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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35화 (35/314)

환관의 요리사 35화

한 나라의 지존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의복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오늘따라 한층 더 멋들어진 의복은 풀을 먹여 버석버석했다.

오늘 소년의 의복은 무려 위정이 직접 다린 것인데 풀을 먹이고 각을 날카롭게 잡아 옷깃에 손이 베일 것만 같았다.

‘이 사람 아무리 봐도 군부 출신인게 틀림없어.’

오직 군인만이 이렇게 정확한 각을 잡을 수 있지…….

소년은 아직도 전생에 복무하며 투스타가 시찰을 나온 그 날 대령이 각 잡은 군복을 잊지 못했다.

군기 바싹 든 일병들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상도 못 할 짬밥에서 나오는 그 각과 파리가 미끄러질것 같은 전투화는 과연 그동안 먹은 깜의 역사를 증명하는 듯했다.

은실자수의 궁중 예복에 대모갑에 사슴 가죽으로 만든 혁대, 가죽신의 재질 또한 검게 옻칠을 한 사슴 가죽이었다.

버석버석한 소리가 나는 의복은 구부정한 소년에게 붕 떠 있는 것만 같아 꼭 광대 꼴처럼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냈다.

피로해 보이는 안색의 태감이 의자에 걸터앉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옷이 사람은 만든다지만, 옛말이 틀릴 때도 있군.”

“옷맵시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도 있지요. 평생 걱정 없으실 테니 좋겠습니다.”

“뭐, 꼭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시겠지요.”

태감은 소년의 옷이 어딘가 흠 잡힐 구석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 다음 자신의 옷을 다듬었다.

소년이 공을 들인 만큼 태감도 평소보다 한껏 힘을 준 차림새였다.

소년의 것보다 화려하게 자수가 들어간 예복에 비녀는 옥을 깎아 조각해 거기에 금을 입히고 끝에는 큰호박석을 단 것이었다.

장식 자체가 화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존재감 강한 호박석과 들어간 사람의 공이 물건의 품격을 높여 주는 비녀였다.

대충 찔러넣은 비녀를 다시 정돈하고 옷소매에 살짝 가려지도록 칠보팔찌를 찬 태감은 늘어져 있던 표정에 기합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면을 썼다.

고정할 끈도 없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는 신기한 가면은 오래 보고 또 봐도 신기한 물건이었다.

“예법은 전부 기억했겠지?”

“예. 만세 오창에 오체투지, 아무리가까이 다가서도 열 걸음 안으로 다가서지 말 것. 그리고…….”

오늘 마련된 자리가 비공식적인 자리임에도 지켜야 하는 예법만 황제의 존안을 뵙기 전까지 열다섯 가지.

모든 예법을 다 마치고 이야기를 나눌 때쯤이면 한 식경이 넘게 걸린다.

반룡궁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깨끗한 물로 발을 씻는 세족식에 약재를 넣고 달인 물로 세안하는 세안식.

폐하의 말을 잘 듣기 위하여 귀를 씻는 세이식 같은 몸을 깨끗이 하는 의식부터 황제 폐하를 뵙기 전 나라의 수호신인 금룡의 사당에서 기도하며 삶은 닭과 술을 올리고 향을 피우는 봉헌식에 궁에 들어서기 전 황제 폐하가 계신 곳으로 절을 올리는 승절식까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용의 화신이며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황제를 만나는 절차는 까다롭고 경건했다. 그의식 하나하나가 황제에 대한 제국민들의 경의였다.

‘그냥 신체검사나 하고 들여보내지 뭔 주접을 이렇게 떠냐고 말했다간 그날로 참수겠지.’

아무리 경직된 황궁이라 하여도 어느 정도 융통성은 있다. 앞서 말한 현기증 나는 저 의식들은 반룡궁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황제 폐하의 심복이 되기 전 거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간편한 세안의식 한 번으로 넘어갈 수 있었고 태감처럼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경우에는 아예 의식 없이 드나드는 일도 있었다.

사실 저 의식은 신하들뿐만 아니라 황제에게도 무척이나 거추장스러운 것일 것이다.

남의 머리 위에서 품위를 유지하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태감만 해도 소년의 앞에서만 배부른 고양이처럼 늘어져서 게으름 부리지 남들 앞에서는 얼마나 선량한 척 성실한 척 고상한 웃음을 입에 달고 살지 않는가?

위대한 수호신의 피를 이어받은 적자. 가뭄에 갈라진 땅에 단비를 내리는 위대한 존재.

무지몽매한 자 중에는 황제가 손을 씻은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만병을 이겨내는 비약이라하며, 간 큰환관 중에는 황제가 세안한 물을 병에 담아 팔기까지 한다고 하니 신의 아들로 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것이다.

그렇기에 역대 권력자 중에는 속으로 괴이한 성벽이나 괴벽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한다.

색욕이나 술에 빠지는 것은 기본이며 잔인한 고문을 즐겼던 왕은 얼마나 많은가?

겉보기에는 천상의 미장부인 황제도 그 속내는 모르는 것이다.

소년의 미적지근한 시선이 양 태감에게로 돌아갔다. 이제 슬슬 털어놓으시지?

소년의 시선에 양 태감은 코웃음을 쳤다. 이미 짐작했으면서 뭘 털어놓으라는 거냐.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둘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목숨을 걸고, 그 목숨을 받아본 사이인 둘에게 서로의 출신의 비밀 따윈 사소한 문제였다.

“자, 가자.”

“예, 갑시다. 근데 가마 같은 건 안탑니까?”

“여기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뭔 가마.”

비공식적이긴 하나 이번 일은 소년이 후궁의 정치판에 처음으로 출사표를 던지는 날이었다.

* * *

후궁의 중심. 오동나무와 소나무가 풍성하게 자란 정원의 한가운데에 있는 반룡궁은 황제의 거처답게 황실의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 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기와를 떠받치는 붉은 기둥 자세히 보면 나무가 아닌 붉은 색을 띠는 석제였다.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열주 사이로는 품격있는 시녀들이 뛰지 않고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과연 후궁 제일의 시녀들만이 그문턱을 두드릴 수 있다는 반룡궁의 시녀들다운 격조 높은 모습.

하지만 소년과 태감을 환영한 것은 평범한 시녀들이 아니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준비는 이미 끝내두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명의 목소리는 마치 한 명이 말하는 것처럼 완벽한 화음으로 어우러져 있어 그 목소리만 들었다면 몇명의 사람이 말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단순히 목소리의 고저와 간격만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호흡.

들숨과 날숨마저 완벽하게 통제되어 기복마저 일치하는 그녀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을 간지럽게 하는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이 후궁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람들. 모든 제례와 의식을 준비하는 황제의 수족.

궁에서 태어나 궁에서 자라고 궁에서 살며 궁에서 죽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 그녀들을 사람들은 용의 무녀라 불렀다.

잡티 하나 없는 흰 비단에 붉은 수실을 달고 금실로 용 자수를 수놓은 화려한 무녀복에 붉은 면사포를 쓴 그녀들은 우아한 동작에 좁은 보폭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의식을 주관했다.

첫 번째 무녀가 의자를 가져오면 두 번째 무녀가 향료를 탄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오고 세 번째 무녀가 의자에 앉은 소년의 가죽신을 벗기고 소년의 발을 씻겼다.

놀랍게도 이 동작은 사이사이의 지연시간 없이 완벽한 한 동작처럼 이루어졌다.

수천 번의 연습일까? 하지만 연습으로는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오랜 노력으로 인한 성과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다.

‘마치 셋이서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분명 그녀들의 흰 피부 안쪽으로는 의심할 여지 없는 뜨거운 피와 근섬유 다발로 이루어진 살점이 있을 텐데도 어째선지 소년은 쉽사리 그것들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들의 피부가 사실은 실리콘으로 이루어진 가짜 피부이고, 그 안쪽으론 차가운 금속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기계인 것이 아닐까?

멍청한 생각이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그 망상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그녀들의 동작은 감격스러울 정도로 완벽했지만, 그 감격은 사람의 뛰어난 재주나 노력의 결실이 가져다주는 감격이 아닌 잘 만들어진 기계가 훌륭하게 작동하는 모습 따위에서 오는 것이었다.

동정하기엔 아는 것이 없고 훌륭하다 칭찬하기엔 껄끄럽다. 그렇기에 소년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넘어가 기로 했다.

황제가 기도만 하면 용이 인공강우도 뿌려주는 세상인데 이 정도쯤이야.

소년이 멍하니 앉아 있는 동안 무녀들은 착실하게 소년의 얼굴과 손과 귀를 씻기고 붉은 비단으로 물기를 털어냈다.

그 완벽한 시중에 소년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신을 신게 한 뒤에 자신들이 쓰는 면사보다 조금 두꺼워 시야가 가려지는 천으로 소년의 눈을 가렸다.

“봉헌식을 위해서.”

“비밀스러운 사당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손끝에 실을 묶을 테니 잘 따라와 주세요.”

고된 노동으로 살짝 흰 소년의 집게손가락에 붉은 실을 묶은 무녀들은 조심스럽게 그를 이끌었다.

자리에 남은 태감을 제외하고 걷는 사람이 총 네 명이었는데도 마치 소년과 다른 무녀 한 명만이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앞에.”

“계단이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무녀의 극진한 시중을 받으며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어느 순간 사방으로 울리는 발소리 너머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안대를 푸셔도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배를 타고 이동할테니.”

“균형을 잃어 배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예? 배? 여기 지하 아닙니까?”

“지하입니다.”

“지하에 건설된 수로지요.”

“궁금증은 해소되셨나요?”

“예…….”

확실히 수로였다.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는 수로는 흐릿한 붉은 등이 천장에 걸려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물비린내가 나기는 했지만 고여서 썩은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흐르는 물인 듯했다.

‘이 미친 쿠푸왕 새끼들…… 지하를 파서 이런 수로를 만들었다고?’

실제로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은 노예가 아닌 전문 인부들이었다 하며 고대 이집트는 노예들의 대우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니 그만도 못했다.

X발 피라미드는 지상에라도 만들었지 이 미치광이들은 지하에 수로를 파? 물이 흘러? 배도 띄워놨어?

수은의 강이 흘렀다는 진시황릉이 이러했을까? 그렇다면 이 지하수로를 만든 이들은 전부 어떻게 되었을까? 진시황릉을 건설한 장인들과 노예들처럼 산채로 생매장당하였을까?

그리 생각하니 고요한 수로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소년은 속으로 육두문자를 지껄이 면서도 얌전히 무녀들이 내민 손을 잡고 배에 올라섰다.

소년이 배 중앙에 앉자 앞뒤로 앉은 무녀들이 완벽한 박자로 노를 저었다.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바람과 일정하게 흐르는 물 때문에 배는 큰 기복 없이 부드럽게 물 위를 흐르며 조용히 나아갔다. 물이끼 깔린 석제통로에 희미한 붉은 등은 누가 켜고 끄는 것일까?

가끔 첨벙거리는 소리는 이 수로에 사는 물고기가 내는 것일까? 침침한 어둠 속에서 그런 소소한 것들은 좋은 사색거리가 되어주었다.

어슴푸레했던 등이 서서히 크고 밝은 빛으로 변했다. 짙은 어둠에 적응해 있던 눈이 갑작스럽게 많아진 광원에 적응하지 못하여 소년은 순간적으로 눈을 돌렸다.

“도착했습니다.”

“발밑을 조심하세요.”

“의식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수천 개의 촛불과 수백 개의 등으로 빛나는 공동엔 크고 작은 짐승의 석상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세월의 풍상에 낡아 부스러지고 인위적인 충격에 갈라진 짐승의 석상들 사이에 온전히 자리한 거대한 용의 상.

유난히 빛나는 황금색 여의주를 문용의 석상은 그 어금니만 하여도 소년의 키보다 거대하여 넓은 공동의 천장까지 닿을 듯했다.

기이하고 섬뜩한 공간이었다. 오래전 전쟁에서 패배한 짐승들을 무릎꿇리고 권좌에 오른 용을 상징하는 것일까?

수백 개의 불을 가까이하고 있는데도 동혈 깊은 곳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해 소년은 옷깃을 여몄다.

“와, 정말 살아 있는 것 같네요.”

반쯤은 농담으로 한 것이었지만 소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에 고양이 앞에서 선 쥐처럼 꼼짝하지 못하고 용의 석상 앞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바위를 깎아 만들어졌을 무기물에선 어째선지 목울대를 그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듯하여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진짜였을까? 착각이겠지?

하지만 용이 비를 내린다는 세계에서 석상이 사실 둔갑한 용이 아니라는 보증도 없었다.

만약 갑자기 석상이 움직여서 날 찍어버리면 어떡하지? 생각해 봐도 실소가 나을 만큼 한심한 궁금증이었다.

자기 생각에 자신이 무안해진 소년은 애써 다른 질문을 던졌다.

“황제 폐하를 처음 뵙는 모든 신하는 다 이곳을 거쳐 가는 겁니까?”

소년의 질문에 일제히 고개를 돌린 무녀들은 각 문장을 끊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은 후궁의 심장부에 숨겨진 비처.”

“허락받지 못한 자는 이곳의 존재를 아는 것 만으로도 극형에 처해지지요.”

“이곳에 부름 받으신 것만으로도 당신께선 선택받은 존재십니다.”

“황제 폐하께서.”

“그리고 용께서 당신을 선택하셨지요.”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날 선택한 것일까? 충실한 노예로서? 말 잘 듣는 신하로서?

무녀들이 상을 내오고 거기에 술상과 요리를 차리는 동안에도 소년은 용의 눈에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거대한 석상의 박력 때문이었을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열기가 가슴 깊숙한 곳에 틀어박히는 듯했다.

착각이었을까?

순간 용의 눈꺼풀이 움직이는듯해 소스라치게 놀란 소년에게 무녀들은 조용히 술잔을 내밀었다.

“한잔 술을 드시고.”

“다섯 잔의 술을 올리십시오.”

“그 후 절을 하시면 됩니다.”

황금으로 만든 술잔에 투명한 술이 부어졌다. 찹쌀로 빛은 달콤한 맛이 나는 탁주를 맑게 걸러 증류한 것으로 특유의 향기가 연하게 있었다.

도수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술한잔을 마시고 술을 올리며 절을 하니 어딘가 정신이 점점 몽롱하게 풀리는 듯해 소년은 넘어지지 않도록 무릎에 손을 짚었다.

아무리 어린 몸이었지만 그리 센술도 아니고 술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고작 한잔 술에 이 정도로 취할리가?

단순히 취기가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달군 석탄을 삼킨 것처럼 뜨거운 것이 가슴에 틀어박혀 그 열기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그 기분 좋은 감각에 지그시 눈을 감은 소년이 일순간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뒤집었다.

따스한 온기처럼 퍼진 열기는 일순간 불꽃처럼 일어나 소년의 신경에 번갯불을 튀겼다.

충혈된 눈은 안암이 올라 터질 것 같고 척추 안쪽으로 용암처럼 뜨거운 것이 핏줄을 달궈 마치 몸 안쪽에서부터 인두로 지지는듯 했다.

불편한 왼 다리와 굽은 허리는 마치 뼈 안쪽을 석탄으로 바꿔 불을 붙인 것 같아 소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년이 쓰러지자 열기는 더욱더 구석구석 소년의 말단부까지 퍼졌다.

통증이 핏줄을 타고 퍼져 인체의 가장 가는 모세혈관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뭘까? 황실의 충실한 노예로서 부적합하다는 용의 계시였을까? 그렇다면 이것은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용의 심판?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십수 년을 개처럼 부려놓고 이제와서 충성하지 않는 것 같으니 죽어라?

뇌수가 끓어오르는 작열감 속에서도 소년은 각고의 노력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이 세계에는 없는, 중지를 들어 올리는 특별한 제스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년은 단말마를 내지르듯 잃어버린 고향의 언어를 토해냈다.

“X 까 X발아!”

가슴속에 맺힌 울혈과 함께 한마디를 토해낸 소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등을 보이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몸을 뒤집어 앞으로 고꾸라지는 대신 뒤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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