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요리사 6화
“이런 젠장, 여태 잘 살아왔는데 거세라니! 내가 고자가 된다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환관 노릇을 하려면 환관 복장을 갖춰야지 꼭 양물이 없어야만 환관 노릇한다더냐?”
“예? 안 자릅니까?”
그렇다면야 안심이지만……. 멋쩍은 얼굴로 일어서는 소년에게 태감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훈계를 늘어놓았다.
“너 그거 우습게 보지 마라. 도자장(刀子匠)들을 인간 백정이라고 우습게 보는데 세상에 그것만큼 전문기술인 것도 또 없다. 사람 살 이란 게 그냥 쓱 자른다고 탁 잘리면 끝인 줄 아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냐. 전문 도자장들도 셋에 하나는 죽이는데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어련할까.”
하긴, 생각해 보면 완전무균실에서 극도로 청결하게 시술을 하는 현대의 병원에서도 100% 생존율은 장담 못 하지 않았나.
마취용 앵속(罌粟, 양귀비)이나 조금 쓰고 바로 석둑 잘라버리는 이 세계에서 고작 셋에 하나가 죽는 정도라면 양호한 거 아닐까?
생각해 보면 환관들은 전부 그런 어마어마한 시련을 이겨내고 궁에 들어와 노비 노릇을 하는 거니 참 대단하다 싶다.
어쩐지 그들에게서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소년은 지금도 가끔 생각나곤 하는 육군 훈련소의 기억을 떠올렸다. 유난히 추웠던 그 날.
유난히 추웠던 행군, 언 땅에 누워서 연습했던 사격까지.
하지만 그래도 군대에서 고자는 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다과 때 낼 간식은 생각해 둔 게 있겠지?”
“예? 아뇨 이제 막 생각할 참 이었는데요. 혹시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
“흠…… 먹고 싶은 것?”
태감은 진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들었다. 학처럼 길고 가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표정에선 세상 명리에 초탈한 신선의 풍모가 엿보인다.
우수에 젖은 눈동자가 빈 허공을 응시하는 것을 보면 하계의 죄악에 슬퍼하는 선녀의 눈초리 같고 무언가 생각난 건지 배시시 웃음 짓는 모습에선 풋풋한 청춘의 활기가 느껴진다.
표정마다 천태만상 변화하는 미모를 보면 경국지색이라는 옛말이 허구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태감의 미모에 탄복하면서도 소년은 저 얼굴은 보편타당한 아름다움 때문이지 결코 자신의 성적 취향이 깊고 어두운 쪽으로 개화한 것이 아니라고 도리질 쳤다.
왜 갑자기 고개를 젓는지 이상하다는 얼굴로 소년을 보던 태감이 이내 짓궂은 표정으로 그에게 문제를 내었다.
“사람의 성품을 보고 싶다면 어떤 음식을 내겠느냐?”
“……잘 못 들었습니다?”
어이가 없다 못해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는 소년을 의자에 앉히고 그의 어깨를 짚으며 태감은 소년의 귀에 속삭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남을 위하는 사람인지 독선적이고 오만한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면, 넌 어떤 요리를 내겠느냐? 어떤 요리로 그 사람을 시험하겠느냐?”
“아니, 그런 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걸 생각하는 게 네 일 아니냐. 요리는 네 전공이니까.”
소년은 클라이언트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받은 디자이너가 된 기분을 느꼈다.
조금 더 표현하자면 마치 모던하고 세련됐으면서 엣지 있고 어메이징하고 스펙터클 하면서도 복고적 감성이 느껴지는 디자인에 눈에 확 띄게 만들어주시고 간단한 거니까 내일까지 해주시고 이거 정말 좋은 기회인 거 아시죠?
이게 다 경험인 거예요, 정말 행운이시다 그렇게 어려워요?
이거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역시 처음 게 제일 낫네요 ㅎㅎ 하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아니, 그런 걸 찾으려면 요리사가 아니라 심리학자를 찾아야 하지 않나?’
소년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무력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람의 본심을 읽을 수 있는 음식? 사람의 선함과 악함을 볼 수 있는 음식 이란 게 세상에 존재할까?
등 뒤에서 생글거리는 태감은 음험하고 속이 배배 꼬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종류의 괴롭힘을 할 만큼 사람이 옹졸해 보이지는 않았다.
태감은 아마 정말로 이 일이 가능하므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
후궁에서 살아온 귀하디귀하신 비쯤 된다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도 익숙할 것이다. 고작 조금 맛있다고 규중의 여식이 그리 쉽게 흉금을 터놓을 리는 없었다.
비는 늘 옅은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쉬이 화내지 않고 쉬이 울지 않으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후궁의 비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의 규수라면 당연한 덕목이었다.
그런 규수들의 최고봉을 거르고 걸러 뽑아낸 오상비(五祥妃)쯤 된다면 어지간한 일로 그 표정을 무너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반응을 끌어내는 거라면?
생각이 끝없이 확장되며 사고의 바다를 헤엄치던 소년이 순간 고개를 들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번갯불이 튀는 것처럼 한가지 사고가 소년의 뇌리에 불똥을 튀겼다.
맛있는 음식을, 처음 보는 새로운 음식을 눈앞에 두고 보통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한다.
혼자서 독식하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거나.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사소한 일이 어쩌면 앞으로의 기준이고 척도가 되어주지 않을까?
그런 작은 일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한때는 대만의 외교부에서 식성도 다르고 심지어 종교상의 이유로 식재료를 제한받는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을 상대로 만찬장의 총괄 셰프까지 해냈던 것이 바로 소년이었다.
소를 먹지 않는 힌두교와 돼지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와 비늘 없는 생선을 먹지 않는 유대인까지 온갖 인간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만찬을 벌였던 자신이 고작 이 정도 과제에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남은 우유를 전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모아주셨으면 하는 재료가 있습니다.”
“좋아, 얼마든지. 더 필요한 것은?”
“……힘 좀 쓸 사람도 한두 명 부탁드립니다.”
막상 다른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턱 막혔다.
단순한 대접이 아니라 소년의 행동, 소년이 만들어낸 결과가 향후 후궁의 판도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 거북하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소년은 이를 악물고 밑 준비를 시작했다.
단순히 새롭기만 한 요리가 아니라 먹는 순간 온갖 산해진미를 즐겼을 황후 후보라도 탄성을 내지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진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겠다.
어이없는 명령을 던져주고 혼자서 웃고 있는 태감도 입을 열지 못할 만큼 대단한 요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전생의 그는 요리를 할 때 단 한 번도 타협해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악에 받친 그는 평소 이상으로 고양된 정신에 기이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문득 소년의 얼굴을 본 태감은 흠칫 놀라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충혈된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는 소년의 얼굴에는 귀기가 서려 있었다.
* * *
아직은 어색한 새 환관복을 입고 소년은 난화비의 궁인 서난궁(西爛宮)으로 향했다.
수많은 비의 정점인 오상비(五祥妃)의 궁답게 궁은 태감의 집무실인 연좌궁보다 크고 아름다웠으며 잘 가꿔진 정원은 경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지만, 성큼성큼 걸어가는 태감은 경치를 감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다시 말하겠지만, 말하지 말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딱 한 마디, 음식을 소개할 때만 한마디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 건 좀 많이 주고.”
진지한 목소리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소년은 새카만 흑단 가면을 쓴 태감을 쳐다보았지만 애초에 이 사람은 식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년은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품위 없어 보이지 않을까요? 차라리 남는 걸 가져가서 드시는 게…….”
“음……그래. 그럼 난화비의 걸 조금 적게…….”
“차라리 가서 하나 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좋아. 약속했다?”
요리하는 내내 살인적인 달콤함에 치를 떨었던 태감이 가기 전에 훔쳐먹으려고 하는 것을 몇 번이나 저지해 왔던가.
소년은 처음부터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은 자신의 안일함에 한탄했다.
“그런데, 이곳은 어디죠? 궁은 저쪽인데…….”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난화비께선 승마를 즐기신다고.”
정원 안쪽에 마련된 널따란 공터에는 낮은 나무 울타리가 둘려져 있었고 중앙에는 지푸라기로 만든 과녁이 놓여 있었다.
“과녁?”
과녁에는 이미 몇 발이나 되는 화살이 꽂혀 있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저런 물건이 어째서 난화비 님의 궁 한가운데에 있는 것인지, 소년의 궁금증을 느끼기도 전에 저 멀리서 여인의 낭랑한 기합성과 함께 대지를 박차는 말발굽 소리가 소년의 귀를 파고들었다.
덩치가 비대하고 힘 좋은 농사용 말이 아니었다. 날쌔고 가벼운 준마였다.
그 위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말을 몰고 있는 여인은 고삐를 쥐는 대신 짧은 단궁을 들고 등자에 매달린 화살집에서 화살을 꺼냈다.
한 호흡에 화살을 재고 말이 뛰는 순간, 그 순간을 노려 난화비는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는 마치 매의 울음소리와 비슷했다.
명중.
화살은 정확히 과녁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그 능숙한 모습에 소년은 소름이 척추 위를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 과녁이 아닌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취미는 승마라면서요.”
소년은 조용히, 하지만 눈을 번득이며 태감에게 물었다. 하지만 태감은 오히려 소년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승마라니까? 자고로 승마라면 당연히 말을 타고 할 수 있는 기마 무술을 말하는 거 아니겠느냐.”
그것은 소년과 이 시대의 인식 차이였다. 군사국가인 이 나라는 승마라 하면 당연히 기마 무술, 마궁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가하게 말이나 타는 것을 취미 삼아 즐길 만큼 여유로운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 야만적인 폭력성에 치를 떨던 소년은 난화비가 탄 말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머, 승마는 너무 오랜만이라…… 손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아니요, 정말 훌륭한 마궁술 이었습니다.”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 드린 건 아닌지…… 후후.”
말을 타는데 거슬리지 않도록 남성복 차림에 풍성한 검은 머리는 한줄기로 땋아 넘긴 난화비는 그 모든 악조건이 무색할 만큼 화사한 미인이었다.
기분 좋은 땀을 흘리며 조잘거리는 모습은 향 없는 조화들로 가득한 이 후궁이라는 화원에서 오직 그녀만이 진짜 꽃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미녀라는 건 분명 이런 사람이겠지. 청순한 외모와는 다르게 난화비의 분위기는 호기심 많고 장난기 있는 개구쟁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 기이하게도 상반되는 느낌이 절충되어 질리지 않는 미인상이었지만 어딘가, 소년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아마 눈앞에 걸어 다니는 비현실적인 미의 화신 때문이겠지. 비록 지금은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 그 목소리, 그리고 드러난 아래쪽 절반만으로도 태감은 만인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태감을 바라보는 시녀들의 몽롱한 시선과 애달픈 한숨에 소년은 그가 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어떤 사달이 벌어졌을지 짐작이 갔다.
저런 얼굴이라면 남자라도 좋다고 할 이들이 줄을 서겠지. 난 아니지만.
속으로 번뇌와 싸우는 소년을 내버려 둔 채 난화비와 양 태감은 인사를 나누었다.
독살스러운 설전도, 혀 밑에 칼을 숨긴 암투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지인들 간의 대화였다.
아니면 그 또한 소년 같은 범부는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고도의 정치적 대화였을 지도 모른다.
“날이 풀리니 산책하기 좋은 날입니다.”
“말을 타기에도 좋은 날이에요. 저희 희아도 기분 좋은 것 같고.”
날렵한 흑마는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희아 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은 아직도 체력이 남았다는 듯 혼자서 승마장 안을 뛰어다니는 그 모습이, 앉아 있지만 여전히 좀이 쑤신다는 듯 희아를 곁눈질하는 난화비와 겹쳐 보였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비에 대한 호칭이 따로 없나?
소년은 난화비를 전하나 마마 같은 칭호 없이 부른다는 사실에 놀랐다. 황제는 확실하게 폐하라고 부르니 아마 이 세계의 문화가 다른 것일 테지만 어딘가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오늘은 진귀한 서방의 과자가 들어와 난화비 님께 올리고자 합니다.”
“어머나, 이런 선물을!”
태감이 말을 하며 소년에게 손짓하자 소년은 한걸음 나서서 포장을 끌러 내용물을 꺼냈다. 두툼하고 투박한 직사각형의 덩어리.
파운드 케이크였다.
달고 화려하게 꾸민 간식을 즐겨왔을 난화비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투박한 모습이었을 텐데도 난화비는 그것을 업신여기기보다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부정한 환관의 손이 고귀한 비가 먹을 음식에 직접 닿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깨끗한 천으로 케이크를 잡고 칼로 도톰하게 썰어 은 젓가락으로 그것을 접시에 담았다.
그 곁에 신선한 딸기를 반으로 자른 것을 곁들이고 가장 중요한 ‘그것’을 꺼냈다.
황궁의 얼음 저장고에 조금 남아 있던 얼음으로 냉기를 유지한, 그럼 에도 태감과 소년이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던 그것.
바로 생크림이었다.
정확히는 비가열한 우유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지방층 부분을 따로 모아 가볍게 가열한 것.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휘핑 하여 부드럽게 부풀린 것.
“어머나? 그건 뭐죠? 무척 몽실몽실하고…… 조금 귀엽네요.”
“생크림이라고 하옵니다. 서방에서 많이 사용되는 재료로 우유를 농축시켜 만든 것을 휘저어 부풀린 것이옵니다.”
설명이 조금 이상했지만 휘핑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소년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생크림을 듬뿍 떠내 파운드 케이크 옆으로 얹고 마지막으로 어린 박하잎을 작게 얹어 데코레이션 한 것을 난화비 옆의 시녀에게 건넸다.
“생크림……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럼 아마 이 과자는 케이크라고 하는 서방의 과자겠군요?”
외가가 해상교역을 하는 상단이라고는 했지만 떠나온 지 제법 되었을 터인데 아직까지 그것을 기억하는 걸 보면 태감의 평대로 지혜롭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예상을 조금 벗어난 것은, 생각 이상으로 풍부한 난화비의 표정이었다.
케이크를 눈앞에 두고 눈을 빛내는 난화비의 표정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현대의 평범한 여고생처럼 보여서 소년에게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를 자극했다.
기미역을 해야 하는 시녀마저 물리고 난화비는 들뜬 표정으로 케이크를 베어 물었다.
“마, 맛있어!!”
‘그렇지!’
태감의 부하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성과에 소년은 속으로 작게 스스로를 축하했다.
거기에 이번에는 부족한 재료를 억지로 변통해 가며 가까스로 만들어낸 승리였기에 더 값지게 느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우유를 생크림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을 버터로 만들어 파운드 케이크를 구울 정도의 양은 아니었기 때문에 갖은 지혜를 짜내 만든 노 버터 파운드 케이크가 생각 이상으로 퀄리티가 좋았다.
살짝 과장하자면 전문점에서 팔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 버터 파운드 케이크는 식물성 오일로 만드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소년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버터의 그 풍성한 맛에 비하면 모자라게 느껴졌다. 거기에 그 촉촉하면서도 포실포실한 그 식감도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 풍성한 맛을 내기 위해 소년은 야자에서 코코넛 밀크를 짜내 사용했다.
야자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중국 요리 중에선 해남야자탕(海南椰子湯) 같은 야자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한국인이라면 괴악하다 생각할 만한 요리도 많이 있었다.
복건성 에서 들여온 야자로 코코넛 밀크를 짜내 파운드 케이크 반죽에 더하자 촉촉함과 유지방과도 비슷한 은근한 달큰함, 그리고 고소함이 더해졌다.
여기에 베이킹 파우더를 대신해 약간의 머랭을 사용하고 재료로는 아몬드 대신 잣과 호두, 그리고 각종 건과일을 사용해 호화롭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 정도라면 아무리 철벽같은 규중처녀의 표정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빨리 한 조각 더 썰어줘. 큼직하게…….
“……태감님…….”
어째서 눈앞에서 열심히 난화비를 분석해야 하는 당신까지 이렇게 케이크에 열광하는 거지? 이렇게 되면 임무는 성공인가? 실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