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30화 (130/154)
  • 130. 이주 원정

    세습하다 보면 나라가 고이고 썩기 마련이다.

    매번 학교에서 교육을 잘 받고 능력이 있는 새로운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옳다.

    "그건…… 커흐흠, 이미 다들 학교에 다니고 있고……."

    "삼한 땅에는 이제 막 학교들이 세워지고 있으니까. 당장은 요동 출신들로 과거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로군.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인재가 시급하네. 경들이 죽고 나면 능력 없는 새파랗게 젊은 놈들로 나라를 굴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인재를 뽑자는 이야기야."

    내 말에 그들은 아무 반박하지 못했다.

    어쨌든 기회는 있으니. 다른 지역은 이제 막 학교가 퍼질 무렵이니 미리 교육 받던 요동 출신들을 위주로 뽑을 테니까.

    결국 장관들 자식들은 장관들 말대로 총리부까지 진출할 것이다.

    "신분제 폐지라면 앞으로 노예들은 어찌 되는 겁니까?"

    "돈 내고 고용하는 걸로 하지. 집에 자리를 내주는 대신 식모나 집사로 고용하든가. 어차피 앞으로도 연방은 강해질 것이고, 경들 역시 더 잘 먹고 잘살 텐데. 무엇이 문제인가?"

    전에도 말했지만, 가진 놈들이 더한 법이다.

    그거 면천시키고 일꾼으로 고용하는 것이 어떻다고 이러는 것일까.

    "음. 그렇기는 하오나……."

    "그렇게 알아듣게. 어차피 고용하게 되면 경들이 갑이니까."

    결국은 고용인과 고용주 입장이니 크게 바뀔 것은 없다.

    그냥 돈 주고받는 관계가 될 뿐.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있습니까?"

    "급한 일이니 그런 것일세. 대마도를 토벌하고 나면 그 땅에 관청을 설치해야 하는데, 파견할 만한 마땅한 인물도 없지 않은가. 결국 다 하나로 이어지는 문제야."

    하도 인재가 없어 글 쓸 줄 아는 놈들이라도 일단 파견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확실히 그러합니다."

    "결국 이 중에서 파견나가게 되겠지. 그리하자면 또 총리부의 장관들이 비게 되지 않는가? 그러니 일단 요동의 학교 출신 놈들에게 과거를 실시하고 인재를 뽑지."

    "아니, 그렇게 급한 것입니까?"

    애초에 말이다. 요나라도 원 역사에서는 고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글만 쓸 줄 알면 다 지식인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괜히 이러는 것이 아니네. 최소한 대만도를 후려잡을 때까지는 사람들을 모집해둬야 해. 영토가 넓어지는 만큼 관리들도 많아야 하지 않은가."

    "그렇기야 합니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저 군사만 강력한 단순무식한 군사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다들 내 명을 따르도록."

    이렇게 가면 결국 나 때만 괜찮은 나라가 되어버린다.

    내가 죽은 이후에도 나라가 돌아가려면 기틀을 다 마련해둬야지.

    "예, 각하."

    장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회의가 끝나고 총리부를 나가는 길에 최승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각하. 잘하셨습니다."

    "설마하니 거기서 신분제 철폐를 말할 줄은 몰랐는데."

    구한말이나 되어 풀리는 것을 이렇게 풀어내다니.

    인구가 중국에 밀린다면 그만큼 신분에 차별을 두면 안 될 것이다.

    "각하의 대에 해결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확실히 무식하게 군인만 많아서는 쓸데가 없으니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는 한데."

    설마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지.

    "각하의 입김이 사해를 뒤덮는 지금이어야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구려."

    내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때, 훗날을 대비하라.

    하는 말을 보니 최승우는 아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자기가 도울 수 있을 때 해보라 그거겠지.

    "실제로 이 노신도 언제까지 총리부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소신이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생각은 안 하니까 뭐."

    나도 애들 적당히 크면 교육 잘 시켜서 관직에 진출시키고 끝낼 생각인데. 가만히 보니 최승우가 많이 늙기는 늙었다.

    이 양반도 원래 죽을 때가 되었는데 나 때문에 지금껏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당장의 과거는 요동과 현덕부, 금성부에서 치러졌다.

    더불어 노비였던 자들도 면천되어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대만도를 털어먹는 일이었다.

    이튿날 상귀와 효복, 명길 등을 불렀다.

    "그런데 거란의 노예들은 쓸 만한가?"

    "병사 출신들은 힘은 좀 쓰는데 그 외에는 약해 빠졌습니다."

    아무래도 편히 먹고 살던 놈들이 많을 테니까.

    그래도 격군으로 쓸 애들만으로는 군대 출신도 충분할 것이다.

    "그럼 병사 출신들만 데리고 가게."

    어차피 거란족 노예들은 차고 넘쳤으니 말이다.

    "상귀를 총사로 효봉과 명길이 그 뒤를 따라 수군을 이끌고 대만도에 간다."

    "예, 각하!"

    상귀를 총사로 명길, 효봉 등을 원정군 지휘관으로 삼고 수군 출정식을 열어 나주에서 출발했다.

    이대로 대만으로 가겠지.

    어차피 대만의 부족들을 죽일 생각으로 보낸 것은 아니다.

    북해도와 비슷한 방식이다. 강력한 군세를 과시하여 대만의 원주민들을 우리 백성으로 삼는 것이다.

    안 된다면 그냥 기지를 세울 조금의 땅이라도 빌리는 것이 낫겠지. 그 대신 자릿세를 줘야 하겠지만.

    그럼 이제 나는 조용히 승전보나 기다리면 될까.

    "각하, 우리 장수들이 제대로 대만도를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최승우는 또 뭐가 걱정인지 미간을 좁히면서 침음을 흘렸다.

    "그 옛날 오나라의 손권이 위온과 제갈직에게 1만 명의 병력을 주어 그 대만도, 이주에서 오의 백성으로 삼을 자들을 데려오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적이 있었나? 타이완의 과거에 대해는 전혀 모르니 말이다.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풍랑을 만나 1만의 병력 중 과반수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얻은 백성들을 고작해야 1천에 불과했죠."

    잃은 것이 더 크니 손권이 꽤 화를 냈겠군.

    "이런, 그래서 그 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손권은 몹시도 격분하여 그 둘을 주살하였습니다."

    "이런이런. 자비롭지 못한 황제로군요."

    풍랑을 만난 거 가지고 좀 너무하지 않은가. 바다에서 일어난 재앙을 가지고 그리 신하들을 죽여서 쓰겠는가.

    "설마 풍랑을 만나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오나, 음. 뭔가 기분이 불길합니다."

    "글쎄요. 우리 장수들을 믿읍시다."

    그리 예산 때려 박은 어마어마한 배도 넘겨줬는데, 풍랑을 만나 다 말아먹는다면 그건 너무 끔찍하다.

    잘 되겠지. 그래서 일부러 항해사도 좋은 놈들로 달아줬다. 대식국 놈들로 말이다.

    * * *

    서해

    마침내 대만원정군이 나주진에서 출발했다.

    금강급 군선 5척과 기존의 군선을 개량하여 화포를 장착한 한화선 100여 척, 수송선 100척이 더해진 대규모 함대였다.

    당장 금강급 군선은 5척의 인원만 하더라도 3,500명에 한화선과 수송선에 타고 있는 군사도 3만이 넘었다.

    "대체 무슨 배가 이리 크다는 말입니까?"

    "뭐 그래도 큰 만큼 병사도 많이 타고 나름대로 대국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소?"

    이미 연방은 대국이지만, 그간 사용하던 군선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큰 배에서 지휘를 내리고 있자니 정말 연방이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는 하오만…… 음. 이 배를 서토의 오랑캐들이 어떻게 볼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소장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중원에도 이만한 배는 없을 것입니다."

    크기로만 따지면 비슷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화포를 장착한 배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중국은 육전에서 화포전을 치르지도 않고 있으니 배라고 다를까.

    상귀와 효봉, 명길이 기분 좋게 흥얼거리고 있는데. 항해사를 맡던 병사 하나가 달려왔다.

    "총사! 저 멀리 수상한 함대가 있습니다!"

    상귀가 직접 보아하니 왜소하게 생긴 것이 왜구들로 파악된다.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던데. 그래서 왜구가 된 것인가.

    설마하니 아직 저 정도 규모의 왜선이 있을 줄이야.

    마침 잘 됐다. 이럴 때를 대비한 배가 금강급 군선이 아닌가. 그 힘을 직접 실전으로 증명할 때가 된 것이다.

    "왜선이라면 다 부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어디 한번 실험해 봅시다."

    "괜찮습니까? 배가 이러니 거리는 그렇다 쳐도 맞출 수 있을지 셈이 되지 않소이다. 차라리 다른 배로 날리는 것이……."

    확실히 배가 크기는 커도 잘 못 맞추면 안 쏜 것만 못하다.

    "이미 다 계산은 해뒀으니 문제될 것은 없소 못할 것이 무엇이겠소? 이 거리라면 충분히 맞출 것이오. 방포하라!"

    퍼버벙!

    금강급 군선의 측면 포문이 열리며 그대로 왜선들을 향해 포탄이 날았다.

    포탄에 맞은 왜선들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저 보시오 한 번에 박살 나지. 크하하핫!"

    "오히려 더 쉽게 박살이 나는 느낌이오만. 저 도망가는 꼴이 너무 우습소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대만도로 향하는 길이 문제였다.

    한참 항해를 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또 다른 함대가 수군을 막은 것이다.

    장수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함대가 정말 왜구의 것인가?

    "이거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소이까?"

    "확실하오. 이미 각하께서도 따로 상선을 보내 알아보신 바 있소이다. 그러니 이대로 가면 될 것이오."

    이미 그 상선 출신 항해사도 있다. 그러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럼 대체 저건 무엇이오? 대체 저 많은 배들은?"

    "글쎄. 무엇인지 모르겠구려."

    아무래도 격침된 왜구의 보복일 것이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연방에 도전하려 한다.

    그냥 조용히 있을 것이지 굳이 와서 매를 번다. 그렇다면 봐줄 이유가 없다.

    심지어 진형을 짜고 마치 연방의 함대를 감싸는 것처럼 천천히 섬진을 한다.

    웃길 노릇이 아닌가. 고작 왜구 따위가 저럴 수 있다는 말인가? 꽤 흉내를 내려는 모양이지만 틀렸다.

    ‘내가 수전만 몇 년인데!’

    바다에서 얼마나 싸웠는지 모르겠다. 그런 마당에 좋은 배까지 있는데, 고작해야 왜구들이 대수일까.

    "일단 보복하러 나온 것 같으니 잡아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그럽시다."

    "방포하라! 감히 연방에 대항하는 저 썩을 것들을 모조리 수장시켜라!"

    다시 금강급 군선의 측면 함포가 방포되었다.

    퍼엉! 퍼벙! 퍼엉!

    포문이 문을 열고 포격을 날리자 왜구 함대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처음에는 가까이 붙으려고 달려들던 함대들마저 박살이 나자 후열에 있는 함선들은 물러났다.

    왜구치고는 상당히 잘 물러났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던 명길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 더 늘어난 것 같지 않소이까?"

    "그러게 말이오. 대체 몇 번이나 오는 건지 모르겠소이다."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번씩이나 오고 있지 않나.

    비록 두 번이라고 해도 그 병력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저게 왜선은 맞소이까?"

    "생긴 것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연방에 저항할 놈들은 왜선들 말고 더 있겠소?"

    그렇기는 한데, 명길은 좀 찝찝했다.

    "이거 큰일이오. 대만도에 갔다가 원주민들과 전투를 치르게 되었을 때 포를 못 쓰면 어찌 되겠소?"

    "원주민들을 상대로 설마 우리가 지겠소?"

    그래. 원주민들에게 질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닌가. 만일에 대만도를 취하고 있는데 저 왜구들이 쳐들어오면?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인데, 원주민은 그렇다 하더라도 저놈들이 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소?"

    "화포가 있는 배만 백여 척인데, 당장은 괜찮지 않겠소?"

    괜히 자신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방심도, 자만도 아니다. 이런 병력을 끌고 왜구를 상대로 지려야 질 수가 없다.

    설령 중원에서 몰려온다고 한들 이만한 함대를 물리칠 함대를 가지고 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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