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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스터-191화 (191/268)
  • 00191  6부 우리는 우리인 것인가 (백수귀족님 쿠폰 4장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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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수는 그저그런 수도권 4년제 대학 출신이었다. 더구나 취직하기 힘든 문과를 나온지라 대기업에 번번이 낙방했다. 그리하여 대다수 청년백수들과 마찬가지로 9급 공무원 시험을 5년 동안 공부했다. 당연히 공시 마저 번번이 고배를 마신 민수는 어느덧 30줄에 접어들게 되었다.

    민수 본인과 가족들의 괴로움이 극에 달한 것이다. 결국 민수는 할수없이 연봉 2천도 채 안돼는 별 볼일 없는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목구멍이 포도청 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민수는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중소기업에서 월화수목금금금 등등의 혹독한 일과에 시달리게 되었다.

    흔하디 흔한 중소기업 사무실

    오늘도 민수에게 메일이 하나 왔다. 모 부장이 발송한 일요일 정기산악회 초대장 이었다. 물론 말이 좋아 초대장이지 의사결정권 조차 민수에겐 애시당초 전혀 없었다.

    얼마후 모 부장이 민수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산악회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었다. 각 부서별로 참가자 명단 제출을 독촉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많은 직원들은 핑계거리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산악회에 나가면 개고생 한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 저는 무슨 일이 있는데요. 부장님."

    "저 역시 뭐시기 일이 있습니다. 부장님."

    부하 직원들의 핑계에 모 부장 얼굴 표정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가급적이면 다 참석할 수 있도록 해. 너희들 그거 다음에 해도 되잖아? 그거 안가도 되잖아? 산에 와 산에"

    '다음에...? 부모님 생신이나 여자친구와의 기념일 등등을 다음에 할 수 있나..?'

    민수는 화가 났다. 이노무 중소기업은 일요일에도 사람을 들볶으려고 작정한 것이다. 당연히 민수는 모 부장에게 거부의사를 피력했다.

    "여자친구와 3주년이라 못 갑니다. 부장님.'

    민수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물론 그의 여자친구는 배려심이 많은 여성인지라, 사정을 설명하면 대충 이해 한다. 하지만 민수는 그러기가 너무 싫었다. 서운하지만 티 안내려는 여자친구에게 너무 미안해서다. 그렇게 민수가 당당히 거부의 변을 내뱉자 모 부장이 쌀쌀하게 입을 열었다.

    "그까짓 일 때문에 안가는거냐? 다른 직원들도 다 오는데"

    '그까짓 일..'

    모 부장은 말을 참 쉽게 하는 인간이었다. 민수가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여자를 '그까짓 여자'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그녀와의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개같은 모 부장이 책임을 진단 말인가? 물론 그럴 일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렇게 민수는 장장 2주간을 모 부장에게 시달리다가 끝내는 산악회에 끌려갔다. 중소기업은 다 이런 것이다.

    아직 쌀쌀한 오전 8시..

    산악회장이 민수를 부른다. 버스에 먹을것을 좀 싣잔다.

    산악회장은 말이 좋아 회장이지 사실 민수랑 나이 차이도 한두살 밖에 안 난다. 그런 이유로 민수는 산악회장의 모든 것이 거슬렸다. 그렇지만 산악회장은 연줄이 좋은 놈이었다. 그리하여 민수는 예스맨의 행보를 내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민수에겐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어디로 갈지, 장을 보러 가면 뭘 살지, 코스는 어떻게 할지 등등 아무것도 할수 없다.

    한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능하고 비호감이지만 오래 붙어있어서 직급이 좀 되고 회삿돈으로 노는거 좋아하는 산악회장과 차부장급 두 명이 모든걸 결정한다.

    잠시후 민수는 산악회장과 간부들에게 내심으로 쌍욕을 퍼부은채 술과 음료수 그리고 간식을 끙끙거리며 대절버스 짐칸에 싣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수가 꿀같은 일요일에 개고생을 하고 있을 즈음 지근거리에 위치한 여직원 서넛은 민수의 개고생을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민수의 부아가 미친듯이 들끓었다.

    '시발년들아. 구경났냐. 개같은 년들아!'

    경부 고소도로를 관광버스가 부리나케 내달리고 있었다.

    민수는 토요일에도 야근을 한지라 온몸이 몹시도 노곤하였다. 그런 이유로 관광버스를 타자마자 달콤한 졸음이 물밀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수는 단잠 역시 제대로 잘수가 없었다. 산악회 년놈들이 관광버스 안에서 질퍽한 술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관광버스의 커튼을 치자 마자 소주와 맥주를 열불나게 돌리며 음악 테이프를 넣고 마이크를 셋팅한 후 소맥을 물처럼 들이붓기 시작하는 것이다.

    민수 역시 산악회 간부들의 강권에 못이겨 빈속에 소주와 맥주를 정신없이 쳐먹었다. 더불어 옆에서 정신나간 년놈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음주가무를 미친듯이 즐기고 있었다. 당연히 민수의 단잠은 저 멀리 달아나버린지 이미 오래였다.

    '제발 빨리 도착만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는 길은 빌어쳐먹게 멀다. 가까운 곳이나 쳐 가지.. 시팔것들..'

    산악회의 간부들은 항상 먼 곳으로 장소를 정한다. 그래야 차에서 방탕한 술판을 벌일수 있는 것이다.

    민수가 애꿎은 시계만 수없이 들여다보며 산에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찰나 민수를 산악회에 끌고온 모 부장이 그를 불러냈다.

    "평사원 주제에 그러고 있냐. 한 곡 뽑아봐라."

    '저 개새끼를 죽여버리고 싶다. 눈치? 이 개새끼가.. 한달에 단 두번 있는 일요일 휴식일에, 산악회에 불러낸것도 모잘라.. 아주 정말 나를 돌게 만드는구나.'

    민수는 들고있던 소주병으로 모 부장의 대갈통을 박살내고 싶은 격한 충동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그렇지만 민수는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끝끝내 모 부장을 향한 쿠데타를 벌이는데 실패하고야 만다. 그렇지만 자신의 최소한의 자존심만은 굳세게 지켜냈다.

    "컨디션 안좋습니다. 안합니다."

    모 부장이 두번 세번 민수를 불러내지만 끝내 민수는 거절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가라앉는걸 교통사고 나는 것 보다 싫어하는 모 부장은 능숙하게 마이크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렇게 민수가 속으로 '시발! 시발!' 거리며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는 찰나 어딘가에서 나지막하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놈도 참 쯧쯧쯧..."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민수는 신기할 정도로 똑똑히 들었다.

    '내가 실수한걸까? 하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미래를 선도하는 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좆소기업에서 이런 쌍팔년도 잔재가 남아있다는게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지리산 등산로

    민수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등산로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민수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맑은 공기 마시면서 산길을 걷다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민수가 그런 내심을 발하며 등산로에 오르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운다. 놀기 좋아하는 차부장급 간부였다.

    "등산로가 제법 길어서 그러니까.. 음료를 좀 챙겨가라."

    간부 사원은 그리말하며 민수에게 소주와 막걸리 캔맥주 등등을 건넸다.

    "차장님. 물 없습니까? 이거 술입니다."

    그러나 간부는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얼른 갖고 올라가라. 정상에 도착해서 시원하게 한 잔 하면 기력보충도 되고 기분도 상쾌하단 말이다."

    민수의 낯빛에 불콰한 짜증이 격하게 차올랐다.

    '개새끼. 미친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팔새끼야. 산은 오르는 것 보다 내려오는게 더 힘들다. 이 개새끼야. 정상에서 술 좆나게 쳐먹고 하산하다가 사고나면 니 시팔새끼가 책임질거냐?'

    민수의 그같은 내심이 목구멍 안에서 격하게 맴돌았다.

    "차장님. 술이 너무 많습니다."

    "까라면 까라. 평사원 주제에 왜 그리 불평불만이냐? 다른 애들은 알아서 말을 잘 듣는데 네놈은 왜 그렇게 사사건건 개기는거냐?"

    차장은 그리말하며 주변을 손짓했다. 그러자 민수처럼 술셔틀 신세로 전락한 평직원이 여럿 보였다. 전부 병아리 사원들이다. 입사한지 얼마안된.

    잠시후 민수는 배낭에 술을 가득 실은채 등산로를 향해 부리나케 내달리기 시작했다.

    지리산 등산로에 여직원들의 수다꽃이 만발해있다. 역시나 가벼운 차림이었다. 가방따위는 매지 않은 채로 즐거운 기색을 열렬히 과시하고 있었다.

    민수는 그같은 장면을 목도하며 간부사원들이 남자 평사원들에게 큰 가방을 매고 오라고 누누이 얘기 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가방이 많아야 술을 많이 넣을 수 있으니까. 반면 여직원은 당연히 가방이 필요없다. 간부사원놈들은 여직원들을 왕비처럼 접대하는 것이다.

    '개새끼들 산에서 여직원들 따먹으려고 저러나?'

    민수의 욕지기가 또 다시 턱밑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수가 간부사원들을 향한 적개심에 불타고 있을 즈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새끼들아. 저거 좀 들어줘라. 여직원들 무겁잖아"

    간부들이 민수를 비롯한 병아리 사원들에게 여직원들의 작은 가방을 들어주라고 닦달하고 있었다.

    '좆같은 새끼야. 내 등짝에 얹어진 소주병은 가볍고 샌드위치 들어있는 종이가방은 무게가 천근 만근이더냐.'

    그러나 여직원들은 민수의 속도 모르면서 꺌꺌 웃으면서 종이가방을 내민다. 그러자 간부사원들을 향한 민수의 적개심이 이번에는 여사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지껏 남녀차별 여성혐오 이런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민수 마저 한국의 김치 된장들에게 학을 떼는 순간이었다.

    민수는 앞장서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간부 놈팽이들과 된장 여사원들이 꼴도 보기 싫었던 것이다.

    뒤에서 몇번인가 천천히 같이 가자고 소리를 쳤지만 민수는 안들리는척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지라 등산이 별로 힘들지 않았던 것이다.

    민수는 이쯤이면 됐겠지하며 잠시 쉬어가려고 바위에 걸터 앉았다. 그렇게 민수가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할 무렵 갑자기 장내에 모 부장이 나타났다. 등산을 많이 해서인지 산을 아주 잘탔던 것이다. 민수 못지않게.

    모 부장이 민수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 너. 산 잘타네? 나만큼 타는 사람 잘 없는데"

    민수는 모 부장과 말도 하기 싫어서 묵묵부답을 유지했다. 그러자 모 부장이 자신의 인생사를 미주알 고주알 떠들기 시작했다. 민수가 듣거나 말거나였다. 그렇게 민수는 본의 아니게 모 부장과 같이 산을 오르게 됐다. 그렇지만 얼마안가 민수는 모 부장이 만만치 않은 인간임을 뼈져리게 자각했다. 젊은놈이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산을 꾸준히 탄 모 부장 아재를 이기기는 매우 버거웠던 것이다.

    민수가 오로지 육체의 힘만으로 산을 탄다면 모 부장은 요령으로 산을 탔다. 산 타는 선수인 것이다. 효율적인 체력안배와 탄력적인 걸음걸이가 전문 등산가 뺨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결국 민수는 모 부장과 산 정상을 향해 열불나게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모 부장의 쉴새없는 잔소리를 묵묵히 참아내야 했다. 하나같이 영양가 제로인 재미 없는 얘기들을 말이다.

    '내가 지 자식새끼들 좋아하는 음식 얘기를 왜 듣고 있어야 하는가. 정말 돌아버릴 것 같다. 시팔.'

    민수는 드디어 정상에 도달한 후 재빨리 김밥을 먹었다. 그러자 입속에서 달달한 김밥이 살살 녹기 시작했다. 술먹고 산타는 등신짓 후에 먹는 김밥이 솔직히 엄청나게 맛있었던 것이다. 민수는 걸신들린 아귀처럼 김밥을 쳐먹기 시작했다.

    지리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선술집

    민수 일행은 동동주와 파전을 앞에 놓고 때이른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등산 후 시원한 동동주에 먹는 파전과 각종 음식들.. 사실상 이를 위해 여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민수가 다니는 좆소기업의 산악회 지원금은 충분하다. 당연히 모여있는 회비도 제법 된다.

    '그래 시발 기왕에 와서 어쨌든 거의 다 하긴 했네. 이거나 쳐먹고 그냥 잊어버리자'

    그러나 민수의 그런 내심은 정확히 5분만에 산산이 조각났다.

    한테이블 네 명에 파전 한 판 동동주 한 병. 이게 끝이었다.

    "어이 다들 모자라면 얼마든지 더 시켜먹어 알았지."

    다들 대답은 예예 하지만 주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악회장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수의 입에서는 나지막이 '시팔'이라는 욕지기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왔다. 그러자 옆에 앉은 평사원이 민수의 어깨를 툭 쳤다. 다행히 그가 앉은 테이블은 평사원들만 있는 테이블이라 문제될건 없었다. 그렇게 좌중의 분위기가 어색해질 무렵 보다 못한 차장이 운을 뗐다.

    "산악회장님. 우리 좀 더 먹으면 안될까요?"

    그러자 산악회장도 자신이 너무 짠돌이 짓을 했음을 눈치챘는지 선선히 그러라고 한다. 그러자 민수가 눈치없이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닭볶음탕을 골랐다. 당연히 5초만에 제동이 걸렸다.

    "배 안부르나? 뭘 그리 비싼걸 먹나. 우리는 파전만 하나 추가했구만."

    산악회장이 민수에게 싸늘한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당연히 민수는 기분이 너무 엿같았다.

    '시발새끼야. 내가 사비로 산다. 이 개새끼야. 됐냐?'

    민수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결재 올라가는 산악회 지원금만 60만원이다. 모인 돈만 해도 민수가 알기로 백단위가 넘었다. 지금까지 먹은걸 전부 다 계산해도 절대 10만원이 넘지 않았다.

    원래 좆소기업은 다 이런 것이다. 자기 돈도 아닌데 안아껴도 되는 돈을 기를 쓰고 아낀다. 당연히 지원금 회비 등등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대다수 짐작은 하고 있었다. 산악회장을 필두로 한 간부들이 꿀꺽 했음을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좆소기업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그렇게 민수 일행은 부실한 저녁식사를 대충 때운 후 서울로 가는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민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서글퍼졌다. 자신의 미래와 비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것이 좆소기업 평균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코스닥에 상장한지 꽤된 견실한 중소기업이라는 평판을 지닌 회사가 이모양 이꼬라지였던 것이다.

    얼마후..

    민수는 좆소기업을 때려치웠다. 그리고 9급 공시에 다시 한번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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