈 접시를 공허한 눈으로 보고 있는 둘의 눈동자에는 서글픔이 서렸다.
그래, 바로 이거지.
소년의 음습한 눈동자 아래로 저열한 쾌감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후궁에서의 길고 고단한 삶은 소년의 가치관을 비틀었고 그에게 은밀하고도 비틀린 취향을 선사했다.
후궁의 정점에 선 이들의 우울한 얼굴은 참으로 달콤한 쾌락이 되어 소년의 말초신경을 간질거렸다.
그리고 소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쐐기를 박아 넣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독보다도 치명적이고 명치에 틀어박히는 비수보다도 날카로운 혀끝의 설검(舌劍)이 태감과 난화비의 반고리관에 스며들었다.
“이런, 아쉽게도 재료가 딱 일 인분 분량밖에 없는데…….”
“……일 인분이요?”
“일 인분이라…….”
두 사람이 서릿발 같은 시선을 교환하는 것을 보며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악마 같은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지는, 참으로 비열하고 사악한 웃음이었다.
설마, 태감의 식성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진짜로 재료가 일 인분만 남았을 리가 없잖아?
물론 남은 재료의 수혜자는 오늘 수고해 준 장소의 몫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똑똑히 전해지는 그 우울함이 참 달콤했다. 소년은 태감의 시무룩해진 입가를 보며 앞으로 몇 달간은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얻었다.
진정한 불행은 희망 뒤에 찾아오는법. 그렇기에 사람은 눈앞의 희망이 헛된 것임을 알아도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둘을 보며 소년은 자꾸 제멋대로 날뛰는 입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식은 땀을 흘리며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이대로 둘이 싸움을 붙여도 재밌겠지만, 애석하게도 둘은 서로 정치적으로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지금보다 더 친밀해져야 한다.
여기서 감정의 골을 새길 수는 없으니 이쯤에서 제 삼의 답을 내미는 수밖에.
물론 제시된 제 삼의 답이라는 이름의 회색 답은, 불행해지지도 않지만, 결코 행복할 수도 없는 답이었다.
“생각해 보니 한 그릇을 두 개로 나누면 되겠군요.”
“그렇……지.”
“……그렇네요. 너무 많이 먹으면 저녁을 먹지 못할 테니까…….”
한사람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니, 같이 나눠 들자는. 함께 불행해지자는 답은 너무나 정석적이고 모범적인 답안이었다.
불행은 나누면 반이 되는 법이니, 하지만 행복이란 것은 나눈다고 두배가 되지 않는다. 행복의 총량은 같다.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다.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두 사람은 간신히 수긍했다. 입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욕망에 휘청거리는 눈동자는 폭풍우 앞의 돛단배처럼 흔들거렸다.
사실은 혼자서 독식을 해도 부족하리라. 양껏 입안 가득 채워 넣어도 부족한 것을 상대와 나누라는 것은 가혹하기 그지없는 처사였다.
하지만 소년이 마련해준 판을 걷어찰 수도 없었다. 기껏 마련된 모두가 화목해질 수 있는 판을 걷어차기에는 둘의 지위가 너무 무거웠다.
분명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리라, 잠들기 전까지 밤새도록 아쉽고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러도 모자라리라.
눈을 뜨고 일어나면 달콤한 과실향이 코끝에 감돌아 참을 수 없을 텐데 그날들을 어찌 견딜까.
태감이야 소년을 닦달하여 또 얻어먹으면 된다지만 난화비는 어찌해야할까.
소년의 덫은 허술해 보이나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의 덫이었다. 결국, 오늘의 승자는 소년이 되리라.
소년은 기분 좋게 크레이프 반죽을 번철에 둘러 얇은 크레이프를 구워냈다.
소년은 결코 야박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으로 실컷 즐겨주었으니 그만큼 베풀 줄도 알아야 뒤가 찜찜해지지 않는다.
도박에서 이기면 개평을 떼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얇은 반죽에 두툼하게 생크림을 짜고 과일을 풍성하게 올린다. 자두와 복숭아를 번갈아 가며올리고 부드럽게 원뿔 모양으로 말아낸 뒤 종이로 살짝 감아 들고 먹기 좋게 만든다.
아이 주먹 만한 크래이프 포켓보다훨씬 더 볼륨감 있고 풍성한 크레이프 완성.
평소보다 배는 더 공을 들인 일품을 완성하기 위해 소년은 여느 때보다도 더 날카롭게 감각을 곤두세워 손끝에 힘을 주었다.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가까이 서 있던 장소가 질겁하며 물러섰다.
아직 반죽에 온기가 남아 있을 때 서둘러 상에 내자 그 두툼한 크래이프의 두께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년이 말하기도 전에 둘은 품위마저 내던지고 양손으로 크레이프를 집어 들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기분 좋게 베어 물었지만 이미 한 번 접해보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 정도 맛이겠지 하는 마음의 하한선을, 두 번째 크래이프는 그 선을 가볍게 꿰뚫으며 정수리까지 자두와 복숭아 향기가 솟구쳤다.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여름의 향기가 온몸의 미세혈관까지 뿜어졌다.
정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는 것만 같은 충격!
은은하게 절제된 생크림의 진한 우유 향기와 꽉 눌러 담은 두 가지 과일 콤포트의 향기는 그 순간 둘의 뇌리에 영원히 각인되어 버렸다.
다른 요리를 먹는다고 해도,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오늘 이날의, 이 순간의 감동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여름이 오면, 그리고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 되면 늘 이 향기가 그리워지리라.
그 순간 태감은 소년의 표정을 보고 소년의 섬짓한 의도를 깨달았다.
유난히 날이 좋은 오늘, 좋은 바람에 좋은 온도, 소년은 이 요리를 위해 길일을 기다려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요리를 난화비의 영혼에 각인시킨 순간 소년의 승리는 결정된 것이다.
처음 크레이프 포켓으로 감질나게 맛을 보여주고 다음에 풍성한 크레이프를 내놓음으로써 소년이 만들어낸 향기에 취해버린 난화비는 앞으로 때때로 소년에게 오늘 같은 요리를 부탁해을 것이다.
부탁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작은 댓가지만 그것은 난화비를 움직여줄 계기가 된다.
오늘 소년의 요리는 다른 어느 때 보다도 맛이 뛰어났다. 평소가 설렁설렁한 것이라면, 오늘 요리는 정말로 온 정신을 가다듬고 전력을 다해 만들었다는 것이 온 혀에 전해졌다.
마치 평소의 음식이 푸근한 가정식이었다면 오늘 요리는 황실의 만찬에 오를 법한 일생일대의 명품이라는 각오가 전해졌다.
사람의 기억이란 무뎌지고 희미해지는 법이라지만 오늘 요리는 영원히 둘의 심중에 남아 평생토록 달콤한 통증이 되어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태감은 소년이 평소에 공을 들이지 않았음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에겐 한계가 있다. 삼시세끼 이런 감동을 한다면 지쳐 버리고 말리라.
특별한 음식은 특별할 때 먹어야 제맛이 나는 법이다.
양손에 가득 차는 두툼한 크레이프를 먹어치우자 배도 어느 정도 차고, 태감도 난화비도 만족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입안에선 아직 녹아내릴 듯이 새콤달콤한 향이 감돌아 온몸에 여름의 진액이 흐르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슬슬 다음 이야기를 할까요?”
느긋하게 차 한 모금을 머금은 태감이 이야기를 꺼내자 어느덧 입꼬리를 가다듬은 난화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즐거운 시간은 끝났으니 이제는 조금 더 공적인 이야기를 할 시간이었다.
* * *
이야기는 좋게 끝났다. 난화비는 흔쾌히 홍엽비와의 식사자리를 가지겠다 하였고 다과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연좌궁으로 돌아서는 길. 태감과 소년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였다. 태감은 가면을 살짝 들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알고 있었지?”
“알고 계셨지요.”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둘은 난화비가 자신들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마지막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 그 인사말은 그저 맛있는 크래이프에 대한 감사라고 하기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그 한마디로 난화비의 의도를 특징 지을 수는 없지만, 태감과 소년은 그 인사말 한마디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럽게 느껴졌다. 마치 유치한 장난이 들통 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머리를 싸맨 소년을 내려다보며 태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제일이지 소년이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소년의 일은 자신의 식사를 차리는 일이다. 태감은 소년의 머리를 꾹꾹누르며 쓰다듬었다.
부스스하고 힘이 없는 머리카락, 소년은 머리카락마저 예쁜 구석이 없었다.
“이 녀석, 평소 요리는 왜 오늘만큼 기합을 넣어서 만들지 않는 게냐?”
“누가 평소에 먹는 집밥을 그렇게 공들여서 만듭니까요? 뭐 제가 제아래로 시다(잡일꾼) 이삼십 명쯤 부릴 수 있는 처지라면 모를까. 그리고 평소에 먹는 요리는 무난해야 질리지 않는 법이지요.”
그렇게 귀찮은 일을 매일 하라니, 이건 아동학댑니다. 소년은 지극히 귀찮고 피곤해서 안 한다는 의미를 태감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태감은 뭔가 다른 의미로 소년의 말을 받아들인 듯했다.
“그건 그래. 오늘 같은 요리를 매일 먹다 보면 버티질 못할 거야.”
너무 맛있어서 뇌가 녹아내려 바보가 되어버릴걸. 태감의 묘한 한숨에 소년은 무언갈 물으려 했지만 포기했다. 따져 들기도 귀찮았다.
그래도 평소 요리를 대충 한 것이 내심 마음에 찔리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지 못해 소년은 태감에게 오늘 저녁은 조금 공을 들여 만들겠다고 했다.
“정말?”
“정말입죠.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반색하며 어린 아이 처럼 좋아하는 태감을 보니 가끔은 이렇게 공들인 요리를 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오늘 좋은 비둘기가 들어오기도 했고…….
희희낙락하는 태감을 떠나보내고 홀로 주방으로 들어온 소년은 짖은 피로감에 축 늘어지며 벽에 등을 기대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나른한 피곤함이 어깨를 내리눌렀다.
손에는 당분 보충을 위한 복숭아 콤포트가 있었다. 크테이프나 생크림없이 그대로 떠먹어도 충분히 맛있었다. 아니, 이상할 정도로 맛있었다.
자신이 아는 레시피, 그것도 몇 번이나 시험해 보아 그 맛이 익숙한 레시피 인대도 그 음식은 스스로가 위화감이 들 만큼 맛있었다. 그 사실이 소년을 껄끄럽게 만들었다.
요리사는 예술가가 아닌 장인이어야 한다. 특출나게 맛있는 한 번의 요리가 아닌 천 번을 요리해도 똑같이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어야 좋은 요리사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 법한 특급 요리사인 소년이 자신의 한계를 모를 리가 없었다.
너무 맛있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자신이 한 것인지 두 번 세 번 의심이 들 정도다.
“난 도대체 뭘 만든 거지?”
이것은 사람의 경지가 아니다. 사람의 손을 넘어선 무언가가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한 순간 소년은 오싹하게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한기를 느꼈다.
용의 석상의 전신이 지져지는 통증에 빌딩보다 거대한 뱀을 눈앞에서 보았는데도 실감하지 못했던 현실감이라는 녀석이 혈관을 타고 쭉 뻗어나가는 듯했다.
한참의 골몰과 자기학대에 가까운 현실부정 끝에 소년은 고민을 포기 해 버렸다.
생각해 보면 용이 비를 내리고 옆나라에선 동물이랑 말도 트고 지낸다는데 까짓거 요리 좀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무슨 대수람?
“아니, 요리가 맛있으면 좋은 거 아냐.”
마약이고 나발이고 맛있으면 장땡이지, 소년이 이십 년만 젊은 시절이었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능력이다.
지나친 의심과 고민은 불화의 씨앗이자 만병의 근원이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요리를 지나치게 잘하게 돼서 어쩔것인가. 손을 자르기라도 할까?
젊은 시절 고민은 사실 먼 훗날에 돌이켜 보면 대부분이 쓸데없는 고민이다.
눈앞에 닥쳤을 때는 그때 그것들이 어찌나 무겁고 힘들던지, 지나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반백살에 가까운 소년은 그런 고민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져 오히려 그리울 지경이었다.
지난 청춘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젊음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최소한 옛날보다는 더 열심히, 더 온 힘을 다해서 살줄 알았는데.
소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야생 새끼비둘기의 털을 뽑고 내장을 꺼냈다.
먹기 딱 좋게 숙성된 것이었다.
막상 젊어져 보니 그 마음이 옛날같지가 않다. 뼈마디는 쑤시지 몸은 힘들지, 결국 하기 싫어도 요령을 피울 수밖에 없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조지 버나드 쇼였나?”
소년은 피식 웃으며 손질한 비둘기에 진간장을 부어 재우고 마른표고 버섯을 미지근한 물에 불렸다.
그래, 그 양반도 막상 젊어져 보면 그런 말 못 할걸.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든데. 차라리 늙은이로 사는게 속 편할 때가 많아…… 일구어놓은 것도 있고.
물론 그 양반이 그런 의도로 그말을 한 것은 아닐 테지만 편협하고 속 좁은 소년은 제멋대로 말을 만들어내며 신세 한탄을 주절거렸다.
홍릉유합(紅菱乳鴿) 마름열매와 비둘기 찜.
마름은 흔히들 물 밤이라고 하는 수생식물로 껍질을까 쪄먹으면 밤맛이 나서 물밤이라 하는데 과육은 부자와 초오의 독을 풀어주고 주독을 빼는데도 효과가 좋다고 한다.
부자와 초오 모두 이름난 명독인데 이것들을 해독하는데 효과적이라하니 그 약효가 뛰어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주먹 정도를 삶아 껍질을 벗겨내고 개란(芥蘭, 카이란. 브로콜리과의 식물)은 살짝 데친다.
마름을 다 손질하고 개란을 살짝 데쳐내고 나니 비둘기가 요리하기 좋게 절어져 있었다.
이것을 통째로 기름에 튀기는데 살짝 노릇한 기가 돌면 바로 꺼내어 기름을 빼준다.
비둘기를 기름 망에 걸어놓고는 소년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주 들어오지 않는 고급 식재료인만큼 온갖 정성을 다하였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전의 크레이프와는 달리 이쪽은 본업이 아닌가. 요리의 숙련도도, 쌓아온 시간도 크레이프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된다.
달아오른 철과에 파와 생강을 기름에 볶아 향을 우려내고 향긋한 향만 우러나는 정도에서 빼준다.
향이 우러난 기름에 최고로 잘 우려낸 육수 세네 컵과 소금, 설탕, 진한 간장과 청주로 간을 해준다.
여기에 튀긴 비둘기와 마름 열매를 넣고 국물을 끼얹어가며 십오 분가량을 끓인다.
어린 비둘기는 야생에서 자란 것이라고 해도 야들야들하고 부드럽지만, 너무 오래 끓이면 도리어 질겨지기에 십상이니 적당한 때에 재빨리 비둘기를 건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기등을 떼어낸 불린 표고버섯을 끓인다. 졸아든 육수만큼 표고 버섯 불린 불과 육수를 약간 추가해준다.
표고버섯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는 동안 비둘기는 먹기 좋게 뼈째로 토막을 치고 표고와 함께 접시에 올린다.
데쳐둔 개란은 기름에 살짝 볶아 간을 하고 육수 약간 넣어 끓여주다 물녹말을 넣어 끈기를 더해 접시에 올린다.
요리의 완성이 가까워지자 소년의 두 팔에 힘줄이 솟았다. 비쩍 마른고목 같은 팔인데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소년은 묵직한 철과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마름 열매를 요리에 올린 다음 비둘기와 표고버섯을 조려낸 국물을 윤기가 나도록 진하게 조려 끼얹어주면 요리가 완성된다.
간이 진한 음식이니 당연히 고슬고 슬하게 잘 지은 쌀밥을 내고, 여기에 몇 가지 구색을 갖출 요리를 추가로 내어 상을 차리자 보고 있던 죽간을 내던지고 태감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태감이 내던진 죽간이 서류 더미에 직격해 무너져 내리며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지만, 눈앞의 비둘기 찜에 온 시선이 쏠린 태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어린 야생비둘기인가?”
“예. 산둥 지방에서 잡히자마자 경사로 운송되었으니 그 과정에서 딱 좋게 숙성이 되었을 겁니다. 드셔보시죠.”
평소에 먹던 살이 실팍하게 붙은 오리나 닭 다리와는 다르게 갸름한 어린 비둘기다리는 차라리 전날 먹었던 개구리 다리와 비교하는 것이 속 편할 만큼 작았다.
하지만 가늘고 맵시 있게 뻗은 발목에 뜻밖에 오동통하게 붙은 살점들은 기름지고 부드러운 집에서 사육한 가축과는 다른 야생의 풍미가 물씬 풍기면서도 아직 야들야들한 유소년기의 달콤함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먹기 위해 서라면 다 큰 놈을 잡아도 될 것을, 굳이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어린 것을 잡는 인간이란 얼마나 죄 많은 생명이란 말인가.
통통한 허벅지 살을 옹졸하게 뜯어먹으며 태감의 머릿속에는 번뇌와 기쁨이 소용돌이쳤다.
부드럽지만 그 안쪽으론 탄탄하게 다져진 야성의 육질, 고기에선 어딘가 부드러운 숲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제 막 둥지에서 벗어나 나는 법을 배울 시기의 고기는 탄력 있고 달큰했다. 기름지진 않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골수 안쪽에 들어찬 단맛이 배어나온다.
여기에 쫄깃하고 씹으면 자연의 육즙이 담뿍 배어나오는 표고버섯과 아삭하고 알싸한 향기가 남아 있는 개란의 두툼한 줄기를 씹으면 들뜬 마음이 가라앉는다.
포실포실 하고 고소한 마름을 씹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숲 한가운데에서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말로 착각일까?
요리에 집중하여 거의 고개를 들일이 없었지만,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식히기 위해 잠시 고개를 들 때면 삭막한 벽에 둘러싸인 집무실의 풍경이 아닌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발밑으로는 시냇물이 흐르는 듯했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풀벌레 우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어린 생명이 세찬 겨울 풍파를 이겨내고 봄을 지나 여름이 오면, 그왕성한 생명의 계절에 보호받을 작은 생명은 이윽고 제힘으로 날갯짓해 세상을 향해 날아가겠지.
오랜 시간 땅속에서 움트며 자라난 새순을 돌보고 가꾸어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같은 따사로운 감동이 태감의 가슴을 훈훈하게 덥혔다.
잠시 식사를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아 그 여운을 즐기고 싶었지만 푸근한 숲의 여운보다도 혀끝에 감도는 달콤한 짭짤한 요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태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밥공기에 손을 가져갔다.
“아아, 죄 많은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이로다.”
“예?”
“아니다. 밥이나 더 다오.”
하루의 두 번째 감동. 하지만 그 감동은 무뎌지지 않고 날것 그대로 태감에게 와 그의 가슴 깊은 곳에 파고들어 그를 채워주었다.
상처받고 메말랐던 감수성과 함께 그의 위장도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태감은 새롭게 받아든 밥공기를 무십게 비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