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5화
거식증이란 무엇인가? 폭식증과 함께 섭식장애의 일종이며 호전될지언정 완치는 어렵다고 하는 난해한 질병이 아닌가.
세계적인 석학들도 머리를 싸매는 것을 감당하기엔 소년의 어깨가 너무 좁았다.
거식증.
달리 말하자면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살을 빼려는 지속적인 행동, 체중 감소, 음식과 체중과 연관된 부적절한 집착, 음식을 다루는 기이한 행동,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음식으로 풍요로운 현대에 크게 대두가 된 질병이지만 중세 유럽에서도 금욕주의 열풍이 번지며 종교적인 이유로도 거식증이 생긴 경우도 있었다.
“하필, 거식증이라니……?”
거식증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환자의 치료 의사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외적인 요인으로 생긴 병이라면 살을 째고 독한 항암제를 써서라도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생긴 병은 환자가 치료를 거부해 치료행위 자체를 성립시킬 수가 없다.
어렵고 난해하다. 솔직히 이쯤 되었으면 적당히 하고 의원에게 넘어갈 일이 아닌가.
삐딱한 태도로 듣고 있는 소년에게 태감이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식사를 거부하는 이유가 체중 감소 같은 이유가 아니라는 점이겠지. 가뜩이나 체구도 작고 가벼운 분이 그러시면 정말 감당이 안 되었을 거다.”
“그럼 식사를 거부하는 이유는요? 가뜩이나 앓아 누우신 분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면…….”
소년의 말에 태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그 모습에서 소년은 태감에게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인간미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천상의 미의 화신의 그림자에서 엿보인 인간적인 고뇌에 소년은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댁도 결국은 인간이었구려.’
소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감은 한숨을 토하며 홍엽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무서워서란다. 무서워서. 도대체 괴질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당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꺼림칙한 모양이다.”
“허이고…… 거 골치아프군요. 그래서 아예 아무것도 안 드신 답니까?’
“뭐, 맑은 차와 건더기 없는 닭 육수 정도는 먹지만 건더기가 많거나 속이 불투명한 액체는 입도 못 대신다는군.”
아예 아무것도 먹지 못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뭐, 최악의 상황이라도 당장 설탕물과 소금 정도만 섭취하면 목숨은 연명할 수 있으니 소년은 시름을 덜었다.
“뭐, 그 정도는 드신다면 당장 죽을 일은 없으시겠군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마르고 볼품없어질 테지.”
“그럼 더 잘된 것 아닙니까. 황후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 중 한 명이 자동으로 낙마하면. 그대로 집에 돌아가 주면 더 좋겠군요.”
속 편한 소년의 말에 태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사가 그렇게 순탄하게 풀리면 누가 걱정하겠느냐는 무언의 질책에 소년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확실히 많이 컸군. 이 녀석…….
“다시 말하지만 팔군도독 당량대장군은 보통 팔불출이 아니다. 지금이야 다른 비들도 함께 걸렸기 때문에 조용하지만, 설령 팔불출이 아니더라도 앓아누운 딸을 보고 어느 부모가 멀쩡하겠느냐? 제아무리 충신이라 하더라도 혈육의 정은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실제로 봉비 하나와 화비들이 참수된 것은 당량 대장군을 진정시키기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했다.
정치판의 싸구려 방패막이가 된 그녀들에 대한 애도는 누가 바쳐야 한단 말인가?
쓴 감정을 삼키며 소년은 태감의 말에 집중했다.
태감의 당황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년이 들여다보고 있는 태감의 감정은 그런 단순한 당황이 아니었다.
조금 더 필사적인 무언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많은 젊은이를 보아온 소년이 희미하게 눈치챈 것은 부채감이었다.
그것은 누구의 부채인가? 홍엽비의? 당량 대장군의?
아니면 황제 폐하인가?
큰 실수로 부채감을 느끼는 젊은것들은 과도한 열정으로 무리를 하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보조해 주는 것은 어른의 역할이 아닌가.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소년의 얼굴엔 본래의 나이다운 노회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리숙하고 열정 넘치는 젊은 친구들을 보는 것은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 노인의 특권이다.
잘 움직이지 않게 된 몸과 흐릿한 눈을 대가로 얻은 경험을 미숙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일인가.
물론 그가 그런 소리를 할 만큼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소년의 입가엔 포용력 넘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소년의 미소를 보지 못한 태감은 전전긍긍하며 소년의 주위를 산만하게 걸어 다녔다.
그의 입가에서 중얼거리는 듯이 쏟아지는 말을 주워들은 소년은 태감에게 다시금 질문했다.
“그리고, 단순히 당량대장군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홍엽비는 오상비(五祥妃)의 일원이야. 정당한 자격을 얻은 황후 후보이며 황제 폐하가 안고 정을 통한 황제의 여인이다. 그것만으로도 홍엽비를 치료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황제의 여인. 그 말에 포함된 낭만적인 향수는 많은 사람을 설레게 하리라.
하지만.
하지만 다른 여인들은?
꽃처럼 가벼이 따고 짐승처럼 떠나면 그만이라는 다른 여인들은 황제의 여인이 아닌가?
소년은 그것을 물었다.
화비, 봉비 분들 또한 황제 폐하의 여인이 아닙니까? 그분들 역시 황제 폐하와 정을 통하지 않았습니까.
소년의 말에 조금 놀라고, 조금 가슴 아픈 표정을 지은 태감은 소년의 어깨를 짚었다.
“그래. 그들은 폐하의 여인이 아니지. 정치적인 결합의 파생물과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들인 이들을 폐하의 여인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태감의 말을 들은 소년은 허탈한 듯한, 그리고 피로한 듯한 표정으로 태감의 말에 대답했다.
“예, 예. 그렇지요. 그러시겠지요.”
탐탁지 않은 듯,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한 소년의 태도에 태감은 자기 일이 아님에도 어쩐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 황제 폐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 용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신인께서 범속한 여인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황제의 취향이 어떻게 되던 무슨 상관인가. 여인들의 불행을 동정할 만큼 소년의 신세가 편한 것도 아니었다.
가장 비천한 곳을 기었던 소년이 무슨 주제로 후궁의 비들을 가엾게 여긴단 말인가? 가장 동정받아야 할 존재는 소년 본인이 아닌가?
“아무튼, 투명하게 속이 비쳐서 이물질이 보이지 않는 것은 드신단 말씀이시죠? 그럼 어찌 수를 낼 수도 있겠군요.”
“그러냐?”
“예, 태감께서는 최대한 빨리 홍엽비 님과 식사 약속을 잡아주십시오.”
소년의 말에 태감은 조금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나라도 오상비(五祥妃)와 약속을 잡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다과회 정도라면 모르지만,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야.”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엔 제가 직접 나서야 하니 말입니다.”
“……직접?”
태감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만약 소년의 계획대로 소년이 요리사로서 전면에 나서게 되면 태감의 계획은 무너지게 된다.
만담꾼으로서 후궁에 소년을 등장시키고 그 이목이 쏠리는 동안 요리사의 정체를 숨기려던 계획을 무너트릴 만큼 홍엽비의 목숨은 귀중한가?
태감은 면밀하게 두 계획의 이득을 저울질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홍엽비는 저물지언정 소년의 정체를 성공적으로 숨길 수 있다.
그는 이 복마전에서 좋은 비수가 될 것이다.
홍엽비의 목숨은 곧 나라의 안정과 폐하의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어찌 되었건 홍엽비가 오상비(五祥妃)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 아름다운 외모로 폐하를 만족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그 계획보다도 황제 폐하를 향한 충심이 더 무거운가?
태감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좋다. 홍엽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대면 넘어갈 수 있겠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보아라.”
태감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소년은 그저 따를 뿐이었다. 인간적인 신뢰는 없지만, 최소한 둘 사이에는 업무적인 신뢰는 존재했다.
소년은 태감의 장기적인 안목과 권력을, 태감은 소년의 솜씨를 믿었다.
묵례 후 나가려던 소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태감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좋아하지도 않으시는 개구리를 드시려 하셨는지 듣지 못했군요.”
“……아. 그거.”
태감은 이제 개구리 요리가 제법 괜찮은 추억으로 남았는지 추억에 잠긴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게 말이다. 저번에 네가 탕을 올렸을 때 폐하께서 크게 만족하시며 자라 외의 다른 식재료도 드시고 싶다 하시더구나.”
“……그렇다면?”
“그래서 우선은 내가 한번 먹어보고 폐하의 용안에 비춰도 좋은 요리인지 시험하기로 했지.”
이 나라의 지존께서 개구리 요리를 드신단 말인가?
그 수려하게 수염을 기르신 웅장한 용모의 황제 폐하께서 손수 젓가락을 들어 개구리 다리를 들고 뜯어 드신단 말이지?
자라에 개구리라, 황제 폐하는 겉보기완 달리 익사이팅한 경험을 즐기시는 분인 듯하다.
어쩐지 조금 우습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예, 우선은 홍엽비 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맛있게 한상 차려 올리겠습니다.”
* * *
노란색에 주황색, 보라색 당근은 꽃 모양으로 조각해 데치고 방울토마토는 데쳐서 껍질을 벗긴 후 얇은 칼로 비늘 모양으로 칼집을 넣어 살짝 벌려 꽃봉오리 모양을 낸다.
오이는 나뭇잎 모양을 내고 홍 피망 청 피망도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한다.
셀러리(芹菜, 근채)를 손질해 어슷 썰고 이것들은 단 식초에 절인다.
계란은 단단하게 삶아 칼금을 그어 동그랗게 썰어 꽃 모양을 내고 메추리 알은 꽃봉오리 모양으로 세공한다.
베이컨을 만들 때 함께 만든 훈제한 돼지 안심, 술과 향초로 찐 새끼돼지, 쪄서 차게 식힌 송아지 고기와 오리고기, 데친 새우와 민물 가재.
그리고 초에 절였던 채소와 계란, 향채 이파리 들을 우묵한 사기그릇에 담고 여기에 육수를 부으면 고전적인 서양 요리 아스픽이 완성된다.
중국의 효육(肴肉)이나 한국의 편육과 같은 이 요리를 선택한 이유는 찰랑찰랑한 젤라틴 국물이 투명해 보기가 좋기 때문이다.
투명하기만 하다면 수정효육을 만들어도 되겠지만 첫 보기에 아름다운 요리가 홍엽비의 마음을 빼앗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요리를 만들었다.
육수는 송아지의 정강이뼈와 힘줄 붙은 고기, 그리고 돼지 껍데기. 통후추와 팔각, 생강등 향신료를 넣고 끓이다 보면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와 심혈을 기울여 떠내야 한다.
고된 작업이다.
어린 나이에 밤잠을 설치며 하기엔 너무 고된 작업이다. 솜에 물을 뿌리듯 축 늘어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소년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흠흠흠~ 도라지 위스키, 한잔 에다~”
라디오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피로한 야간작업에 TV를 보며 한눈팔 시간은 없으니 라디오를 틀어놓고 작업을 하면 사연이나 노래 듣는 재미도 쏠쏠하고 피로감도 덜해 애용하고는 했다.
한때 그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 주었던 가수들의 노래가 그의 입술을 스치고 지나갔다.
좋아하던 노래도 이 세계에선 오직 나만 기억할 뿐이겠구나. 그리 좋아하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도 이젠 흥얼거리는 콧노래에서만 추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딘가 비강 안쪽이 간질거리는 듯했다.
추억이란 낯간지러운 감정에 젖어 보니 졸음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그래서인지 인적 없는 한밤중의 주방 인지라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처럼 흥얼거리던 것을 목청껏 불러 버리고 말았다.
가끔, 한밤중은 사람의 감성을 마비시켜 객기를 부리게 만들고는 한다.
지금이 아무도 없는(없어야 하는) 한밤중이라는 사실에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 적막을 가로지르는 어린 소년의 미성이 들리기 전까지는.
“그 노래는 어떤 노래예요?”
“……이거, 이삼 님 아닙니까.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군요? 혹시 배라도 고프신 거라면 뭐 가벼운 야식거리라도…….”
“방금 부르신 그 노래,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발간 뺨을 들이밀며 소년을 다그치는 이삼은 어딘가 홀린 것처럼 보였다.
코끝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까지 얼굴을 들이민 이삼의 얼굴을 밀어내며 소년은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비열한 눈매가 와락 찌그러지며 웃던 애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변했지만 이삼은 그 얼굴을 마주하고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더욱더 소년에게 바짝 다가섰다.
“아니, 그냥 대충 흥얼거린 노랜데…….”
“다시 한번만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아뇨, 쪽팔려서 싫습니다…….”
“한번만요.”
“진짜 죽어도 싫어요. 아무튼, 배고파서 온 거 맞죠? 밥합니다?”
이삼의 간곡한 애원을 뿌리치고 소년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철과를 올렸다.
철과가 달궈지는 동안 도마 위에선 두툼한 채도가 춤추듯 리드미컬하게 재료들을 다졌다.
쪽파 약간에 쓰고 남은 훈제육, 새우 약간. 그리고 계란을 네알. 재빠르게 풀어주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철과가 달아오르면 유채 기름 약간을 넣어 손목을 돌려가며 철과 전체를 코팅하듯이 발라주고 계란물을 재빠르게 넣어 빠르게 볶아주며 부스러뜨린다.
계란을 우선 한번 꺼내고 다시 유채기름을 넣어 이번엔 마늘과 파를 볶아준다.
밤공기를 타고 코를 간질거리는 고소한 유채 기름 향기가 피어올라 날카로운 냉기를 누그러뜨리는 듯했다.
그 위로 서서히 마늘과 파 향기가 섞여 나오기 시작하면 남은 재료를 넣고 재빠르게 팬을 흔들며 기름이 재료에 코팅되듯이 볶아준다.
노래에 정신이 팔린 장소도 무심코 입가를 타고 흐르는 침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향긋한 향기는 드높이 뜬 달 아래 야식이라는 불건전한 행위의 배덕감을 극대화했다.
거기에 찬밥 한 덩어리가 들어가자 소년의 메마른 나뭇가지 같았던 팔에 미세한 가죽 채찍처럼 얇은 근육이 솟아올랐다.
적막하고 어두운 밤. 냉기와 어둠을 불사르며 아궁이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아궁이 옆의 풍로에서 보내진 공기에 불길은 범인이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솟아올랐다.
밤을 불사르는 그 열기 너머로 춤추듯이 밥알이 튀어 올랐다.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솟아오른 밥알은 짧은 비상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철과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미리 익혀둔 계란을 넣고 동그란 사발 그릇에 담아 모양을 잡은 다음 접시 위에 올리면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급히 만드는 거라 변변한 재료가 없어 대충 만들었지만 그래도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 나쁘지 않은 노동자의 밥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은 바빠서 간식을 못 챙겨줬군.’
이삼의 그릇에 볶음밥을 수북하게 올려준 소년은 육수를 내던 아궁이의 불을 조금 빼 화력을 줄이고 자신도 아궁이 한쪽에 걸터앉아 접시를 들었다.
생각해 보면 주방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바빠 제대로 밥을 챙기지 못했으니 이것이 소년의 늦은 저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던 날이면 자주 남은 자투리 재료를 볶아 먹고는 했다.
젊은 날 청춘의 맛이라면 청춘의 맛인 셈이다. 그 노곤한 나날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는 소년과는 다르게 이삼은 숟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밥알을 마시듯이 볶음밥을 퍼 넣었다.
그 모습이 마치 굴착기 같아 보였다.
“마…… 맛있어요! 절묘한 간에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건더기들, 향기롭게 익혀진 쌀알들은 알알이 풀어지면서도 탄력이 있고 고소한 계란이 부들부들해서 감촉이 좋아요!”
“그래요? 체하지 않게 물 좀 마셔가면서 드십쇼.”
마치 인생의 마지막 식사인 것처럼 꾸역꾸역 입안으로 볶음밥을 밀어 넣는 이삼이 조금 안쓰러웠는지 소년은 냉수 한잔을 건넸다.
중간중간 육수의 상태를 점검하며 오래 익히면 안 좋은 맛이 나는 향신료들을 빼낸 소년은 육수 한잔을 떠 이삼에게 건네고 자신도 한 모금 마셨다.
구수하게 잘 우러난 육수는 맛의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잘~먹었습니다.”
만복의 만족감으로 자연스러운 미소가 입꼬리에 번진 이삼을 보며 오늘도 젊은이 하나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는 사실에 소년 역시 깊은 충족감을 느꼈다.
“예, 혹시 장소 님도 배가 고프다 하시면 눈치 보지 말고 오시라고 전해주십시오.”
“네, 아마 야간순찰을 돌고 있을 거예요.”
다소곳한 자세로 인사하고 예의 바르게도 다 먹은 그릇은 개수대에 넣어 스스로 설거지하려는 것을 소년이 말리자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를 뜬 이삼은 떠난 지 십여 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그 노래는요?”
“노래? 예? 무슨 노래 말씀입니까?”
“조금 전에 부른 그 노래요!”
소년은 절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태도와 표정, 보통 사람이면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닐까 봐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정말 짚이는 구석이 없는데요? 잘 못 들으신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어요! 전 태감님의 직속 호위 중에서 가장 귀가 좋다고요!”
“뭐, 새소리를 착각하셨다거나…….”
“이런 한밤중에 우는 새는 거의 없어요!”
거 참,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소년의 표정에서 뚝뚝 떨어지는 귀찮음을 보면서도 이삼은 더욱 매달리듯이 소년에게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