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남당의 사신 2
혹시라도 내가 아닌 군부에서 따로 명을 내린 건가 싶어 알아봤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사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상귀가 남당을 공격한 것이 된다.
"설마 우리 군사들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필시 뭔가 오해가 있을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알아본 연후에 당에 사신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남당을 두들겨 팰 것이 아니라면 빨리 이주에 사람을 보내야 할 것이네."
"예, 각하."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까 이게 웃긴 일이다.
내가 뭐가 쫄리다고 저놈들에게 저자세로 굴어?
상귀가 아무리 무식한 인물이라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당나라 배를 공격할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지. 잠깐. 보내지 말지."
"예?"
"아니 그야 그렇지 않은가. 저놈들도 마냥 자기들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닌가? 자초지종을 살피는 것도 옳은 일이지만 마냥 우리가 저자세로 나갈 이유는 없다 생각하네."
"예."
그 말을 과연 믿을 수가 있나?
당나라 놈들이 증거를 대지 않는 이상 그냥 믿을 수는 없지.
그렇다고 안 믿자고 하기에는 사신을 보낸 것이 수상하다.
"심지어 이곳에서 이주까지 사람을 보내면 한참이나 걸리네. 일단 당나라가 저렇게 사람을 보낸 이유가 무엇이라 보나?"
나는 조금 거짓으로 보고 있다. 350척이 가라앉았다면 상귀도 평양에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들이 보내지 않는 것을 보면 이상하고.
"아무런 접점도 없는 나라가 우리에게 어떤 압박을 넣고자 사신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남당도 연방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굳이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 이유가 없는데 이런 조작을 할리 없겠지.
"진나라의 유지원의 문제 때문이라면 왜 진의 반란에 간섭하냐고 간섭을 해왔어야 할 일입니다. 일단 저들의 말이 과장되었을 테지만, 해상에서 뭔 일이 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가 당하지 않은 점이겠군요."
상황을 보다 명확히 파악한 장관들은 그럴듯한 말들을 내놓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어떤 사태가 벌어졌든 연방에게는 좋지 못할 것이다. 남당과의 전쟁이 무서운 것도 아니고, 남당 역시 주변국을 두고 연방과 전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배상을 해야 하는 건가.
"각하의 말씀대로 사람을 보내기에 이주는 너무 멀리 있습니다. 그냥 이럴 때는 침묵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침묵이라?"
"사람은 보내어 알아보되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당의 뜻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우리 잘못이라고 해도 그놈들이 얼마나 걸고 넘어질지 알 수 없다.
"그리해야겠지. 당나라 사신에게 이번 일은 몹시 유감이라고 전해야겠군. 그리고 따로 사신을 보내겠다고 말이지."
일단은 알아는 봐야겠지. 우리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연방의 체면이 걸린 문제다.
확실하지 않다면 배상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
"각하."
"관흔 장군. 할 말이 있나?"
관흔이 말하면 뭔가 불안한 것만 있는 것이 문제다.
"예 각하. 아국의 배는 참으로 크지 않습니까. 생김새도 기존의 우리 배나 중국의 것이나 왜선과도 다르니 아마 당의 배가 우리 함대를 보고 놀라 공격했을 가능성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확실히 그것도 말이 된다.
내가 봐도 이번에 설계해서 만든 배는 유럽의 배에 가깝게 생겼다. 그런 배가 바다를 떠돌면 다른 나라는 궁금해서라도 가까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상귀가 왜선인 줄 알고 공격이라도 했다면?
"음. 장군의 말로는 결국 전투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아군의 대응이 과했다. 뭐 그렇게 볼 수 있다는 뜻인가?"
"예. 각하."
"역사에 기록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군. 그렇다면 정말 저들이 배상을 원해서 사람을 보냈다는 뜻인가?"
결국에는 우리에게만 불리한 것이 아닌가.
"배상을 내어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잘못이라고 해도?"
"결국 그놈들도 당나라 아닙니까? 고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옛 당나라의 후신인 놈들입니다. 이종가의 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당나라’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저들을 무시할 명분이 있다.
"어차피 저놈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일단 자초지종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 배상을 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배상 문제야 어렵지 않지.
"장관들께서는 지금 같은 말만 하고 계십니다. 저자세고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말고 할 것 없이, 우리는 지금 단순히 당나라 말만 듣고 있지 않습니까. 정작 상귀 장군은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네."
상귀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정말 해상 전투가 있었다면 상귀가 먼저 보낸 보고가 당 사신보다 올라올 것이다. 그런데 보내지 않은 것을 보면 수상하다.
"당나라 사신의 반응으로 보아 우리 수군에 뭔가 일이 터진 것은 아니겠지?"
"화포까지 있는 배이고, 상귀 장군입니다. 남당의 수군을 상대로 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 화약도 많이 담겨 있다.
"그야 그렇기는 한데."
"최악의 가능성을 두자면…… 상귀 장군이 남당의 수군을 왜구 같은 것으로 보고, 함선을 부순 뒤 그대로 대만도까지 내려갔을 수도 있습니다."
설마, 아무리 멍청해도 그리하겠는가.
"설마, 아무리 어리석어도."
"상귀 장군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짜일 것 같아서 불안하다. 만일 정말 왜구로 착각했다면 다른 배들도 싹 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잠깐. 반대로 대만도 때문은 아닌가?
듣자 하니 남당은 외국과의 교역도 활발하다고 들었다. 그런 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함대를 건드렸을까.
패배한 것이 아니라면 상귀는 지금 대만으로 갔을 것이다.
그놈은 나중에 불러도 될 일이고.
회의를 마치고 나서 당나라 사신을 불러들였다.
"당나라 사신은 들으라. 우리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디 뻔뻔하게 나가볼까.
"말 그대로의 의미다. 너희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냐."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증거를 가져오라. 내 그럼 믿어줄 테니."
"정녕 이러하시면……!"
허이구. 이놈들도 이제는 말문이 막힌 모양이구나.
"정녕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이상하지 않으냐! 일단 뭔가 오해가 있어서 해전이 있었다 치자, 그런데 뭐 350척? 그게 전부 가라앉아? 바보천치도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상식적으로 그렇게 당할 리가 있느냐? 말은 똑바로 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네놈들이야!"
"아니……."
반발하려다가 지도 말이 안 된다고 여기는 건지 입을 다물었다.
"일단 나도 사람을 보내 알아볼 터이니 네놈들도 과장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서 당 황제에게 똑똑히 전하거라."
"……예. 각하."
저놈들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350척이 그대로 가라앉은 걸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본인들도 의아할 테니까.
"상귀와 효봉, 명길이가 싸둔 걸 내가 치우는 꼴이라니. 에휴."
내 사회적인 위치와 체면이 있지 정말 내 꼴이 말이 아니다.
* * *
대만(이주).
마침내 대만 원정군이 총리 금강이 대만도라 부르는 섬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이주로 불렸던 대만도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섬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한반도와 연을 맺는 것은 한참 후지만, 금강의 주도 아래에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하기 위해서 대만도를 선택했다.
"도착했으니, 일단은 진을 설치합시다."
북해도에서 그렇듯 수군의 진을 설치했다.
병사들을 동원해서 적당히 목재로 만든 수영을 세우고, 배들을 정박할 항구를 만들게 하였다.
"빨리 끝내야 하니 일단 진을 설치하고 사람을 풀어 이곳 원주민들과 교섭을 해보도록 하지."
하지만 그들에게 성과는 없었다.
"절대 안 되오!"
원주민들이 거절한 것이다.
예상은 했다. 북해도에서도 마냥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연방인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외지인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것이 아닌가,
"그럼 자네들은 평생 나라 없이 살 생각인가? 연방은 대국이네. 두 명의 황제가 있으며 그, 위로 총리 각하께서 계시지. 자네들의 터전은 바뀌지 않을 걸세. 원한다면 연방 본국으로 가도 되고, 이곳에 있겠다면 말리지 않겠네. 다만 관청을 설치하고 자네들을 다스릴 뿐이지."
"우리는 우리대로 살 것이오."
"어서들 돌아가시오."
설마하니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결국 원주민들은 일방적인 통보만 하고 사라졌다.
"원주민들의 말로는 점령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더 말해 무엇합니까. 싹 쓸어버립시다."
그렇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리해서도 안 되고.
"무력으로 진압하면 안 될 것이오. 저들도 우리 백성이 될 몸. 굳이 이런 식으로 싸울 연유가 없지."
맞다. 안 그래도 그 다른 나라의 함대와 싸운 것도 많이 걸린다. 괜히 이런 데서 각하의 눈 밖에 나는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놈들이 허용하지 않겠다하면."
"그럼 지들이 어쩌겠소이까? 공격할 수 있겠소?"
"그건."
원주민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작정하면 이 이주를 털어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본국이 원하는 일도 아니며 연방은 단순한 침략국이 아니다.
이주원정군은 그 이주에 뿌리를 내려 원주민들을 설득하여 연방의 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자릿세를 내어 조금의 땅이라도 얻어두는 것.
어느 쪽이든 무력으로 원주민들을 두드리지는 못 하게 하였다.
"진을 설치하였으니, 이제 적당히 저들과 경계를 두고 논과 밭을 일구면 되지 않겠소? 일단은 본국의 식량을 받는 것도 좋을 테고."
아직 식량은 풍족하지만, 결국 이주에서 뭔가 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먹고 살 궁리는 해야 한다.
"음, 그럼 그렇게 합시다."
연방의 수군들은 본격적으로 요새를 건설했다.
"이거야 원 배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아 바다에 띄운 꼴이라니. 어서 배를 댈 곳을 만들어야 하겠소."
"그리 배가 너무 크니 자칫하면 좌초할 수도 있지 않겠소?"
아니 따지고 보면 정박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참 나, 이거야 원. 어차피 우리 백성을 다루는 건 아니라 해도……."
"어차피 찢어 죽어도 시원찮을 거란 놈들 아니오?"
그렇지.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놈들을 격군으로 써먹은 것뿐이다. 노예에 불과한 자들이다.
그런 놈들은 본국에서도 마음껏 부려 먹으라 하였다.
"그래도 항구는 우리 손으로 짓고 있지 않소?"
"거란 놈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우리 손으로 지어야지."
거란 놈들도 노예처럼 굴려지며 한이 맺혔을 텐데, 항구를 제대로 만들겠나. 고생하더라도 부여 연방인으로 만드는 것이 나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만에는 전운이 드리워졌다.
"대규모 함대가 이곳 이주, 대만도로 오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에 원정군에 비상이 걸렸다.
대규모 함대? 대체 그건 어느 나라의 군대인가? 설마하니 또 그 괴상망측한 나라의 군대라는 말인가?
"이주로? 어느 나라의 군대냐?"
"민과 오월의 깃발이 걸린 함대입니다!"
민과 오월? 대체 그건 뭐 하는 나라라는 말인가.
들어보지 못한 나라라면 연방에 감히 거역할 만한 나라는 아닐 것이다.
"허, 이제는 오합지졸 놈들이 다 쳐들어오는구만."
당나라도 아니고 중원대륙 남쪽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들이 감히 그 자그마한 힘을 모아 쳐들어온다는 말인가.
"네, 좋은 방법이 있소이다."
아주 좋은 방법이지.
그 방법을 써먹고자 상귀는 이번에 설치한 진에 원주민들을 초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