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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44화 (144/154)

144. 패권 2

안남국의 사신은 저들을 무시하는 발언 때문인지 나를 향해 눈을 찌푸렸다.

"이것은 억지십니다."

"연방은 중국의 정통국가인 후진의 보호국이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정 불만이 있다면 우리의 해상봉쇄를 뚫어 보시게."

"가, 각하."

꼬우면 니들이 까야지, 어쩌겠냐. 안 그래?

굳이 오냐오냐해 줄 이유가 없다. 중국을 묶어 두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지.

후진이 그나마 협조해서 다행이지 서서히 조여야 한다.

"감히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하다니. 안남이 독립했기로서니 우리보다 강한 줄 아는가?"

"그런 것이 아니오라……."

베트남도 바보가 아니면 알 것이다. 지금 중국보다 강한 나라가 어디인지.

초원과 요동 삼한 땅, 열도에 이르는 대제국이 바로 지금 연방이다.

그러니까 받들어 모시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중국과 관련된 교역은 이주로 가게. 이주 총독부에서 그대들을 담당해 줄 테니."

그러라고 이주를 점령해 둔 거니 말이다.

"각하, 외신은 한 나라의 사신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아닌 지방 관청으로 가라뇨."

"아, 나쁘게 생각할 거 없네. 애초에 이주는 동방의 바다를 책임지는 연방 해군이 주둔한 곳이며 교역의 중심지네. 그곳에 중원과 연방의 물자가 있으니 그곳에서 교역을 하게."

"그곳이 중원과 연방의 교역 중심지입니까?"

지금 슬슬 시동을 걸고 있다.

연방에 있는 후진의 상인들과 연방의 상인들을 그리로 보낼 생각이니까.

"그렇네. 어차피 안남도 멀리 오기는 뭐하지 않은가? 애초에 우리는 방침을 바꿀 생각도 없네."

내 말에 안남의 사신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각하의 뜻을 알겠습니다."

그래. 진작에 그랬어야지.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무조건 힘으로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

안남에서 온 사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

딱히 기분이 상해 보이지는 않았으니 괜찮겠지.

그리고 안남 사신과의 일은 장관들도 뜻밖이었다는 반응이었다.

"굳이 안남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각하께서 설마 안남에 압박을 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안남은 소국입니다. 너무 힘으로 다스리는 건 아니신지요?"

우리보다 소국이라고 봐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아까 그 사신은 뭐랄까,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우리를 상대로 전쟁은 아니더라도 자기들이 고개를 숙일 이유가 있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으니 내가 굳이 봐줄 이유가 있을까.

"이왕이면 패권국으로 행동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

"확실히 강자의 위엄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중원은 저물었고 동이의 시대가 열렸으니까요."

동이의 시대, 맞는 말이다. 자고로 패권국이라면 어느 정도의 힘도 과시해야지.

물론 이것은 연방에 기어오르는 자들에 한해서고 연방과 친해지려 한다면 못 해 줄 것도 없다.

"애초에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불만이 없다면 이주를 통해 교역을 하지 않겠나."

"그래도 나름대로 속국 신세에서 스스로 벗어난 국가입니다."

속국 신세라. 뭐 이후에 중국에게 다시 지배받는 것을 생각하면 좀 암울하기는 하다.

애초에 안남은 우리에게 별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해도 직접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놈들은 교역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문제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연방보다는 작은 국가니 괜히 교역 일로 우리가 머리를 숙일 수는 없는 일. 문제는 남한인데."

"남한이란 나라가 안남국에 패배한 것 때문입니까?"

"아니, 단순히 지금은 남한이 강해질 거 같아서 말이네. 남한의 위치를 보면 교역으로 잘 먹고 잘살 거 같지 않은가."

심지어 연방의 영향도 적게 받고 있다.

아무리 연방이라 해도 명분 없이 건드리기는 힘든 일. 심지어 남한이 함대를 파견한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도 머리가 있는 나라일까. 남당의 경우에도 황제 이경이 나름대로 능력은 있는 인물이라 함대가 멋대로 자멸하지만 않았다면 굳이 우리를 상대로 전쟁은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한참 고심하던 내게 장관이자 군부에 몸을 담은 장수 부달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부달이란 자도 꽤 머리가 있는 자였다.

백제 군부에서 연방 군부로 옮겼다가 행정에 도움이 되어 장관직까지 얻었지.

지금은 빠진 최승우를 대신해 두뇌 역할을 할 수 있나?

"군인들이 중심인 다른 나라와 다르게 남한은 옛 당나라 시절에 좌천된 사람들을 포섭하였으며 지방관들이 문신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문관들이라. 정치 자체는 문관이 낫겠지.

분열된 중국에서 어쩌면 가장 안정적인 나라일지도 모른다.

물론 결국 전쟁은 군인들이 하기 때문에 중원통일과는 거리가 멀어지겠다만.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하면 나쁜 선택지는 아니지.

"그럼 전쟁보다는 현실을 따져 보겠군."

"예. 문제가 있다면 지금의 황제 유성이 형제들을 싹 다 죽였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을 전부?"

그럼 오히려 국력이 약화되는 거 아닌가?

권력다툼만큼 나라를 망치는 것도 없다. 그것도 형제간의 싸움이라면 더 그럴 테지.

"예. 권력다툼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틈을 타서 초와 남당의 땅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호오, 그래도 제법 잘 나가는 놈이 아닌가."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문관들이 나라를 다스리니 안정적이기는 했습니다만…… 원정에 성공한 황제가 사치를 부리고 동생들의 아내를 후궁으로 두는 둥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심지어 정치를 환관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환관이 정치하는 나라치고 제대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몇 대를 못 가서 그 모양이라는 말인가."

"성격이 괴팍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정에 성공했다고 자만해진 것이지요. 말이 문관이지 환관들을 중요시하면서 이전부터 나라를 지탱하던 문신들은 모두 쳐냈다고 합니다."

환관들이 정치를 한다면 우리에게 방해가 될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권력을 지키고 독점하기를 바랄 테니, 굳이 자기들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는 짓을 하지 않을 테지.

결국 전쟁이라는 것은 군인들의 힘을 크게 세워 주는 일이니까, 환관들은 절대 전쟁을 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하여간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가 없군."

"그 덕에 우리가 큰 이익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네만."

나는 부달을 힐끗 쳐다봤다.

과연, 인물이 나름 된다. 남한에 대해 이미 알아본 것까지 완벽하다.

내 자식들에게 붙여 줘도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중원이 저렇게 바보짓만 하니 연방이 클 수 있었음은 부정 못 할 사실이다.

늘 그렇듯 중원이 분열해야 한민족이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중원을 먹여 살리는 것도 전부 우리 연방이니까.

죽이고 있는 것도 연방이니 말이다.

내가 나설 수 없는 것이 아쉬운 것이 문제다.

"최근에는 내가 나설 수가 없으니 좀이 쑤셔야지."

"각하께서는 이 나라의 기둥이십니다. 오히려 평양을 벗어나시면 백성들과 장관들이 놀랄 것입니다."

나도 아는데, 이건 어쩔 수 없다.

내 능력이 단단한 것이니까. 아예 나보고 전부 해결하라는 듯 존재하는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죽을 맛이다.

생각해 보니 뭐 보상 같은 것도 더는 주지 않는데, 아마 줄 게 없어서일까.

설마 연방을 로마 제국급으로 늘려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국력을 정말 로마급으로 늘리려면 중원을 다 먹고도 부족할 텐데.

"이종가는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했겠지?"

"예. 각하."

"석경당이 죽은 것도 아닌데 지금 이종가를 써먹을 구석이 있습니까?"

"없지는 않지. 남당도 당나라를 잇지 않았나? 이종가의 후당도 그렇고."

전해도 논의했었지. 하나의 당나라 말이다.

만일 우리가 당 황제였던 이종가의 지위를 다시 보장해 준다면?

"예? 각하. 설마…."

"본래 당을 이은 것은 후당이었다. 그리고 저 남쪽에 남당이 또 있지 않은가? 이종가를 앞세워 남당을 치는 것도 방법이 아닌가."

후당과 남당 둘 다 같은 이씨며 당을 이었다고 한다.

결국 서로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후당이 멸망했다. 그 후당의 황제 이종가에게 벼슬을 주어 연방에 머물게 하다가, 연방에 군사를 청해 남당을 치게 한다는 건 어떨까.

약간 억지기는 해도 후당의 황제로서 남당이 잘 나가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면 가능한 전개다.

작전명 ‘하나의 당’이지.

"결국 또 전쟁이지 않습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이종가에게 남당을 주는 것입니까?"

"물론 아니지. 그냥 명분만 얻을 뿐이다."

이종가에게 나라를 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방군이 피를 보는데 굳이 이종가를?

이종가는 적당히 구슬려 평양에 일자리를 하나 봐줄 생각이었다. 이종가를 써먹는 것은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

"그렇다면 당을 아예 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입니까?"

"이참에 아예 남당을 보호국으로 삼는 것도 좋겠지. 외교 경제 정치 전부 우리가 가져가는 것이 어떤가?"

아예 노예처럼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이경도 말년이 좋은 것은 아니었고, 원 역사보다 잘 나가게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어차피 망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가지고 노는 것이 좋겠지.

"기미주로 삼는 것입니까?"

"그래. 식민지지. 국호가 당인 이상 보복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억지 논리기는 한데 굳이 남당을 공격한다면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다.

"충분히 그럴듯합니다."

"당을 확실히 얻을 수 있다면야."

장관들도 부달의 말에 동의했다.

"남당의 역병이 끝이 나면 그때 노려보도록 하지."

이미 반란도 일어나고 있으니 국력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후진은 역사와 달리 그대로 존속하겠지만, 나라는 있으나 마나 해질 것이다.

심지어 석경당이 지금 맛이 가서 상유한이 신하들과 함께 나라를 굴리는 꼴이니 송나라처럼 통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래 송나라를 세울 조광윤이라는 인물도 그만큼 출세하지 못할 테지.

"그때가 되면 전쟁도 우리에게 유리할 것입니다만. 점진적으로 얻는 것보다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남당을 얻게 되면 보다 항구로 쓸 곳이 많아지지 않은가."

바닷길 전부를 우리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남쪽의 당나라를 점령하면 내륙에 있는 초나라와 직접 거래할 수 있다.

초나라는 차로 유명하며 후진을 통해 교역을 하고 있었는데, 후진은 몇 번의 전쟁이 터진 탓에 차 교역이 중단되다시피 하였다.

초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직접 육지를 잇게 될 테니 영향력을 바다와 육지에서 휘두를 수 있다.

"그전에 남당에 영향력을 키울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지금 역병이 심하다면 약재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남당에서 반란군까지 들고일어났다고 하니 분명 약재도 부족할 것이다.

"그렇지. 설마 약재로 승부를 보자?"

"예, 각하. 위험하기는 하나 사람을 보내 교역으로 약재를 넘긴다면 백성들이 연방을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저지른 일이지만 남당은 알지 못한다.

만일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가 약을 내어주고 저들을 살리려는 노력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우리를 칭송할 것이다.

어차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나라의 백성이었고 다시 남당의 백성이 되었다. 그렇다면 연방의 백성이 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일리가 있다. 남당에 보낼 약재들을 준비하라."

"예. 각하."

그렇게 중원을 잠식해 먹는 것이다.

먼 훗날 21세기 중국은 각기 분열되어 새로운 풍습과 문화를 따로 발전시킨 새로운 중국인들이 생길 것이다.

오만과 중화에 빠지지 않은 겸손한 인물들 말이다.

그 미래만 생각해도 주변국들은 긴장하지 않아도 좋으니, 동아시아는 편안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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