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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6화 (16/314)

환관의 요리사 16화

한 잔, 두 잔, 연거푸 술을 들이켜자 작은 병에 들어 있던 봉밀주는 어느새 동이 나고 말았다.

오늘 작심을 한 듯이 태감이 서둘러 찬장에서 술을 꺼내오자 술맛에 취한 위정도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관리 녹봉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값비싼 술들이었다.

소흥주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는 여아홍(女兒紅)을 물처럼 들이키는 모습을 보며 태감은 다시 한번 운을 띄웠다.

“어때? 그 녀석, 쓸 만한가?”

돼지 머릿고기 한 점을 베어 문 위정은 우묵한 눈으로 태감을 내려다보았다. 술에 입가는 흐물흐물하게 풀렸음에도 눈빛은 아직 살아 있었다.

“역시, 더 크기 전에 죽이는 게 좋겠습니다.”

담담하게 처분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단호한 결단이 느껴졌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 서류의 먹물 자국으로 사람을 다루는 법을 배운 자들의 냉혹함이 목소리에서 배어 나왔다.

이미 예상한 말이었기에 태감은 위정의 냉혹한 말에 실망하지 않았다.

위정 역시 태감이 그 정도로 실망하거나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시 한번 더 간곡하게 말했다.

“요리가 맛있군요. 지나치게 맛있습니다. 황제 폐하의 진선(進膳)을 책임지는 상선 태감이나 외궁의 총조리장도 이 정도 맛을 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예, 정말 이상할 정도로 맛이 있어요. 그 나이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위정의 눈에는 그 점이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지나칠 정도로 어리다.

그 정도 솜씨는 적어도 십수 년의 고된 수련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경지.

불혹이 넘은 이가 그리했다면 뛰어난 대가라고 칭송했을 것이고 이립이 넘은 젊은이라면 세기의 천재라 경악을 했겠지만, 이 요리를 만든 것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약관은커녕 지학의 나이도 되지 않았을 어린아이였다.

모친의 뱃속에서부터 요리를 배우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 지독히도 냉정한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태감은 술잔을 기울였다.

“왜, 녀석 말대로 본인이 천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천재일 수도 있지.”

태감의 말은 농짓거리에 가까웠으나 위정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불콰하게 오른 술기운도 날아가 버릴 만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만약 그럴 일이 있다면 적의 뛰어난 수완을 칭찬할 일이거나 아니면 신의 변덕이겠지요. 불행하게도 전 무신론자입니다.”

“불경한 소리로다.”

용의 피를 이었다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만큼 제국에는 뿌리 깊은 금룡 신앙이 있었다.

민초들에게 용이란 비를 내리고 가뭄을 물리치는 치수의 신이자 병자를 치료하고 불행을 이기게 하는 구세주였으며 아이를 들게 하는 다산의 신이자 곡식을 영글게 하고 짐승을 번성케 하는 풍요의 신 이기도 했다.

아직도 궁벽한 시골에서는 매년 용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마을의 가장 큰 행사이자 축제이고 번화한 도시라도 첫 개업 때 고사를 지낼 때면 용에게 제를 올려 사업번창을 기원한다.

그 뿌리 깊은 민간신앙이야말로 제정이 일치된 황실의 가장 큰 뿌리이자 무기였다.

그런 시대에, 대낮에 말하면 몰매를 맞을 만한 말을 하면서도 위정은 태연했다.

그 모습에 피식 마주 웃음 지으면서도 태감은 이내 진지한 태도로 되물었다.

“그래. 그래서?”

태감에게 말을 꺼내 놓기까지 상당한 장고가 필요했다. 한참을 혀 위에서 술을 굴리던 위정은 이내 술을 삼키며 복심을 토해놓았다.

“정보가 없습니다. 예. 저에게 허락된 모든 수단을 다 조사해 봤지만, 그 소년에 대한 정보가 모조리 말소되어 있었습니다. 출신지, 이름, 출생연도, 부모, 무엇 하나 나오는 게 없습니다.”

그를 뒷조사한 것은 다름 아닌 동창이었다. 대륙 최고의 정보단체. 그런 단체가 직접 사람을 풀었는데도 소년에 관한 정보 한자를 얻을 수가 없었다.

위정의 바위 같은 목소리는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털어놓은 복심과 함께 절제하지 못하고 무심코 털어놓은 그것은, 공포심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태감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누가 이 석상처럼 무정하고 냉혈한 사내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했을까?

당장 눈앞에 칼을 들이밀어도, 설령 사랑하는 가족을 눈앞에 데려다 놓고 고문하겠다 으름장을 놓아도 꿈쩍도 안 할 사람이 바로 위정이었다.

그 철담(鐵膽)을 높이 사 자신의 심복으로 둔 것이 바로 태감 본인이었다.

위정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태감은 그의 심중을 헤아렸다.

“문일이군.”

그 순간. 위정은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려 한 자신의 다리를 잡아 억눌러야 했다.

의자를 끄는 소리와 모르는 사이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갈피를 잃은 눈동자는 양단이 기억하는 위정이라는 사내가 아니었다.

대가 세고 입이 무거운 그를 이토록 두렵게 만들 수 있는 자.

문일(文一).

전 동창 제독.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의 정보전 전문가. 그리고 전 황궁 최고고수의 이름이 나오자 위정은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태감은 확신한 듯 그 이름을 다시 입에 담았다.

“전 동창 제독, 문일이 정보를 지운 게야. 그렇지?”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현 동창 제독인 자신이 모든 권한을 허락한 위정이 그 실마리도 잡지 못한 것도, 문일이라는 이름 앞에선 납득이 갔다.

“문일, 그렇다면 그 녀석의 과거가 전대의 숙청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아직도 우리는 전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태감의 눈이 과거로 침잠했다. 그에게는 그저 서간의 먹물 자국으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 그 시절을 상기했다.

어쩐지 코끝으로 비릿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현 제국은 그 유구한 역사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젊은 나라였다. 오래전 진족이 각지의 소수민족을 억누르고 통합하여 세운 것이 그 배경인 나라답게 언젠가 터져야 할 고름이 터져 버린 나라는 망국의 길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각지에서 민란이, 억눌려 왔던 소수민족들이 들고 일어나 나라는 수십 갈래로 찢어졌고 군웅들은 또다시 춘추전국시대를 부르짖으며 전란의 시대로 뛰어들었다.

그때 황실을 상징하는 금룡기를 내걸고 칼을 뽑아 들었던 것이 당시 황태자였던 선황과 그의 직속 호위부대였던 금린대였다.

그 옆에 동창의 환관이자 황궁에서 비밀리에 길러진 살수였던 문일 또한 있었다.

선황께선 반란을 일으킨 민족들을 씨를 말릴 기세로 몰아쳤다.

그러지 않고 힘을 보탠 민족은 아직도 살아남아 각 지방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때 오십구 혈족이 모여 기틀을 잡았다는 제국에 남은 혈족은 고작 21.

이십 하고도 여덟 혈족이 그 내전에서 뿌리까지 멸족당했다.

잔혹한 성정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천하에 기를 내건 군웅들의 머리를 베어 장대에 걸었던 선황은 결국 그 과격했던 행보의 업보였는지 나라가 안정되자마자 도망치듯이 어린 나이였던 현 황제에게 옥좌를 물려주고 은둔했다.

현 황제는 고작 약관을 조금 넘은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고작 이립을 조금 넘겼을 뿐이었다.

아직 기반이 미숙할 때 황좌를 넘겨받았으니 우리가 이토록 고생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깊어진 태감은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들이켰다. 홧술이었는지 술잔을 내려놓는 손길이 거칠었다.

그랬다. 가혹한 전쟁이 끝난 지도 이십 년이 넘었고 현 황제의 통치가 이어진 지도 십 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황궁이라는 곳은, 이 제국은 선황의 그림자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뭐, 그 정도로 강력한 군주였다면 매달리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태감은 그 시대를 몰랐다. 때때로 그의 아버지로부터 짧은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 시대를 체감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라면. 그 가혹한 시대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보고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원했으리라. 그런 강력한 지도자를,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가족을 보호해 줄 든든한 버팀목을 원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앞장서서 광야를 질주했던 선황은 더없이 강대하고 존경스러운 군주였을 것이다.

전장에선 당할 자가 없는 용맹으로 적의 선두를 분쇄했고 안으로는 곡식을 풀어 황폐한 민심을 다스렸으니 민초들의 충성심은 여전히 황실을 향해 있을 수 있었다.

민초들에게 황제는 살아 있는 용의 화신이자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방패였고 적에게는 매서우나 백성들에겐 따뜻한 아버지였다.

이제 남은 것은 현 황제의 숙제였다. 선황이 적들을 분쇄하여 피로 가져온 평화를 깨끗하게 씻어 보기 좋게 장식하고 꾸는 것.

그리고 선황의 그림자를 지우고 이 제국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선황께서 내외의 전란을 막기 위해 소홀히 했던 부패한 관료들을 견제하고 정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외척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후궁을 장악해 황제의 힘이 되어줄 든든한 황후가 필요했다.

‘이런, 결국 결론적으로는 그 녀석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잖아?’

음식은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무기였다. 벌써 자신부터가 자신에게 변명이라도 하듯이 소년을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다.

거기에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지혜와 삐딱하지만, 곧 죽어도 바른말은 하는 그 성정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전대 동창제독 문일이라는 이름이 무거웠다. 후궁에 들어앉아 있는 자신과는 달리 황궁의 최고수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첩보전문가였던 문일은 현장에서 직접 뛰는 지도자였다.

그가 선황 폐하의 황권 선양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한들 태감으로서는 쉽사리 그 빈자리를 메울 수가 없었다.

“좋아. 일단 보류하자.”

정체가 조금 더 드러나면 처분해도 늦지 않다. 태감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결정을 미뤘다.

위정 역시 그 이상 처분을 권하지 않아 그들의 저녁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역시 좀 배가 고프군. 그 녀석한테 볶음밥 한 그릇 해 달라고 해줘.”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태감은 마지막 남은 술 한 잔으로 시선을 돌렸기 때문에 위정의 눈을 보지 못했다.

움푹하게 들어가 짖은 음영을 만들어내는 그 눈, 그것은 사람을 죽일 각오를 한 눈이었다.

* * *

그는 부하들에게 한점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늘 기강을 잡고 아랫사람을 부리는 입장에 서다 보면 자신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 찬물에 고개를 처박은 그는 자신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한 다음 주방으로 향했다.

제법 늦은 시간인데도 아궁이에는 아직 잉걸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감자라도 구워 먹는지 부지깽이로 타다 만 숯을 뒤적거리면 소년이 발소리에 고개를 돌려 위정을 보았다.

“나리, 뭐 야식거리라도 찾으십니까?”

소년은 위정의 정확한 지위를 몰라 그저 나리 라고만 했다. 위정 역시 그 점을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아니. 태감님께서 볶음밥을 찾으신다.”

“태감님께서? 이런, 저녁이 충분치 않으셨나…….”

소년은 서둘러 계란 서너 알을 고르고 파나 마늘 따위를 챙겨와 다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칼을 솜씨 좋게 다루는 모습에 위정은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나이답지 않게 뛰어나다.’

표정은 피로해 보이지만 뛰어난 솜씨는 조금도 무뎌진 모습이 없다. 칼이 음률을 타니 재료를 써는 모습만 보아도 보기 좋고 귀가 즐겁다.

요리를 할 때만큼은 평소의 비굴하고 옹졸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뛰어난 대가의 모습이 엿보였다.

그러나 그 솜씨가 뛰어나다 하여 그를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 시대를 모르는 태감과 다른 환관들과는 다르게 위정은 비록 그 끄트머리라고는 하나 선황제가 이끌던 시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선황제의 아래에서 뒤로 숨긴 독을 바른 칼이자 충실한 사냥개요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 같았던 문일이라는 사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위정은 눈앞의 소년은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그 어떠한 논리도 실증적인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문일이라는 자의 이름은, 전 동창제독이라는 이름값은 냉철한 그의 정신을 뒤흔들어놓았다.

문일이 어떤 이유로 소년을 이 황궁에 숨겼는지는 모른다. 그것이 이 나라에 좋은 의도인지, 나쁜 의도였는지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소년은 태감과 관계를 맺었고 남들이 보기엔 태감의 부하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작은 티끌 하나가 발목을 빠뜨리는 진창이 되는 이 황궁에서 소년이라는 무게추를 자신의 상관에게 안기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의 상관은 아직 이런 곳에서 정치 생활을 끝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기엔 너무 젊었고 책임이 너무 막중했다.

‘정치란 얼마나 공을 세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실수를 하지 않느냐다.’

살아만 있으면, 자리를 유지하고만 있으면 공은 얼마든지 다시 세울 수 있다.

하지만 한번 고꾸라져 낙마해 버리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곳이 이 황궁이다.

때문에 위정은 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인 소년을 죽여야겠다고 판단했다.

그의 주인이 말리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의 독단으로 판단해 버린 아둔한 충성심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나의 본분은 태감님을 향하는 위협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나의 충심이다.’

마음을 다잡자 자연스럽게 살기가 어렸다. 여전히 파를 썰고 있던 소년에게로 슬그머니 다가서는 그 모습에선 한 줌의 살의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표정에서는 이미 준비된 살수로서의 흔적이 엿보였다.

굳이 무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아직 다 여물지도 못한 어린것이니 단숨에 다가가 목을 비틀고 경추를 눌러 부숴버리면 고통을 체감하기도 전에 끝나리라.

그 시신은 휴대하고 다니는 부골산(腐骨散)으로 녹이면 끝난다. 태감님께 어떠한 누도 끼치지 못하고 후궁의 흙에 흩어져 살아 있었던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리라.

위정의 눈에선 살심으로도 차마 치우지 못한 한 푼의 연민이 한숨으로 흘러나왔다.

평생을 해온 일임에도 한 줌의 죄도 없는 어린것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위정에게 심적 부담감과 죄책감을 충동질했다.

‘넌 너무 위험하다. 그것이 네가 죽는 유일한 이유다.’

그것이 이 어린것의 죄였다.

평생을 굽신거리며. 평생을 다리를 질질 끌며. 평생을 숨을 죽이며 살아온 소년의 죄였다.

문득 소년의 칼질이 멈췄다. 도마 앞에 수북하게 파와 마늘을 쌓은 소년은 냄비에 기름을 부으며 위정에게 말을 걸었다.

“하실 일 있으시면 어서 하시지요. 나리.”

소년의 목덜미로 손을 가져가던 위정이 손을 멈추었다. 그 대신 위정은 소년의 말에 질문했다.

“무엇을 말이냐.”

“지금 하시려는 일 말입니다.”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닐 텐데.

소년은 바쁘게 아궁이 안으로 장작을 밀어 넣고 풍로로 불을 키우면서도 위정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은 온도의 기름에 파와 마늘을 바삭해지도록 튀기면서 소년은 다시 말했다.

“남길 말 없습니다.”

“……어찌 알았느냐?”

“대답할 필요 있습니까?”

그것은 위정의 개인적인 궁금증일 뿐이었다. 죽여야 할 대상에게 호기심을 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나 그럼에도 위정은 소년에게 다시 물었다.

“후회되는 일도 없느냐?”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왜 말하지 않느냐.”

“굳이 말할 필요 있습니까.”

죽음을 목전에 두어서인지 소년은 더없이 차갑고 무기질적인 태도였다. 그 모습이 오히려 위정은 기껍게 느껴졌다. 그래도 사내라고 마지막에는 기개가 있구나.

죽여야 할 상대에게 품기에는 부적절한 감성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변명하듯 위정은 다시 물었다.

“굳이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으냐.”

“그래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파와 마늘이 바삭바삭한 칩처럼 튀겨지자 그것을 따로 덜어내고 향기가 배어 나온 향미유를 따라낸 소년은 남은 기름을 따라 버리며 슬쩍 위정을 돌아보았다.

눈에는 귀찮음과 짜증만이 가득해 곧 죽음을 목전에 둔 아이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위정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래야 평생 궁금하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뭘 후회했는지.”

지금까지 보아온 소년이 한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독기였다. 그 말을 끝으로 소년은 말하는 것도 구차하다는 듯이 위정에게서 시선을 돌려 계란 세 알을 재빠르게 풀고 알끈을 제거했다.

풍로를 힘껏 눌러 세찬 바람으로 아궁이 불을 키우고 위에 철과를 올려 솔로 철과 표면에 전체적으로 기름이 발라지도록 했다.

달아오른 철과에 재빠르게 계란물을 쏟고 오른손에 쥔 젓가락으로 재빠르게 과 표면에 얇게 익은 계란을 잘게 찢었다.

마치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찌어진 계란은 한 웅큼 씹어보면 폭신폭신해 바싹하게 튀겨낸 파마늘칩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마른 수건으로 한번 철과를 닦고 방금 전 마늘과 파를 튀겨낸 향미유 조금을 넣어 거기에 채 썬 납육 약간과 완두콩 따위를 볶아내다가 밥을 넣어 철과를 빠르게 흔들면서 거세게 달아오른 불꽃에 밥알이 향기롭게 익도록 했다.

그 모습에 중화 요리사라면 지향해야 할 요리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능숙하게 철과를 흔들 때마다 밥알이 부드럽게 파도치며 솟아오르는 불꽃에 휘감기고 소년이 흘리는 땀방울과 아궁이의 열기에 밤공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어째서 요리를 하느냐?”

“대답해야 합니까?”

“대답해다오. 어째서 넌 그 요리를 완성 시키려 하느냐.”

위정은 소년을 죽여야 함을 납득 했으면서도 끝없이 소년에게 질문했다. 어쩌면 스스로가 소년을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눈에 소년은 비범하게 보였다.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분간할 수 없는 비범함이다.

뿌리 깊은 명문가의 자제도 대쪽같은 학사도 천군을 호령하는 장군일지라도 피할 수 없으면 겁에 질려 울부짖는 것이 죽음이다.

그것을 자신의 반의반이나 살았을 법한 어린아이가 어째서 저리도 담담히 받아들이는가? 죽음이란 수긍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 아니었나?

바쁘게 철과를 흔들면서도 소년은 슬쩍 고개를 돌려 위정을 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 위정이 읽어낸 소년의 표정은 비웃음이었다.

“배고픈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당연하고, 그렇기에 들을 거라 예상 못 한 한마디에 위정은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좀 더 숭고하거나 원한에 가득 찬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년이 한 말은 죽음을, 그것도 원치 않는 타살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가 할만한 대답이 아니었다.

‘……도망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군.’

그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포기해 버린 걸까? 위정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볶음밥은 거의 완성되기 직전이었다.

볶음밥이 거의 완성된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잘게 찢은 계란을 넣고 접시에 담기 전에 움푹한 그릇에 한 번 담아 봉긋하게 모양을 잡아준 다음 미리 튀겨둔 마늘 파 칩을 듬뿍 올려주면 식감과 풍미가 좋은 소년의 양주식 볶음밥을 재해석한 볶음밥이 완성된다.

생의 마지막 요리를 완성한 소년은 물끄러미 그것을 내려다보고는 이내 그것을 탁자 위에 올리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끝까지 위정에게 등을 돌리고 아궁이의 불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그 순간을 굳이 맨눈으로 맞이할 필요는 없으리라.

가능하면 앵속이라도 구해올 걸 그랬다고 스스로 자책하며 위정은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일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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