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남당의 악몽
진나라 석경당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면서 장관들도 점차 후진의 천명을 의심했다.
"아니, 이미 태원을 포위했는데도, 당장 먹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포위만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거든.
"우리가 보내는 군대는 석중귀를 잡았다면 바로 사회 안정화를 위해 쓰일 테지만, 아니라면 석중귀를 잡고 황제가 깨어날 때까지 진을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지."
사실상 이번에는 연방의 힘을 과시하여 사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진은 연방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군사를 파견해야 합니다만."
"사회 안정화를 위한 군대니 10만을 파견하도록 하지. 그 외 초원의 군마로 키운 튼튼한 기병 군단이 있지 않나?"
"예."
"기병 3만과 보병 7만을 동원하지."
연방에 편입된 거란족들은 지금 연방인으로 살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으나, 힘으로 몇 번 누르니 알아서 대연화를 대칸으로 받들게 되었다.
대연화 자신이 초원까지 가 정신적으로 거란족들의 기세를 꺾어놓았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지금 진은 병력이 부족할 것이다.
중국이라고 매번 공장에서 찍어내듯 군대를 낼 수는 없다. 심지어 전국시대면 더 그러하겠지.
유지원과 석중귀처럼 굵직한 인물들이 난을 일으킬 때마다 군사도 차출했으니, 나라는 더 파탄 났겠지.
"군사는 그 정도로 파견하고 진의 치안 유지에 힘을 보탠다.".
보병과 기병 10만이면 가능할 것이다.
"군량은 안 될 일입니다. 이주에 들어가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이주에 이번에 대규모 식량이 보급되었다.
그런 마당에 후진에 도우러 가는 파병군에 연방에서 군량을 내는 건 옳지 않다.
"왜구 토벌은 그럼 상귀 장군에게 명만 내리면 되겠고, 군량은 진나라 측에서 내는 것으로 하시지요."
"왜구들을 전부 이주로 보내고 바다 위에 연방의 함대만 보이면 그것으로 되겠지. 군부에서는 상유한에게 밀서에 대한 답장을 보내고 군사를 준비하라 이르게."
진을 이참에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진은 원래 예상한 일이지만 남당은 어떻게 돌아갈까? 남당은 지금 수도에서 역병이 돌았다고 하니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아, 그리고 남당의 사람이 절대 연방에는 오지 못하게 해야 하네. 상유한에게도 말해 절대 남당인이 피난 오지 못하게 하고."
"역병의 문제입니까?"
"그래. 역병에 걸린 남당의 백성들이 연방에 들어오면 어떤 꼴을 보겠는가?"
아직 모를 일이지만 황제가 역병을 제압하지 못하면 어떤 꼴을 맛볼까. 아마 대재앙처럼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라고 안전하리란 법은 없겠지.
특히나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이 시대에는 더 그렇다.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고작 역병에 불과합니다. 연방에 넘어올 정도가 되겠습니까?"
한 장관의 말에 한두 명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무식한 놈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장관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게. 이번 역병이 그리 쉽게 풀릴 거 같은가?"
"남당은 전국시대 국가인데, 그 정도는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상귀 장군이 금릉에만 역병을 퍼트릴 거 같은가?"
상귀 그 욕심 많은 인사가 금릉에만 뿌릴 리 없다. 역병을 퍼뜨리기 위해서 역병에 걸린 시체란 시체는 다 이용해 먹었겠지.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아마 지금도 이참에 남당을 쓸어버리자며 이를 갈고 있을 텐데.
장관들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군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연방의 통합을 위하는 인물들이라 상귀의 성격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를 하려고 하면 두 개를 한다.
"그렇다면 남당이 난리가 나겠습니다."
"그렇지. 그러니. 더욱 조심을 해야 하지 않는가."
역병을 그냥 역병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결국 그 역병은 남당 전체에 창궐할 것이다.
"배 한 척도 연방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관리를 해야겠습니다."
혹시라도 격리를 받아야 할 놈들이 연방으로 넘어온다면 그때부터는 정말 위험하다.
우리들 꾀에 우리가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더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아, 역병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의술도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서역에서 온 상인들이 의서도 가지고 왔을 거 같은데."
"의학에 관련해서 서역에서 온 자들도 본 듯하니, 병사들을 풀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최근 연방에 서역의 기술자들이 들어왔으니 어쩌면 의술에 관해 아는 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 *
서해.
서해 연방 출신 왜구 함대에 연방정부의 명이 떨어졌다.
"음, 이제 왜구는 그만하라고 명령이 떨어졌군."
총리의 명령서를 확인한 왜구 상귀는 혀를 찼다.
정말로 아쉽게 되었다. 이제 좀만 더 약화시킨다면 왜구로 금릉을 약탈할 수도 있었을 텐데.
상귀의 왜구집단은 수도 금릉의 상황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금릉은 역병으로 꽤 큰 피해를 봤다.
대처를 초반에 제대로 못 한 건지 몰라도 금릉의 피해는 삽시간에 불었으며 지금은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물론, 벌써 사람은 죽을 만큼 죽은 탓이었다.
"아쉽습니다. 저 정도로 오합지졸 놈들이라면 우리도 해볼 만할 텐데요."
"각하께서 명을 내리셨으니 그럼 이제 그만해야겠지."
부관의 말에 상귀도 아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른 장수들은 이제 좀 한시름 놓았다.
솔직히 상귀의 그 행동력에 지친 것은 장수들이었다.
총사니 잠자코 따르기는 했는데, 쉴 틈이 없으니 왜구들 사이에서도 불평을 늘어놓는 소리가 많았다.
그 불평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장수들의 몫이었다.
"적당할 때라고 생각했던 차였소."
"으음, 하지만 너무 아깝지 않소?"
이것은 너무 아깝다.
조금만 더하면 남당을 끝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퇴각은 장수로서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나라의 명을 어길 생각은 없다.
"그럼 총사께서는 뭔가 생각해둔 것이 있소이까? 소장들은 솔직히 슬슬 이 바닷바람이 코에서 떠나지 않을 지경이오."
장수들의 불평도 늘어나자 상귀는 무언가 떠올렸다.
"이렇게 떠난다면 언제고 남당은 위협이 되지 않겠소?"
"무슨 생각이 있으십니까?"
부관과 장수들의 시선이 상귀에게 향했다.
대체 저 인간이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저리도 자신만만한가.
그런데 상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꽤 뜻밖이었다.
"우리를 왜구로 아는 포로들이 좀 있지 않소? 그들에게 역병에 걸린 시체를 맡겨 남당의 각성에서 던져 퍼트리는 것은??"
이거 참 좋은 방법이 아닐까.
"역병이 과연 총사의 뜻대로 퍼질 수 있겠소? 자칫하다가는 아군에게도……."
"그러니 포로들을 쓰는 것이오. 때마침 금릉 근처에는 역병으로 죽은 시신도 넘쳐난다 하지 않소?"
버려진 시체들이 한가득이라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할까.
제대로만 한다면 남당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구려."
"오, 그것참 좋은 방법이오."
왜구 짓으로 한참 피곤했던 장수들은 이제 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군에 피해도 없다고 하니 더 무슨 생각을 할까.
상귀의 왜구들은 몰래 금릉의 시신들을 빼돌려 포로들에게 나누어주고 남당 각지로 보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려."
"그러게 말이오."
그리고 마침내 왜구 짓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은 무엇일까.
총사 상귀의 얼굴이 능글맞게 변했다.
그냥 아예 저 인간 입을 다물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 중인데.
"그런데 말이오."
"또 무슨 일이오?"
"각하께서 ‘남당’만 그만두라고 한 것이오. 그러니 오월과 민은 약탈해도 괜찮지 않겠소?"
"""……""."
아직 장수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지옥이었다.
* * *
금릉.
남당의 수도 금릉은 시신을 치우는 병사들로 인해 상당히 분주했다.
남당은 병이 걸린 자들을 밖으로 격리시키거나 죽은 자들은 멀리 나가 버렸는데. 이미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천하의 당 제국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역병 하나에 이렇게 무참히 무너진다는 말인가?"
아직 오월과 민을 치지도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무너지면 어쩌자는 것인가. 정말 최악이 아닌가.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신하들은 고정하란 말이 전부다.
"고정하라! 짐에게 고정하라! 왜구 놈들이 던진 역병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내게 고정하라는 건가!"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그저 시체를 치우고 있을 뿐이니. 참 답답할 지경이다.
금릉에서는 벌써 하루에도 수없이 곡소리가 난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황제를 원망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폐하. 지금 민과 오월이 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오월과 민이 바보가 아닌 이상, 맞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전쟁부터 대비하라는 것인가?"
"수도 금릉의 역병은 거의 잡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지금은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오월과 민이 올라오면 곤란해진다.
안 그래도 병으로 수도가 혼란스러운데, 일격을 당하면 이 나라는 정말로 위험해질 것이다.
"왜구는 어떻게 되었는가? 연방에 요청하지 않았나?"
"연방이 군을 움직였는지, 바다에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왜구는 바다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육지에서도?"
"예."
"그거 하나는 다행이로군. 금릉에서의 역병이 완전히 끝나면 그때는 여유롭게 오월과 민을 상대할 수 있겠어."
금릉의 역병만 끊으면 된다. 이경은 그렇게 여겼으나. 생각보다도 사태는 더 심각했다.
"폐하! 다른 지역에서도 역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매번 들어오는 소식은 참담할 뿐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초주, 승주, 수주, 선주를 비롯하여 역병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경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말이 무엇인가. 초주 승주, 수주, 선주라면 왜구들이 나타났던 곳이다. 그곳에서 역병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야. 역병이 어떻게 그리 퍼진다는 말인가?"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제 막 금릉이 조용해지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이런 악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수령들의 말로는 왜구들이 포로들을 이용해 역병으로 죽은 시신들을 각 지역에 던졌다고……."
"그놈들은 악귀들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잔인한 수작을!"
그 왜구들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하던 황제 이경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왜구라 하나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설마 이렇게 왜구들 따위의 농간질에 당 제국이 무너져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오월과 민이 문제입니다. 지금을 노리고 놈들이 쳐들어온다면."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입니다."
"폐하, 절도사들에게 황명을 내려 역병이 퍼지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걸 누가 모른다는 말인가.
이경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건 너무 참담하지 않은가. 지옥이 일어날 것이야."
지옥은 이제 시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소식에 이경은 힘이 빠졌다.
점점 역병은 빠르게 남당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오월과 민은 당 제국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당이라는 나라가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악몽이야. 악몽이다. 각지의 절도사에게 민과 오월의 침공에 대비하면서 병사들이 역병에 걸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오월과 민을 공격하기 전에 왜구를 쳤어야 했다.
해적질이나 하던 놈들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일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