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29화 (129/154)

129. 연방 개혁

장관들은 외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뭐하러 걱정하나. 이미 연방은 중원의 어느 누구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데.

"어차피 누가 감히 우리를 침공하겠나?"

"그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진나라도 솔직히 석중귀가 우리에게 강경하게 군다고 해서 뭐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놈들 덕에 연방이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으니까. 놈들에게는 결국 중원통일이 대업이 될 것이다.

"법도 새로 만들지. 고려와 백제의 법이 일치하지 않아 연방은 지금 중원의 법을 입맛에 따라 바꿔쓰고 있으니까."

심지어 알아보니 지방에서는 각 마을의 풍습 같은 것과 법이 맞지 법이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참에 전부 뜯어고치자.

"아예 새롭게 제정하는 거로군요."

"나라가 이제 안정되었으니 추진해야 할 일이지."

"중원의 것들을 참고하여 우리의 것을 새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참에 새로운 부서인 법무부라는 것도 만들었다.

우선 진나라의 석경당에게 서신을 보내 중원 각지의 법에 관한 기록들을 보내라 하였다.

그리고 서역의 상인들에게도 그들 나라의 법에 관한 서적들을 가져오게 했다.

중국의 것과 달리 서역의 것은 일찍 구할 수 있었다.

직접 보니 정말로 다양하다.

다만 글씨를 하나도 모르겠다.

"흐음, 문건이 다양하군. 번역이 가능한가?"

법무부에 이 일을 맡기기로 했으니, 이왕이면 잘 좀 했으면 좋겠다.

"서역의 상인들이 있으니 번역을 해보겠습니다."

"이런 거까지는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귀찮은 것은 질색이다. 나도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좀 쉬고 싶다.

"오히려 각하께서 만지시면 전쟁에 관한 법이 늘어날까 걱정되니, 이것은 법부에서 알아서 하겠나이다."

"그래. 그렇게 하시게."

전쟁에 관한 법은 만들 생각이 없는데, 정 그리 말한다면 할 수 없지.

* * *

전국의 승려들이 대장경 목판을 만들고 있을 때, 마침내 다울라가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배는 상인들이 드나드는 나주나 벽란도가 아니라 아예 압록강 쪽에서 만들게 했는데 어마어마한 것이 만들어졌다.

"와, 이 새끼는 맘껏 만들라고 했더니 진짜 엄청난 걸 만들었네. 어쩐지 예산이 쭉쭉 빠진다 했더니 아주."

진짜 무식하게 거대한 것이 만들어졌다.

기본적으로 동양에서는 16세기까지도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돛이 달렸다.

측면에는 함포가 달려있는 것이, 진짜 단순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군선과는 차이점이 있었다.

일단 포도 엄청 실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저거 한 척이면 최소 5척에 들어갈 병력수가 노꾼으로 쓰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습니까?"

"아주 그냥…… 와 씨. 이래서야 수군 선단이 되겠냐. 그냥 이런 거 몇 척 끌고 다니면 그걸로 끝나겠는데."

차라리 큰 거 몇 척 끌고 다니는 것이 낫나?

저 안에 대체 몇 명을 집어넣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수나라 양제도 거대한 배를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저것도 그 정도는 되지 않나?

"만족스럽다는 것이로군요."

"내 말은 제대로 들은 거냐?"

아니, 그래. 만족스럽기는 하지. 그런데 저건 뭐 좋다 싫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중원은 아직 우리처럼 배에 화포를 실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중에라도 화포를 실은 배들이 생긴다면, 덩치 커다란 이 배는 샌드백이 되지 않을까.

그만큼 먼저 쏴서 잡으면 된다고 해도.

"이것이 다 각하께서 주신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겁니다. 딱히 제가 건드릴 것이 없더군요. 지휘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뭐?"

그래서 저 무식하게 큰 것이 만들어졌다고?

"유럽의 범선 비슷한 것이 만들어지기는 했는데, 제대로 굴러갈까?"

"군용입니다."

생긴 건 그럴듯한데 말이다.

저 한 척으로도 괜찮으려나? 너무 무식하게 크다. 뭐 중원 놈들이 보고 놀랄 거 같기는 하다. 저기다가 화포 넣고 쏘아대면 지옥일 거 같으니.

"그럼 대만에 보내버리면 되겠군. 일단 저것으로 멀리 나아갈 수는 있나?"

"예, 각하. 원정도 가능합니다. 이미 격군과 함께 화포들을 실어 한번 실험해 봤습니다. 측면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항해속도도 느리지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기는 한데. 그만큼 튼튼하려나?

"일이 참 빠르군."

"이 정도는 해야지요."

그래도 설계도만 보여줬을 뿐인데 나름 열심히 만든 거 같다.

"그럼 인원은 얼마나 탈 수 있나?"

"700여 명입니다."

측면 포문도 10개나 되는 것 같은데. 저거 뭐 이리 많이 수용해?

"흐음, 그런데 저 노는 왜 저리 큰가?"

"쉽게 진격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입니다. 저런 노라면 비숙련자도 쉬이 배를 저어 항해할 수 있지요."

그래?

"좋아. 그건 되었다. 그럼 상귀를 불러야겠군."

상귀에게는 숨기고 있던 것이다.

나는 상귀를 불러서 저 거대한 배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이에 맞지 않게 상귀가 두 눈에 불을 켜는 것이 마치 어린 애한테 장난감을 쥐여준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아니, 대체 뭐 이리 큽니까? 이거라면 그냥……!"

직접 본 상귀는 입맛을 다셨다.

"자네도 감탄이 나오는군."

"아니 그렇겠습니까?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그 나이 먹고 펄쩍펄쩍 뛰는 꼴을 보니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 것 같다.

"마음에 드나?"

"예, 각하. 아주 마음에 듭니다. 기존의 병력의 배 이상을 태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배? 세 배는 태울 거 같다. 최소.

노꾼도 그럴 거 같고, 저만한 크기면 뭐. 잘 만한 공간도 있지 않을까.

"다만 내려가는 것이 복잡하겠군."

"그거야 목재 계단이나 사다리를 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거 훈련도 해야겠다. 저게 워낙 커야지.

"소장 상귀, 저 거대한 선박과 군선들을 이끌고 대만도로 가고자 합니다."

저걸로 대만도라. 설마 중간에 침몰하는 것은 아니겠지.

"저 선박의 이름을 뭐라 짓지?"

"금강선이 어떻겠습니까?"

"금강선이라, 나쁘지 않네. 설마 내 이름에서 딴 것인가?"

아무리 봐도 내 이름이지 않아?

"예, 각하. 각하의 이름처럼 단단하라는 뜻입니다."

"확실히 샌드백 될 거라면 단단한 것이 좋기야 하겠어."

그런데 나중에 막 금강이 완파했다, 침몰했다, 이런 소리 들으면 엿 같기는 할 것 같다. 이게 다 얼마짜리인가.

"이런 걸 몇 척 만들 수 있나?"

"5척은 되지 않겠습니까? 더 지원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흠. 대장경 만드는 중이라 무린데."

도로정비도 마무리는 남았고, 대장경은 나무를 갈아 넣고 있다.

뭐 지금 당장 늘릴 필요가 있나? 저렇게 무식하게 큰 게 많으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나. 적당한 것도 좀 있어야지.

"5척이라. 이런 게 5척이면 어마어마하군. 상귀 장군, 그 5척을 주면 할 수 있겠나?"

"예! 각하!"

그렇다면야 또 내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일단 5척을 건조해 항해 실험을 해보고 늘려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금강급 군선은 5척.

"탑승 인원이 700명에 포문이 10개라면 측면에서 총 50문의 포탄을 날릴 수 있다는 건가."

총 2,100명. 노잡이들만 제외해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거 제대로 된 항만을 갖추지 못하면 곤란하겠다.

일단 부산진에서 건조를 하기는 했는데, 삼한의 수군 기지에서는 이런 배들을 정박하기가 어렵다.

매번 저 요동 쪽이나 이곳에 둘 수는 없고, 구주에도 이런 걸 설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 배라면 반드시 바다를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래. 이런 배라면 그렇겠지. 오히려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닐까?

이렇게 비싼 걸 만들어줬으니, 그에 걸맞는 결과가 나와야 할 것이다.

"대만도를 내게 바치도록. 그리하면 내 저런 배 1척을 따로 만들어 장군에게 내어주도록 하지."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어린 애가 장난감 받고 말 잘 듣겠다고 하는 것 같다.

대만도를 제대로 점령만 하면 상관없겠지.

상귀에게는 일단 나주진에서 배를 끌고 상륙 훈련이나 포격전을 준비하라 일렀다.

그리고 함께 배를 봤던 장관들은 상귀 앞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평양으로 돌아오니 경악스러워하였다.

"배가 참으로 큽니다. 움직이기는 합니까?"

"움직이기야 하지."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속도가 느리지는 않았다.

"음, 인원이 많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렇다네. 700명 정도? 무리하면 더 들어가지 않을까?"

"많이도 들어갑니다."

"10척이면 7천 명 아닙니까?"

막상 직접 들으니 이 배들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 법도 하다.

"그렇네."

"어마어마하군요."

그래. 100척이면 7만 명에 달한다.

아마, 인원수도 어마어마하겠지.

"그럼 격군들은 전부 거란놈들로 하지. 할 수 있나?"

"예. 인원은 충분하니 가능할 것입니다."

"음 그러면 됐지. 남은 놈들 밥만 채우는데. 그렇게 격군으로라도 써먹어야지."

거란족들이 많기는 엄청 많으니까 그 정도는 써먹어야 한다.

서양 역시 예전에는 비스켓 하나로 근근이 때우는 노예들이 격군 일을 도맡아 했다 알고 있다.

"대장경 목판은 어떤가?"

"차질없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승려들이 솔선수범 나서서 목판을 깎고, 백성들은 목판을 만들어내고."

그럼 다행이다.

팔만대장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법무부에서는 법은 제정하고 있는 건가?"

"예, 각하. 법을 새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고려와 백제의 황제는 백성의 구심점이 되는 상징이며, 권력은 백성에게 나온다는 것을 반드시 확실히 해야 하네."

그렇게 해야 천천히 입헌군주제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육을 배운 백성들이 점차 관직에 진출하겠지.

"그리하겠습니다."

"각하."

"말씀하세요, 상좌평."

이제 막 회의를 끝내려는 찰나. 최승우가 나를 불렀다.

"이참에 신분제를 철폐하심이 어떠십니까?"

뭘 꺼내나 했더니 신분제인가.

신분제 철폐라. 말만 나왔지 아직 실현을 하지 않았다.

그냥 호족들을 두들겨 잡아 최대한 이권을 뜯어먹은 것이 전부였다.

"아니 상좌평, 그게 어인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노비들은 어떻게 하자는 건지."

"당장 노비들을 면천시키면 우리는 어찌합니까."

이것들은 가만히 보니 불쌍할 것도 없다. 노비제 폐지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나라 안에 인재가 너무 부족하다. 당장 관흔만 해도 문무에 맞춰 장관직을 겸하고 있고, 법무부 놈들은 백제의 조정좌평이 법무부를 맡았으며, 그 밑으로 고려의 예부에 속한 관리들을 두어 급조한 것이다.

기존의 인사들만 모아둔 상황.

그렇다고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음, 글쎄. 멀리 보면 결코 나쁜 제안은 아니지 않나? 능력을 가졌으나 천하게 태어나는 바람에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자들도 있네."

그건 좀 불쌍하지 않은가.

신분이라는 벽에 막혀 인재로서 나라에 힘을 보태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대부분은 그냥 노비로서 주인을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일리가 있다. 국난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병사와 장수들은 많지만 정작 나라를 굴리는 것은 나나 나이가 많은 경들뿐이지."

연방은 군사력은 높은데 결과적으로는 지식인들이 적다.

요나라에 보낸 놈들도 야율배한테 다 죽어버렸고.

"그렇다면……."

"설마 아무런 경험 없는 경들의 자식들에게 세습을 시키자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무능한 짓은 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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