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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의 요리사-11화 (11/314)

환관의 요리사 11화

등이 굽은 소년은 다리를 절며 후궁의 내원을 나서고 있었다. 그 왜소한 체구와 그늘진 얼굴이 비단옷에 은실자수 수놓은 고급스러운 환관복과 썩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소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딱히 개의치는 않았다.

얼굴이야 타고난 것이고 몸이 불편한 것이야 천형인데 어찌하겠는가?

거기에 소년은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빨리 가지 않으면 늦겠어요.”

“아니, 좀 천천히 갑시다…… 짐도 있는데…….”

소년은 필사적으로 작은 꾸러미 두 개를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어떻게든 재촉해 보았지만, 옆에서 사슴처럼 통통 튀는 장소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운이 빠졌다.

후궁의 내원에서 외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어 걸어도 그리 지칠 일이 없었지만 그들이 걷는 길은 마구간 옆 개구멍에 장독대 위를 밟고 올라간 담장에 곱게 다듬은 정원수 아래 등등 개구쟁이 꼬마들의 숨바꼭질 장소 같은 곳이었다.

담장 위를 가까스로 기어오르며 마치 고양이처럼 폴짝 뛰어 담장 위에 올라서는 장소의 모습을 보던 소년은 짐이라도 들어달라 할까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 밤의 메인 디쉬를 저 덜렁거리는 아이에게 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조금 힘들어도 자신이 들고 가는 편이 속이 편했다.

턱밑으로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쳐가며 외궁으로 들어선 소년과 장소는 목재로 만든 콜로세움 같은 구조의 공연장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걸 조립식으로 만들다니, 차라리 좀 한적한 곳에 올려서 그대로 두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 얼마나 대단한 삽질인가, 역시 이 시대에도 인간은 갈아 넣으면 갈아 넣을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농담을 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실제로 인간을 산채로 갈아버리는 형벌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그런 농을 했다간 빈축을 살 것이 뻔했다.

장소가 눈치채지 않게 스스로만 작게 웃음 지으며 휘장의 그늘로 파고든 소년은 조금씩 태감의 자리로 다가섰다.

북방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용의 아들, 황제를 중심으로 좌우로 문신 무신들이 자리에 앉고 황제와 가까운 쪽은 화려하게 치장한 비들이 앉는다.

그 사이를 환관들이 채우고 있었는데 태감의 자리는 황제와 가장 가까운 위치였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가면을 벗을 수 없다니, 피곤하시겠군.’

좌석 아래 깐 천을 헤치고 기어오르자 시선은 여전히 정면에 고정한 상태로 가면을 살짝 들어 땀을 훔치던 태감이 말을 걸었다.

“마침 좋을 때 왔다. 이제 공연이 끝나고 비들이 무용을 보여 줄 시간이거든.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둥근 원형 좌석 한가운데에 공연장이 있고 그 둘레는 악사들이 둘러앉아 연주하고 있었다.

화려한 복장으로 꾸미고 짙은 화장을 한 배우들의 마지막 퇴장 인사가 끝나자 십여 분의 쉬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징을 쳐 울렸다.

“물건은, 제대로 가져 왔겠지?”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마치 마약 밀매상 같은 대화라고 생각하며 소년은 품 안의 꾸러미 두 개를 태감에게 건넸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손안을 채우고 작지만 묵직한 무게감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근심과 불화를 잊게 만드는 그윽한 연 향기가 태감의 코를 간질거렸다. 태감은 가면 위로도 확연히 알 수 있을 만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풀어볼까.”

태감이 보따리를 풀려 하자 그의 심복인 환관 넷이 태감에게 바싹 다가서 그들의 그림자로 태감을 가렸다.

하지만 사람의 장막으로도 향기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소년이 보자기에 싸 온 나무 숟가락을 든 태감이 연잎 꾸러미를 풀자 그윽한 연 향기 사이로 인간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기름진 향이 피어올랐다.

기름진 고기를 소금에 절여 훈연한 안휘성의 납육에 매운 향신료와 고기를 창자에 채워 훈제한 사천성에서 들여온 향장.

그 기름과 육즙이 배어든 찹쌀밥이 연회장을 밝히는 등의 불빛에 찬란하게 빛났다.

소란스러운 연회장의 한가운데서 목울대 꿈틀거리는 소리마저 들릴 만한 고요를 느끼며 태감은 오감을 연잎밥에 집중시켰다.

따스한 온기와 반짝거리는 고기들, 연잎과 기름과 향신료의 향기들이 앞다투어 코를 간질거리며 서로의 우열을 다툰다.

연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즐겁게 느껴진다.

천상의 미인보다도,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보다도 연잎밥의 온기가 사람의 흉금 속으로 파고들어 가슴을 진탕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의 욕망 중 가장 저열하다고 평가받는 식욕이란 것이 이토록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육즙이 배어든 밥과 고기. 야채라고는 절인 무가 조금 있을 뿐.

그 흔한 청경채 한 조각 없는 것이 소년이 얼마나 태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녀석, 내 식성을 잘 안단 말이지.’

하지만 소년의 이해심에 흐뭇해하면서도 태감은 쉽사리 수저를 들지 못했다.

먹음직스럽지만, 기름진 음식을 밤에 먹는다는 죄악감이 가슴 한구석에서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이 시대에도 밤에 기름진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정도의 상식은 이미 있었다. 한밤에 기름지고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은 탐식과 태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 내치기엔 너무나도 먹음직스럽다.’

무의식적으로 태감의 눈길이 옆자리에 앉은 소년에게 향했다. 우묵한 눈가는 그늘져 있었고 피로에 젖어 있었다.

아직 채 식지 않은 땀을 소매로 닦으며 걸터앉은 모습 또한 연민의 감정이 느껴질 정도로 초라하다.

아,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이 어린 소년이, 몸도 불편한 것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편치않은 다리로 달음박질쳐 애써 가져온 것을 내친다니, 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이것은 나의 식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소년의 공덕을 쌓아주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몸을 불사를지언정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요 의인의 마음가짐이 아닌가.

옛말에 옳은 일을 눈앞에 두고도 행하지 않는 자를 소인배라 하였다. 내 혀를 즐겁게 하고 소년의 덕을 즐겁게 하는 일이 어찌 불의라 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이 요리를 만들기 위해 희생한 가축들은 어떠한가?

기꺼이 자신의 잎을 내어준 연꽃과 허리를 숙인 벼들을, 사람을 살찌우기 위해 자연은 이토록 스스로를 희생하는데 군자라는 자가 어찌 이것들을 마다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감동에 태감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어느새 자기합리화가 우주에 대한 감사의 영역에 도달한 태감이 거침없이 숟가락으로 찰밥을 퍼 올려 입안에 밀어 넣었다.

“……아.”

차진 찰밥의 식감이 쫄깃하고 기름진 고기와 만나 혀와 어금니를 희롱했다.

씹을수록 짭조름한 기름이 배어 나와 목구멍을 간질거리고 매콤한 향장의 향신료가 톡 쏘는 향으로 목구멍 안을 타고 기어오른다.

기름지고 짜고 매운 그 맛들이 든든한 찰밥으로 하나 되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목 안쪽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깊은 연향.

그 연잎 향기.

군자의 도리가 무엇이고 죄악은 또 무엇이냐.

따끈한 찰밥 한술에 근심과 걱정이 모조리 날아가 태감은 마치 뜬구름에 걸터앉은 것만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사람의 이성보다도 먼저 원초적인 본능이 그 음식에 이끌렸다.

태감의 첫입을 감동시켰던 기름진 고기의 육향은 본능을 유혹하고 심장을 요동치게 했지만, 그는 이내 이 음식의 진정한 가치가 기름진 맛으로 혀를 희롱하는 고기가 아닌 이 그윽한 연향에 있음을 깨달았다.

태감은 모든 욕망과 그 욕망 앞에 초라한 인간이었던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한밤중에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해 애써 초라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은 얼마나 치졸하고 부끄러운 행위였나.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거기에 태감에게는 아직 풀지 않은 보따리가 하나 더 있었다. 닭고기와 버섯이 들어간 찰밥은 어떠한 맛으로 혀를 즐겁게 해줄까?

휴식 시간의 끝을 알리는 징이 울리고 다른 때보다 더 웅장하고 힘찬 소리로 악사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이미 어두운 밤이 다시 물러가고 저물어 버린 황혼이 다시 찾아온 것처럼 붉은 등이 사방을 가득 채워 차갑게 젖어 든 밤을 다시 밝히고 곱게 치장한 비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였는데도 태감은 공연장을 향해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상 위에, 자신 앞에 놓인 작고 따스한 연밥과 자신. 그 작고 온화한 공간에서 가슴을 뜨겁게 채워주는 다정함을 느끼며 태감의 밤은 느리게 흘러갔다.

* * *

하늘 높이 세워진 색색의 등은 온갖 꽃 모양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악사들의 곡조는 늦은 밤을 불태울 듯이 열정적이었다.

여기까지 라면 더없이 좋았다. 멋진 축제에 참석한 기분으로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무용은 그저 그렇구만.’

솔직한 소년의 감상은 화장 진하게 한 아가씨들이 천을 나풀나풀 흔드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옆쪽에서 젊은 무관이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환호성을 지른다든가 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감성이 다르기 때문일까?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이 시대를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사실 나만 유치하게 느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춤인가?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무용을 관람하는 소년을 보다 못해 위정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무용이 별로인가?”

“……솔직히 말하면 그냥 천 들고 흔들고 있는 거로 보이는데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대단한 무용인가 보죠?”

“……천애사무(天愛四舞) 중 하나인 월운무(月雲舞)다. 달에서 내려온 선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추었다는 전설이 있지.”

“어……그러니까 대단한 거란 말씀이시죠?”

“……하긴, 아직 어린 너에겐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이 양반아. 내가 겉은 젊어도 속은 댁이랑 형, 동생 할 정도는 되거든? 댁이 나한테 형이라고 할 판이야.

내가 애를 늦게 낳았어도 저기 침 흘리는 장소만 한 애가 있을 나인데 지금.

어디다 대고 지금 애 취급을 해? 니미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좋게 봐줘도 애들 학예회구만 월운무는 지랄 염병을-

속으론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설명해 줘서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어쩔 수 없는 어른의 대처였다.

위정의 설명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아까부터 환호성을 지르는 젊은 무관들이나 대놓고 환호성을 지르지는 못해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춤을 보는 문관들의 모습을 보면 이 시대상에선 저런 모습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은 알겠다.

거기에 환호성이 짙어질수록 공연장을 내려다보는 다른 비들의 표정이 싸늘해지는 것을 보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데도 속이 쓰려 왔다.

‘황제 폐하도 힘드시겠구만…….’

옅은 차양을 드리워 그 용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용의 아들의 자리인 북향을 향해 연민의 얼굴을 내비친 소년은 이내 고개를 돌려 황후 후보들을 보았다.

자꾸 보면 또다시 태감과 황제의 얼굴을 비교하게 될 것만 같아 소년은 주의를 억지로 다른 비들을 향해 돌렸다.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홍엽비와 별 관심 없는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작게 하품을 하는 부여비.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라하비를 지나 소년의 시선이 안양비를 향했다.

냉정한 그 시선은 마치 푸줏간의 고기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고기의 질을 품평하는 듯한 시선에 한기를 느끼며 옷깃을 여민 소년은 마지막으로 난화비를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오상비(五祥妃) 중에서 유일하게 무용을 순수하게 즐기는 듯이 방긋 웃고 있는 그 모습에 지친 피로와 독살스러운 분위기에 쓰린 위장도 함께 치료받는 듯했다.

소년은 황후의 재목 중 그녀가 제일 괜찮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의기소침해 하는 홍엽비나 독살스러운 안양비보다는.

뭐 어떤가. 생각 정도는.

최소한 생각 정도는 누구나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까.

망상은 버릇이었다. 십여 년을 궁의 밑바닥을 기며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온 소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허락된 유흥거리였다.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소년은 이 넓은 궁에서 홀로 살아왔다.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고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칠 수 없는 삶이었다. 혼잣말마저 누구에게 들릴까 봐 숨죽여 말하던 인생.

구더기란 것은 소년이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최소한 이 궁에서, 구더기로라도 살아 있는 존재이고 싶었다. 그런 형태로라도 이 후궁이란 곳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소년은 구더기조차 아니었다.

나무나 바위 따위의 무정물. 비웃을 수조차 없고 학대할 수도 없는.

소년은 그런 무정물처럼 궁에서 살면서도 궁의 사람들과는 한 발자국 떨어진 삶을 살았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궁에서 가장 화려한 장소에 앉아 있으면서 소년은 기묘한 공포를 느꼈다.

그 공포의 이름은 외로움이었다.

난 지금 사람인가?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가? 사람으로서 이 후궁에 소속되어 있나?

사실은 여전히 구더기인 것 아닐까?

사실은 구더기조차 아닌, 자신을 구더기라고 착각하고 있는 돌멩이 아닐까.

악사들의 연주가 희미하게 들렸다.

비들의 무용이 흐릿하게 보였다.

시간관념이 무너져 내리고 바닥에 엎드린 채 견뎌온 시간이 빠르게 뇌리에서 점멸하듯이 스치고 사라졌다.

갈라진 입술에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난 사람인가. 난 구더기인가. 난 돌멩이인가.

난 누구였지? 내가 기억하는 현대의 나는 정말로 나였을까? 실은 그저 미쳐 버린 내 망상 아닐까?

난 사실 통속의 뇌가 아닐까? 사실은 미치광이 과학자가 내 뇌에 전류를 흘리고 있는 것 아닐까?

젊은 시절 교양 삼아 읽었던 철학논평의 한 주제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년의 뇌리를 떠돌았다. 공허한 눈으로 미동 없이 공연장을 내려다보는 소년이 기이했는지 찰밥을 먹던 태감이 소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어이, 괜찮냐?”

“……아. 예. 괜찮습니다.”

“졸려서 그런 거면 먼저 들어가서 자는 게 어때? 장소를 붙여주지.”

“아…… 아니요. 그냥 내일 아침은 뭘 만들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메뉴는 중경식 마라소면(麻辣素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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