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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30화 (30/314)

환관의 요리사 30화

한번 엄포를 놓은 이래 다시 소년을 방해하는 나인들은 없었다. 오히려 대다수 나인이 소년을 없는 사람대하듯이 해 소년은 자신의 본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홍엽비의 몸이 서서히 회복되며 소년은 서서히 식사량을 늘리고 죽 대신 부드러운 다른 요리로 식단을 바꿔나갔다.

탕과 부드러운 찜요리, 그것도 괜찮아 지면 조림요리와 볶음요리, 그것도 적응이 되면 구이요리와 튀김요리까지.

서서히 단계별로 위장의 재활운동을 한 끝에 홍엽비는 볼에 혈색이 돌아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 건강해 보일 정도였다.

오늘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축하하며 성대한 저녁식사를 차리기로 약속했다.

우선은 빼놓을 수 없는 마른 전복요리와 해삼요리. 복건성에서 공수해온 상어 지느러미와 제비집으로 끓인 연와탕에 딱딱하게 마른 사슴 힘줄을 물과 기름에 삼일동안 불려 달콤짭짤하게 조린 홍소녹근(紅燒鹿筋), 애석하게도 웅장은 좋은 물건이 없어 준비하지 못했다.

전복은 푸른 갓을 데쳐 그 위에 술과 전분을 넣은 걸쭉한 소스로 끓인 벽록포어(習綠鮑魚)였는데 전생의 격조 높은 중화요리집이었다면 잘 조려진 전복 하나를 통으로 내어 포크와 나이프로 고급스럽게 썰어 먹게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선 그럴수 없으니 젓가락으로 집어먹기 좋게 얇게 썰어냈다.

황궁에서도 자주 보기 어려운 귀한 식재료들로 한상을 차려 내었지만 홍엽비의 시선은 그런 진귀한 요리들이 차려진 식탁 중앙보다는 그 외곽의, 남들이 보면 구색을 갖추기 위해 서가 아닌가 싶은 평범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에 더 쏠려 있었다.

새콤달콤한 탕추를 끼얹은 튀긴 돼지갈비 당초배골(糖酷排骨)에 팔뚝만한 크고 싱싱한 민물농어를 찐 청증농어(淸蒸農魚), 생강과 구기자, 대추를 넣고 끓인 복건성의 오리요리 강모압(姜母鳴).

통통한 민물새우를 귀한 용정찻잎을 넣고 볶은 용정하인(龍井蝦仁)과 측백나무 씨앗을 먹고 자란 산서성의 명물 백자양을 볶은 총폭백자양육(蔥爆柏籽羊肉) 등등.

상에 올라간 요리는 전부 고슬고슬한 흰 쌀밥과 함께 먹기 좋은 음식이었다. 윤기가 자르르 흘르는 흰쌀밥에 짭조름한 양념은 어떤 의미로는 마약과도 같다.

마지막으로 소년은 상 위에 혼자서는 들기 버거울 만큼 묵직한 단지를 올렸다.

종이로 정중하게 봉하여 그 정체를 알수 없는 요리는 홍엽비의 호기심과 식욕을 동시에 자극했다.

발을 동동 구르는 홍엽비를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은 소년 작은 칼로 틈새를 막은 종이 띠에 칼금을 내어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폭발적으로 솟아오르는 달콤한 향기!

그 달콤함은 설탕이나 꿀 따위의 감미료가 빚어낸 향기가 아니었다.

달큰하게 코 점막을 스쳐지나가는 기름진 향기, 푹 쪄진 돼지비계의 향기였다.

“동파육(东坡肉) 입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항주가 있으며, 항주를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누구나 첫손에 꼽는다는 그 음식. 동파육이었다.

큼직한 단지 안에 검붉은 달콤짭짤한 간장 소스로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도록 조려진 정육각형의 돼지고기 덩어리들은 소년이 살짝 떠내자 그 공기저항에 파르르 떨릴 만큼 부드러웠다.

“정말…….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젓가락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말캉한 껍질을 가르고 들어갔다. 부드럽고 묵직한, 녹인 금속을 젓는 것만 같은 저항감.

말캉한 비계 부분과 푹 물러진 고기 부분을 집어 들자 이렇게 부드러운데도 훌륭한 육중함이 있었다.

인간은 어째서 비계를 사랑하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은, 오히려 순살코기 만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계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째서 기름지고 물컹한 비계를 그토록 애호하는 걸까?

건강을 위해 서도 단백질 함량이 높은 살코기가 더 우수하지 않을까?

그 한입에 그런 모든 논리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야들야들한 껍질 아래로 말랑말랑한 비젯살을 씹으면 기름기가 혀 위로 배어나온다.

한번, 두 번,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으로 스스로 미끄러져 혀위에는 아련한 기름기만이 남았다.

여기서, 쌀밥을 한입.

번들거리는 기름을 쌀알이 흡수하며 넘어가면 기름기가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 건조해진 입안은 또 다시 비계를 원한다.

달고, 짭짤하고, 기름진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 홍엽비는 비의 체면 조차 잊고 동파육을 탐닉했다.

후궁은 지위가 높다고 편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후 후보자쯤 되면 걷는 동작 하나 하나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조차도 예절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음식을 과하게 탐하지 말라.

먹는 동작에도 항상 기품이 있어야한다.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아야하며 먹을 때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음식물이 입안에 있을 때 국물이나 차를 마셔서 넘기는 일은 없어야 하고 국물을 마실 때도 그릇에 입을 직접 대거나 많은 양을 후루룩 소리가 나게 마시면 안 되며 수저로 적은 양을 떠 소리를 내지 않고 입에 머금듯이 마신다.

식탁에서 고개를 과하게 숙여 상대에게 정수리가 보이게 하면 안 되며 음식을 먹기 전에는 항상 시중을 드는 시녀가 기미를 미리 보아야 한다.

하지만 기미를 보아야 하는 시녀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식사를 시작한 홍엽비를 보며 어쩔 줄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어머머, 어쩜 저렇게 상스러우시게!

그녀를 둘러싼 시녀들의 수군거림도 잊고 그녀는 그 시간을 탐닉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시녀들의 시선에 기가 죽어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오직 동파육에만 시선을 집중한 채 모든 예법과 규율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지배당하고 고통받는다. 어째서 사람이 만든 예절은 사람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가?

그저 보기 좋다는 이유,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가?

황궁은 늘 고통이 따르는 장소다.

걸을 때도 쉴 때도 일할 때도 잠을 자는 그 순간마저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 지독한 환경을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평생 남의 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서인지 나이든 환관들의 경우에는 괴이한 괴벽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여장한다던가, 소아성애에 눈을 뜬다던가. 접하기 쉬운 아편이나 술에 빠지는 것 또한 흔한 경우다.

그러니 최소한 먹는 순간만큼은 자유로워야 하는 것 아닐까.

아직 스무 살도 채 넘지 않은 어린 나이의 홍엽비의 얼굴엔 처음으로 제 나이에 어울리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 웃음이 정말로 평범하게 활발한 여자아이 같아서.

그녀를 죽이려 하는 소년은 속으로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아마 자신의 육체의 나이보다 조금많은 정도일 것이다. 기껏해야 열일곱, 그보다 조금 많을까.

늘 의기소침하고 피로한 표정이었으니까.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 그 나이 때의 여자아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

후궁은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사실은 조금 더 행복해도 괜찮았을 사람이었음을, 이런 살벌한 환경에서 고통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소년은 깨달았다.

황제의 여인이라고 하더라도. 대장군의 여식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소년은 두 눈으로 보고 말았다.

소년의 저열한 욕망에 희생당해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럼 슬슬 후식을 준비하지요. 오늘 후식은 달콤한 과일 조림을 올린 행인두부입니다.”

하지만.

옳은 일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일이듯이.

그녀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죄책감은 그녀를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만면에 미소를 띤 홍엽비를 응시하며 소년의 그늘진 얼굴엔 회한을 닮은 기이한 표정이 떠올랐다.

* * *

유독 짙은 구름으로 달이 가려진 밤이었다.

음모를 꾸미기에 좋은 밤이다.

태감의 부름에 따라 연좌궁의 집무실로 향하던 소년은 고상한 어둠에 감쌓인 연꽃 정원을 보며이 아름다움도 오늘로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미한 등의 불빛이 흐릿하게 반짝이는 정원은 낮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탁 트인 시야로 한눈에 들어오는 낮의 모습과는 달리 등의 불빛에 의존해야 하는 밤은 바람에 흔들리는 등의 불빛이 몽환적으로 뇌리 쫴 그 순간순간에 어둠은 장막을 거두고 그 속살을 보여준다.

어둠 사이로 고개를 드는 키 작은 관목들. 그 위로 봄의 마지막을 고백하든 향기를 뿜어내는 목련과 영산홍, 철쭉들.

여름이 되면 정원은 더 아름다워지리라. 녹음이 무르익어 새파란 생명력을 마음껏 뽐내는 계절이 오겠지.

흐드러지게 핀 탐스러운 장미도 여름꽃이고 해바라기에 수레국화, 해당화와 쏙부쟁이도 여름이 제철이다.

이제 새벽에 눈을 뜨고 활짝 핀 나팔꽃을 보면서 여름이 왔음을 실감할 수는 없을 테지.

조금은 감상적인 기분으로 평소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걷던 소년은 이내 이 또한 부질없음에 실소하며 경쾌하게 집무실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벌써 일주일째 태감의 식사를 챙겨드리지 못했구나. 설마 내가 밥을 안 차렸다고 굶고 다니는건 아니겠지?

스스로 생각하고도 우스운 소리에 소년은 코웃음 쳤다.

권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뭐가 아쉬워 굶겠는가? 그런 기특한 사람 같았으면 내가 업고 살았지.

연꽃이 앉은 궁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실내의 등 또한 연등이었다.

기념일이나 축제도 아닌데 사철 연등이 있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전생에 거리에 걸어놓은 오색찬란한 연등도 아니고 은은한 불빛이 튀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시선이 그리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이 연등 하나하나에도 시선이 미쳤다. 어두컴컴한 통로에서 흔들리는 흐릿한 불빛은 사람을 몽환적인 감상에 빠지게 했다.

‘감상적이게 된 것은 다른 이유일지도 모르겠군.’

실없는 생각의 꼬리를 밟으며 소년은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허락 없이 들어섰다. 평소보다 어두운 집무실의 의자에는 마치 잠든 것처럼 의자에 기댄 태감 한 명뿐이었다.

“……배고프다.”

“왜 혼자 처량하게 궁상을 떠십니까.”

“배고파서?”

소년과 함께했던 동안은 세끼에 간식까지 잘 차려 먹어 우윳빛 피부에 장밋빛 홍조가 돌았던 태감은 이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중환자처럼 보였다.

그 모습마저 병약한 모습이 심금을 울리는 미인이 되니 인생이란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처연한 눈동자로 소년을 보던 태감은 이내 서글픈 한숨과 함께 소년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더냐.”

“홍엽비 님 말씀입니까?’

말해 뭐합니까.

소년의 눈동자는 백 마디 말보다 더 쓰디쓴 진실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스친 감정을 죄책감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일일것이다.

자괴감이라고 할까? 그 또한 고백하는 화자를 너무 선량하게 꾸며주는 단어이다.

그러니 지금 이 감정은 그저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이라고만 해두자.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옳은 일만하며 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준비는 끝내 두었습니다.”

소년의 우묵한 눈을 들여다보며 태감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무어라 말해야 할까.

무엇을 말해도 소년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다.

물질적인 유혹은 통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그의 죄책감에 호소한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러니 오운. 너에게 명령하겠다.”

“말씀하십시오.”

순교를 결정한 교인의 맹목성과 광야를 마주한 구도자의 자유로움을 담은 눈동자로 소년은 그의 아름다운 상관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명령으로 소년의 삶은 완성되리라. 첫 번째 삶의 가필이었던 두번째 삶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그의 운명은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홍엽비를 완치시켜서 난화비와 다리를 놓아라.”

“……왜 갑자기 첫 번째 안건으로 돌아간 거죠? 저흰 젊은 신입의 진취적인 의견을 수용하여 궁내 혁신을 일으키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이 고지식한 관료주의적인 직장에선 젊은 신입의 진취적인 의견을 무시당하는 게 보통이란다. 닥치고 하던 일이나 하렴.”

하하하하하 농담도 참.

하하하하하 농담 아니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한참을 담소를 나누었으니 이제는 조금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었다.

소년은 의자를 바싹 끌어와 태감의 코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태감님. 쓸데없는 농지거리로 의중을 떠보기엔 저희가 너무 친밀한 관계가 되었으니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이야기합지요. 겁이라도 나신 겁니까? 그 정도 조작할 정치력도 없으신 건 아니시겠지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이제 정말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 소년은 통쾌하게 할 말 못 할 말가리지 않고 토해냈다.

“허 참, 이제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예, 간덩이 내놓으니 가볍고 편하군요. 그러니 말씀해 주시죠. 어째서 입니까?”

제아무리 소년이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제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것인데 어느 누가 쉽사리 목을 내밀까.

소년이 자신 있게 목을 내건 이유는 태감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라면 자신의 목숨을 가치 있게 사용할 것이다. 그의 목숨을 발판삼아 태감은 승리할 것이고 그의 죽음은 개죽음이 아닌 의미 있는 희생이 될 것이다.

그리 믿었다. 그렇기에 소년이 태감에게 받은 감정은 아마 배신감에 가까우리라.

그런 소년은 눈앞에 둔 태감은 난감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깨를 눌러억지로 앉혔다.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이유란 것이 있다.

“뭐, 어차피 너에게 도덕이니 뭐니하는 이야기는 납득이 안 될 테지? 그러니 본론만 말하마. 네가 너무 뛰어나서 문제야.”

“예? 물론 제 능력이 무척 출중하기는 하지만…….”

“하여간 얼굴 가죽 하나는 두껍다니까.”

낯빛 한번 바뀌지 않고 제 얼굴에 금칠하는 소년의 말에 태감은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얼굴 가죽 두꺼운 것만 따져보면 이보다 더 정치가다운 놈도 없을 것이다. 뛰어난 정치가에게 뻔뻔함은 필수 덕목이니.

‘잔망진 놈 같으니.’

차 한모금을 마시고 말린 차과자 하나를 집어먹으며 태감은 숨을 돌렸다.

창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숨은 귀를 조심하기 위해 창밖을 포함해사방에 그의 측근들이 경비를 서고 있으니 이야기가 샐 걱정은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네게 시선을 주신다.”

“……용의 아들께서?”

대제국의 지배자. 황제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등용문이 열렸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천금 같은 무게는 사람을 걸인에서 정승으로 만들 수도 있고 고귀한 신분도 밑바닥 천민으로 떨어뜨리는 법.

“홍엽비의 병이 육체적인 병이 아닌 심병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니, 육신의 병은 약으로 다스려도 마음의 병은 다스릴 방도가 없다. 그 병을 고치고 홍엽비께서 건강을 회복하셨으니 머지않아 폐하께서도 다시 홍엽비를 찾으실 것이다. 그래, 치료가 너무 빨랐다. 너무 순조로웠고, 그래서 폐하가 너에게 흥미를 느끼셨다.”

황제의 눈이 그를 주시한다면 제아무리 동창의 주인인 태감이라 한들 공작을 펼칠 도리가 없다.

그의 권력이 높다 한들 모든 권력은 황제에게서 나오는 것.

결국, 이 후궁이라는 정치판조차 황제가 내리는 단물을 누가 더 많이 받아먹을지를 두고 싸우는 비참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홍엽비의 치료가 끝나는데로 황제 폐하께서 너와 대면하실 것이다.”

“……저와? 아니, 제가?”

“그래.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개구리 요리를 드시고 싶어 하시고, 또 네게 포상도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된다면 이 후궁에서 소년의 입지는 단숨에 급상승할 터. 그렇다면 이런 ‘소소한’ 모략을 꾸미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납득했고, 수용했다. 그러니 소년은 더는 군말 없이 그 결정에 따르기로했다.

‘아직은 이 비루한 목숨을 조금 더 연명해야겠구먼.’

“예, 그럼 저도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약조한 그 날까지 홍엽비 님을 잘 모시고 돌아오도록 하지요.”

깔끔하게 물러서는 태도에 태감은 잠시 말을 아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짜낸 말을 다시 혀끝에서 굴려보며 고심한 끝에.

태감은 솔직한 심정을 소년에게 털어놓았다.

“넌…… 그게, 올바른 일이었다고 생각하나?”

“……태감님.”

이제 와 무슨 구태의연한 소리를 하시는지. 소년의 시선에도 태감은 해야 할 말을 했다.

“사람을 죽여서 이득을 취하는 일이, 너는 진정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태감께선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동창의 수장으로서, 사리에 올바른 일만을 하며 산 것은 아니었다. 폐부를 찔러오는 소년의 아픈 말에 태감은 숨을 삼켰다.

“그런 진부한 말로 절 훈계하시는 걸 보니 양심이 찔리시는 모양이군요. 그러니 제가 대신 말씀드리지요. 예.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릇된 일이지요, 그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인두겁을 쓴 자가 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군자라고 떠드는 것들뿐만 아니라 개백정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아니라 할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요?”

소년의 투명한 눈동자를 태감은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일에 자신이 없는 자는 소년의 올바르게 그릇된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다.

“세상 올바른 일이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필연적으로 한 명이 이득을 보면 한 명은 눈물을 흘리는 법이지요. 그러니 위정자라는 자들은 어찌 되었든 다수의 행복과 이득을 위해 행동해야겠지요. 그것이 옳든 그르든 말입니다.”

그렇기에 위정자는 그 폭압에 죽어간 사람들에게 거룩한 희생이었다고 공치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태감, 결국 저희들은 황제 폐하를 위해 움직이는 하수인이지요.”

황제 폐하께서는, 분명 저희들의 그릇됨을 덮어주실 수 있을 만큼, 올바르신 분입니까?

소년의 말에 태감은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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