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남부 아이누에 사람을 보내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할까?
지도상으로 볼 때 남부에 우리 군대가 합류하기는 늦지 않았을까. 최소한 북부로 다시 올라가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전략을 바꾼다던가.
"맞습니다. 저런 건방진 놈들과 협상이라뇨. 안 될 말씀입니다. 차라리 한바탕 붙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상귀가 무서운 소리를 잘도 한다.
말했듯이 연방은 나름대로 대의가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천황을 죽게 내버려 두자는 말인가?"
나도 생각 같아선 저놈들 쓸어버리고 싶다.
설마 이렇게 귀찮아질 줄 누가 알았을까.
"각하께는 송구하오나 차라리 강한 무기의 위력을 보여 천황이 죽으면 너희들도 무사치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너무 가능성의 문제야."
그러다 정말로 애들이 돌아서 천황을 죽일 수도 있다 이 말이다.
"각하, 이 상좌평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상좌평, 좋은 안이라도 있습니까?"
이럴 때는 상좌평이 늘 도움이 되었다.
"화약이 일찍이 중원에서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무기로 사용한 것은 우리 백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저들은 화약이라는 존재에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섬에만 살던 작자들이니까. 당장 일본 놈들만 하더라도 모르고 있었는데, 아이누족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말인즉……."
"우리의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화포를 쏘아대면 원주민들이 감히 우리를 의심하겠습니까?"
"아."
그거 꽤 좋은 방법이다. 원주민들은 우리 공격이라고 생각지도 못할 테니, 아주 놀라 뒤집어질 것이다.
아니, 대충 뭐 눈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가 없고, 공격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다. 쇠 포탄 같은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 소리다.
아이누족에게는 천벌이나 다름이 없겠지.
그리고 이게 다 천황을 가둔 탓이라고 선동한다면?
"포격으로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다 보면 저놈들은 제풀에 모두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확실히 그건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그걸 쏠 만한 위치 선점이 아닐까.
이곳 북해도는 어디에 아이누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만일에 위치를 선점했는데 아이누족과 만나는 지점이라면 별로 좋은 선택은 되지 못한다.
그때 장내 한구석에서 가만히 우리 눈치를 보던 한 인물이 손을 들었다.
"저,."
음, 마사오다. 마사오가 감히 총리와 신하들의 대화 흐름을 깨버리고 손을 든 것이다.
"뭐냐, 야만족 놈."
"아니, 상귀 장군. 마사오랑 원주민은 구분하게. 마사오는 통역만 한 거라니까."
마사오는 생긴 것이 아이누 비슷해도 가까운 곳에 사는 일본인일 뿐이다. 마사오가 있기에 그나마 이 정도 통역이 가능한 것이다.
"아, 네. 워낙 그놈들이랑 비슷하게 생겨 저도 모르게 실수를……. 커흠, 미안하네. 워낙 흥분을 하는 체질이라 말이야."
상귀는 어지간히도 아이누족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래. 할 말이 있는가? 어디 허심탄회하게 말을 해보게."
마사오 같은 인간이 나름 열일한다 이 말이다.
비록 신분은 우리보다 한참 밑이어도, 혹시 아는가? 통역으로 저놈이 대박을 터트릴지?
물론 아이누족과 단순한 대화만 나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겠지만.
"실은 꽤 길이 복잡하여 돌아오면서 빙빙 돌았습니다. 그래서 대포를 쓸 만한 지형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쩐지 그래서 오래 걸렸던 것인가.
생각보다 마사오가 느리기는 했다. 단순히 북해도가 넓은 탓이라고만 여겼기 때문이다.
"호오, 정말로?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제가 조금 기억력이 좋아서……."
"음. 마음에 든다. 내 그대를 믿고 있으니, 포병대를 적당한 곳에 포진시키도록. 아니, 나도 함께 가지."
들키지만 않으면 마음껏 쏴대도 되겠지.
만일에 뜻대로 안 되어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막가자는 거다. 나도 더는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네, 넵."
"이번 일만 잘하면 백제 중경이나 평양에서 살도록 해주마."
"화, 황공할 따름입니다. 각하!"
마사오가 허리를 깊게 숙여 내게 감사 인사를 열심히 해댔다.
뭐 황공씩이나. 사람 한 명 머물게 해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이제 이 지겨운 것도 끝날 때가 되었다.
북부 아이누족이 있는 곳은 21세기 일본의 왓카나이시 정도로 추정된다.
감이 그렇다. 내가 뭐 오랫동안 북해도를 밟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사오의 말로 보아 굽어진 곳이 어째 지도에 적혀 있는 왓카나이시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남쪽에 떨어져 있는 숲이 있었다.
"정말 멀기도 멀구만. 이곳인가?"
잘도 여기까지 들키지 않고 왔다. 마사오 이놈 상당히 능력자가 아닌가.
위치 선정 하나는 기가 막힌다.
안 그래도 쓸데없이 먼 사정거리의 대포를 어떻게 쓰나 했는데.
"예 각하! 하온데 좀 먼데 괜찮으신지요?"
"됐다. ‘매포’ 준비."
‘매포’. 기존의 화포 중 지금 주력이 되는 화포의 하나로 조선의 천자총통과 비슷한 포지션이라 보면 간단하다.
화약이 많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북부 놈들을 엿먹일 수 있으리라. 고작해야 원주민들한테는 날벼락이겠지.
"애술 장군, 오차는 얼마나 될 거 같나? 본래 포병대를 맡진 않았더라도 대충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 아닌가?"
"예, 각하. 아마 여기서 쏘아대면 아이누족이 오줌을 지리겠지만, 거리를 볼 때 사상자는 적을 것입니다."
그럼 놈들의 터전 어딘가에 있을 천황에게 닿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
"방포하라! 전부 쏟아부어!"
퍼엉! 콰앙!
매포가 불을 뿜었다.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북부 아이누 놈들을 향해 떨어졌다.
포탄이 떨어지자 아이누족들이 놀라서 우왕좌왕하는 꼴이 보기 좋았다.
혼란 속에 아이누족의 터전으로 잠입하자, 아이누족들이 우리를 적으로 인식하지도 못했다.
"끄아악!"
그나마 가끔 포탄 때문에 놀라는 놈이 있는 정도였다.
"꽤 혼란스럽구나. 효봉 장군이 좀 놈들의 시선을 끌어주게."
"예, 각하!"
이대로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 천황을 구하겠다.
그런데 감옥도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애초에 풀어줄 목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나무로 만든 감옥에 보기 좋게 천황이 갇혀있었다.
"참 어리석게도…… 천황을 이리 가까운 곳에 숨겨두다니, 제정신인가?"
생각보다 안쪽이 아니라 구석에 둬서 우리가 침투하기 딱 좋았다.
잘만 이용하면 군사 수십으로도 천황을 빼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다히라는 당해버린 건가.
뭐 아무튼 왔으니 다 구하는 것이 좋겠지.
"너희들은 누구냐!"
인질들 지키겠다고 아이누족 십여 명이 우리를 막아섰다.
이거 웃기는 친구들이다. 그나마 가만히 도망이라도 쳤으면 아픈 꼴은 안 봤을 텐데.
"뭐라는 거야, 멍청이들이. 그냥 가만히 도망치면 좋았을 텐데."
"놈들을 죽여라!"
꼴에 인질들을 빼앗길 수는 없다 여긴 건지 나를 향해 돌격해오는 모습이 흡사 불나방과도 같다.
"각하! 이곳은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각하께서는……."
"아니. 내가 한 번 기선제압을 하는 편이 형편에 좋을 것이다. 너희들은 인질들을 구하라. 저 건방진 놈들에게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겠다."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그래도 내 말을 듣겠다고 천황이 갇힌 조잡한 나무 감옥으로 병사들이 간 사이 나는 아이누족들과 대치했다.
"이놈들아, 내가 바로 연방의 금강이다!"
우리 백제의 무기와 비교하면 한참 질 떨어지는 무기로 달려드는 아이누족들에게 맨몸으로 부딪쳤다.
창과 칼날이 내 주먹과 부딪쳐 부서졌다.
아이누족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왜 안 통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무슨 이런 놈이!"
"다, 다들 도망쳐! 저건 상대하지 못해!"
아이누의 세력권이 포탄으로 여기저기 박살 난 탓인지 아이누족들은 굳이 내게 죽기 살기로 덤비지 않았다.
"어휴, 멍청이들. 저렇게 도망칠 거면 뭐하러 폼 잡았대?"
도망가는 놈들을 보자니 뭐 저런 엑스트라가 다 있나 싶었다.
"각하. 천황 폐하와 후지와라 공을 구출하였습니다."
"일단 여기 묶여있으면 안 되겠지. 얼른 퇴각한다! 놈들이 추격해올지도 모르니 화약은 전부 터트릴 것이다."
"예."
퇴로를 뚫는 중에 호위를 받던 천황과 다다히라가 나와 합류했다.
"사위, 참으로 고맙네."
"사위로서 장인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보다 다다히라 공. 공은 내게 할 말이 없습니까?"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공이 섣부르게 행동한 탓에 우리 병사들이 많이 죽었고, 내가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면 그 목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군사 수십이 죽었다. 본래 죽을 일도 아닌 전투에서 죽었다 이 말이다. 나는 다다히라라는 인물을 이번에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사위, 그것은 후지와라의 잘못이 아니네!"
"피 같은 군사들을 죽게 만든 죄가 잘못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것은……."
여기서 더 편하게 봐줬다가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몇 번이고 있을 것이다.
"더는 아무 말 하지 마십시오. 제아무리 말단 병사들이라 하나 병사들도 다 같은 생명이오. 어찌 다다히라 공은 본인만 생각한다는 말씀이시오? 내 오늘 일은 연방정부의 총리부에서 장관들과 깊이 의논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화포의 지원이 있는 데다가 놈들과 달리 훈련이 잘되어있던 연방군은 아이누족들을 격퇴하고 서쪽에 마련한 진까지 성공적으로 도망쳤다.
천황을 구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저 두 세력을 어찌 요리하는지겠지.
* * *
천황 구출 후, 나는 장수들을 소집했다.
"남부 원주민들은 어떻게 합니까?"
남부 원주민들은 단독으로 공격하게 만들어야 한다. 천황도 구한 시점에서 굳이 우리가 피를 볼 이유는 없다.
"우리 군사가 합류했나?"
"아직입니다. 각하의 명령을 받고 잠시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합류하지 않았다는 것은 길을 잃은 거 같다.
하기야, 지도를 준다고 마냥 믿을 수는 없겠지.
"그럼 다행이로군. 남부 원주민들에게 가 설명하게. 지금 당장 우리가 어쩔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말이야."
"우리를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자기들이 원망해서 어쩌려고. 놈들이 우리를 원망할 권리는 있고?
다 떠나서 우리가 물자를 지원한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당장 우리 무기만 사용해도 북부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도 못 한다면 그때는 나가 죽어야지 뭐.
"대신 우리가 먼저 대군을 동원하여 쳤다고 하게. 그럼 토벌할 수 있을 테지."
"예, 각하."
애초에 북부에 비하면 남부는 한참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남부의 아이누와 합류할 바에는 그냥 돌아가고 만다.
"우리가 정박한 곳에 진을 설치하고 수군과 육군을 주둔시킬 것이다."
어차피 남부와 북부는 어쩌지 못한다.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게 될 테니까.
아마 남쪽으로 승리가 더 기울게 되겠지만, 둘 다 정확한 세력을 알지 못한다.
일단 선박까지 잠시 물러나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각하, 다다히라 공은 어떻게 처결할 것입니까?"
"처결이랄 것까지 있나."
사실 생각한 것도 없다. 막상 생각해보니 어떻게 벌을 내려야 할까 고민이 많다.
애초에 잡아먹은 것이 병사 수십이다. 물론 패전의 책임은 분명히 말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의외로 포탄에 죽은 아이누족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다.
그래도 버릇이 들면 곤란한 법이지.
"한 번 자비를 보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최승우는 선처를 바라고 있으나, 자비도 한 번이지. 두 번은 보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