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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26화 (26/314)

환관의 요리사 26화

활활 타오르는 듯한 이삼의 눈동자에 각오를 다진 비장함이 엿보였다.

그 눈동자에 소년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그 강렬한 의지가 담긴 눈동자에서 말할 수 없는 피곤한 미래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이삼의 손이 소년의 옷자락을 쥐었다. 마른듯해 보여도 태감의 호위무사답게 손아귀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노래 알려주시면, 저도 제 비밀을 말해드릴게요.”

“아니, 진짜 필요 없어요.”

“전 사실…….”

“아 넣어 둬 이 미친 인간아!”

‘어떤 미친놈이 노래 좀 듣겠다고 지 비밀을 까발려?!’

여기서 저 비밀인지 뭔지를 들으면 수렁에 발을 담그게 될 것 같다는 직감에 소년은 옷자락을 쥔 팔을 떨치기 위해 힘을 주었다.

볼품없이 말랐어도 하루 수 시간 이상을 철과를 휘두르는 중노동을 하면서 보낸 소년은 그 삭정이 같은 팔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발휘했다.

“웃?!”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전문가, 일반인의 영역이었을 뿐이다.

태감의 호위 무사로서 온갖 무술을 섭렵한 이삼은 팔을 떨쳐내려는 소년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팔을 엮어 절묘하게 제압했다.

근위 무술에 문외한인 소년은 몰랐지만, 이 자리에 위정이 있었다면 이삼의 뛰어난 금나술에 혀를 내둘렸으리라.

손목과 팔을 잡혀 꼼짝할 수 없는데도 억지로 힘을 주지는 않으면 그 자세가 그리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소년은 공포감을 느꼈다.

상대를 다치지 않게 제압할 수 있다면 다치게 하는 것은 더 쉽지 않은가?

“전 사실, 지난 대전에 멸족당한 서장 금익족(金翼族)의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이에요.”

‘그만해 X발 새끼야…….’

소년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삼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단순히 이 자리를 빌려 자신이 숨겨온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욕구가 분출된 대상이 우연히 소년이었던 것이다. 소년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금익족. 서장에서 융성한 일족으로 대대로 뛰어난 가인(歌人)이 많기로 유명했던 일족이었다.

서장 전체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노래와 음악을 가업으로 살아가는 금익의 일족은 서장에서 큰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빠지지 않는 일족이었다.

금익의 적자는 대대로 일족의 노래를 전승하는 역할을 하며 뛰어난 노래가 있으면 그것을 익히고 보완해 일족에게 퍼뜨리는 것을 숙업으로 하므로 좋은 노래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인다고 하며 이삼은 다시 한번 간곡하게 소년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오직 노래와 음악만을 가업으로 삼고 피 묻은 재물을 탐하지 않아 적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덕분에 오래전 군응들의 춘추전국 시대에도 일족의 무해함을 인정받은 그들은 그 삼엄했던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룡 진씨가 제국을 세우고 나서는 그들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금익족은 대대로 용을 잡아먹는 신조, 가루라를 신앙하는 민족이에요. 대대로 금룡을 신앙하는 진 씨 일족과는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죠. 저희 일족과는 다르게 무를 숭상하며 천하를 일통시킨 진족은…….”

“아니, 거기까지 합시다. 표정 안 좋아요.”

창백하게 굳어진 이삼의 얼굴을 보며 소년은 침음을 삼켰다. 그깟 노래가 뭐라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까?

까무잡잡한 피부에 제국인 치고는 색소가 옅은 눈동자는 서장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늘 활기차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잔뜩 곯아 화농이 가득 차 있었는지 말을 마친 이삼은 숨이 턱턱막힌다는 표정으로 연거푸 찬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늘 자신에게 변명하듯이 ‘이런 시대’ 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 세상은 앳된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너무 쉽게 지우고 만다.

모든 어린아이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겠지마는, 최소한 눈앞아이의 입에 미소를 띄워주는 거라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예, 알려줄게요. 그러니까 울지는 마요.”

“예? 아…… 안 울었는데요?”

“그렇다 칩시다.”

늦은 밤. 어슴푸레한 불이 꺼지지 않은 주방에서는 낮은 노랫가락이 이어졌다. 뛰어난 미성은 아니었지만 구수한 노랫가락이었다.

* * *

“피로해 보인다.”

“괜찮습니다. 가시죠.”

눈 밑으로 거뭇한 기색이 엿보이는 소년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미 소년이 준비해 둔 재료들은 전부 남양궁의 주방으로 가 있었다.

입고 있으면 거북스러운 복잡한 예복을 걸친 소년은 스스로의 꺼벙한 모습에 실소를 터뜨렸다.

몇 번을 입어도 익숙해지기가 어려운 복장이다.

환관의 예복에 옷이 날개라는 옛말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곧은 자세와 맵시있는 몸을 유지하는 훈련을 해온 환관들을 위해 만들어진 예복인 만큼잘 어울리는 사람이 입으면 이보다더 세련되고 멋질 수가 없지만, 소년처럼 구부정하고 옷맵시가 살지 않는 인간이 입으면 이보다 더 비참할 수도 없는 게 환관의 예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오늘 소년은 비들의 눈요기를 위해 남양궁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홍엽비를 치료하기 위해 이 불편한 예복을 차려입었다.

다시 찾은 남양궁은 전과 다름없이 아름다웠다.

물이끼 낀 수로 사이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계곡으로 피서를 갔던 추억이 떠오를 법도 하건만 오늘 소년은 더없이 경직된 표정으로 앞을 보며 걸었다.

아름다운 풍경, 잠깐 쉬어가라는 듯 이 유혹하는 산들바람과 달콤한 새의 지저귐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궁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잠깐의 대기시간을 기다린 끝에 면회 허락이 떨어졌다.

“어서 오세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대접이 미흡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번에 보았을 때도 홍엽비는 조금 여윈 느낌이 드는 여인이었다. 아니,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우리라.

왜소한 소년과도 시선이 마주칠 정도로 작은 키에 눈망울이 커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운 외모였던 그녀는 바싹 메마른 야윈 모습조차 애처롭고도 사람의 심금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미인은 곧 죽어도 미인인가 보구만.’

혼자서는 제대로 서는 것조차 힘들어 시녀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그녀는 마치 갓 태어난 사슴처럼 몸을 떨며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누구 때문에 잠을 설친 소년도 몰골이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피로감과 기아에 시달리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슴 시릴 만큼 처참했다.

태감의 신호와 함께 깊이 읍하고 자리를 나선 소년은 즉시 소년의 짐이 도착해 있을 주방으로 향했다.

크기가 작은 연좌궁 과는 달리 남양궁의 주방은 일류 호텔의 주방만큼이나 면적이 넓었다.

그 넓은 주방에서 분주히 일하던 나인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소년은 주방 한가운데에 마련된 도마위에 자신의 채도를 꽂았다.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에 몇몇 나인들이 어깨를 떨었다.

자신들의 일터에 흙발로 침입한 괴한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인들의 시선은 대부분 적대적이었지만 소년은 그런 시선에 조금도 개의치않고 요리를 완성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홍엽비가 현재 유일하게 입에 대는 음식인 맑은 청탕(淸湯)을-

“잠깐만요.”

주방 나인들을 통솔하는 위치인 듯 한 키가 작고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나인이 소년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녀의 손에는 그녀들이 직접 우려낸 듯한 닭 육수가 들려 있었다.

“이걸 쓰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같은 출신도 알 수 없는 사람이 끓인 탕보다는, 홍엽비 님이 유일하게 드시는…….”

그녀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소년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국자로 육수를 떠 맛을 보았다.

그 무례한 행동에 나인이 소리를 치려 했지만, 와락 일그러진 표정의 소년이 내뱉은 말이 먼저였다.

“생강을 빼는 시간이 늦어. 오래끓인 생강의 지린 맛이 난다. 닭은 충분히 자라지 않은 놈을 썼군. 고기는 부드러울지 몰라도 국물맛이 약하다. 홁 맛이 나는데 파 뿌리를 잘 다듬지 않은 모양이지? 파 뿌리는 약재로서 효험이 좋을지 몰라도 오래 우리면 흙 맛이 우러난다. 그리고 희미하게 닭 비린내랑 피 냄새가 나. 내장 손질이 미흡하다는 증거다. 그리고 탕에 기름이 많이 떠있어. 닭을 손질할 때 기름을 충분히 떼어내지 않는 증거다. 감점. 감점. 감점. 감점. 감점. 홍엽비 님의 식탁에 이런 걸 올리다니. 제정신이냐? 개밥으로 갖다 버려라.”

내뱉은 소년도 깜짝 놀랄 만큼 쇠를 긁는 것 같은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마 객관적으로는 썩 나쁘지 않은 탕이었을 지도 모른다. 혀가 예민한 소년이기에 느낄 수 있는 미약한 잡맛까지 모조리 감점처리 한 것은 부조리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오랜 시간 남양궁의 주방을 책임져온 나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수면 부족과 긴장으로 잔뜩 독오른 소년은 그 미세한 잡맛 하나하나가 전부 거슬렸다.

독살스러운 살기마저 느껴지는 소년의 폭언에 나름 제 밥그릇을 챙겨보겠다고 나선 나인은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런 나인에게 자신의 청탕을 약간떠준 소년은 이내 요리를 완성하여 내갔다.

소년의 전율적인 광기를 마주하고 얼어버린 선임 나인은 무의식적으로 청탕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

입이 쩍 달라붙을 만큼 진하지만, 결코 과한 기름기로 끈적한 뒷맛이 남지는 않았다.

향신채의 기분 좋은 향기는 남았지만 지분거리는 불쾌한 끝 맛은 조금도 없었다.

모든 요리의 기본이라는 육수, 그 육수를 내는 요리사들이 지향해야 할 궁극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감탄 후는 무례한 언동에 대한 분노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찾아왔다.

탐욕과 증오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인이 고개를 든 순간 소년은 이미 요리를 완성한 후였다.

그녀의 입술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면서도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은 소년은 요리가 완성되자마자 곧바로 요리를 날랐다.

마주 앉아 태감과 힘겹게 담소를 나누고 있던 홍엽비는 앞에 놓인 그릇에 꺼림칙한 표정을 보였다.

태감이 데려온 정체불명의 요리사는 그녀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는 외인이었다. 태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홍엽비의 마음에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자리 잡은 후였다.

하지만.

“향기가…… 아주 좋네요.”

평소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향기에 홍엽비의 바싹 메마른 입안에 조금씩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온 것은 홍엽비가 식사를 거부한 이래 쭉 입에 대온 유일한 음식인 청탕이었다.

찻잔보다 조금 큰 사기그릇에 담겨나온 청탕은 그윽한 향기가 뭉근한 김을 타고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국물을 뜨기 위한 사기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왔다. 국물을 뜨기 위해 수저는 필요해도 젓가락은 필요 없을 텐데?

의문은 곧 풀렸다. 태감이 젓가락을 그릇 안에 넣어 무언가를 집어올린 것이었다.

“아…… 당면…….”

색이 진한 간장으로 색을 낸 육수 안쪽으로 한 젓가락 분량 소량 담겨있던 투명한 당면이었다.

입구가 넓지는 않지만 제법 깊은 그릇 바닥 안쪽에 음영이 져 겉으로 보기에는 투명한 육수만 담겨 있는 듯했다.

투명한 당면과 육수 외에 다른 고명은 보이지 않았다. 육안으로 봐도 다른 문제 될 것 또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먹을 수 있는지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었다.

심지가 약한 그녀에게 한번 생긴 뚜렷한 공포감은 떨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악몽으로 떠오르는 일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대로 가면 아사할 것을 알면서도 쉬이 입가에 음식을 대지 못할 만큼 그녀의 공포심은 막연하고 깊었다.

하지만 그렇게 심지가 약한 만큼, 눈앞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어치우는 태감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쉽게 휩쓸려 버리기도 했다.

후루루룩-

소리를 내며 먹지 않는 예법조차 잊고 찰지게 당면을 빨아들인 태감은 면 만으론 아쉬운지 수저도 사용하지 않고 그릇째로 입으로 가져가 국물을 들이켰다.

다른 이가 보면 예법을 무시하는 모습에 혀를 찰 만도 하건만 태감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할 만큼 간 큰 나인 또한 없었다.

태감의 가면 아래로 선홍빛 입술이 육수 한 방울까지 호로록 마시자 나인들중 일부가 애달픈 한숨을 흘렸다.

홍엽비의 시선은 그 면발에 고정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 거부감 없이 먹었던 음식, 쫄깃하고 탱탱한 면발은 밀가루로 만든 것과는 다른 탄력이 있다.

입이 짧은 그녀가 일부러 가끔 찾을 만큼 좋아하는 식재료였는데…….

홍엽비는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젓가락을 쥐는 것만으로도 팔 근육이 떨려왔다. 젓가락의 무게감을 이 정도로 실감한 것은 얼마 만일까?

상상 이상으로 자신의 몸이 병약해짐을 실감하며 홍엽비는 당면을 빨아들였다.

기력이 없이 흡입력이 약해 면발이 입안으로 전부 들어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입안을 채우는 액체가 아닌 것의 무게감. 혀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따스한 온기와 당면 가락의 매끄러움.

씹을수록 탄력 넘치는 당면은 진한 육수에 휘감겨 그 뜨거운 온기를 홍엽비의 위장에 전달해 주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음식일까.

이 얼마 만에 먹어본 음식다운 음식인가.

참된 음식이 가져다주는 먹는다는 기쁨을 홍엽비가 다시금 실감하는 것을 보며 소년 역시 마음속으로 첫관문을 넘었다는 것을 자축할 수 있었다.

한번 물고가 풀렸을 때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홍엽비가 그릇을 비우자 곧바로 다음 요리사 식탁에 차려졌다.

“서양식 효육, 아스픽입니다.”

무늬 없는 깨끗한 사기그릇 위로 타원형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고기와 채소로 만들어진 꽃이 투명한 육수로 굳어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정원처럼 보였다.

건더기가 많은 음식에 거부감을 보이는 홍엽비 조차 소년이 칼을 들었을 때 안타까움에 탄식을 내지를 정도였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계속 두고 볼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 열흘 붉은 꽃이 어디 있겠는가.

꽃은 저물게 마련이고 음식은 썩게 마련이니.

한 조각 크게 잘라낸 덩어리를 접시에 올려 내자 머뭇거리던 홍엽비 대신 먼저 태감이 젓가락을 들었다.

“음, 효육의 말랑말랑한 육수 부분이 많은 느낌이군. 안에 든 재료도 다채롭고. 취향은 좀 가리겠지만 괜찮은걸.”

그렇게 태감의 열렬한 리액션에 힘입어 홍엽비는 서서히 아주 조금씩 소년이 내놓은 음식을 섭렵해 나갔다.

얇은 쌀가루 피로 속 내용물이 반쯤 비쳐 보이는 장분장분(腸粉), 눈앞에서 살아 있는 새우를 요리하여 싱싱함을 증명하는 활창하(活浴蝦) 등등, 소년이 갖가지 수를 써서 위험한 물질이 없음을 증명한 음식을 먹으며 홍엽비의 여윈 뺨에도 슬그미니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럼, 마지막 요리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며 소년이 내민 것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이 아닌 검붉은 돼지 콩팥 한 덩어리가 덜렁 올라 있는 접시였다.

콩팥뿐만이 아니었다. 새우, 대파에 생강, 포랄초(홍고추를 백주와 생강, 산초, 소금에 절인 것)가 재워진 작은 항아리도 상 위에 올랐다.

“오늘 마지막 요리는 초하요(秒蝦腰)입니다.”

돼지의 콩팥과 새우를 볶은 이 요리는 혈행을 촉진하고 신장을 튼튼하게 하는 콩팥을 먹기 좋은 요리다. 몸이 약해진 만큼 장기 기능도 약해진 홍엽비에게 어울리는 음식일터.

조금 무서운 듯한 얼굴로 콩팥을 보는 홍엽비에게 소년이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 음식은 만드는 것을 직접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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