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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3화 (13/314)

환관의 요리사 13화

죽을 끓일만한 국물을 남기기 전에 말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역사와 전통의 내리 갈굼을 당한 후 얼마 뒤.

이 세계에도 사라지지 않은 선후배 사랑의 결정체에 절망했던 소년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긴장된 표정으로 요리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를 일이나, 황제가 자라탕을 청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제국의 지배자가.

상선 태감의 일지에 적힐 만한 공식적인 식사자리는 아니었지만, 소년으로서는 손끝에서부터 피가 메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때는 중국 국가주석의 관저에서 요리한다는, 본토 요리사들도 쉽게 경험 못 할 영광을 누린 적도 있는 소년이었지만 지금 소년이 받는 압박감은 그 시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도 개인의 영광은 물론 소년을 추천한 스승님의 명예까지 걸려 있어 죽자 살자 했지만 이번에 실수하면 정말로 목이 날아간다는 점이 차이점이었다.

언제는 당장 죽이라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른 주제에 막상 황제 앞에서 깝죽댈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렸는지 소년은 온 신경을 집중해 요리를 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황제 폐하께선 자비로우신 분이시니까…….”

그래, 생각해 보면 보통 잔인한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런 어린애가 만든 음식이 맛없다고 대뜸 모가지부터 날리지는 않겠지?

“아마 왼팔의 새끼손가락과 약지 정도로 관대하게 봐주실 거예요!”

“아…… 예. 거참 관대하십니다, 그려.”

소년은 황실의 관대함에 눈물을 흘리며 자라를 손질했다. 자라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 너무 크면 질기고 비린내가 나고 너무 작으면 먹을 것이 없기에 살이 야들야들하고 통통한 중간 치수를 골랐다.

닭은 기름이 노란 삼황닭. 삼황닭은 살이 차지고 기름이 고소한 광서 오주(梧州) 지방의 명물이었다.

여기에 온갖 몸에 좋은 재료를 황제의 식탁에만 오를 수 있는 붉은 봉황과 금색 용이 그려진 백자 탕관에 넣어 쪄냈다.

평소보다 몇 배는 시간을 들여 재료를 철저하게 손질했고 닭과 자라의 무게를 정밀하게 계량해 최적의 시간을 계산하여 찜기에 넣었다.

비록 비공식적인 식사라 할지라도 황제의 식사를 차리는 것이니 보통 사람 같았으면 삼생의 영광이라 여기며 용의 아들께서 거하실 반룡궁을 향해 머리가 깨져라 절을 할 일이었지만 소년으로서는 그저 갑작스럽게 밤늦게 찾아온 재난일 뿐이었다.

오래전 근무한 호텔에서도 중요한 거래처 회장이 야밤에 쳐들어와 특식을 주문한 일은 몇 번 있었다.

그때야 까짓거 수틀리면 관두겠다고 지배인에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번엔 그럴 수도 없어 소년은 답답한 가슴을 치며 아궁이에 장작을 넣었다.

아마 태감 놈 때문이겠지. 맛있는 걸 먹었다고 얼마나 자랑질을 했으면 그래 황제 폐하가 탕을 내오라고 하겠어.

속으로는 태감을 씹으면서도 소년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조리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완성된 탕은 우선 표면의 물기를 깨끗이 닦아낸 뒤 엄중하게 탕관째로 밀봉되어 태감의 손으로 넘어갔다. 소년 못지않게 태감 또한 긴장된 표정이었다.

밀봉된 탕관을 단단히 받아든 태감이 반룡궁으로 가자 그 뒤를 그의 심복들이 따라나섰다.

하지만 장소만큼은 긴장감에 떠는 소년을 위로하기 위해 자리에 남았다.

“괜찮을 거예요. 검지나 엄지도 아니고, 새끼나 약지 정도면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예 예, 기운이 나니까 제발 거기까지만 합시다.”

장소가 최소한 남을 위로하는 데는 크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소년은 일에 몰두해서 걱정을 떨치기 위해 다시 도마 앞에 섰다.

식탐이 많은 태감이라면 분명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야식거리를 찾을 것이다.

‘밤이 깊으니 기름진 음식은 속이 불편할 것 같고, 너무 짜거나 매운 요리도 입이 마르고 물을 들이켜게 되니 안 된다.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편하고 식욕이 당기는 요리가 없을까?’

만두. 그중에서도 반죽은 폭신하게 부풀리고 속엔 다양한 소가 들어간 포자(包子)라면 어떨까?

다른 만두피보다 발효가 잘되어 폭신하니 소화도 잘되고 속 재료로 야채를 많이 사용하면 어떨까?

천진의 명물 구부리 포자가 유명하지. 하지만 포자의 반죽을 발효시킬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럼 혼돈자(馄饨子)를 만들면 되겠군.”

소년은 사고를 유연하게 회전시켜 포자 만두를 혼돈자로 변경했다.

구부리의 포자 만두와 함께 천진의 명물인 혼돈자는 파와 돼지고기를 속 재료로 얇은 피로 감싼 작은 물만두였다.

이것을 돼지 사골이나 닭 육수로 삶아 국물과 함께 먹는데 피가 얇아 촉감이 좋고 속 재료가 알찬 것이 특징이었다.

맑은 국물에 하얀 혼돈자가 잠겨 있는데 그 국물에 하얀 닭고기나 노란 계란, 붉은 새우, 검은 김, 파란 고수풀 등을 넣으면 색 조화가 아름답고 먹으면 속이 든든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만두의 크기가 작아 먹기가 좋고 피가 얇아 부드러워 소화 시키기도 좋으며 닭 육수가 구수하고 든든하니 야식거리로 좋겠다 싶었다.

소년은 곧바로 만들어둔 육수를 남은 잉걸불 위에 올리고 반죽을 시작했다. 밀가루 반죽을 젖은 천으로 덮어두고 다진 돼지고기에 파와 간장, 소흥주 약간과 후추 등으로 양념을 한 소까지 완성할 때쯤 약간 지친 얼굴의 태감이 돌아왔다.

“그거 내 야식이냐?”

“예. 취향에 맞게 적식초나 후추를 조금 치시고…….”

“고추기름은?”

“……밤에 속 버리십니다.”

아직 젊은 태감은 건강보다는 맛을 더 중요시할 나이였다.

소년이 권한 풍미 좋은 최고급 적식초도 마다하고 국물이 벌게지도록 고추기름을 올린 태감은 차갑게 냉침한 옥로차와 함께 야식을 먹기 시작했다.

“차갑게 우린 차도 괜찮은걸.”

“뭐, 냉침차는 물이 좋지 않으면 만들기 어려우니 말이죠.”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 나라도 수질이 썩 우수한 곳은 아니었다. 다행히 황궁이 위치한 장소는 맑고 깨끗한 지하 암반수가 다량 매장되어 있어 우물로 그 물을 길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맑고 시원한 물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뜨거운 차를 좋아하는 것은 중국인과 다르지 않은지 황궁에서나 민간 에서나 한여름에도 김이 펄펄 나는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뜨거운 국을 마시면서 뜨거운 차를 마시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지.’

콜라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시원한 냉 녹차 정도는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실제로 태감은 차가운 차가 제법 마음에 든 표정이었다.

“피가 매끄러워서 좋은데. 속도 알차고. 육수는 닭인가?”

“예, 돼지 사골로 해도 맛있지만 야식이다 보니 깔끔한 닭 육수가 어울릴 것 같아서…….”

“그럼 내일 아침은 사골로 끓인 거로 해다오.”

“아침부터 너무 무겁지 않습니까?”

소년은 굳이 결과를 묻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감이었을지, 아니면 체념과 포기였을 지는 소년만이 알 일이다.

소년에게 혼돈자 한 그릇을 더 받아든 태감은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일단 폐하께선…… 몹시 만족하셨다.”

“……하아…….”

그 말과 함께 싸늘한 한숨을 토해내며 소년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일단, 당분간은 손가락도 모가지도 멀쩡하겠군…….

한숨을 내쉬며 소매로 땀을 훔치는 소년에게 덕분에 점수를 땄다며 태감은 작은 선물을 건넸다.

서둘러 풀어 내용물을 털어보자 주머니 안쪽에서 새끼손톱만 한 금 조각이 나왔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비상금 삼아, 가지고 있거라.”

“참나, 후궁에서 돈 쓸 일이 어디 있습니까?”

“혹시 아느냐? 밖에 나갈 일이 있을지.”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은 태감이 아직 쓰고 있었던 가면을 벗으며 넌지시 말했다.

“난화비께서도 네게 전해달라더군. 오늘 탕도, 저번 케이크도 무척 맛있었다고.”

“난화비 님이…… 계셨습니까?”

“마침, 시침 순서가 그랬더군.”

탕을 2인분 이상 준비하라고 했던 것은 그래서였구나. 단순히 용의 혈통을 타고난 자들은 대대로 대식가라는 말을 듣고 그러려니 했던 소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째서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소년이 요리사라는 사실은, 태감이 준비한 숨은 칼이라는 사실은 숨겨진 채 간직되어야 했다.

그래야 막상 휘두를 때 그 효과를 볼 수 있으니. 분명 그렇게 약속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요리 했다는 사실은 태감이 입을 열지 않았다면 극비였을 터. 난화비에게 소년은 그저 새로 태감의 밑으로 들어온 환관 중 한 명이었어야 했다.

케이크도, 탕도 전부 태감이 극비리에 공수해 온 것. 분명 그렇게 마무리되었을 터인데.

어떻게 난화비는 소년이 요리했다는 사실을 유추해 내었을까? 그날 소년이 케이크를 잘랐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을 것이다. 아니면 난화비 개인의 정보를 수집할 수단이 있나?

그렇다면 최악이다.

이 후궁이란 장소는 난화비라는 작은 개인이 정보단체를 굴릴 수 있는 만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궁 안과 밖을 물 샐 틈 없이 감시하는 동창은 하룻밤이면 있던 소문도 묻어버리고 없던 소문도 만들어낸다는 초법적인 권력을 가진 기관이었다.

낮도 밤도 밝은 곳도 어두운 곳도 모조리 감시당하는 이 복마전에서 개인의 정보단체를 움직인다는 것은 난화비가 동창제독을 우습게 볼 수 있을 정도의 막후의 권력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난화비의 친가는 경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복건성의 도지휘사, 외가 역시 해상무역으로 돈을 번 상단인 만큼 복건성 내에서라면 모를까 그 밖으로는 힘을 쓰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동창이 파악하지 못한 제3의 권력자가, 그것도 동창을 속일 수 있을 만큼 권세 높은 권력자가 난화비의 등 뒤에 숨어 있다는 뜻이 아닌가.

창백하게 질린 소년을 내려다보며 태감이 웃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겠지. 친가도 외가도 그 정도 권력자는 아니야. 그리고 동창이라는 기관은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음지의 권력자라도 최소한 황궁의, 후궁의 정보만큼은 동창을 능가할 수 없어.”

“그럼 제가 요리사라는 사실을 그저 유추해 냈다는 말씀입니까? 이 궁은 시녀도 없어 시녀들의 소문을 정보로 취합할 수 없었을 텐데…….”

이 후궁이라는 장소는 기본적으로 금남의 장소. 거기에 시녀들은 대부분 나이 어린 여자들이 많아 그만큼 소문도 자주 돌았다.

뛰어난 자라면 강의 모래에서 사금을 걸러 내듯이 시시콜콜한 소문 속에서 값진 정보를 얻어내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소문이라는 모래 속에 금싸라기가 들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평소에 가면을 쓰고 다니는 태감이 유일하게 가면을 벗는 장소였기 때문에 연좌궁은 오직 그가 민얼굴을 보일 만큼 신뢰하는 환관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이 금남의 구역에서 유일한 금녀의 구역인 이곳은 절대적으로 소문에서 안전한 장소였다.

국물을 쭉 들이켠 태감이 세 번째 혼돈자를 재촉하며 말했다.

“글쎄. 아마 내 예상으로 그녀의 지모가 비범했다던가, 아니면 그저 감일 수도 있겠지.”

“감? 그냥 감이요?”

소년의 마지막 말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소년이 기대한 것은 그런 변명 같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감은 소년에게 훈계하는 태도로 말했다.

“그래. 감일 수 있다. 뛰어난 무장이 전장에서 이변을 예측하듯이, 오래 이 정치판을 뒹굴다 보면 필연적으로 사람에 대한 감이 생기지. 난화비는 어린 시절을 상계에서 구르며 그 사람에 대한 감각을 길렀을 가능성이 높아. 거기에 널 보고 너에게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겠지.”

“제 뭐가 그리도 특별합니까?”

소년은 조금도 특별한 면이 없었다. 움푹 들어간 눈은 음영이 짙었고 코는 살짝 매부리코에 가까워 인상을 비열하게 만들었다.

허리는 굽었고 다리를 저는 소년은 남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모습이 절대 특별하지는 않았다.

아니, 부정적인 의미로는 꽤 특별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그게 특별하다는 거다. 신체가 건강한 것도 아니고 외모가 빼어나지도 않은 놈이 후궁에서 환관 노릇을 하니 특별하고말고.”

환관이란 먹고살기 어려워 거세를 하고 자신을 판 비천한 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후궁의 환관이 되는 것은 스스로 비참함을 선택한 자 중에서도 용모가 단정하고 신체가 건강한 이들만 될 수 있는, 말하자면 환관계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후궁의 환관들보다 직급이 아래인 외궁의 말단 환관이라면 모를까 소년이 후궁의 환관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환관도 외모지상주의입니까? 젠장 이거 서러워서…….”

“외모지상주의의 산증인을 눈앞에 두고 인제 와서 그러느냐?”

태감이 보란 듯이 고개를 흔들며 길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길고 섬세한 손가락 사이로 흑단처럼 검고 진주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이 사르르 흩어졌다.

샴푸광고 모델들이 자기혐오에 빠지고 감독들은 스스로 눈을 찌르고 한탄할 법한 광경에 소년은 말을 잃고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침묵했다.

“아무튼 난화비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엄중한 감시가 필요할 것 같다. 이건 우리가 할 일이니 네가 해야 할 건…….”

“간식을 만들란 말씀이죠?”

“달콤한 걸로.”

“예. 달콤한 걸로.”

그 말을 끝으로 태감은 세 그릇째의 혼돈자에 집중했다. 밤이든 낮이든 참 잘 먹는 사람인지라 만드는 보람은 있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겨 들었다.

부디 난화비가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악인이 아니기를.

소년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그 대단하신 용의 아들께서도 모를 일이었다.

* * *

점심으로 오리고기구이를 먹고 따로 남겨둔 오리 기름으로 튀긴 감자를 먹으며 태감은 마치 시름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그 고상한 서글픔에 물고기는 헤엄치는 것을 잊고 꽃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것만 같지만 그를 제법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소년은 저 표정이 저녁은 뭘 먹을까 하는 지극히 원초적인 본능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리고기를 점심으로 먹었으니 저녁은 아마도 돼지고기나 양고기. 혹은 산뜻한 게 먹고 싶다고 생선을 쪄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진하고 기름지고 강한 맛을 좋아하는 태감의 입맛을 고려하면 아마도 오늘의 저녁은…….

“돼지고기. 양념을 진하게 해서.”

“찔까요?”

“음. 그래.”

역시 예상대로였다. 돼지고기 찜이라면 역시 동파육이겠지. 아니면 껍질을 살짝 그을려 쫄깃하게 해서 홍소육으로 해도 좋겠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소년에게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태감이 말했다.

“아니다. 부여비를 만나야 하니 시간이 걸리는 찜보단 볶음으로 하자.”

“예?”

‘아니, 지금 누굴 만나러 간다고?’

당황한 소년이 무어라 반문하기도 전에 태감이 일어섰다.

“바로 간식을 준비해. 빨리 만들 수 있는 걸로. 장소. 넌 동각궁(東閣宮)으로 가서 부여비께 면회를 청해라. 너희들은 이 녀석이 입을 걸 준비해 주고.”

명령이 떨어지기 전이라면 반문해도 좋지만, 명령이 떨어진 이상은 따라야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소년을 이끄는 우두머리는 양 태감이었다. 입이 댓 발은 튀어나왔지만, 소년의 손은 쾌속하게 움직였다.

봉황구.

정식 명칭은 빙화계단봉황구(氷花鷄蛋鳳凰球).

계란이 듬뿍 들어간 중국식 도넛으로 돼지기름(라드)으로 튀겨내 고소하고 달콤하지만 칼로리를 생각하면 결코 웃을 수는 없는 음식이었다.

나무통 안에 가득 찬 돼지기름을 내려다보며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돼지기름.

정확히는 돼지의 등 기름을 정제한 것. 그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사람들이 있다.

그 무시무시한 칼로리, 혈관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면서부터 입에 대기 어려워진 젊음의 특권.

나이가 들수록 그 찬란했던 과거를 젊은 날의 객기라 비하하면서도 결국 콜레스테롤이니 고혈압이니, 현실이라는 차가운 벽에 가로막혀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슬픔의 맛.

하지만 뭐 어떤가! 여긴 시발 고대 중국(비슷한 곳)이라고! 칼로리를 누가 신경 쓴다는 거야! 난 라드로 튀길 거라고! 올리브유 카놀라유, 다 엿이나 먹으라지!

콜레스테롤! 뇌경색! 동맥경화! 당뇨! 고혈압!

한때 요리를 보다 심도 있게 배우기 위해 영양학을 공부했던 소년은 라드와 버터에 맺힌 한이 많았다.

마음속으로 토해내는 열변은 요리사의 절규였다. 한때 라드와 카놀라유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고 절규했던 요리사의 슬픔이었다.

‘하지만 맛있지, 돼지기름은.’

아아, 몸에 나쁜 것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그리도 맛있는가!

그것은 요리사의 슬픈 딜레마였다. 몸에 좋은 요리는 맛이 떨어지고 입에 달콤한 음식은 혈관이 비명을 지른다.

“알게 뭐야 젠장, 돼지기름 먹은 만큼 채소도 먹으면 되는 거 아냐?”

슬픈 변명을 늘어놓으며 소년은 손을 움직였다.

물과 라드 조금을 넣고 끓인 것에 밀가루를 넣고 재빠르게 젓는다. 냄비 바닥에서 떨어질 것처럼 잘 반죽이 되면 달걀 네 개와 두 개 분량의 노른자를 혼합한 것을 조금씩 넣으며 반죽한다. 균일하게 부드러워 지면서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리고 라드를.

찔끔찔끔이 아니고 반죽이 충분히 튀겨질 정도로 양껏 녹여 2~3㎝ 정도 크기로 떼어낸 반죽을 튀겨낸다.

황금빛으로 부풀어 오르면 꺼내어 생강엿을 물에 개어 만든 시럽을 묻히고 가루 설탕을 뿌려내 완성한다.

“오, 맛있어 보이는구나. 하나 먹어볼까?”

포장하기도 전에 태감이 다가와 잘 튀겨진 봉황구를 냉큼 집어 들었다.

“아니, 부여비 님과 다과에서 드시지요.”

“이런 건 방금 튀겼을 때가 가장 맛있는 거다. 오오, 생강 향이 참 좋은걸. 의외로 어른스러운 맛이야.”

계란이 듬뿍 들어가 노른자의 맛이 진하고 익반죽을 해서 쫄깃쫄깃하다. 거기에 달콤하면도 은근하게 쌉싸름한 생강 풍미가 도드라져 기분 좋게 코끝에 머문다.

“무엇보다 이 반죽이 너무 고소하고 기분이 좋은데. 비법이 있나?”

“비법 이란 건 없고, 그냥 돼지기름의 힘이죠.”

소년의 쓴웃음의 진의를 태감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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