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39화
태감의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도 전부 끝날 때쯤, 서늘한 밤공기에 창문을 닫으며 떨어지는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그라들 때.
소년 소녀들의 늦은 저녁도 막 되어서 시작되었다.
장소와 이삼이 설거지를 끝낸 그릇의 물기를 털어내고 어린 소녀가 상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을 때 소년 역시 뜨거운 화구에서 막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올리고 있었다.
매콤한 향기, 태감의 상에 올리고 남은 해산물을 아낌없이 사용한 면요리.
한국식 짬뽕이었다.
어린 친구들을 배려해 너무 맵게 하지는 않았지만 붉은 국물 사이로 오동통한 새우와 오징어, 검은 껍질 안쪽으로 주황색 속살을 드러낸 홍합들은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웠다.
작은 상에 소금에 절인 채소 한 접시를 놓고 둘러앉은 네 명에게는 인생에 가장 발랄한 나이임에도 숨길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서로가 크고 작은 사정을 품고 후궁에 들어와 있으니 표정은 밝아도 그 속에 그늘진 서글픔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삼도, 장소도, 어린 소녀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식사합시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만큼은 그 서글픔도 잠시 가릴 수 있었다
후루루룩-
한동안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소리를 내서 음식을 먹는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황궁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네 명 모두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런 걸 신경 쓸만큼 예법이 정신에 배기지는 않았다.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시고 조개같은 것도 대충 입으로 쪽 빨아 먹는다.
예법이 복잡한 후궁에서 이렇게 자유로운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삭아삭한 채소, 쫄깃한 해산물.
그리고 그 육수가 잘 우러난 얼큰한 국물을 쭉 들이켜자 뼈마디에 쌓인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이것 참, 보는 눈이 없으면 꿍쳐둔 백주라도 한잔하겠는데…….
말없이 국물만 들이켜던 소년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수저를 쓸까 그릇에 입을 대고 마실까 고민하는 소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못 물었네. 이름이 뭐니.”
“아…… 소소라고 해요.”
“소소…… 그것 참…….”
성의 없는 이름이군.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대부분 무협지 뒤져보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지나가던 엑스트라던 소소라는 이름이 한 명씩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태어난 순서에 따라 숫자로 이름이 지어지는 시대에 소소라는 이름은 오히려 부모님의 사랑이 깃든 이름 아닐까? 당장 옆에 있는 이삼만 해도 이름이 이삼(李三)인데.
이삼은 나름 멸망해가는 일족의 말예(未裔)인데 이름이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닐까?
소년은 측은한 얼굴로 이삼을 보며 소소의 출신지를 물어보았다.
소소는 섬서성에서 왔다고 했다.
가난한 촌락의, 먹일 돈도 없이 무턱대고 아이를 낳기만 한 농가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고.
밭은 자꾸 가물어가고 먹일 입은 늘어만 가는데 소소는 미색이 뛰어나지 못해 기루에 자리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한다.
어차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어느 지체 높으신 가문의 시녀 노릇이라도 해야 하니 하는 수 없이 후궁의 나인으로 지원을 했다 한다.
“사실 맨 처음에는 기미 역을 보는 시녀로 지원했어요. 기미 역은 생명수당이 더 나오거든요.”
“아~ 기미역은 항상 사람이 몰리죠.”
장소의 맞장구에 소년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이 퍼렇게 질렸다. 기피시 되어야 할 기미역이 오히려 사람이 몰리는 인기 보직이라니.
“그래도 기미역 오 년이면 고향에 돌아가서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가판대라도 하나 내던…….”
“오 년이나 살아남기가 어렵지만 말이죠.”
듣는 사람이 섬뜩한 후궁 농담이 이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농담을 들으며 설거지를 끝마치고 하나둘 자신의 숙소로, 그리고 자신이 있을 장소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소년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주저앉았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목숨을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세계는 정상이 아니다.
이 무시무시한 세계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자신을 소년은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의 감정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해졌다 하면서도 결국 자신은 이 세계에 녹아들 수 없는 이방인인것을 느껴서일까.
발붙일 땅 한편 없는 타향살이에 외로워하면서도 발붙이기 싫은 이차가운 땅에서 차라리 이방인으로 남고 싶은 모순된 감정에 소년은 괴로워했다.
쓸데없는 고민에 뇌가 얽히는 것 같아 소년은 찬장에서 백주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안줏거리는 딱히 없었으나 기운 달이 술잔에 비추어 그것으로 좋았다.
사실, 운치 있는 풍경보다는 그저 두통으로 고민을 날려줄 술기운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삼과 장소가 태감의 호위를 위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소년이 술기운을 빌려 고민을 해소할 때.
소소는 남양궁 창고 뒤편에서 선임 나인에게 불려나갔다.
후궁의 나인으로 배속받으며 숱하게 받았던 기합과 폭언, 하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매서웠다.
작고 왜소한 그녀가 어깨를 떨며 고개를 숙인 모습은 애처로웠으나 그녀를 둘러싼 나인들에게는 오히려 분노를 부추기는 요소가 되었다.
“뭘 잘했다고 떨어?”
“그런 정신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야, 네가 그러는 동안 그 절름발이 자식이 남양궁을 꿰차면 어찌할 거야?”
“가뜩이나 요즘은 홍엽비 님도 우릴 불편해하시는데 그 곱사등이 자식이 바람불어 넣지 못하게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어린 소소조차 유치하다 느껴질 만큼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왜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 걸까? 같잖을 정도로 우습고, 천박한 선임 나인들의 모욕에 소소의 눈 밑으론 짙은 피로감이 깔렸다.
사실은 그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딱히 소소가 잘못한 건 없다는것을. 그저 그녀들 역시 그녀들의 상관에게 욕을 먹고, 그것이 내리갈굼의 형태로 내려왔을 뿐이었다.
후궁이라는 거대한 기계에서 큰 톱니바퀴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가 더 작은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그럴 뿐인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가겠지. 수많은 사람이 수천 번을 마음속으로 삼켰을 금언을 되새기며 소소는 더욱더 간절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한껏 긴장했던 오늘, 뜻하지 않은 행복감에 젖어 들자 늘 함께했던 불행이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오늘이 너무 행복했던 것. 그것이 소소의 불행이었다.
그늘진 소소의 표정은 선배 나인들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뜨겁고 무자비한 폭력이 어린 소소에게 가해졌다.
짜악!
고막을 울리는 충격, 뺨이 달아올랐다.
전보다 더 폭급해진 욕설이 들려왔지만, 고막이 울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소소는 그저 조금 전보다 더 허리를 굽실대며 사과를 연발했다.
긴긴밤. 소소의 밤은 유난히도 길었다.
* * *
아침 준비에 여념이 없을 다른 궁과는 달리 연좌궁의 아침은 아침잠많은 태감 덕분에 상당히 느긋하게 지나갔다.
이제는 태감도 완전히 서양식 입맛에 물들었는지 오늘 아침 메뉴로 또 오믈렛과 기름에 구운 토마토, 새로 만든 베이컨을 요청했다.
번잡하게 차리는 것보다 간편하고 좋다만, 이러다 완전히 서양식 식단에 물드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 걱정도 되어 소년은 이것 말고도 다른 채소요리를 항상 함께 내려 했다.
오늘의 곁들임 반찬은 마늘 간장을 뿌린 데친 채소와 소년이 얼마 전에 직접 담가 이제 겨우 먹을만해 진운남성의 명물 매실 절임 조매(雕梅)였다.
조매는 운남 현지에서 나는 가장 크고 좋은 매실만을 엄선해 꿀에 절인 것으로 그 맛이 새큼하면서도 달콤하며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폐에도 좋아 인기가 있었다.
그 맛이 한국의 매실 장아찌와도 다르고 일본의 우메보시와도 다른데,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른 매실절임과는 달리 씨를 빼는 과정에서 과육에 꽃 모양으로 칼집을 넣어 그 모양이 빼어나다는 것이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으니 운남의 명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었다.
‘최근 그 양반, 아주 조매에 빠졌어. 그냥.’
아삭아삭, 새콤달콤한 맛은 느끼한 고기를 먹을 때나 비릿한 생선을 먹을 때나 빼놓을 수 없는 밥상 위의 감초였다.
조매의 포로가 되어버린 태감은 때 때로 밥반찬은 물론 주전부리 삼아먹기까지 해 소년의 단지를 비워내고 있었다.
아직 매실 철이 돌아오려면 멀었는데 이리 먹어치운다면 다음 매실철이 되기도 전에 쌓아둔 단지가 텅텅 비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알게 뭐람. 제가 먹지 내가 먹나. 난 분명 경고했어. 적당히 먹으라고.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은근슬쩍 단지 안을 들여다보며 남은 양을 계산해본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에 매달아둔 베이컨을 내렸다.
이번엔 기름이 잘 막힌 삼겹살로 만든 미국식 베이컨으로 회향과 통후추, 약간의 팔각과 육두구로 절여 벚나무로 훈제해 매콤하고 톡 쏘는 향미가 일품이었다.
삼겹살로 만든 베이컨은 기름이 과해 등살로 만든 베이컨보다 더 얇게 저미고 더 바삭하게 익혀야 제맛이 산다.
베이컨 기름이 배어나오고 그 기름에 베이컨이 튀겨지기 시작하자 슬라이스한 토마토를 철과에 밀어넣은 소년은 재빠르게 계란 세개를 풀어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귀한 우유도 약간 넣었다.
오믈렛은 틀림없이 프렌치 쉐프들의 영역, 하지만 섬세한 불 조절이 필요한 요리인 만큼 하려고 한다면 중화 요리사도 그에 못지않은 솜씨를 보여줄 수 있었다.
손님상에 낸 적은 없었지만, 직원식사로 수백 수천 번은 해온 요리, 자신이 없을 수가 없다.
뜨겁게 달아오른 철과에 기름 약간과 엄지손톱만 한 버터를 넣어 녹이고 재빨리 계란물을 부어 휘젓는다.
뜨거운 열과 기름에 도톰하게 계란이 부풀어 오르면 철과를 휘두르며 젓가락으로 살살 모양을 잡아 봉긋한 타원형으로 모양을 잡는다.
겉은 잘 익었지만, 반으로 가르면 속은 부드럽게 주르를 흘러내리는 오믈렛 완성.
재료도 들어가는 게 많지 않고 과정도 간단하지만 만드는데 내공이 필요한 요리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재빠르게 모양을 잡느냐. 괜히 모양을 잡겠다고 꾸물거리면 속이 퍽퍽하게 익어버리고 만다.
바삭하게 튀겨진 베이컨과 토마토, 오믈렛을 한 접시에 담아내고 오물렛 위에 잘게 다진 파 약간을 얹어낸 소년은 서둘러 상을 차릴 준비를 했다.
전에는 아침에 빌빌거리던 인간이 요즘은 약이라도 한 첩 지어 먹었는지 요즘은 상을 다 차리기도 전에 이미 식탁에 앉아 음식이 왜 이리늦느냐고 타박하기 일쑤였다.
“안녕하세요…….”
“아, 왔으면 저기 상 닦고 수저 좀 올려놔. 태감님 식사 올리고 아침식사할 거니까.”
“예…….”
유난히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묵묵히 걸레를 짜는 소소를 보며 짜증이 치민 소년은 소소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입에 강제로 조매 몇 알을 집어 넣었다.
“앗?!”
“그거 먹고 정신 차려라. 아침부터 죽상 쓰고 있지 말고.”
“네…….”
“아침,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네? 어…… 아무거나……요?”
카, 이거 아침부터 골 때리는 주문을 하네,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데 뭐 있어.
소소의 표정을 물끄러미 보던 소년은 별다른 대꾸 없이 그저 알았다고만 하고 태감의 집무실로 향했다.
애가 아침부터 영 매가리가 없는게 고기라도 한 근 먹여야겠어.
사실은 진짜 문제가 뭔지 알면서도 소년은 괜히 그것이 부담될까 모른척하며 의뭉을 떨었다.
그래, 애가 아침부터 왜 죽상이겠어. 선배라는 것들이 불러내서 기합이라도 줬겠지. 염병할.
아무 힘없는 자신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연좌궁에 있는 동안은 잘 먹여주는 게 그나마 소년이 할 수 있는 배려였다.
아침부터 적잖이도 배가 고팠는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소년의 발소리를 듣고 태감이 벌컥 문을 열어 빼앗듯이 음식을 가져다 상에 올렸다.
“뭐가 이렇게 늦어! 배가 등가죽이랑 달라붙어서 안 떨어질 지경이다!”
“뭔 놈의 배가…… 어디 한번 봅시다. 진짜 붙었나.”
“봐봐!”
소년은 겁도 없이 태감의 옷자락을 들쳤다. 이게 어디가 남자 허리냐고 하고 싶은 잘록한 허리에 쏙 들어간 배꼽, 백자 같은 하얀 피부는 후 불면 분가루가 날릴 것처럼 부드러워보여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아 남자가 배가 이게 뭡니까. 남자는 자고로 뱃심이 있어야 하는데.”
“네가 밥을 잘 줘야 살이 붙어서 뱃심도 생기지.”
“삼시 세끼 간식에 야식까지 챙겨드시면서 그런 소릴 하십니까?”
당신의 양심, 어디에 두고 오신 건 아니신지?
소년은 빈정상했다는 투로 밥그릇을 내밀었다.
소담스레 핀 불두화(佛頭花) 같은 희고 고슬고슬한 밥알은 한알 한알이 으스러진 것 하나 없이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통통한 밥알 한알 한알은 마치 진주와 같다. 다른 반찬을 집기 전, 태감은 밥 한 술만을 떠 맨입에 한 입을 우물우물 씹었다.
씹을 때마다 배어나오는 침에 밥알이 촉촉하게 젖어 들면 밥알갱이가 풀어지며 은은한 단맛이 올라온다.
은근한 단맛과 구수한 향기를 느긋하게 즐기며 태감은 어울린 반찬을 천천히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태감이 가장 즐기는 시간,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경건한 아침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역시 처음은 요즘 한창 빠져 있는 조매(雕梅)를 한점. 곱게 꽃 모양으로 칼집을 넣은 갈색 매실 과육은 보기만 해도 싱그러웠다.
아삭아삭, 너무 무르지 않은 경쾌한 식감, 풍성한 꿀 향기와 단맛 뒤로 은근히 올라오는 매실 향기와 새큼한 맛은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조매를 씹어 삼키고 난 후, 그 후에 숨을 내쉬면 시원한 매실 향과 꿀 향기가 코를 타고 빠져나온다.
잠이 덜 깬 뇌에 활기를 불어넣는 향기는 혀끝을 촉촉하게 젖게 만든다.
입안에 산미가 감돌자 태감은 바쁘게 젓가락을 바쁘게 놀리기 시작했다.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베이컨은 씹으면 입에 기름이 싹 배어들고 매콤한 마늘 간장이 톡 쏘는데친 채소는 언제 먹어도 기분 좋은 산뜻한 반찬이 된다.
“이제 슬슬, 아침의 메인을 먹어볼까?”
“점점 영어 사용이 자연스러워지십니다?”
소년의 핀잔을 들은 체 만 체하며 태감은 떨리는 젓가락으로 오믈렛을 갈랐다. 부드럽고 말캉한 그 표면을 가르는 것은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지.
이 별것 아닌 행위는 어찌 이리도 사람의 가슴을 부여잡고 식은 땀이 흐를 만큼 긴장되게 하는가?
말캉한 표면이 아직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찔러보며 태감은 그 스릴을 즐겼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던 소년은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아 괜히 한소리를 했다.
“그러다 식습니다.”
“안다 알아.”
젓가락이 그 얇은 표면을 찢는 순간,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황금빛 내용물을 마주한 순간 태감은 금단의 지식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인류가 수천 년간 발버둥 치며 애원해온 황금의 결과물을 오직 자신만이 독식하는 것만 같은 저열한 쾌감마저 밀려들어 왔다.
어째서 이 녀석의 요리는 이토록 맛있는가? 이것은 어딘가 비현실적이다.
라는 사소한 의문마저 이미 태감의 머릿속에서는 소거되어 있었다.
입술을 달콤하게 축여주는 농밀한 황금의 맛. 부드럽게 찰랑거리며 사그라지는 이슬처럼 덧없는 한입.
태감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곱게 우려낸 차 한 잔을 받아들었을 때였다.
“이제 슬슬 홍엽비와 난화비의 식사자리를 마련해볼 생각이다.”
“아아, 슬슬 그래야겠군요.”
“홍엽비의 입맛은 대충 알고 있다고?”
“예 뭐…….”
호남성 출신인 그녀는 가녀린 외모와는 다르게 화끈하게 몸을 덥히는 매운맛을 좋아했다.
자극이 비롯한 후궁의 음식에서 도피하기 위해 서라면 그녀는 기꺼이 응할 것이다.
문제는 난화비인데…….
“전에 케이크를 한번 올린 적은 있었지만, 그분의 정확한 식성은 모릅니다.”
“한번 따로 만날 기회가 필요하겠군.”
“재료도 미리 준비해 둬야 하니 가능한 한 빠르면 좋겠습니다.”
“그건 내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넌 네 준비를 해둬라.”
“……과자라도 구워둬야겠군요.”
평소에는 먹을 거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한심해 보이는 인간이지만 이렇게 교섭이 필요한 일에는 태감만큼 믿음직한 사람도 없다.
무슨 과자를 내가야 할지 고민하던 소년에게 태감이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 건넸다.
테두리에 금을 두른 흑단 재질, 안쪽에는 비단으로 안감을 대 목함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법했다.
“……패가 왔군요.”
그 안에는 칼자루를 문 용의 모습이 새겨진 옥패가 있었다. 붉은 수 실이 달린 옥패는 푸른 옥임에도 어째선지 핏물을 머금은 듯한 섬찟함이 서려 있었다.
참주패.
황제가 내린 신물을 눈앞에 두고 소년은 가면에 그려낸 것처럼 웃음지었다. 참주패에 서린 살기에 뒤지지 않는 홍측하고 섬뜩한 웃음이었다.
“제 일급, 어사참주(御史斬主) 패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네가 죄를 지으면 참주들의 주인이 직접 목을 베러 온다는 소리다.”
소년은 패를 꺼내 수실에 손가락을 감고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혹여나 실수로 떨어뜨려 옥패가 깨지기라도 하지 않을까 범인이라면 노심초사할 일이지만 소년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이거, 한도는 어느 정돕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꼭 어음(於音)을 말하는 것 같구나.”
황실의 신패가 모욕받은 것에 화를 낼까? 아니면 좋은 말로 꾸짖어야할까.
얼굴 가죽이 두껍기는 하지만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이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을 만큼 두터운 것은 아니었다. 태감은 쓴웃음을 지었다.
“모든 죄다.”
“……모든 죄라 하신다면?”
“역모. 황족 시해.”
태감의 말에 소년은 다시금 패를 들여다보았다. 가늘게 올라간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지도록 징그립게 웃는 그 모습은 음습하고 소름 끼쳤다.
“태감, 전 여전히 그날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소년의 담담한 말에 태감 역시 힘있게 대답했다.
“네 멋대로 약속을 지키게 그냥 두지는 않을 거다.”
주종은 서로 간의 진한 미소를 교환하고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눈부신 태양이 가파른 하늘 꼭대기로 올라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