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중국을 요리하라
오월과 민 연합함대와 치른 전투는 우리 연방에서도 중요하게 여길 문제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월, 민과 확실히 적대하게 되었습니다. 남당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배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적이 될 것입니다."
"젠장."
중원의 십국과 제대로 싸울 판이니 이거 참 곤란하게 되었다. 이거 이길 수 있나?
아니야. 우리에게는 후진이 있다. 저 멍청한 놈들이 후진의 침공을 받고자 굳이 바다 건너 상륙전을 할 리가 없지.
"하지만 우리가 이주에 지원한다면 저들이 어쩌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결국 민과 월은 진에 비해서도 한참 떨어지는 국가입니다. 중원 남쪽 끄트머리에 있으며 당연히 연방과 대적이 가능할 리가 없지요."
영토와 인구, 경제력 모든 면에서 민과 월이 우리를 이길 리가 없다.
저 둘과의 싸움에 어려울 것이 없다.
당장 저들보다 강한 당나라도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니까 조용해지지 않았는가.
"아예 저들과 싸우자?"
"이미 이주를 점령할 의지가 꺾였을 테고, 당장 국내 문제가 더 클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이주를 점령한 이상, 그 두 나라와의 싸움은 터질 문제였습니다."
일리는 있다.
"그렇다면 이주에 화약을 비롯하여 배를 조금 더 보내는 것이 좋겠군. 그리고 원주민들이 우리를 받아주기로 했으니 행정시설을 설치하지."
"예, 각하."
"특히 화포는 민과 월에서 넘어올 병력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이네."
이왕이면 내가 직접 가볼까?
한 번 가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진이 아니겠습니까."
관흔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진이 중국통일을 위해 남진할 가능성 말인가?"
그건 좀 곤란하지.
"예. 우리가 바다에서 남쪽의 나라들과 싸워 저들을 약하게 만든다면 진나라가 남진하여 중국통일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진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가?"
석경당이 가능할까? 원래는 이보다 한참 후에 통일이지만, 석경당이 아직 살아있으니 어떨지 모르겠는데.
"아직 진의 정국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석경당이 내치를 다스리고 군을 일으킨다면……."
"한마디로 우리가 짜둔 것을 어부지리로 얻는다는 뜻이로군."
석경당이 우리 밑에서 힘을 내고, 우리가 약하게 만든 민, 오월, 당을 먹는다면.
"진의 석경당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 아들인 석중귀지요. 석중귀는 각하께 반발심이 있습니다. 통일 전쟁을 치르는 척 우리 뒤통수를 칠 수도 있습니다."
석중귀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지금 당장만 해도 석중귀 멍청이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나를 상대로 고개를 쳐들고 있지 않나.
그 덕에 진을 먹을 명분도 만들 수 있지만, 지금 남당과 민, 오월과 역인 시점에서 진나라가 중원통일을 하려 한다면?
이거 괜히 귀찮아진다. 석경당에게도 중원통일 지지한다고 해버렸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기껏 안정기인 상황에서 중국 남조들과 진지하게 전쟁을 치러 그 땅을 취하기도 뭐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지요. 사람을 보내 진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전쟁을?"
"그것이 아닙니다. 석중귀와 석경당은 서로 뜻이 맞지 않습니다. 석경당은 우리 밑에서 힘을 키워 중국통일을 꿈꾸고 있고, 석중귀는 우리를 오랑캐라 여겨 우리를 몰아내고 지금 진이 가진 힘으로 중원통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석경당과 석중귀. 부자의 생각이 다른 것은 유명하다.
지금은 내전 수준은 아니고, 서로 떠들 뿐이기는 한데.
"그래 보이기는 하네만."
"조정에도 우리에 대한 온건파와 강경파가 있으니, 이들을 부추겨 내전을 부추긴다면 우리가 남당과 민, 오월, 남한 등에 힘을 적당히 쓰면서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오."
온건파와 강경파. 진이 반으로 갈라진다라.
내전으로 두 나라가 된다면 진나라는 통일 전쟁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대만도에 집중할 수 있다.
민과 오월을 견제하면서 본격적으로 재해권을 장악할 수 있다.
동북아의 바다를 평정하는 것이다.
연방에 편입된 백제가 해양 제국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변수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간만에 상애가 의견을 더했다.
"상애 장군. 무슨 말인가?"
"남당은 오월, 민보다 강한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민과 오월의 연합함대가 이주 앞바다에서 무너졌는데, 기회라 여기지 않겠습니까?"
"남벌 말인가?"
병합하기 적당한 때기는 하다.
오월과 민이 함대를 잃고 그 피해가 심화되고 있으니 350척을 잃은 남당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을 노린다면 남당은 두 나라를 먹을 수 있다.
"예. 연방과의 해전에서 당한 만큼 전쟁에서 회복하려 할 것입니다. 연방을 상대로 보복하기에는 대규모 상륙전도 해야 하고 바다를 넘어야 하니 우리 연방이 아닌 민과 오월을 치는 것이 더 낫지요."
"확실히 약해진 민과 오월이고 중국통일이라는 명분이 있으니까."
남당은 당나라를 계승했다. 그러니 당나라의 후신국으로서 민과 오월을 먹겠다고 밀고 내려가서 힘을 키우면, 힘이 세진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먹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아니지. 그럴 이유가 없어."
우리가 삼키기에는 본토와 너무 떨어져 있다.
인구도 많으니 잘못 삼키면 뒤가 찝찝하다. 그렇다고 다른 이민족들처럼 대놓고 잡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렇게 하지. 진나라 내에 있는 연방에 대한 온건파와 강경파의 내분을 조장한다. 그래서 통일 전쟁을 치르지 못 하게 하지."
이렇게 하면 남쪽과의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지 않고 스스로 나라를 분열시켜 알아서 국력을 소모할 것이다.
"진은 그렇게 처리한다 하더라도 당은 처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많이 커졌다. 당나라와 오월, 민을 전부 삼키기에는 힘들어. 그러니 우리는 민과 오월에 힘을 보탠다."
"군사를 지원해서는 안 됩니다."
"군사는 지원하지 않고, 식량만 지원할 것이네. 식량만 있으면 잘 버티지 않겠는가?"
식량이 있으면 수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연방이 돕는다고 하니 그놈들도 사기가 오를 테고, 반면에 남당은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대군을 움직이면 많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우리만 못하더라도 당나라는 저 중국 남조 중에 가장 강한 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나라도 갉아먹기는 해야 하는데.
"당에 왜구를 보내는 것이 어떤가?"
"당은 왜구로 국력을 손실시키고, 민과 오월은 식량을 지원하여 서로 균형을 맞추게 하는 것입니까?"
"그럼 왜구는 어디 있습니까? 이제 왜구는 남지 않았을 텐데요."
왜구? 만들면 그만이다. 왜선은 전부 한선으로 교체하면서 부산진에 처박았으니 언제든 가져올 수 있고.
"이주를 점령한 것이 확실하다면 군사를 늘리지."
"예, 그게 나을 것입니다. 화약과 식량도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왜구역도 맡겨야지.
"그들에게 왜구역을 맡기는 것이 어떤가?"
"왜구로 위장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일본인 출신 수군도 상당한 숫자다.
그들을 이용한다면 왜구로 위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
"확실히 그렇게 한다면 적당히 저들을 괴롭힐 수 있을 것이나 들키면 큰일일 것입니다."
"한 1만 명쯤으로 하면 되겠지. 남당의 이경이 군대를 일으켜 남진할 때 상륙하여 가능한 만큼 털어버리는 것이 어떨까."
1만 명 정도라면 해볼 만하다.
남당의 이경이 어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지만. 왜구라고 말뚝을 박아둔다면 감히 후당이 연방에 따질 수 있을까?
"좋은 방법입니다. 각하."
"일단 진을 분열시키도록 하지."
진이 서서히 내부분열을 일으킨다면, 진은 남쪽을 신경 쓰지 못하고 결국 중국은 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것이다.
* * *
낙양.
제왕 석중귀는 날이 갈수록 황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황제란 자는 늘 어떻게 하면 연방에 잘 보일까, 그런 생각뿐이다.
"흥, 폐하께서는 어찌 그리도 오랑캐 놈들에게 굽신거린다는 말인가?"
"전하, 벽에도 듣는 귀가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벽에도 듣는 귀. 정말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황제란 자가 자기가 쪽팔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내 말이 틀린가? 제 놈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당에 멸망했던 고려와 백제가 아닌가? 쯧쯧, 이용하고 그냥 쫓아내면 될 일을 가지고 그런 놈들에게 조공이나 바치는 꼴이니 말이야."
매년 연방에 갖다 바치는 것들을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게 대체 다 얼마라는 말인가.
"그건 그렇습니다. 유지원 일도, 연방이 우방국으로서 임황부만 묶어놨어도 우리 스스로 유지원을 처단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그 연방이라는 나라."
언젠가는 천자국으로서 반드시 연방을 쳐내야 한다.
그렇게 한참 술이나 들이키고 있는데, 한 무리의 상인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차림을 보아하니 꽤 비싼 것을 둘러친 모습이라 어느 집 자식인지 자연스럽게 눈이 향했다.
"자네 이번에 연방에 가서 꽤 이득을 봤다지?"
"보기야 봤지. 그런데 이거 자존심을 워낙 구기니."
비싼 옷을 걸친 사람들은 연방에 대한 주제로 이야깃주머니를 풀었다.
연방이라는 단어에 석중귀와 그 신하들인 안중영, 경연광 등이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인가?"
"아예 우리나라의 상인들을 아래로 보고 있다네. 이번에 연방에서 이문을 얻은 것도 마치 떡고물이라도 던져주는 것처럼 줬다네."
"아니, 연방은 대국이라면서 우리를 무시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조공을 바친다며 무시하는 거지. 에잉, 쯧쯧쯧."
이미 조공을 바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물리자니 요즘은 연방에 선을 대지 않으면 교역도 힘들지 않나?"
"그러니 내 참고 이러는 것이지. 카악, 퉤. 에휴."
상인은 침을 뱉었다. 다소 울분이 섞인 것이 저 상인은 진심으로 연방을 증오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이야기를 듣던 석중귀가 상인들에게 다가갔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연방이 우리를 아래로 보고 있다?"
"높으신 분 자제 같은데, 연방 얘기는 꺼내지도 마시오. 혹여 가실 생각 있으셔도 가지 마시고. 거긴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진의 사람이라면 아주 나약하게 보고 동정하며 제후로 여기고 있으니."
"그대들의 뜻을 잘 알겠네."
고작해야 상인들이 떠드는 말이라고 하나 무시 못할 말들은 아니었다.
저 말들을 종합하면 결국 연방이라는 괴상망측한 나라는 진나라를 결코 대등하게 보지 않고 제후로 보고 있다.
황제를 제후로 둔 나라라니. 대체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저것 보게. 역시 연방과는 함께 갈 수 없어!"
"그렇습니다. 연방과는 싸워야 할 것입니다!"
"다들 일단 진정하시지요. 우리가 이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 당장 황궁으로 가자. 내 폐하와 담판을 지어야겠어."
여기서 백날 떠들어댄다고 뭐가 달라질까. 석중귀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향했다.
정작 그 황제란 작자는 지금 연방인으로 보이는 자와 떠들고 있었다.
상인은 황제에게 무엇인가를 건넸다.
"호오라, 이것이 백제 땅에서 만들어진 금동대향로인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제 비록 미천한 상인이오나, 각하와 오랜 기간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하께서 폐하께 선물을 하신 것이옵니다."
석경당은 연방에서 보낸 금색의 향로를 만졌다.
그 향로는 위에 황룡이 승천하는 장식이 있었는데, 저런 것을 일개 상인을 통해 보내준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