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24화
늦은 저녁에도 연좌궁 집무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각지에서 몰려든 비 추천서를 검토하느라 태감은 그 좋아하는 식사마저 집무실에서 해결하며 서류를 검토했다.
그 때문에 소년은 한 시간에 한 번꼴로 간식을 공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무리 양껏 가져다줘도 눈 깜빡하면 다 먹어치우고 더 달라 하니 음식을 먹이는 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기분이었다.
팥소를 넣어 콩고물에 버무린 찰떡 한 접시, 검은깨 소가 들어간 찰떡을 따뜻한 차에 담근 탕원(汤圆) 한 그릇, 닭 육수에 고명을 듬뿍 올린 국수 한 그릇 등등.
소년은 아귀처럼 야식을 탐하는 태감에게 끝없이 간식을 공급하며 마녀의 하녀가 되어 헨젤에게 밥을 가져다주던 그레텔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상하다, 이렇게 먹였으면 통통하게 살이 쪄야 정상일 텐데,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오르는 건 왜일까?
꾸역꾸역 먹으며 목간과 비단 두루마리를 둘러보던 태감은 그중 아니다 싶은 목간은 바닥으로 던졌다.
“땔감거리가 많아서 좋군요.”
내일은 굳이 장작을 주문할 필요가 없겠다며 소년이 희희낙락대자 태감은 괜히 신경질이 났는지 소년에게 야식의 추가를 명령했다.
찰떡에 탕원, 국수. 이미 한 끼 식사를 초월한 칼로리를 공급한 소년은 난색을 표했다.
“여기서 더 드셨다간 정말 당뇨병 걸리실지도 모릅니다?”
“난 내 젊음을 믿는다, 너도 네 주인에게 믿음을 가지거라.”
“믿을 걸 믿어야지 하필…….”
정신적 피로가 쌓였는지 미간을 손으로 짚고 인상을 찌푸리던 태감은 거나한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거 참, 용린왕 께선 왜 이놈의 후궁을 만드셔서 날 이리도 고통스럽게 하는지…….”
한숨을 푹 내시며 비단 두루마기를 펼치던 태감은 멀뚱히 서서 태감을 보고 있는 소년의 표정을 보고 설마 싶어 물었다.
“너 혹시…… 이 나라를 건국하진 태조 용린왕의 시호를 처음 들어본다……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뭐, 배운 적이 없는데 어찌 알겠습니까.”
태연자약하게 대답하는 소년의 모습에 태감은 할 말을 잃었다. 정말로 후궁에서 살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만을 받은 소년에게 나라의 역사나, 역대 황제의 시호 같은 ‘불필요한’ 지식은 전수되지 않았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환관에게 배운 것은 오직 최소한의 글과 구더기로서 살아가는 법. 두 가지뿐이었다.
그런 소년을 괴이하다는 듯이 보던 태감은 결심한 듯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는 책상 위의 서류를 모조리 쓸어버리고는 커다란 지도를 가져와 펼쳤다.
“이것 참 어쩔 수 없군. 오늘은 배움이 짧은 부하를 위해 내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설 수밖에 없겠어!”
“예?”
“제국에서 사람행세하고 다니려면 당연히 알아야 할 제국의 역사를 아주 손쉽게 설명해 주마! 원숭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이지!”
‘그럼 내가 원숭이라는 소리요?’
소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만류했지만 이미 어디서 지휘봉까지 가져와 설치는 태감을 보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양반, 지루해 졌구만.’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해야 할 일이거늘, 소년은 혀를 차면서도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태조가 누군지는 몰라도, 최소한 자기가 사는 나라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 이것이 바로 제국 전도다. 군사 물품이라 일반인은 보기도 쉽지 않지.”
[용황국전도 龍皇國全圖]
‘……용의 나라라고 이름도 용황국이군. 직설적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지도를 들여다보던 소년의 눈은 잠깐의 흥미와 허탈함, 그리고 인정의 빛이 빠르게 점멸하며 사라졌다. 소년은 지도를 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자신의 살던 세계, 자신의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인공위성이 없어 사람 눈으로 보고 발로 뛰며 그린 지도라 한들 없던 대륙이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용황국의 끝없는 북방 평원 그 너머. 본래 눈이 그치지 않는 북방의 영토였어야 할 곳은 바다였다.
그리고 그 너머, 마치 지구의 호주 대륙처럼 외로이 바다 한가운데에 뜬 섬 같은 대륙.
소년은 그 대륙을 보며 질문했다.
“이 땅에는 어떤 사람들이 삽니까?”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색목인들. 하나같이 타고난 장사이며 거구이지. 서방의 색목인과는 다르게 일 년의 절반 이상이 겨울인 동토의 땅에서 살며 거칠고 사납지만 강인하고 굳세다 하더군.”
짧게 설명을 끝낸 태감은 짧은 지휘봉을 꺼내 들었다. 흑단 재질에 끝에는 은을 입힌 훌륭한 것이었다.
“자, 지금 이 용황국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 전신인 용국은 그저 현 수도인 경사를 중심으로 산동과 산서, 하남 일대를 지배하던 금룡 진씨가 세운 나라다.”
태감의 눈동자는 단순히 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강렬한 자부심 안쪽으로는 기이한 슬픔과 회한이 담겨 있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민족이 각지에서 다투고 있었지. 너도 장소에게 들었겠지? 장소가 속한 묘족은 여기, 귀주 지방에서 크게 세를 일군 부족이지.”
태감의 지휘봉이 귀주 지방을 가리키자 묘족 출신인 장소가 미소 지었다.
고향 땅에서 먼 경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태감의 호위 때문에 고향 땅을 밟기 어려우리라.
“사람이 늘어나고 차지할 땅은 줄어들지. 그렇기에 춘추전국시대는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일어났다. 지방에서 힘 좀 쓴다는 이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를 내걸었지. 그 시대에 진족의 왕 이자 처음으로 금룡기를 내걸고 천하를 질타하신 분이 현 제국의 시조 용린왕 이시지. 전설에 의하면 금룡의 피를 진하게 이으셔서 목 뒤쪽으로 세 개의 금빛 비늘이 있었다 하더군.”
그건 그야말로 전설 다운 일화였다. 하긴,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왔고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은 곰이었던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 하지 않는가.
그 밖에도 각 나라 신화와 역사를 보면 이게 사람인가 싶은 것들도 수두룩 한데 까짓거, 비늘 세 개 정도야.
한동안 자신이 펼친 지도를 들여다보던 태감은 이내 지도를 접고 작은 손수건 한 장을 꺼내 펼쳐 들었다.
검은 바탕에 금색의 용을 수놓은, 그것은 군기를 작게 축소시킨 듯한 손수건이었다.
“넌 이런 모습을 한 기를 본 적 있느냐?”
“아니요. 처음 보는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이건 황실의 상징인 금룡기다. 용황국이 세워진 이래 황실 비고에 처박혀 있던 거지. 이 손수건은 그 모습을 본뜬 것이고.”
태감은 손수건을 넓게 펼쳐 상 위에 올렸다. 검은 비단에 금실로 수를 놓은 용.
자세히 보면 테두리를 수놓은 자수 하나하나가 다른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 테두리의 짐승은 총 쉰 하고도 아홉. 제국의 기틀을 닦은 혈족들의 수와 같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제국은 결국 속에서부터 곪아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은 칼로 자신의 환부를 찢어 생명을 유지 시켰다.
“내전이 있었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제국은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하기 전 고름이 터져 나왔지. 그 옛날의 춘추전국시대가 다시 일어난 거야. 군웅들이 다시 한번 자신의 기를 내걸었다.”
태감은 상 위에 펼친 손수건을 들고 펄럭거렸다. 마치 기수가 군기를 흔들듯이.
“그때 선황께선 이 금룡기를 걸고 친위대를 이끄셨다. 오십구혈족은 이십일 혈족이 되었지. 그것이 이 신생 제국의 역사다. 피로 씻어낸 제국은 이제 선황께서 벼리시고 현 황제께서 이끄시는 젊고 힘 있는 나라가 된 거지.”
태감은 그 뒷이야기를 삼켰다. 후궁이 이토록 비대하게 커진 이유, 기반이 약한 황제의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였다.
그 대신 태감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소년에게 생색을 내었다.
“어떠냐, 이 동창 제독께서 들려주는 제국의 역사는. 감격스러웠다면 수강료는 떡으로 받으마.”
태감의 말에 소년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답을 내놓았다.
“역시, 몰랐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군요.”
* * *
최근 후궁이 어수선했다. 새로운 비들이 들어오며 그 예복과 패물, 비들이 살 궁을 증축하는 등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던 궁에서 큰 사고가 터진 탓이었다.
갑작스럽게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후궁에 퍼져 몇 명의 비가 앓아누웠다.
그중에는 황후 후보자 중 한 명, 홍엽비 또한 있었다. 가뜩이나 체구가 왜소했던 그녀는 괴질에 걸리고 자리를 보전한 채 쉬이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새로운 비들이 들어오는 시기. 그것은 곧 황후 후보자 아래 화비들과 봉비들의 세대교체를 의미했다.
누군가는 자리에서 쫓겨나고, 누군가는 그 빈자리에 올라선다. 기회의 시기이자 몰락의 시기였다.
그런 만큼 예민하고 과민해진 비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진행되었던 암투가 수면 위로 터지는 시기 이기도 했다.
그럴 때 갑작스러운 괴질이 돌았으니 자연스레 음모론이 돌았고 동창의 환관들은 병이 돌았던 궁을 돌며 시녀들을 잡아들였다.
사실은 그저 이유 없이 병이 돌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평소였다면 매질 좀 하고 궁에서 쫓아내는 정도로 유하게 처리했을 일이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날 음식을 담당했던 나인들은 고신 끝에 목이 잘렸다. 그녀들의 목은 장대에 걸려 저잣거리에 걸렸다.
그녀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의 주인인 봉비 역시 곧 목이 잘리리라. 그녀의 가문 역시.
그것이 그녀의 잘못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소년은 온종일 초췌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나인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비들의 화원인 후궁에 죄인의 목을 치는 형장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형은 외궁 밖의 형장에서 치러졌다.
하지만 눈물마저 메마를 만큼 혹독한 고문을 받아 얼이 빠진 여인들과 그녀들의 목을 메달 장대를 본 순간 소년은 치밀어 오르는 역한 토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 그녀들의 사형은 많은 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으리라. 누군가는 웃으며 집에 돌아가 그 장면을 묘사했으리라.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큰 칼이 내려치니까 성둥 하고 머리가 잘리더라고!
머리가 꼭 과일 떨어지듯이 떨어지더라니까? 데굴데굴 구르더라고!
그 여자들 표정 봤어?
이런 이야기를 했을 테지. 그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웃으며 술을 마시고 밥을 먹을 것이다.
사람이 죽는 일이다. 소년은 그런 시대를 살고 있었다.
소년은 뒷간에 들어앉아 연거푸 헛구역질했다. 한참 전 한차례 게워내서인지 입에선 누렇고 쓴 위액만 나왔다.
그 모습이 불쌍했는지 비틀거리며 변소에서 나오는 소년에게 장소가 물을 떠다 주었다.
입에 물고 한참을 헹궈내자 입안에서 위액의 쓴맛이 가셨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 뒤 그릇을 돌려준 소년을 장소가 부축하며 주방으로 데려갔다.
아궁이엔 아직 점심을 차리고 남은 열기로 훈훈했다. 아궁이 앞에 작은 의자에 걸터앉으며 소년은 언 듯한 몸을 녹였다. 추운 것은 몸이 아니었다.
소년에게 이번엔 따스한 차를 건네며 장소가 물었다.
“처음이었어요?”
“……예.”
“그래도 다행이에요. 사건이 큰 경우엔 곧바로 참주가 달려와서 즉결심판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참주란 본디 군주의 자리를 찬탈한 자를 의미하는 단어지만 이 제국에서는 전혀 다른 관직의 이름이었다.
참주란 황제가 직접 참수도를 내린 이들. 황제가 내리는 즉결심판의 대행자들 이자 유일하게 황제의 명을 받아 금남의 구역인 후궁에 들어설 수 있는 남자였다.
자신이 보았던 사례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 했던 장소는 창백한 소년의 얼굴을 보며 입이 방정이란 듯이 자신의 입술을 꼬집었다.
사람이 죽는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는 안락사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꿇어 앉혀놓고 칼로 목을 쳐 머리를 자르는 단두형이다.
잘린 머리는 장대에 걸려 구더기가 필 때까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시체는 들판에 버려져 들개들의 먹이가 된다.
이 죽음에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가축을 도살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인간은 정녕 존엄한가?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하는가?
그런 시대가 아니었고, 그런 시대가 아니었기에 소년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저 끌려가던 나인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기에, 그 나인의 텅 비어 있었던 눈을 마주 응시했기 때문에.
그 선명한 죽음을 마주한 소년은 고통스러운 삶에 지쳐 허덕이고 있었다.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테지. 그 눈은.
“어이, 다 토해냈냐? 이제 일 할 시간이다.”
주방으로 들어온 태감의 말에 소년은 비칠비칠 일어섰다. 일할 시간이라는 말에 흐리멍텅한 눈에 빛이 돌아왔다.
야차 같은 눈빛이었다.
“일, 해야지요. 예. 어떤 일입니까?”
“……홍엽비에 관한 일이다.”
태감의 미간은 피로와 짜증으로 얼룩져 있었다. 분명히 이 일에 대해 그로서도 문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궁의 일은 곧 동창의 일이니까.
책임을 물을 만큼 무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의 상관에게 뭐라 한 소리 들었을 테지.
그렇다면 태감은 지금 황제 폐하를 만나고 오는 길 일까?
태감은 화를 삭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피로를 떨치려는 것인지 물독에서 찬물을 떠 연거푸 들이켰다.
옷섶이 젖어 들어 쇄골에 착 달라붙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 거식증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
“예?”
새로운 일은 무척 고달플 것 같다고, 소년은 새로운 파란을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