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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37화 (137/154)

137. 연방의 왜구

이왕 사신으로 왔으니, 나는 상유한과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놈이 확실히 친연방파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수장 격이라 할 수 있겠지.

아마 석중귀를 비롯한 반연방 세력과의 다툼에서 상유한이 제법 고생이 많은 것 같다.

"그래. 돌아가면 적들을 막느라 바쁠 테니 좀 쉬었다가 돌아가시게."

"예, 각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상유한에게 최대한 베풀어줄 만큼 베풀어 우리가 도울 것을 분명히 약조하였다.

그리고 상유한이 물러난 자리에서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로 어이가 없는 국가가 아닌가.

"대체 나라가 얼마나 형편없으면 조금 돌멩이를 던진 정도로 진이라는 호수가 저리 요동을 치는 것인가?"

참으로 한심한 나라가 아닌가. 그간 석경당은 대체 뭘 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내부공사를 할 시간은 있었을 텐데?

내가 혀를 끌끌 차자 군부의 문서를 정리하는 관흔이 입을 열었다.

"애초에 석경당이라는 자가 황제의 자격은 없는 인물이 아닙니까."

"뭐 그건 그렇지."

남의 도움으로 천자에 오른 사람이 아닌가.

그런 자가 진정한 황제가 될 자격은 없지.

그렇다고 석중귀도 마냥 자격이 있는 인물은 아니다. 멍청한 놈이 군사를 일으켜도 하필 그 자리에서 일으키나.

전략적으로는 좋은 선택이다. 석경당과 연방에 반하는 세력들을 규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군사적으로는 좋지 못하지.

무려 바다다. 한마디로 언제든 연방의 수군이 드나들면서 두들겨 팰 수 있는 위치가 된다 그 말이다.

게다가, 무역도 싹 다 가로막을 수 있지.

이미 바다는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데, 이 멍청한 놈들이 어쩔 셈인가. 석중귀는 이제 그대로 갇힐 일만 남았다.

남당의 이경이 바보는 아닐 테니 치고 올 거 같지는 않고.

아니면 의외로 석경당이 잘 버텨줄 줄 누가 알겠는가.

"민과 월은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하시는 것입니까?"

"상인들을 이용해 먹어야지. 이주에 이것저것 넘기면서 상인들을 동원하여 넘치는 쌀을 처분하는 거라고 하게."

"예."

군량이랑 남은 무기를 적당히 지원하자.

"그리고 군사는 얼마나 준비되었나?"

"3만 정도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3만. 기존에 대만에 가 있는 수군까지 생각하면 섬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원주민들도 있으니까 시간이 좀 지나면 지역 인간들도 병사로 차출할 수 있을 테고.

필요한 사람들은 전부 보내두는 것이 좋겠지.

집을 지을 건축가라던가 말이다.

"그렇겠지 1천 척을 동원했다고 했으니. 화약도 보내고 배도 계속 보내야 할 것이네."

"예, 각하."

대만에서 저 베트남 쪽도 상대해야 하니까.

어쩌면 그쪽은 전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무역을 우리와만 하자고 하면 무슨 반응이 올지 모른다.

강력한 군대는 언제든 중요하게 쓰이지.

"대장경은 어찌 되어가나? 부족하지는 않고? 대장경은 대규모 토목공사나 마찬가지라 대장경을 방해할지도 모를 불손한 무리들을 방지해야 하니 군사들도 붙이지 않았나."

연방이 거의 강력한 군사력에 의해 세워진 꼴이니 국가 정책 태반은 군부도 긴밀히 협조 중이다.

"네. 성공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그래. 어차피 일은 다 노예가 하니 말이다.

"좋아, 그럼 대만의 일을 마음 놓고 진행할 수 있겠군. 그 3만 중 절반을 일본인들로 채워 왜선으로 남당을 약탈시키는 건 어떨까?"

"좋은 방책이십니다."

역시 왜구는 일본인들이 해야지. 반도와 만주인들은 일본어에 대해 아는 인물이 거의 없으니까. 일본인이 하는 것이 가장 낫다.

"그리고 여기서 대만은 머니 상귀에게 군사 재량권을 줘야겠어. 다른 나라와의 전면전은 절대 안 되고 대만을 방비하도록 명을 내려야 하니 관흔 장군이 군부에서 하달하게."

"예, 각하."

이렇게 하면 상귀도 나름 열심히 해주겠지. 멋대로 전쟁한 것을 용서해준 거니 말이다.

* * *

대만.

상귀는 총리부에서 내려온 명령에 몹시도 감격했다.

무려 당과의 싸움을 용서해준다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군사 재량권까지 얻었다. 이제 이 이주에서 군사 수만 명을 이끌게 된 것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오오, 각하께서 내게 이런 대임을 맡겨주시다니. 심지어 용서를 해주셨소이다."

"각하의 은혜가 참으로 하늘과 같습니다."

이제 이것으로 마음 놓게 되었다. 오히려 군사와 화약을 지원해준다 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것은 상을 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주진이 받은 수군은 3만 그중 1만은 일본 출신으로 왜구로 써먹을 자들이었다.

"그런데 왜구 지휘관은 누가 맡는 것입니까?"

"이럴 수가!"

"총사 왜 그러시오."

"각하께서 친히 명을 내리셨소. 왜구 수장에 저를 임명한다고."

최악이다. 일본인 노릇을 하라는 명이 떨어진 것이다.

상귀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커, 커흠."

"이거 경하드려야 할 일인지."

효봉과 명길은 실실 웃었다.

"뭐. 하지만 각하의 명 없이 당군을 두들겨 팼는데, 이 정도라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소."

"그렇기야 한데……."

"그럼 머리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왜구처럼 밀라고 하더라.

"한글로 박박 밀라고 직접 명을 내리셨소."

"힘내시오, 왜장."

"우리는 편히 이주에서 원주민들과 친해지리다."

장수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은 쏙 빠지는 줄 알고 기뻐하고 있으나, 상귀가 볼 때는 그조차도 웃겼다.

"허, 너무하는 거 아니오? 그리고 장군들은 좋아하실 때가 아니오만. 나만 왜장인 것이 아니오."

어디서 자기들만 쏙 빠질 셈인가.

참으로 아쉽게도 각하는 한 명도 빠지지 않게 했다.

"예?"

"싹 다 머리를 밀고 왜장이 되어야 한다 하셨소. 나랑 장수들이 시간을 두고 남당을 치고 빠지라는 각하의 명이시오."

결국 이번 일은 총사인 상귀 자신만의 일이 아니었다. 상귀의 말을 따른 장수들도 연대책임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러니 다들 미시오. 어딜 자기들만 쏙 빠지려고."

그저 자신을 따른 것뿐인 장수들이라지만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다 같이 해적질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대만에는 기존의 연방 함대를 제외한 사략 함대가 만들어졌다.

무려 일본 출신들 1만 명이 모두 해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이제 막 머리에 하얀 서리도 내렸는데. 이래야 한다니."

반듯하게 깎인 머리를 만지면서 효봉이 중얼거렸다.

아니, 애초에 투구를 쓰면 되는 일이 아닌가. 굳이 머리를 깎을 필요가 있나?

"어쩌겠소?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나마 일본 출신들이 알아서 왜구 역할을 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머리를 민 모습의 상귀가 호쾌하게 웃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따지고 싶은데, 문득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생겼다.

효봉과 명길은 소집한 일본군 출신들을 바라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저것들 진짜 왜구 출신들 같지 않소?"

"음. 말하지 마시오.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하니."

소집한 인원들은 하나같이 무지막지하게 생겼다.

군사가 모이자, 왜장 상귀는 왜구들을 이끌어 남당을 약탈했다.

"무엇이든 약탈하라! 반항하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저항하는 자들은 모조리 죽이고 포로를 잡아라!"

실제로 일을 너무 잘한다.

덮치는 지역마다 아주 싹 다 쓸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아예 상륙하여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초주까지 밀고 들어가 쓸어버렸는데, 약탈하는 것이 너무 익숙했다.

"눈에 보이는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빼앗아라!"

일본어로 말하면서 당나라 백성들을 끌고 가고, 약탈하는 모습을 보면 제법 그럴듯하다.

정말 진심으로 해적이 아닌가.

너무도 궁금한 백제의 장수들은 왜구로 위장한 일본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정말로 약탈 안 해본 일본 출신이냐?"

"네."

"아무리 봐도 익숙한데."

"하하하. 연방이 되면서 일본이 편입되었는데 해적질을 할 리 있겠습니까?"

이 말은 한마디로, 연방 전에 해적질하던 놈들이라는 뜻이 아닌가.

가만히 보니 얼굴에 상처도 있는 놈들도 많다. 해적질에 어울리는 놈들이 아주 많았다.

"이거 참 묘하게 되었군, 그래."

"설마 진짜 해적들이었다니 말이죠."

"뭐 그래도 지금은 도움이 되니 다행인가?"

확실히 왜구라고 무시할 것이 되지 못했다,

남당에서도 이미 왜구는 꽤 유명해졌다.

"히익! 왜구다! 이놈들아! 싸워라!"

"도, 도망쳐!"

"젠장 저런 악질들을 어떻게 상대하란 거야!"

"당나라 관군이 몰려오기 전에 불을 질러라!"

가는 곳마다 모조리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거 좀 정도가 심한 것이 아니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크게 경을 칠지도 모르겠소."

효봉이 걱정스럽게 말했으나 상귀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죽는 것을 주로 당병이 아니오?"

"그렇기는 하오나."

이거야 원. 모처럼 대국인데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설마하니 왜구 역할을 하면서 당나라를 공격할 줄 몰랐다.

"다음은 명길 장군이 함대를 끌고 올 때가 아니오?"

"이렇게 5천 명씩 쉴 새 없이 당을 치고 있으니 당나라도 죽을 맛일 것이오."

5천 명이 몰려다니는 것도 아니다. 5천을 다시 줄로 쪼개서 당나라 각지를 공격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해안만 공격했었으나 내륙까지 들어갔다.

이 공격은 단순히 해안이나 초주에 지나지 않고 승수, 선주의 인근 지역들을 공격하여 온갖 것을 약탈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크하하핫.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니 놈들이 정신없이 맞고만 있지 않습니까?"

당나라는 정신없이 맞고만 있었다.

주력군이 전부 남쪽으로 향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분열된 중원의 나라라면 이토록 왜구 하나 막기도 힘든 것일까.

물론 편입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은 왜구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얼마나 털고 있는 것이오?"

"그냥 보이는 대로 다 쓸어버리고 있소이다."

"수도도 노리는 것이 가능할 것 같소?"

수도라. 남당의 수도는 금릉이다. 지금 남당의 주력군이 밑으로 빠져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가능할까?

"수도는 무리겠지. 황제가 있는 수도요. 해적 1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않겠소?"

그래도 수도인데 1만을 막을 정도의 병력은 있을 것이다.

병력이 없다고 해도 월과 민에게 향한 주력군이 회군할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피해만 입을 뿐이다.

"대만도의 수군들을 총동원한다면?"

"음."

잠깐, 생각해보니 조금 그럴듯하다.

대만도에 있는 수군이 대략 6만이다. 작정하고 그들이 남당의 주력군이 빠진 틈에 수도를 공략한다면?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데. 하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피해만 커질 뿐이다.

"일단은 두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각하께서도 확전을 바라시는 것 같지는 않고, 당과 연방은 협상 중인 것 같으니."

"쯧. 아쉽구려."

하필이면 대만 원정군이 당군을 격침한 탓에 배상 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니, 지금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아무리 연방이라고 항상 전쟁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연방군은 둔전병도 많기 때문에 전쟁을 치르고자 하면 꽤 힘들어진다.

"일단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소이다. 생각해보시오. 왜 각하께서 남당을 왜구로 노략질하라 하셨겠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오?"

"그렇소. 적당히 두들기다가 나중에 준비가 되면 본국에서 대군이 넘어오지 않겠소?"

분명 어쩌다 전투가 일어나긴 했으나, 평소 중원의 나라를 경계하던 각하가 아닌가.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배상 문제로 지금 당장은 뭘 어쩌지 못하지만, 아마 지금은 그 전 단계로 왜구를 이용하여 남당을 약화시키는 전략일 것이다.

"하긴 대만도에서 무역을 독점한다면 그게 또 그리되겠구려."

"우리가 서둘러서 좋을 것이 없소이다. 어차피 당나라 놈들의 배는 전부 불태우지 않았소이까?"

"알겠소."

일단은 지켜만 봐도 될 것이다.

결국 시간은 연방의 편. 남당도, 오월도, 민도 연방의 상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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