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23화 (123/154)

123. 야율배와 유지원

상좌평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은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낙양의 병력도 꽤 되는 것 같으니까.

문제는 야율배다.

그 미친놈이 기어이 죽을 길을 알아서 들어간다.

어차피 올라와도 잡아 죽일 생각이었으나, 이 정도라면 선처할 이유가 없다.

갑자기 급발진한 대가가 얼마나 처참한지 스스로 느끼게 해줘야지.

"결국 그놈이 자기 죽을 자리를 찾는구나. 제 백성들을 죽이는 황제라니. 그렇다면 그놈도 죽어야지."

"유지원이라는 자가 야율배를 선동한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야율배는 그럴 깡이 없을 것이다.

그놈도 인간이니 야망은 있기야 있지. 하지만 스스로 뭔가 할 놈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진작에 뭔가 일이 터졌겠지.

유지원 그놈이 야율배를 선동한 것이다.

"그렇겠지. 유지원 이놈은 야율배가 있어야 할 테니."

원 역사에서 유지원은 독립해서 한나라를 세우는 인물이다.

원 역사에서도 지원군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 역사가 바뀌면서 유지원의 세력도 지원군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것이 아닐까.

"각하! 명을 내려주십시오!"

"지금부터 임황부를 넘는다. 거란족이란 거란족은 모조리 잡아들여라."

"죽이실 겁니까?"

음, 상좌평이 걱정이 많구나.

근절시킬 생각이기는 한데, 조금 생각을 달리해야지.

"죽이기는요? 포로로 써야지요. 거란족들은 전부 저 열도와 마한 끝에서 만주까지 전부 길을 연결할 것입니다."

이것이 내 결론이다. 거란족들을 도로공사에 투입한다.

"오, 그럴듯합니다. 그리하면 백성들도 안심할 것입니다."

"인구를 생각해도 그렇지요. 죽이는 것보다 훨 나을 것입니다."

장수들도 그럴듯하다며 수긍했다.

아마 군사들이 도로정비나 하던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장관들이 군사들을 도로정비에 더 밀어붙인 모양인데 내가 장수라도 못마땅할 것이다.

"음, 각하. 이것을 보시옵소서."

최승우가 내게 종이를 들이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곳에 있던 백제인들이 제게 준 것입니다. 어쩌면 성을 쉽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최승우가 준 것은 임황부의 성을 그린 것이다.

성 내부의 구조며 어디를 공격해야 효과적으로 뚫을 수 있는지 등. 그런 것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임황부를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황제가 빠진 임황부는 별 볼일이 없었다.

임황부를 지키는 병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연방이 가진 압도적인 화력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백제인들이 임황부에서 거란을 돕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참. 연방의 백제인들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네. 설마하니 함락당하기 쉽게 성을 증축하다니요."

최숭우가 넘겨준 것은 정말 단순한 성의 구조가 아니었다.

거란의 임황부에 왕자의 난이 끝나고 야율배가 황위에 오를 무렵, 백제인들은 성이 증축했다.

그들은 이런 날을 대비해 성안에 잠입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마련해뒀으며, 당연히 임황부는 쉽게 뚫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 함락은 손바닥 뒤집듯 쉬웠다.

거란의 고관대작들이 잡히면서 아직 죽지 않은 술율평도 만날 수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술율평 오랜만에 보는구나.

"네 이놈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쳐들어오는 것이냐!"

이거 말을 이상하게 하시네. 당연히 우리 백성들을 죽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전쟁 명분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쳐들어오다니요? 애당초 남의 백성들을 잡아 죽였으면 각오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심지어 야율배는 우리 제후국인 진을 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최후통첩을 했음에도 무시하였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하오."

"이 못된 놈 같으니. 기어이 우리 거란을 멸망시키려고 하는구나!"

그걸 이제 알았냐. 오늘부로 요 제국은 없을 것이다.

역사에도 그냥 거란족이 잠깐 나라를 일으켰다가 무너졌다. 이 정도로만 기억될 것이다.

"이야, 이거 참. 사람을 뭐로 보고.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댁 아드님입니다."

"뭐라고?"

"그러게 아들을 막았어야지. 어찌 거란 따위가 감히 연방을 거스릅니까??"

땅만 넓지 인구는 연방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국가가?

"거란 따위라니!"

"잘 들으시오, 술율평. 거란은 오랑캐답게 북방에서 찌그러져 있었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황제를 칭한 것도 봐주고 있었는데, 어디 감히 거란 따위가 내 뒤통수를 칩니까?"

다른 건 다 참는데 뒤통수는 못 참지. 암.

심지어 원 역사에 발해를 멸망시키는 거란이다.

이놈들은 이미 내 눈에 딱 찍혔다 이 말이다.

"그래서 백성들을 어찌할 것이냐?"

"당연히 공사에 써먹어야지요. 요즘 도로정비 사업에 재미 들려서 말입니다."

"도, 도로정비?"

그런 건 원래 사람이 많이 필요하거든.

"예. 거란족들은 노예처럼 다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고된 노역 속에서 하나둘 쓰러지겠죠."

"대체 우리 거란과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억하심정이라니. 입 아프게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우리 밑에서 우리가 주는 콩고물이나 먹고 살던 놈들이 감히 건방지게도 뒤통수를 치는데?"

뒤통수치는 놈들에게는 오로지 채찍질만이 있을 뿐.

"우리보고 평생 네놈들 밑에서 살란 말이냐?"

"송충이는 주제에 맞게 살아야지."

원 역사에서도 발해멸망만이 아니라 여요전쟁을 3차까지 일으키고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분쟁이 있었다.

이후에 몽골 시절까지 넘어가면 대요수국이라고 해서 거란 유민들이 고려 땅에 들어와 멋대로 나라를 세우고 항거하니 귀찮기 짝이 없다.

"네 이노오옴! 어찌할 것이냐. 우리 거란족들을 어찌할 것이야!"

"주제를 모르고 감히 우리에게 반항한 죄. 거란족 전체가 노예가 될 것입니다. 여봐라! 요나라의 가장 큰 어른이시다! 포박하여 평양까지 끌고 갈 것이다!"

상경 임황부의 함락. 나는 임황부 내에 있는 백성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았다.

"이 임황부는 어찌할까요?"

"파괴해야죠. 멸망한 나라의 수도를 굳이 멀쩡하게 남겨둘 이유가 없습니다."

"싹 다 약탈해야합니다!"

거란족을 죄 끌고 나오자 장수들이 임황부를 처리하고 싶은 모양이다!

"솔직히 파괴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조금 아깝지?

"남겨두고 후일 교역 도시로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

때마침 애술이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했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 거란족과 한족들을 분류해야 할 것이다."

"한족들은 살려주시는 겁니까?"

한족들? 내가 처리하기 귀찮을 뿐. 이놈들은 석경당에게 맡길 생각이다.

어쨌든 요나라에 있는 한족들은 중원의 난을 피해서 올라온 무리들이니까.

"그놈들은 석경당에 보내어 중원을 배신하고 거란에 들러붙은 죗값을 똑똑히 치르게 할 것이다."

"황궁은 어찌할까요?"

황궁? 오랑캐가 쓰기에는 너무 크지 않나?

이런 건 싹 다 불태워야지. 황궁이 불타야 비로소 그 나라가 멸망했다고 볼 수 있다.

"오랑캐 주제에 황궁이 너무 화려하다. 전부 불태우고 진귀해 보이는 것은 연방으로 가지고 간다."

"예!"

"기병 5만을 풀어 거란족의 땅 각지를 정복하라. 야율배가 돌아올 때까지는 장악해야 한다."

연방이 요동에 이어 저 드넓은 초원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 * *

낙양성 연합군 진영.

유지원과 야율배의 연합군은 낙양성을 쉽게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낙양성에 남아있는 연방군의 무기탓이었다.

무기를 사용하는 숙련도는 한참 떨어지지만 그래도 연합군의 수가 많은 만큼 명중률이 떨어져도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그 탓에 야율배는 점점 초조해졌다.

"젠장. 낙양놈들이 정말 잘도 버티는구나!"

어차피 유지원의 군대가 고기 방패가 되어주고 있으니 군사들의 피해는 적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놈들의 저항이 확실히 줄은 것이 연방이 넘긴 신무기가 다 떨어진 모양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각지에서 병력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계속 지원군을 끊어내고는 있는데. 얼마 전까지 가만히 관망만 하던 성들도 지원군을 내어 끝없이 낙양의 연합군을 공격하니 귀찮아도 너무 귀찮았다.

"폐하! 폐하!"

"무슨 일이냐?"

안 그래도 낙양성 공략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본국에서 급변이 일어났습니다! 임황부가 연방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불길이 치솟고 있다 합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게 사실인가?"

"저항하는 우리 백성들은 전부 목이 베였고, 살아남은 백성들은 그대로 연방에 끌려갔다 합니다!"

"이, 이놈들이!"

설마 정말로 그리했다는 말인가?

아니, 성이 그렇게 쉽게 넘어갔다고? 그래도 임황부에 수만의 병력이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그리 쉽게 넘어갔나.

"연방이 5만의 기병을 풀어 우리 요의 각지를 점령해가고 있습니다. 폐하! 회군하셔야 합니다!"

"폐하, 이미 늦었습니다. 차라리 낙양을 점령하여 훗날을 기약하셔야 합니다."

유지원의 말이 맞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낙양을 점령하고 유지원이 천명을 이어 그 군사를 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유지원을 믿을 수 있을까.

황제가 된 이후에 이놈이 자신을 도울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

‘안 된다. 차라리 올라가서 연방의 뒤를 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연운에서 연방군 3만이 진나라군과 연합하여 낙양성으로 진군하고 있다 합니다!"

연이어 안 좋은 소식만 들어온다.

"젠장!"

이렇게 되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연운의 연방군까지 상대할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빠져야 한다. 어서 회군하여 연방군의 창칼에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수를 써야 한다.

유지원과의 연합은 여기까지다. 괜히 유지원의 혓바닥에 낚여 이 난리가 났다.

"폐하, 마음을 굳게 다잡으셔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다잡기는 무슨.

"이보게 하동절도사. 오늘 안에 끝을 내지."

"예?"

"보아하니 지금 놈들도 병력이 얼마 없어. 이 성은 지켜야 하는 관문이 많지만 이제 놈들도 그 힘이 다했지."

확실히 낙양성의 저항은 너무 형편없어졌다.

게다가 저항하는 군사의 수도 크게 줄었다.

한두 번 맹공을 가하면 쉽게 떨어질 것이다.

"한 번에 들이치자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하세. 대신 낙양을 점령하고 곧바로 임황부를 구원해야 할 것이야."

"예."

그리하면 유지원이 진의 천명을 쥐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흥. 낙양만 점령하면 너희들은 더는 볼 이유가 없지.’

유지원은 낙양만 점령한 다음에는 군사를 수습해서 요나라군을 몰아낼 생각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그냥 지원하는 척, 연방과 양패구상을 노려도 될 것이다.

하지만 유지원의 그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밤중에 야율배는 따로 장수들을 소집했다.

"우리는 곧바로 이곳에서 퇴각한다."

"낙양을 점령하지 않는 겁니까?"

낙양점령? 점령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황부도 점령당하고 본국이 바람 앞의 등불인 상황이 아닌가.

이런 마당에 낙양을 먹고 중원의 황제가 되는 것이면 모를까. 유지원에게 그대로 넘겨야 한다면 너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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