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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28화 (28/314)

환관의 요리사 28화

삶이란 찰나에 단 한 번 번뜩인 번갯불과도 같은 것이다. 단 한 번, 그 한순간 빛나기에 인간은 스스로의 인생에 매달리고 때론 다른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가치에 목숨을 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는 멍청하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겐 희극일지도 모르는. 짧기에 애달프고 길기에 고달픈 것.

그렇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논다.

때론 실패해 울고 때론 성공의 희열에 웃을 우습고 처연한 것. 별것 아닌 것에 아웅다응하고 지나면 그만인 것에 벌벌 떨면서.

한 번뿐인 삶은 새롭고 가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삶은 어떨까.

처음처럼 애틋할 수 있을까. 노력할 수 있을까. 발버둥 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슬퍼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결국 빛이 바래는 법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평범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요리에 흥미를 느꼈고,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가 주방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외국인 신분으로 외교관저에서 외교관들을 상대로 만찬을 만들기도 했고 주석궁에서 각국 수상들을 상대로 요리를 한 적도 있었다.

요리사로서 더할 나위 없는 명예가 아닌가.

요리사 협회에서 높은 지위를 제의 받기도 했고 여러 잡지사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달려왔다.

세계 영향력 있는 백 명의 요리사중 한 명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끝으로 자신만의 가게를 열어보기도 하지 않았나.

누려볼 것을 전부 누렸고, 이루어야 할 것도 이만하면 만족스럽게 이루었다.

삶에는 목적이 필요한 법이다. 살아야 할 이유, 이뤄야 할 꿈. 그것을 연료 삼아 사람은 사랑하고 욕망하고 욕정하며 살아가고, 그 연료를 태운 끝에 늙어간다.

이제 소년에겐 어떤 이유가 남아있을까. 구더기 시절에는 그저 살아야 한다는 본능뿐이었다.

그 본능 하나로 소년은 벌레처럼 웅크렸고 그늘로 숨어들었다. 비참해도 비참함을 느끼지 못했고 아파도 아픈 줄 몰랐다.

‘하지만, 이젠 아니지.’

피곤하게 하고 귀찮게 하지만 그런데도 태감은 소년에게 은인이었다.

음습한 곳을 기던 버러지를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 줬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였다.

그리고 그 보은은 이제 소년의 삶의 목적과 결부되어 완성되었다.

긴장이 풀리고 몸에 떨림이 멈췄다. 그 순간 소년은 고통과 고뇌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스스로의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는. 그 또한 선택하지 않는다는 자유이리라.

자신의 목숨을 태감에게 내 맞긴채로 소년은 느긋하게 태감을 올려다보았다.

혼탁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 자신의 서푼짜리 목숨에 이토록 갈팡질팡하는 것은 분명 그의 선량함에 빚을 지우는 소년의 비겁함 이리라.

그렇기에 소년은 다시 한번 쐐기를 박고자 했다.

“태감. 대의를 생각하시지요.”

지치고 피로하지만, 소년의 눈동자에는 투명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평생을 짊어진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게 된 자의 여유, 후회할 것보다 추억할 것이 많은 자의 기쁨, 걱정해야 할 남은 자가 없는 독신자의 자유로움.

소년을 마주 보며 태감은 그 투명한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혼란에 가득 차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선 당당하고 여유 넘쳤던 자신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어째서 자기 죽음을 말하는 자가 저리도 여유로워 보일 수 있을까.

태감의 눈에 비친 소년은 이미 죽을 날을 잡아둔 노인도 아니었고 배수진을 친 장수도 아니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을 어린것의 눈에선 닮고 닮은 노병의 회한이 있었다.

죽는다. 목이 잘려 머리는 소금에 절여질 것이고 몸은 들판에 묘비도 없이 버려져 들개와 새들이 목 없는 시신을 뜯을 것이다.

이름도 제대로 없는 소년은 태감의 기억에서나 희미하게 남을 것이고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본 이들 누구하나 소년의 죽음을 애도할 이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비참한 개죽음이다. 어찌그런 죽음을 자초하느냐?

태감의 말에 소년은 그저 웃어 보였다. 입매가 기이하게 비틀려 결코 평범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광기에 찌든 웃음은 아니었다.

조금 지친 듯했고 냉소적인 듯, 자조적인 듯하면서도 소탈한 그 웃음을 마주한 태감은 소년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가 없었다.

남의 위에서는 이로써 무수한 이들의 죽음을 보아 왔다. 억지로 끌려가듯이 가는 이. 자신은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이.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 자리로 가는, 담담하게 최후를 맞이하러 가는 이.

“넌…… 그래, 그렇구나.”

넌 죽을 자리를 찾은 거구나.

소년은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 * *

나이가 들수록. 목표를 이뤄 갈수록 진취적이고 열정적이던 젊음은 자신이 쌓아 올린 성과와 함께 보수적으로 변해간다.

걷는 시간보다 뛰는 시간이 더 많았던 젊음은 늙어갈수록 서 있는 시간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앉아 있던 시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며 사람은 삶의 끝을 마주하게 된다.

그 끝에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는 소인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가 없다.

대부분 인간이 그러했고 소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코 죽음 앞에서 당당한 대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소인배인 소년은 자기 죽음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다.

신념, 대의, 의리 따위의 것으로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미 진취적인 목표를 찾아 있는 힘껏 두 번째 인생을 즐기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너무 지치고 힘들어그것을 포기하려는 주제에.

자신의 죽음을 자살이라는 형태로 납득 시킬 수가 없는 소년은 그렇게 하기엔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이유로 의미 있는 죽음이란 판을 잤다.

그 시체는 부관참시당할 것이고 장대에 걸린 머리는 민중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구더기가 필 때까지 내걸릴 것이다.

애초에 기억할 만한 멀쩡한 이름도 없으니 누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할 일도 없을 것이고 이 세계에선 이렇다 할 만한 업적을 이룬 것도 없다.

하지만 태감이 소년을 기억할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매끼 그의 식사를 챙겼던, 자신이 사람으로 만들어준 소년이라는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태감이 그를 기억할 것이다.

태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소년은 일말의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느꼈다.

자신의 죽음을 장식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저열하고 이기적인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를 기억할 이들의 고통, 사후에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모르는 미래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겨 버리는 무책임한 행위는 도저히 나이를 먹고 성숙한 어른이 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흐릿한 등불 아래에서 소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안압이 오르는 것처럼 눈두덩이가 뻐근했다.

발끝부터 조금씩 뜨거운 물에 젖어가는 것처럼 나른하게 녹아내리는것 같았다.

지치고, 피곤했다. 원치 않는 형태로 끝난 인생 그 이후의 두 번째 인생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살벌한 후궁에서 늘 긴장감을 유지하며 사는 것은 그의 정신을 빠르게 쇠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최후를 초라한 자살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년의 마지막 오기와 집념을, 태감은 가장 적절할 때에 완성해 주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군자의 길에 때론 작은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요.”

군주라면 누구나 잔혹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법이다. 그로 인해 판도가 변한다면. 그 결정으로 인하여 세계가 바뀐다면. 그를 위해 희생당한 이들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성공한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미담이 된다.

소년의 말에는 그 세계를 보지 못하고 죽는 것에 대한 애석함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순박한 기대감을 품은 목소리 앞에서 태감은 메말라 갈라진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것이 네가 말하는 대의냐?”

“군자의 도리이고, 관리의 직업윤리이자 궁극적인 자아실현 아니겠습니까?”

소년의 가벼운 농지거리에 태감은 허탈한 듯 한숨을 지어 보였다.

“아직 유예를 두지요. 홍엽비 님이 건강을 회복하시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까요. 그리고, 이미 쇠약해지신 홍엽비 님보다는 건강을 회복하신 홍엽비 님 쪽이 조금 더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여 주겠지요.”

내일부터는 홍엽비의 남양궁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쓴 잔을 눈앞에 둔 태감을 집무실에 남겨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소년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부터는 임시기는 하지만 새로운 직장생활이 시작될 테니까.

* * *

웅성되는 나인들을 무시하고 소년은 넓은 주방의 한가운데에서 죽을 끓이고 있었다.

간패(干貝, 조개관자를 껴서 말린 것)를 물에 불려 그 불린 국물과 함께 끓이며 거기에 쌀을 넣고 끓여 묽게 퍼지게 한다.

부죽(腐竹, 말린 두부껍질)을 넣어 녹아들도록 부드럽게 끓인다. 부죽은 쌀을 부드럽게 하고 죽에 찰기를 더하며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크고 싱싱한 민물새우를 골라 껍질을 벗기고 생강즙을 더해 곱게 간다.

새우 살과 같은 양의 흰살생선도 갈아 절구에서 곱게 으깨지게 하고 다 으깨지면 굵게 다진 새우살을 더넣고 다진 파 약간을 넣어 엄지손가락 마디 하나만 한 크기로 떼어 완자로 만든다. 이것을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쳐낸다.

두 시간을 뚜껑을 덮지 않고 약불로 졸인 죽은 수분이 날아가 적당히 걸쭉해지는데 여기에 완자를 넣어 완자가 익을 만큼 끓여낸다.

먹기 마지막에 미리 풀어둔 계란을 넣어 이삼 분을 더 끓여낸다.

곁들일 것은 바늘처럼 가늘게 채를 씬 생강을 간장에 절여 내고 곱게 다진 파와 착채(榨菜) 약간을 낸다.

착채는 채 쳐서 물기를 빼 꼬들꼬들하게 한 다음 참기름 약간, 다진 마늘 약간,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려낸다.

홍염비의 아침식사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 단출하기 그지없는 구성에 주변의 나인들이 당황하며 소년을 만류했다.

‘아니, 그럼 고작 아침을 먹는데 만한전석이라도 차려 내라는 거냐?’

전날은 홍엽비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기 위해 그럴듯한 요리를 차려 냈지만 본래 그 정도로 식사를 오랜기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유동식을 섭취하며 천천히 경과를 보는 것이 상식이다.

자신들이 만든 오리 찜 요리를 자꾸 내려 하는 나인들의 행태에 분노하며 역정을 낼까 하면서도 점잖은 신사 정신을 발휘하여 화를 참은 소년은 이를 악물고 그 요리들을 물렸다.

아무리 의료상식이 형편없는 세계라고 하더라도 속이 안 좋은 환자에게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소량.

이것은 상식의 영역이 아닌가!

그놈의 황궁의 체면이 뭐라고 아침부터 기름을 철철 넘치게 쓴 돼지고기에 오리찜이 가당키나 한가?

‘염병, 진짜 옛날 같았으면 찍어버렸을 텐데. 진짜 나도 많이 죽었다.’

불꽃 같았던 젊은 날을 추억하며 소년은 홍엽비 앞에 죽을 떠올렸다.

아직 잠이 채 깨지 않은 지 몽롱한 표정의 홍엽비는 이내 차 한 모금으로 입을 행구고 천천히 죽을 떴다.

통통한 새우와 생선 살을 정성껏 치대어 탄력 있는 식감이지만 기름기가 적어 속에 부담이 덜한 완자는 간장에 절여진 생강을 약간 올려 먹으면 톡 쏘는 향기가 코안 쪽에서 은은하게 올라왔다.

작은 새가 모이를 쪼아 먹듯이 입을 움직여 수저 하나를 비우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수저를 다 비우고 나서도 입안에는 아직 음식물이 남아 있는지 한동안 입술을 우물거리고 난 후에야 다음 수저를 뜬다.

천천히 완자와 죽을 뜨고 그 위에 생강을 약간 올린다. 절인 생강이 죽 위에 올라가 간장이 흰 죽을 물들이는 것을 조금 지켜본 후에 다시 수저를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죽을 먹으며 조금씩 잠이 깨는씨 고개를 든 홍엽비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피었다.

상자에서 주워온 눈도 뜨지 못한 고양이 새끼가 간신히 젖병을 문 것만 같은, 자신의 손으로 작은 생명이 생을 연명하는 것만 같은 감동이 있었다.

이런 감동이 좋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변변치 못한 자기 긍정의 동력원이 되어주니까.

저열한 쾌감을 느끼고 있는 소년에게 배가 찰 만큼 식사를 마친 홍엽비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잘 먹었어요.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죽을 먹네요.”

“그러십니까? 그거 다행이군요. 앞으로 한동안은 더 죽을 드셔야 하니 말입니다.”

“한동안……인가요?”

홍엽비의 얼굴에 싫은 기색이 비쳤다. 제아무리 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삼시 세끼를 죽으로만 때워야 한다면 역시 꺼려지는 것이 사실 이리라.

하지만 소년은 완강하게 초기 방침을 고수했다. 어디까지나 위장의 안정이 최우선.

죽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어 지면 탕요리와 부드러운 찜 요리에 밥을.

그리고 거기서 서서히 볶음, 구이 순서로 넘어가고 식재료 역시 채소와 해산물에서 가금류, .

그다음에 육류 순서로 넘어가고 맛 또한 슴슴하고 연한 간에서 진한 간, 그리고 매운맛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위장은 탄력 있고 강한 장기인 만큼 한번 망가지면 돌이키기가 힘들다.

특히 포도당 수액 같은 다른 연명수단이 없는 이곳에서 한번 위가 고장 나면 그것은 사형선고와 다를 것이 없다.

상대는 홍엽비였다. 황제의 여인이자 대장군의 여식, 그녀의 목숨은 다른 서푼짜리 목숨들 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녀를 죽일 모략을 꾸미면서 그녀를 건강하게 만들 계획을 짠다. 이위선적이고 모순적인 행동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소년은 더욱 밝게 꾸민 미소로 홍엽비에게 대답했다.

“예, 최소한 이삼 일은 죽을 드셔야겠지요.”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지는 흉소에 홍엽비 뒤에서 있던 시녀들이 흠칫 놀라 물러섰다.

하지만 역시 대장군의 여식답게 흉험한 사내의 외모가 익숙한지 홍엽비는 옅은 미소를 띤 처연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런가요, 이삼일은…… 죽인가요.”

“예. 사흘이 지나면 그다음부터는 찜과 탕을 곁들인 밥을, 그것이 익숙해 지면 조림요리와 볶음 요리를, 그다음에는 밀가루 음식과 구이 음식을, 그다음에는……네. 튀김이라도 올릴까요? 아니면 매운 음식도 좋겠지요. 완쾌의 의미로.”

매운 음식이라는 말에 홍엽비가 반색을 하며 탄성을 질렀다. 이슬만 마시고 꽃의 꿀로 식사할 것 같은 가녀린 외모와는 다리게 홍엽비의 출생지는 호남성.

사천과 함께 매운 요리로는 손에 꼽는다는 곳이었다.

산초의 얼얼하고 혀를 찌르는 매운맛을 중시하는 사천과는 달리 고추의 화끈한 매운맛을 중요시하는 호남의 요리는 소년의 저번 생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추천하는 중국요리로 유명했다.

맵고 기름지고 먹다 보면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런 요리. 분명 홍엽비가 애타게 기다리는 요리는 바로 그런 요리일 것이다.

전날 홍엽비의 상세한 출신지를 듣던 소년은 평소 황궁의 음식을 먹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을 홍엽비에게 애도를 표했다.

사람은 새로운 자극에 익숙해 질수는 있어도 자극이 없어지는 것은 견디질 못하는 법이다.

현 제국의 수도인 경사의 요리는 전생의 안휘요리와 절강요리와 체계가 비슷한데 무를 중시하고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진족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요리는 전체적으로 기름기가 적고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심심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내륙지방의 특성상 바닷물고기가 적고 민물고기와 민물새우를 주로 먹으며 특히 가금류를 중요하게 생각해 가금류를 이용한 저장식품이 발달한 편이다.

좋게 말하자면 담백하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싱겁다.

그중에서도 황궁의 요리는 까다롭기 그지없다. 오래전 자신들의 특별함을 더욱더 부각하고 싶었던 이들은 황궁의 요리를 등급으로 나누고 관직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

그것들은 삼단계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가장 상등급은 조리법도 찜과 탕 등의 화기를 적게 받고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음식에 가금류와 생선, 훌륭하고 진귀한 버섯과 말린 패주나 해삼 따위의 것들과 산에서 잡은 사슴이나 멧돼지, 곰 따위의 야생 짐승 음식과 좋은 차이다.

상급의 음식은 부드럽고 촉촉하며 맛이 세지 않고 사람은 윤기나고 건강하게 한다.

중급은 볶고 튀기고 구운 화기를 직접 받은 음식으로 식재료는 돼지나 양 따위의 가축과 밭에서 기른 채소들이며 술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중급의 음식은 간이 세고 매우며 배를 부르게 하고 살을 찌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하급의 음식은 음식을 날것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며 제아무리 상급의 식재료도 날것으로 먹으면 최하등품의 열등한 것으로 본다. 그 외에 식재료로는 늙은 소나병이 걸린 가축이다.

하급의 음식은 소화하기 어렵고 쓰며 사람을 병들게 한다.

물론 이것들은 고리타분한 옛 관습과 함께 선황제 시절에 이미 철폐되었지만, 인식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황궁의, 그것도 오상비(五祥妃)쯤 되는 귀인의 식탁에는 여전히 간이 심심하고 너무 기름지지 않으며 찌고 삶은 요리가 주를 이루었다.

덥고 습습한 곳에서 그 무더위를 이길 만큼 화끈한 요리를 즐겼을 홍엽비에겐 그리 내키지 않은 시간이었으리라. 매운 요리라는 말에 홍엽비는 눈을 반짝였다.

“그렇네요. 어린 시절에도 쓴 약을 삼키기 전에 달콤한 간식을 주겠다 약조를 받고는 했지요. 물론, 이런 약이라면 달콤한 간식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삼키겠지만요.”

배시시 웃는 그 모습에 소년은 무심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저 미소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소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녀를 독살하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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