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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36화 (136/154)
  • 136. 후진의 내분

    석중귀는 연방의 상인과 놀아나는 황제를 바라보면서 두 손을 불끈 쥐었다.

    "허허허, 이거 참. 각하께서 이리도 이 몸을 신경 써주신다는 말인가."

    "아국의 각하께서는 늘, 진은 중원에 있는 연방의 우방국이며 친구의 국가이니 함께 가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지요."

    석경당은 상인의 말에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핫! 암, 같이 가야지. 같이 가야 하고말고! 그대는 낙양에서 푹 쉬다 가게나! 내 사람을 시켜 섭섭지 않게 대접해주겠네."

    "황공하옵니다."

    연방의 상인이 물러나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석중귀가 석경당에게 달려갔다.

    "폐하. 저자는 누구입니까?"

    "연방에서 온 상인이네."

    "어찌 상인 따위와 밀담을 나누십니까? 게다가 그 상인 놈의 말투를 보아하니 상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여간 이놈은 뭘 자꾸 나타나서 이리 훼방인지. 석경당은 매번 방해만 하고 나서는 석중귀에게 혀를 찼다.

    "각하와 거래를 하는 상인이라 하지 않았나. 선물까지 두고 갔느니라."

    황룡이 승천하는 금동대향로를 꺼내 보여주자 석중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언제까지 연방과 관계를 이어가실 겁니까?"

    "그럼 연방과 관계를 끊자는 말이냐?"

    "내 저잣거리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십니까?"

    제왕 석중귀는 저잣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석경당에게 하였다.

    연방 사람들이 진을 무시하고 있다는 발언. 그러나 정작 석경당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허, 그런 일이 있었느냐."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계속 연방을 편드십니까?"

    "어허, 편이라니. 무슨 말을 그리하는 것인가? 다 국익을 위해서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연방인 몇 명이 우리를 무시한다고 나라 전체가 우리를 무시하겠느냐?"

    국익이라니. 조공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얼만데. 지금 진이 조공을 통해 얻고 있는 것은 평화밖에 없을 것이다.

    "국익이라도 우리는 천자국입니다!"

    "그래서 그 천자국보다 강한 국가를 오랑캐라 하여 우리 스스로 오랑캐보다 약한 국가라고 증명하고 싶은 게냐?"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진이 중원을 통일하지 않는 이상, 연방은 진보다 강력한 국가다. 그런 나라를 오랑캐라 깎아내린다면 자기들은 그 오랑캐보다 못한 국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제국보다 강한 나라라고 치면 어느 정도 이유는 그럴듯하다.

    "현실을 바로 알거라! 우리 힘으로 연방을 넘어서는 건 요원한 일이야! 지금은 연방의 밑에서 힘을 키워야 한다!"

    황제국이 오랑캐의 나라를 떠받들고 힘을 키운다라.

    그리해서도 안 되고, 또 오랑캐가 그렇게 내버려 둘 것 같은가?

    저 연방의 족속들이 진이 크도록 내버려 둘 것 같냐는 말이다.

    "오랑캐도 그리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뭐라고!?"

    "뭘 그리 연방에 퍼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차라리 나라까지 바치지 그러십니까. 대체 왜 황위에 오른 것입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연방과의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연방의 눈 밖에 나면 언제든 초원에 있는 대규모의 기병대를 움직여 침공해올 것이다.

    석경당은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

    "네 이놈 썩 꺼지거라!"

    결국 석경당이 대노하자 석중귀는 인상을 찡그린 채 안중영, 경원광 등과 함께 등을 돌렸다.

    석중귀가 서 있던 자리를 한참 바라보던 석경당은 한숨을 쉬었다.

    이 나라를 지키고 천년만년을 보는 것이 지금 쉬울 거라 생각하나.

    "이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자네도 찬성한 일이 아닌가."

    "제왕께서 아직 세상을 너무 모르십니다. 지금의 우리는 대당제국 시절이 아닌데 말입니다."

    당나라 시절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진이라는 나라는 중원을 통일하지도 못했고, 당연히 강하지도 않다.

    "아직 세상이 어떤지 모르는 게지."

    "하지만 너무 필요 이상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셔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절도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내 모르는 일이 아니네."

    그러니 안으로는 연방의 비위를 맞추면서 절도사들도 설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절도사들이 독립이라도 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상유한, 자네가 보기에 앞으로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거 같은가?"

    "천하가 이리도 어지러운데, 소신이 어찌 훗날을 장담하겠습니까?"

    "역시 그렇겠지."

    지금 자신의 대에 이 나라를 반석에 세울 수 있을까.

    "제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연방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통일을 못 하게 방해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연방과 적대할 수도 있겠다.

    "음. 일단 그래도 최대한 길러 봐야지."

    "사실, 최근에 들어온 소식이 있습니다."

    "뭔가 있나?"

    "남당의 이경이 연방에 사신을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 중원에서 연방과 직접 국교를 맺은 나라는 후진이 전부였다. 물론 다른 나라들 역시 연방과는 공식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무역은 하고 있으나, 중원의 나라 중에서는 유일하게 진만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남당이 무슨 일로 사신을?

    남당이 연방과 친해지면 진으로서는 문제가 크다.

    "대체 그놈들이 연방에 왜? 설마 자기들과 동맹을?"

    "하여 연방과 남당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하고 알아보다 신의 귀를 의심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무슨 소식인가?"

    설마 동맹은 아니겠지. 연방이 위에서 남당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면 진나라는 위아래로 위험하다.

    "남당의 함대 350척이 바다에서 연방군에 의해 수장되었다고 합니다."

    "뭐라? 그럼 연방과 전쟁인가?"

    남당과 연방의 전쟁이라면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확전은 없는 것으로 보아 그것으로 끝난 모양인데. 상인들을 통해 알아보니 남당의 배가 줄었다합니다."

    "그럼 전투는 확실하게 일어난 모양이로군."

    그러니 배가 줄은 것일 테지.

    "그런데 연방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전투를 치렀는데 왜?"

    연방이 전쟁이 무서워 뒤를 빠졌는가? 연방의 군세라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350척이란 함대를 깨트렸으면 더 그럴 테지.

    남당이 공격하려면 바다를 넘어야 하고 말이다.

    "사실 연방이 함대를 보낸 것은 맞지만 남당에 보낸 것이 아니라 저 아래에 있는 이주로 보낸 것인데, 남당의 수군이 착각하고 연방의 함대에 공격을 하다가 반대로 연방의 수군에 싹 전멸했다 합니다."

    "뭐 이런 멍청한 놈들이 다 있나. 그렇다면 연방 측에서도 어이가 없겠군."

    그래도 기쁜 소식이다.

    연방은 공격하는 당군을 섬멸한 것뿐인데 당이 저리 나오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직 당나라가 연방이라는 나라를 총리라는 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예. 배상까지 노리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350척의 배가 그리 쉽게 무너지냐며 연방의 총리가 남당에게 항의를 한 듯 보입니다만."

    "결국에는 적인가. 그럼 다행이로군."

    "잘 만하면 전쟁이 터질 것이고."

    "우리에게도 뭔가 있을 수 있다?"

    "예. 그러니 당분간은 열심히 연방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맞추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어쩌면 남당이 지도에서 지워지고 연방은 남당의 땅을 진에 줄지도 모른다.

    석경당은 그런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꿈은 석중귀가 자기 측근들과 함께 군사를 일으키면서 실패하고 만다.

    "나 석중귀는 연방에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 황제를 폐위시키고 황위에 올라 연방을 몰아낼 것이다!"

    석중귀는 유지원이 들고 일어났던 태원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들고 일어났다.

    "뭐라고? 감히 석중귀가 군사를 일으켜? 그것도 유지원이 난을 일으킨 곳에서!?"

    유지원이 난을 일으킨 태원이라는 곳은 그 주변 지역이 전부 석경당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연방의 가차 없는 공격에 패배한 반 연방인 백성들이 많았으니, 그들은 석중귀를 따르기 시작했다.

    석경당은 상유한을 불러 급히 일을 논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지금은 일단 수비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석중귀를 따르는 무리들이 이리도 대단한 세력을 갖추고 있다면 우리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결국 내전이란 말인가.

    유지원의 난이 진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 하필 황족이 직접 난을 일으키다니.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단 연방에 지원군을 요청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생각보다도 후진은 나라가 불안정했고, 너무도 쉽게, 연방의 뜻대로 분열되었다.

    그렇게 후진은 서진의 석경당, 동진의 석중귀로 갈라지니, 후진의 중원통일은 요원해졌다.

    * * *

    마침내 올 것이 왔다.

    후진의 석경당이 상유한이라는 인물을 보냈다.

    그간 펼친 공작이 뭔가 있던 것이겠지.

    "석중귀 그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제가 뉘 앞이라고 감히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래. 거짓이 아닌 건 보면 알 수는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터지지 않았나.

    그 정도로 후진이 맛 간 상태라는 건가?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

    "황제는 그래서 내게 지원을 요청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제왕의 군세가 어마어마합니다."

    석중귀를 따르는 자가 그토록 많은 것인가.

    "상대하지 못할 정도라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으나 부디 도와주셔야 합니다."

    대체 이 멍청한 놈들은 계속 지원요청만 하는 걸까. 내가 원하는 그림이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빠르다.

    "그건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각하, 부디 청합니다. 연운 16주의 군대라도……."

    "그 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대도 잘 알겠지. 애초에 도울만한 병력도 되지 못하고."

    연운 16주의 군대를 빼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들어보면 제왕 석중귀의 군세도 만만치 않은데, 이 군대를 괜히 뺐다가 역습을 당하면 위험하다.

    "각하. 저희가 무너지면 저 여우 같은 제왕 석중귀가 진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각하께서는그래도 상관없으십니까?"

    상유한이 설득하듯 내게 말하면서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상관없지는 않지. 석중귀가 진을 먹으면 우리에게 바치던 공물도 내지 않을 텐데.

    그런데 이쪽도 나름 이유가 있다 이 말이다.

    "내가 그걸 왜 모르나. 그러나 우리도 지금 그럴 처지가 아니야."

    "예?"

    "남당, 오월, 민과 전쟁 상태에 돌입했네."

    사실 오월과 민에는 상인들을 이용해서 계속 군량을 팔아넘길 생각이지만 국가 대 국가로 볼 때는 전쟁 상태는 맞다.

    상유한에게는 굳이 솔직히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대체 그건 무슨 일입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지. 해상에서 남당과 좀 시비가 붙었는데, 남당이 오월과 민을 끌어들였지."

    "그럴 수가."

    상유한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사실 그 세 나라의 군대는 약해 빠졌으니 상관없어. 다만 이주에 주둔 중인 우리 수군을 지원해야 하니 문제지."

    "그럼 불가한 것입니까?"

    그건 아니지. 굳이 군사적인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너희들 뒤에는 연방이 있다! 이 정도만 보여줘도 지금은 충분할 것이다.

    분명히 석중귀가 태원 쪽에서 군사를 일으킨 것인가.

    "놈이 지금 장악한 지역이 태원을 비롯한 진의 동쪽인가?"

    "예. 각하."

    멍청한 놈이로군. 딱 우리에게 두들겨 맞기 좋게 동쪽을 장악하다니 말이야. 언제 날 잡아서 두들겨 패기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쪽에는 내 교역 봉쇄령을 내리지. 그리고 초원을 통해 군에 군마를 보내도록 하겠네. 당장은 그것으로 버티고 있게. 상황이 괜찮아지면, 내 대군을 보내 적들을 두들겨 잡겠네."

    "저희는 각하만을 믿고 있겠습니다!"

    그래. 나를 믿어라. 그럼 천국에 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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