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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23화 (23/314)

환관의 요리사 23화

만담이라고는 하셨지만…… 제 분야는 평화인데요.”

“궁에서의 정식 직위 명칭은 문화보존 문예 기술인인데, 너무 길어서 보통 만담가 아니면 재담꾼이라고 부르지.”

“그런 거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배우기야 오래 배웠지만 그렇다고 남 앞에서 하기는 조금 부끄러운 실력 인지라 소년은 마음을 다잡을 준비가 필요했다.

전생이라면 키도 크고 덩치도 당당해 남 앞에 세우기 부끄럼 없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소년은 남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소년은 구더기였으니까. 아니, 구더기도 되지 못하는 없는 존재였으니까.

남 앞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소년은 무려 십수 년의 시간을 그렇게 살았다.

햇볕 아래 서지 못하고 늘 그림자에 숨어서.

화사한 봄날 시녀들의 담소 소리에 된서리 맞은 것처럼 놀라 바위 그늘에 몸을 숨기고 마루 밑을 기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행동은 정신에 지배되는가? 정신이 올바르다면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라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자존감 높고 기세 좋은 사람이라도 실패하면 움츠러들고 구박받으면 좌절하는 법이다.

좌절이 계속되면 사람은 일어날 수 없다. 대부분 사람은 반복되는 좌절에도 다시 일어날 만큼 강하지 않았다.

십 년을 노예로 살았다면 노예가 되는 법이다.

어느 정도 안면을 튼 태감과 다른 환관들에게는 괜찮은 척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본능적으로 시야의 구석으로 기어들어 간다는 것을 소년은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산증인인 셈이다. 전생엔 이미 중장년의 나이에 누릴 만큼 누리고 자기 가게까지 낸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굴해질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

‘어쩌면 똑같은 처지라도 왕후장상의 씨라면 반란이라도 일으켰을지도 모르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만큼 객기를 부릴 수 없게 되는 법이다.

젊은 시절이었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절단을 내어놨을 텐데도 나이가 드니 도전보다는 안주하고 타협이 일상화가 되어 버렸다.

노예처럼 살면서도 이 정도면 그래도 세끼 풀칠은 하니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러니 아직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좀 이르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흠, 그럼 일단은 점심마다 내 앞에서 이야기하는 거로 하지. 그게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 앞에서 하는 거로 하고. 어차피 네 본업은 요리니까 너무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들어줄 정도만 되면 된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부하 입장에서 더 토를 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을 끝낸 태감이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을 불러다 앉혔다. 태감의 세상 근심을 다 짊어진 듯한 표정에서 소년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예측할 수 있었다.

“점심…….”

“은 뭘 올릴까요? 오늘은 싱싱한 향어와 물 좋은 돼지고기, 통통한 오리도 들어왔습니다.”

할 말을 예측 당한 것이 우스웠는지 피식 코웃음 친 태감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먹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예? 그럼 오늘은 채식을 하시겠습니까?”

“누가 토낀 줄 아냐? 풀만 먹고 살게.”

그럼 절의 스님들은 다 토끼 십니까?

소년은 그리 반문해 보고 싶어졌다. 아마 태감이라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테지만 중국 음식을 공부하며 불교 요리인 정진요리(精進料理)를 수준 높게 익혔던 소년은 후일 반드시 채소로만 한 상을 차려 내기로 결심했다.

소년의 음흉한 계략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꺼내기 조금 주저하는듯한 모습으로 한참을 입안에서 혀를 굴리며 말을 꺼내길 어려워하던 태감은 이내 자포자기한 듯한 태도로 말을 토해냈다.

“저번에 뱀이나 개구리 요리를 할 줄 안다 했지?”

“예, 오늘 점심은 그걸로 올릴까요?”

“……그래.”

사실 별로 원치 않았다는 태도를 팍팍 내는 태감을 보며 감을 잡은 소년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주방 식재료 창고로 달려갔다.

뱀과 개구리가 먹고 싶다고? 내 직접 잡아 오는 한이 있더라도 만들어 드리리다.

평생 꿈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최고의 요리로 대접해 드리지!

훗날 주방으로 구르듯이 달려가는 소년의 얼굴을 우연히 본 장소는 소년의 얼굴에서 부처와 마귀가 동시에 앉아 있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주방에서 한참을 재료를 찾던 소년은 이내 다급히 달려와 태감에게 보고를 올렸다.

“죄송하지만 뱀은 오늘 들어온 것이 없어 점심으로 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지! 없는 뱀을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까!”

태감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방 안이 환해지는 듯했다. 그런 태감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소년은 더욱 힘차게 태감을 위로했다.

“하지만 개구리는 크고 싱싱한 놈이 있으니 오늘 점심은 개구리 요리가 어떨까 하는데요!”

“……그러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듯한 태감의 얼굴에는 비련의 감정이 넘쳐 흘렀지만, 소년은 오히려 말단부에서부터 음습하게 기어오르는 쾌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태감의 떨떠름한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소년은 주방으로 달려가 창고의 살아 있는 개구리를 모조리 끄집어내 손질을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개구리를 밭에서 나는 닭이라 하여 전계(田鷄)라 하는데, 오늘 사용할 개구리가 이 녀석이었다.

이것보다 조금 더 큰 황소개구리(牛蛙, 우와)나 송장개구리(豹蛙, 성와)류도 자주 먹는데 오늘은 좋은 물건이 없었다.

“일단 대표적인 튀김에 조림, 그리고 탕도 할까.”

튀김인 마랄전계퇴(麻辣田鷄腿)에 생강 풍미로 매콤하게 볶은 자강와(仔姜蛙), 사천 지방의 명물인 매운 개구리탕 조수미와(挑水美蛙), 그리고…….

“예전에 일본에서 먹었던 것처럼 맑은 탕도 하나 끓일까?”

분명히…… 맑은 국물은 다시마를 베이스로 낸 거였고 물미나리를 넣었던가?

그걸 생강 채를 띄운 폰즈에 찍어 먹었던 것 같은데…….

맛을 떠올리기 전에 우선은 수십 마리의 개구리를 손질 하는 게 먼저였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하니 언젠가 식용개구리를 구하는 날이 온다면 따라 해 보기를.

우선은 개구리의 머리를 내리쳐서 기절시킨다.

개구리 다리를 잡고 책상 모서리 같은데 내려치면 쉬운데 힘 조절을 잘못하면 발목이 떨어지거나 머리가 터져서 보기 안 좋으니 주의한다.

“그러고 보니 태국 야시장에 놀러 갔을 땐 아줌마들이 산 개구리 머리를 가위로 자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지.”

제아무리 그런 거에 내성이 있는 요리사라도 질겁하게 되는 광경이었다.

아무튼, 기절시켰으면 뱃가죽을 잡아당겨 칼집을 내고 양쪽으로 확 잡아당기면 깨끗하게 벗겨진다.

가는 뼈에 살이 얇게 붙어 있는데 사실 개구리의 먹을 만한 부분은 뒷다리 한 쌍이지 몸통 부분은 거의 먹을 게 없다.

내장이 터지면 나쁜 맛이 살에 배니 조심스럽게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조리 용도에 따라 토막을 치거나 하면 완성.

오늘은 먹기 좋은 다리만 쓸 거니 다리 부분만 빼고 나머지는 국물을 낼 용도로 따로 모아둔다.

개구리 고기는 닭 육수와 비슷한 좋은 국물이 나오는데 닭고기보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해 환자나 운동선수에게도 권장할 만한 음식이다.

한참을 씨름하자 주방에 벗겨낸 개구리 가죽과 검지만 한 개구리 다리, 뒷다리를 잃은 가죽 벗겨진 개구리 몸들이 광주리에 가득 담겨 기묘한 풍경을 연출했다.

만약 내성이 없는 사람이 보면 비명을 지르겠…….

소년의 상념이 끝나기도 전에 새된 비명이 주방을 울렸다. 소녀에 가까운 높은 하이톤의 비명은 장소가 낸 것이었다.

“으아아아아?! 이게 뭐야!”

“어이쿠. 장소 님 오셨습니까? 뭐 달콤한 거라도 드릴까요? 오늘 떡을 좀 만들어 둔 게 있는데…….”

“아니, 이게 다 뭐예요?!”

“개구린데요. 한 번도 못 보셨어요?”

“보, 보긴 봤는데…….”

하긴, 개구리를 자주 본 사람도 광주리에 가득 쌓인 개구리(였던 것)을 보면 조금은 질겁하려나. 소년은 보기 안 좋은 개구리 가죽을 으슥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보기보다 맛도 좋고. 한번 드셔 보실래요?”

좋은 게 있으면 함께 나누는 한국인의 푸근한 인심으로 소년이 장소에게 개구리 다리를 권했다.

그 푸근한 인심으로 비열한 외모마저 조금 감춰지자 은근한 후광마저 비치는 어머님의 미소에 장소는 순간 혹한다는 미소를 지었지만, 광주리 안에서 아직 꿈틀거리는 개구리 대가리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빠져나가 버린 듯 창백한 안색으로 변해버렸다.

“아, 아뇨, 괜찮아요. 저 배가 안고파서…… 그…… 실례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치는 장소를 보며 소년은 조금 전 태감의 태도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운남 같은 남부에서야 즐겨 먹는다지만 경사 부근에선 혐오스러운 괴식의 분야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감은 어째서 갑자기 개구리를 먹을 생각을 하였을까? 표정을 보면 분명 본인이 식욕이 동해서 먹고 싶다 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몸통까지 그대로 붙어 있는 개구리라면 몰라도 이렇게 다리만 남긴 개구리는 괜찮을 것이다.

개구리라는 선입견만 버리면 그저 손가락만 한 작은 살덩어리니까.

손가락만 한 것이 기름기 하나 없는 핑크색 근육질 다리는 제법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말랑말랑하고.

“역시…… 좀 아닌가?”

물끄러미 개구리 다리를 들여다보던 소년은 이내 솥에 기름을 넣고 약간 미지근한 온도가 될 때까지 달궜다.

사실 태감이 징그럽다고 하든 말든 소년은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개구리를 먹이고 싶을 뿐이다.

* * *

태감이 기억하는 소년은 늘 우중충하고 피곤한 인상이었다. 세상 시름을 다 짊어진 것 같은 눈썹 아래로 눈동자는 제발 나만 아니기를 기도하는 사형장의 죄수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매부리 같은 코 아래로 비틀린 입매는 단 한 번도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소년은 그야말로 태양처럼 웃었다.

삼라만상 모든 일이 복되고 즐거워 보여 사철 푸른 길을 걷고 세 치 검으로 악을 물리쳐 만민을 행복하게 한다는 팔선의 깨달음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은 그야말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였다.

‘아,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리오.’

오늘 태감은 평소와는 달리 스스로 총대를 멘 거룩한 희생정신으로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무실 탁자를 치우고 상을 차리는 소년의 얼굴에는 한치의 그림자도 없어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오늘…… 요리는 뭐냐.”

“가벼운 소채 볶음과 절임, 차가운 고기 냉채. 민물 농어찜에 어장으로 맛을 낸 어향육사(魚香肉絲)에 속이 빈 만두, 그리고 기대하시던 개구리 요리입니다.”

탕이 두 가지에 볶음에 튀김. 평소보다 가짓수도 많고 꾸민 모양의 화려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손놀림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태감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마음속으로 탄복했다.

튀김에는 당근과 무로 용과 봉황을 조각하고 오이와 푸성귀로 장식한 수풀 위로는 희고 단단한 모두부로 조각한 팔선이 앉아 있다.

볶음의 옆으로는 정원에서 막 따온 싱싱한 모란과 야생화에 진짜 꽃과 비교해도 결코 모양새가 뒤지지 않는 토마토와 당근과 무꽃이 싱싱함을 뽐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태감에게도 친숙한 봉황전시(鳳凰展示)였다.

화려한 모양새가 보기 좋아 연회에도 자주 올라오는 것이었지만 태감은 단언컨대 한 번도 이 정도 수준의 냉채를 본 적이 없었다.

찬 고기와 데친 새우와 전복, 해삼, 계란지단에 표고버섯과 꿩 가슴살, 화퇴로 호사스럽게 만든 봉황 아래론 소금에 절인 계란 노른자 태양과 토마토와 당근으로 색을 낸 묵이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었고 노을에 둘러싸인 고기와 오이로 만들어진 산악 옆으론 청포묵으로 만든 강이 흘렀다.

이것은 단순히 배움의 문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고련과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경지였다.

“……이 냉채 이름은 뭐냐.”

“꽤 괜찮지요? 봉황오악채(鳳凰五岳菜)입니다.”

“호오…….”

어떻게 해서든 태감에게 개구리를 먹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느껴지는 일품이었다.

만드는 데 공이 많이 드는 만큼 이걸 물릴 수 있나 보자는 담대한 기백. 태감은 소년의 강철같은 의지를 두고 침음을 흘렸다.

‘이 녀석, 그렇다고 고작 점심을 먹는데…….”

보통은 요리 한 접시에 요리사 둘은 달려들어서 밑 준비를 하는 만큼 큰 연회가 아니면 잘 나오지 않는 음식이 봉황전시였다.

그걸 혼자서 다른 음식을 하는 동시에 해온 것은 그만큼 소년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 녀석은 주로 남을 엿 먹일 때 재능을 불태우는 녀석이군.’

사약을 받아든 충신의 표정으로 태감은 젓가락을 들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삼나무 재질에 끝부분에 청옥을 박고 금 테두리를 두른 젓가락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우선 첫입은 그나마 튀김옷이 있어 보기 괜찮은 다리 튀김.

생긴 것도 조그만 닭 다리 같아 거부감이 적었다.

“어디…… 이 산초 소금을 찍어 먹으면 되나?”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우선은 본능적으로 이상한 향이 나지는 않는지 코끝으로 가져가 보았다.

고소한 튀김기름 냄새와 톡 쏘는 산초 향기 외에 다른 향기는 없는 것을 확인하자 태감은 이내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개구리 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사삭 소리를 내며 튀김옷이 부서지고 그 안쪽으로 탄력 있는 개구리 다리가 씹혔다.

닭고기의 다리 살과 흡사한, 하지만 기름기가 없으면서도 즙이 많다.

“……괜찮은데…….”

가느다란 뼈에 알차게 붙어 있는 다리는 뜯는 재미가 쏠쏠했고 양이 적어 감질나 더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게 했다.

한참 튀김에 열중했던 태감은 조림이나 매운 탕보다도 맑은 국물에 개구리 다리가 둥둥 떠 있는 맑은 탕으로 손을 가져갔다.

태감의 신호에 소년이 국자로 국물을 적당히 뜨고 물미나리와 개구리 다리를 건져 태감에 건넸다.

“이건?”

“등자 나무 열매즙을 떨어뜨린 간장으로 드시면 됩니다.”

소년은 태감의 간장 종지에 방금 자른 등자 열매를 손으로 쥐어짜 즙을 떨어뜨렸다.

우선은 국물을 먼저. 그다음엔 물미나를 건져 먹고 다리를 간장에 찍어 다시 한입. 그리고 다시 국물을.

일련의 과정을 마친 태감의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국물이 진하면서도 산뜻한데, 맑게 끓인 흰살생선과 닭 육수를 합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거기에 생강 풍미 알싸한 자강와와 산초와 고추가 듬뿍 들어가 얼얼한 조수미와까지.

태감은 개구리에 대한 혐오감을 완전히 털어 버린 듯 평소의 모습으로 점심을 탐닉했다.

개구리 요리를 싹 비운 태감은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의자에 늘어졌다.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상기된 얼굴은 흐물흐물 녹아내린 듯해 어딘가 퇴폐적이었다.

한참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태감은 고개를 들어 소년에게 말했다.

“괜찮네. 아니, 아주 좋아. 개구리라는 선입견만 없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겠어. 앞으로도 가끔 식탁에 올려주면 좋겠군.”

태감은 당장에라도 오후의 업무를 때려치우고 한숨 자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태감을 위해 소년은 일부러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가벼운 디저트를 준비했다.

나른한 눈으로 상에 올라온 그릇을 보던 태감이 서서히 허리를 일으켜 사기그릇을 응시했다.

청색 테두리를 입힌 하얀 사기그릇에선 희미하게 냉기가 올라왔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간식.

그리고 그 백자처럼 하얀색은 태감이 요즘 빠져 있는 우유를 이용한 간식이 틀림없었다.

“유락(奶酪)입니다.”

유락(奶酪)이라 하면 본디 치즈를 뜻하는 말이었다.

북경에서 유명한 이 디저트는 말하자면 중국식 우유 푸딩이며 본디 이슬람에서 들여온 유제품이 중국에서 발전된 형태였다.

설탕을 첨가한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찹쌀 주정을 넣어 유산(乳酸)이 생기기 전에 아주 가볍게 응고시켜 다음 그것을 구운 음식이다.

홍콩이나 대만에서는 이것보다 생강을 이용해 응고시킨 생강 푸딩을 즐겨 먹는데 생강 향이 은은한 것이 그것도 좋지만, 오늘은 가장 전통적인 유락을 만들어 순수한 유당의 단맛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만드는 과정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 아주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산이 생겨 시큼한 발효향과 맛이 올라오기 때문에 숙달되지 않으면 몹시 어려운 요리였다.

생강 푸딩은 생강의 성분을 이용해 응고시키므로 처음 만드는 사람이라면 무리하지 않고 생강 푸딩을 만드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다.

단팥을 올린 홍소유락(紅沙奶酪), 계란 노른자를 첨가해 고소한 맛을 더한 단황유락(蛋黃奶酪)도 좋지만 은근한 유당의 단맛을 좋아하는 태감이라면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순수한 것을 가장 먼저 찾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소년이 자신 있게 낼 수 있는 간식이었지만 태감은 어딘가 기묘한 표정으로 사기그릇 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소년이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묻자 태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같은 이름의 음식을 먹은 적이 있는데…… 분명 서방과의 교역품에 섞여서 들어온 것이었다. 이것보다 조금 누런 색의 단단한 돌조각 같은 모양새였다.

그건 아마 소젖이 아니라 양젖을 사용한 거라고 했었지. 짜고 고약한 냄새가 나서 조금 고생한 기억이 나는구나.”

태감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치즈 말씀이시군요.”

분명 우유를 자주 섭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유의 발효향은 무척 견디기 힘든 것이리라.

똑같은 발효 향이라도 콩을 발효시킨 것과 우유를 발효시킨 것은 다르니, 취두부를 잘 먹는다고 치즈를 잘 먹는 건 아니다.

“이건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는 음식이니 마음 놓고 드시지요.”

“그래? 그럼…….”

다른 건 몰라도 음식으로 장난은 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태감은 안심하며 사기 숟가락을 들었다.

‘저번 행인 두부와는 조금 다르군.’

행인 두부가 좀 더 각이 선 말캉함이었다면 이건 좀 더 순두부 같은 흐물흐물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수저로 부드럽게 뭉그러지는 것을 한술 떠 혀 위에 올리면…….

“어?”

첫술은 그대로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했다.

두 번째 숟가락을 뜨고 미각에 신경을 집중해 맛을 분해하듯이 느끼자 그 순한 단맛이 뇌리를 스물스물 잠식해 왔다.

전날 태감을 깜짝 놀라게 했던 악취에 가까운 발효취와 강렬한 맛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럽고 상냥하며, 초여름날 내린 늦서리처럼 덧없이 사그라지는 서늘함.

그 달큼한 듯 달지 않은듯한 미묘한 디저트를 두고 태감은 위기감을 느꼈다.

강철같은 의지나 불타는 사명감 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천하장사도 막을 수 없다는 그것이 태감을 찾아왔다.

그것은 졸음이었다.

“……오운.”

“……아, 예?”

아직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소년은 조금 늦게 태감의 말에 반응했다.

태감은 책상 아래 서류뭉치 사이에서 모포를 꺼내며 말했다.

“위정에게 오늘 오후 일정은 모두 취소하라고 전해.”

“예?”

“난 잔다.”

“예?”

소년의 반문을 듣지도 않고 사기그릇을 깔끔하게 비운 태감은 집무실 벽면에 접힌 상태로 붙어 있던 간이침상을 내려 수면에 들어갔다.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낮잠 자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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