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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36화 (36/314)

환관의 요리사 36화

불타는 석탄 덩어리 같았던 몸은 싸늘하게 식어 몸 안쪽에서리가 내린듯했다.

관절의 사이 사이가 얼어붙어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뼈에 철심을 박고 재활훈련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뼈마디 마디마다 플라스틱 보형물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팔다리가 뻣뻣해서 움직이기 힘들고 힘을 주면 부러질 것만 같다.

혹시나 해 일어서서 조금 걸어 보았지만 굽은 허리는 여전히 새우처럼 굽어 있었고 왼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절름발이다.

“뭐야, 오지게 아프길래 환골탈태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뭘 기대한 거냐?”

“계셨슴까??”

태감은 조금 놀랐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놀랐다기보다는 기대하지 않았다, 가 적절할까? 소년은 자신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다리를 건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아니, 뭐…… 엄청 아프길래 혹시 용께서 제 척추라도 펴주시나 했지요.”

“그 석상에 그런 공능은 없다. 황가에 적대하는 자를 판별하고 징벌하는 능력은 있지만.”

“아…… 역시.”

예사 석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모른다고 하던데 석상이 사람의 마음을 읽고 징벌까지 하다니, 제법 판타지 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럼 오늘이 제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거군요.”

“그러니까, 솔직히 나도 반신반의 했지만…… 뭐, 살아나와서 기쁘다.”

양 태감은 소년의 무사 생환을 축하하며 옥을 깎아 만든 잔을 내밀었다. 희미한 단 향기와 매실 향기, 거기에 꿀 향기가 조금 났다.

“오, 매실청. 좋네요, 마침 시원한게 먹고 싶기도 했고.”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장소에 밀어 넣어졌는데도 결과가 좋아서인지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결과가 좋으면 사람의 기억이란 미화되어 추억이 되는 법이다.

“근데 그거 원래 그렇게 아픕니까? 까딱 잘못하면 쇼크사할 뻔했네요.”

“쇼크사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취기가 올라서 알딸딸한 기분이 되었다가 그대로 픽 쓰러지는 게 보통이지. 나도 그랬고. 넌 어됐느냐?”

태감의 말에 소년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고통을 설명했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흔적은 몸에 흉터로 남지는 않았지만, 정신에는 인두로 지진 것 같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건 이상하군, 설령 역심을 품은 이도 그저 잠이 들듯 쓰러져 죽지 온몸이 불타는 통증을 느꼈다는 기록은 없는데…….”

“뭐, 용께서 제가 너무 건방져서 정신 좀 차리라고 벌을 주신 모양이죠.”

소년은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정리했지만, 태감은 고민 깊은 얼굴로 소년을 보았다.

기운찬 목소리에 비해 소년의 얼굴은 피가 모조리 빠져나간 것처럼 창백했다. 지금 당장 요양을 취해야 할 모습이었지만…….

“더는 황제 폐하를 기다리시게 할 수는 없지요.”

소년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침대의 난간을 짚고 서서히 몸을 풀었다. 뻑뻑해진 관절이 부드러워지고 뭉친 피가 손발의 말단부까지 퍼질 수 있도록 천천히.

충분히 시간을 들여 소년은 태감의 부축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움직이자 서서히 혈색이 돌기 시작하는 소년의 안색을 살피며 태감이 소년보다 한걸음 앞서서 걸었다.

“이 반룡궁은 폐하의 처소인 만큼 암살자를 막기 위한 기관진식이 도처에 널려 있다. 매년 신입 나인 중 부상자가 나오니 너도 조심해.”

“매년 부상자가 나올 정도면 좀 바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뭔 신입 신고식 하는 것도 아니고…….

불평을 토로할 시간도 없이 태감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기관진식이 깔린 지는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반룡궁은 황제의 처소답게 말할 수 없이 넓고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였다.

건물 내부에는 폭이 좁은 수로가 있었고 대나무와 창포가 심어진 실내 정원에서 그들은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 밑바닥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깊은 협곡에서 가느다란 다리를 건넜다.

우린 지금 황궁 내부를 걷고 있는걸까? 사실은 미궁의 내부를 탐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앞에 기다리는 게 황제 폐하가 아니라 마왕 폐하였던 게 아닌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태감님, 저희가 지금 황제 폐하를 뵈러 가는 것이 맞지요?”

“그럼 누구를 뵈러 가는 거겠느냐.”

“뭐 봉인 당한 구미호라도 퇴치하러 가는 거 같은데요.”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면 할만은 없지만…….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점점 비현실성을 더해가 소년은 점점 더 오래전에 식어버렸을 심장의 고동이 뛰는것을 느꼈다.

붉은 열주가 늘어선 거대한 공동에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거대한 황금색 불빛 수백 개가 일렁거리며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소년의 망상은 현실감을 가지고 부풀어올라 살아 움직이는 형태로 드러났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은 소리. 더운 바람 같은 것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뜨겁고 습한 열기, 돌바닥에 무언가가 쓸리는 소리. 농밀한 어둠 한 가운데에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태감이 한숨을 지으며 소년에게 돌아섰다.

“자, 최후의 시련이다. 이 선을 넘는 순간 넌 황제 폐하의 사람이 되는 거야. 죽는 그 순간까지 황실의 사람으로서 산다. 박봉에 늘 목숨이 위험하고 업무 강도도 높으며 밤낮이 뒤바뀌는 삶을 살겠지만 죽고 나서 수십 년 후에는 자그마한 명예로 역사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소년의 인생에 분수령이 있다면 분명히 이 지점일 것이다. 하지만 소년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성급하게 결정했고 되돌릴 여지마저 없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홀가분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것은 각오가 아니었고 결연한 신념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결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신념보다도 확고한 그 대답에 태감은 소년의 의지를 존중하기로 했다.

그 창백한 유리알 같은 소년의 눈동자를 보며 태감은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간사한 눈매와 매부리 같은 코아래로 길게 찢어진 음산한 입은 뭇사람들에게 간신배라 손가락질받을 만했다. 하지만 그 속은 어떤가?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구나.’

그리고 그 부채는 점점 늘어갈 것이다. 무심코 무언가 치하의 말이나 부끄러운 감사의 말로 소년을 기만 할 것만 같아 달콤한 숨을 억누른 태감은 엄숙한 태도로 팔을 뻗었다.

“나이가 많은 분이시니, 너무 무례한 태도를 보이지 말도록.”

새카만 어둠 너머에서 물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산한 소리와 함께 서서히 황금빛 불빛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 불빛에 반사된 빛이 수천 개의 별빛으로 산란하며 공동 안에 은하수를 드리웠다. 소년은 머지않아 그것이 뱀의 비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뱀이었다. 그것도 터무니없이 거대한 놈이었다.

공동에 늘어선 기둥들을 모두 합친다 하여도 그 뱀의 길이는 커녕 그 두꺼운 몸통의 두께도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 거대한 몸이 이 공동안에 어떻게 다 들어가 있는지, 어슴푸레한 어둠을 가르며 다가선 수백 개의 황금빛 눈동자는 그 하나하나가 성인남성의 키보다도 컸다.

짙은 갈색의 비늘에 감싸인 거대한 동체에 제아무리 거대한 것이라도 겸손함을 느낄 입과 그 수명을 짐작하지 못할 만큼 길고 명주실처럼 흰수염은 폭포수 같았다.

등에는 악어와 같은 등갑이 있었고 부드럽고 유연한 동체는 부드럽게 소년과 태감을 한 바퀴 감쌌다.

그 두꺼운 몸은 과연 지름 몇 이일까?

둘레는?

인식을 초월하는 거대함에 소년은 무심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 거대한 몸은 너무나도 길고 길어 동체 대부분은 공동의 어둠에 잠겨 있었다.

소년이 본 것은 그 머리와 긴 몸의 아주 짧은 일부분이었다.

뱀의 벌어진 입에선 습하고 뜨거운 열기가 섞인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용일까?

이 제국을 수호한다는 금룡인 걸까? 황제 폐하가 기도를 올리면 이용이 하늘로 날아올라 비를 뿌리는걸까?

수백 개의 황금색 눈동자가 가늘게 호선을 그렸다. 두 갈래로 갈라진 혀가 갈라진 입 사이에서 엿보였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아니란다. 난 그저 늙은 뱀일 뿐이야. 오래전 용께 가르침을 받았던, 땅을 기는 뱀이지.]

맙소사, 제 생각을 읽으시는군요.

[먹은 나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 재주는 부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소년은 마치 뱀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어째선지 소년은 그 압도적인 거구를 눈앞에 두고도 두려움보다 친밀감이 먼저 들었다.

짧은 시간 소년과 뱀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소년은 뱀이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고 뱀은 인자하고 호기심 강한 말 상대였다.

[재밌구나. 역시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어. 내가 처음 알껍데기를 까고 태어나 용의 제자가 되어 지금까지만 사천 년을 살았지만, 이 세계 외의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저 역시 잘 먹고 잘살다가 갑자기 죽어 이렇게 되살아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너에겐 큰 재난이었겠구나. 세상어찌 이런 일이 다 있을까. 하지만 신의 역사하심을 우리 같은 미물이 어찌 알겠느냐.]

소년과 뱀은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영원할 수는 없었다.

뱀을 말을 끝마치고 그 긴 몸을 풀어 그들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다.

[자, 가시게. 황제가 기다리고 있으니.]

소년은 늙은 뱀에게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떴다. 그작은 등을 물끄러미 보던 뱀은 지나가던 태감과 눈이 맞아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태감마저 공동을 빠져나가자 다시금 공동에는 적막한 어둠만이 남았다. 그 안에서 늘어선 열주를 휘감으며 좌리를 튼 뱀은 머리를 파묻기 전 짧은 정신적 언어를 내뱉었다.

[용의 피는 늘 그렇듯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꽃피는구나. 아흔아홉천궁을 가호하시는 신령스러운 신선과 금빛용이시여, 그 피에 가혹한 시대의 파도를 들이밀지 마시옵고 핀 꽃이 저물지 않게 하소서.]

공동을 빠져나가는 둘을 응시하던 수백 개의 황금빛 눈이 감기며 이내 공동 안은 어둠이 가득 차올랐다.

* * *

공동을 빠져나오는 계단을 걷던 도중 태감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소년을 돌아보았다.

“무슨 포상을 받을지 결정했느냐?”

“예? 예 뭐 대충…….”

“저런, 대충 생각하면 안 되지. 넌 아직 네가 가진 권리의 무게를 모르는구나.”

일국의 주인에게 상을 받는 일이었다. 황제의 말 한마디에 그의 나라는 물론 주변국마저 들썩거리고 황제의 손짓 한 번에 백만대군이 창칼을 들어 올린다.

그런 이에게 상을 받는 일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 같아 태감은 소년에게 다시금 명확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라. 황제 폐하께서 내리시는 상이다. 황제폐하께서 납득 하신다면 네 한마디에 팔군도독부를 움직여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농으로 하시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전례가 있었던 일이다.”

아무리 군주의 말 한마디가 무겁다지만 그 한마디로 수천수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을 일으킨다고?

아무리 중과 예를 중요시하고 군자의 도리를 중시한다지만 이 세계는 역시 미친 곳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소년이 바라는 것은 훨씬 더 소박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감의 말 한마디는 소년의 각오를 흔들어놓았다.

“네 과거를 알아낼 수도 있다.”

“……그건 그 문일 인지 누군지 하는 전 동창 제독이 막아두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무리 선황 폐하의 그늘이 무겁다 한들 현 지존이신 황제께서 명하시면 밝히지 못할 것 같으냐?”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그 선택을 눈앞에 두고 소년은 마치 지뢰가 매설된 지역을 건너가는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지름 멋모르고 지뢰탐색기도 없이 달려나가는 머저리가 아닐까?

그저 묻어두어야만 하는 것 아닐까?

“역시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는 게 좋겠지요. 사람이 미래를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럴지도.”

“그리고 포상은 이미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스산한 표정에서 태감은 소년과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기억했다. 평소에는 비굴한 놈이 한번 열이 받으면 푸줏간 백정이 칼을 놀리듯이 혀를 놀리는데 삼엄한 기세가 망나니 칼춤 추듯이 사나워 때때로 태감도 깜짝 놀라고는 했다.

놈의 얼굴을 일을 준비한, 큰일을 치를 준비를 한 얼굴이었다.

하이고, 이거 오늘 사달이 나겠구나.

태감은 최소한 소년이 자신이 감싸줄 수 있을 만큼만 사고를 쳐주기를 바라며 마지막 문을 열었다.

흑단 재질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은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실내 정원이었다.

곳곳에 다홍색 등이 걸려 온화한 분위기에 차분한 돌길을 따라 걸으면 작게 파인 연못 옆으로 우아한 정자가 있었다.

다른 호위도 시중을 들 나인도 없이. 웅장한 옥좌도 아닌 평범한 나무 의자에 황제가 앉아 있었다.

한 나라의 지존을 백 보 밖도 아닌 이렇게, 달려들면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거리에서 뵙는다는 영광에 소년은…….

‘시시하네.’

용의 시련에 말하는 빌딩보다 큰뱀까지 봤는데, 막상 눈앞에 있는 황제는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뿜는 다거나 공중부양을 하지도 않고 평범하게 앉아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용의 시련에 말하는 뱀까지 넘어왔는데 인제 와서 그냥 인간 황제냐.

최소한 인간으로 둔갑한 용이라던가, 하다못해 목에 비늘이라도 붙어있었으면 조금 더 판타지한 기분일수 있었을 텐데.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눈앞의 황제에게 무례를 범할 수는 없었다.

실망감을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소년은 천천히 오체투지를 준비했다.

옷이 흙에 더러워지지 않도록 감청색 타일이 깔린 바닥에 드러누워 이마를 피가 나지 않을 만큼 찍고 만세 오창을-

“되었다. 어차피 시험을 통과한 충신에게 그 정도 과례를 받고 싶지는 않아. 그보다, 가까이 와보거라.”

태감의 교육에 의하면 폐하의 십보 앞까지만 가도 삼생의 영광이며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라도 페하의 어전에서 오십보 밖까지 허용받는 게 보통이라 들었다.

폐하의 성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같은 공치사를 날려야 할까?

소년은 직감적으로 황제가 그런 거추장스러운 예의를 귀찮아하는 담백한 성격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억지로 예를 표하는 것보다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 소년은 종종걸음으로 황제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 옛날 먼발치에서 보았을 때도 생각한 것이지만 황제는 대단한 미장부였다.

떡 벌어진 굴강한 어깨에 훤칠한 키, 곧게 선 허리에 우수에 젖은 눈동자와 오뚝하고 잘생긴 코.

그리고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수염은 전설의 관운장을 연상시킨다.

풍성한 수염에 가려져 있지만, 소년은 그 턱선과 눈동자에서 태감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눈에 각인된 그 의심을 소년은 이제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내 알바는 아니지.

소년이 황제를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황제도 소년을 관찰했다. 이리저리 뜯어보고 구부정한 자세와 불편한 다리에 대해 걱정스러운 덕담을 해주기도 했다.

공적인 자리가 아닌 사적인 만남이어선지 황제의 언사는 평소보다 가벼워 내심 황제 전용 일인칭이라는 짐(예을 듣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을 자네가 준비했다지?”

“예. 가장 크고 싱싱한 개구리만을 준비하여 마라전계퇴화과(麻辣田鷄腿火鍋)를 준비하였나이다. 개구리 외에도 사슴과 오리고기와 내장, 오징어와 새우, 다양한 채소들도 준비되었나이다.”

“호오, 왜 하필 화과 요리를 골랐는고?”

황제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 소년은 이내 미소를 띠며 더욱 능변으로 황제에게 대답했다. 마치 준비된 면접생 같은 태도였다.

“폐하께서 개구리를 드시고 싶다하신 것은 단순히 개구리의 맛을 보고 싶으신 것만이 아닌 개구리라는 쉬이 먹지 못할 기이한 재료를 먹는 다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극기를 즐기기 위해 서라 생각하여 개구리의 다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도 다양한 부재료로 취향에 어울리게 드실 수 있는 화과 요리를 준비하였나이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소년의 달콤한 혀 놀림에 감탄한 황제가 다시 물었다.

“네가 저번에 진상한 자라탕도 퍽맛이 좋았다. 효험도 좋았고, 혹시 이 개구리는 어디에 좋은 음식인가?”

이번에도 소년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개구리는 단백질이 많고 소화가 잘되어 근육을 단련하는데 도움이 되고 위장에도 좋아 환자들도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옵니다. 자라가 큰일을 해야 할 때 기력을 얻기 위해서 먹는다면 개구리는 평소에 부담 없이 즐기며 힘을 비축하기에 좋습니다.”

소년의 말에 황제는 크게 기꺼워하며 두 눈을 빛냈다. 태감과는 달리 황제는 음식에 편견이 없는, 오히려 그런 기이막측한 식재료를 즐길 수 있는 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뱀은 어떤가?”

“뱀은 기름지면서도 흰살생선과 닭고기의 중간적인 맛이 난다고들 하지요. 약효가 세고 피를 솟게 해 자라 이상으로 강한 힘이 필요할 때 많이들 찾으신다 들었습니다.”

“보통 뱀은 어찌 먹는가?”

“구워도 먹고 탕으로도 먹지요. 운남지역은 뱀탕이 유명한데 삼척동자도 뱀을 두려워 앉고 어린아이들이 푼돈 벌이로 뱀을 잡아다 시전에 팔만큼 대중적이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눈이 시선을 피하며 차만 홀짝거리는 태감에게 향했다.

“그런 음식을 감히 내도 좋을지…….”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지, 내게는 훌륭한 감별사가 있으니 말이야.”

식은 땀을 흘리는 태감을 보며 황제와 소년 사이에 음험한 시선의 교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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