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17화 (117/154)

117화

아이누족들을 두 세력으로 가르겠다고 천명했다.

아이누족들에게는 미안한데 나를 만난 것이 잘못이다.

연방을 이용하려 한 죄는 아이누족들 같은 약소한 부족이라고 해도 봐줄 수 없는 일이다.

"그놈들을 가르지 못할 것도 없지. 우리를 이용하려 했으면 그 정도 벌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히 우리를 상대로 장난질 치려 했으면 그 정도는 각오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야 이 욕심 많은 것들에게 벌을 내릴 수 있다.

"일단 천황부터 구하고 보지."

"예, 각하."

"그래서 어떻게 할 참이오?"

다다히라는 나한테 군사라도 맡겨놨나.

"우리와 타협한 아이누족들이 먼저 장인을 잡은 아이누족들을 치게 만들어야 할 것이오. 그 사이 다다히라 공이 소수의 병사들을 끌고 장인을 구하시오."

다다히라가 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게 해야 만에 하나라도 천황을 구하지 못하고 죽게 만들 경우 전부 다다히라에게 책임을 넘길 수 있다.

천황이 살았으면 좋겠지만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지킬 정도는 아니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결국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있나. 다다히라도 나름 내공이 있으니 내가 병사를 내어주면 알아서 잘하기는 할 것 같다.

일단 죽으면 절대 내 탓은 아니다.

"알겠소."

다다히라에게 군사를 내어줬다.

"각하의 계책을 듣고자 합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것입니까? 다다히라 공에게 군사를 맡기는 것이 영."

상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 원주민 가지고 계책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다다히라 공이 천황을 빼내면 우리는 바로 철수할 것이네."

"점령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직할령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남부와 북부의 아이누가 서로 싸울 때 그저 항구나 창구처럼 쓸 공간만 있으면 될 뿐.

"일단 군사기지는 그대로 둬야지. 그래서 저놈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지치게 만들 생각이야."

"진을 세우고 천천히 세력을 확장하면 되겠군요."

연방의 명분상, 무력으로 점거하는 것은 우리의 대의에 어긋난다.

애초에 천황을 구하고자 한 출병이다.

연방 중앙정부에서도 점령은 하되 굳이 전쟁은 치르지 말라는 말이 있었으니, 굳이 저들을 잡을 이유가 없다.

그래도 그냥 천황만 구하는 건 뭐하니 딱 진만 설치하고 빠지겠다는 것이다.

"그런 거지. 저놈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자기들 땅에 다른 세력이 있으니 화가 좀 날 터."

결국 알아서 전쟁은 벌어질지도 모르고 교역 창구가 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진을 설치하는 것도 일단 명분상 아이누와 교역을 터고 일본 도적들을 막으려는 것뿐이다.

"점령하지 않고 굳이 그런 방법을 택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지요?"

이 세상에 오고 느낀 것이 있는데, 땅이 넓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북해도 정도야 삼킬 수는 있지만 차근차근 진행해도 될 일이다. 정말 돌궐이나 여진 같은 꽤 기동력 있는 유목민족 수준이면 모를까. 고작해야 아이누족이다.

"연방은 평화를 사랑하네. 어쨌든 이 땅에 조금이라도 우리 거점을 만들어두는 것. 그것에 만족해야 해."

저놈들끼리 서로를 잡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굳이 지금 연방이 북해도에 힘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

결국 알아서 굴러오게 될 것이다.

얼마나 지원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아이누를 조사하라 정찰병 보낸 장수가 애술이었나.

"애술 장군, 남부 아이누족에게는 병사를 얼마나 지원하는 것이 좋겠는가?"

"군사의 질과 병장기로 보았을 때 1천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애술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볼 때는 그것도 많아 보인다.

"네. 심지어 무기도 지원해줄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군사 1천에 물자만 지원하도록 하지.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도와 힘의 균형이 깨지면 곤란해."

그렇다고 힘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적당한 때에 빠져야지.

군사는 1천, 나머지는 남부 아이누족에게도 식량은 있는 것 같으니 주로 무기의 지원이 되시겠다.

창과 검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들을 지원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지."

설마하니 우리 군이 지원하는 남부 아이누족이 북쪽 아이누족에게 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군의 전투력이 높으니까.

"음, 아무래도 이번에는 좀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좌평 최승우가 불안한 소리를 했다.

이번에는 좀 피해가 있을 거라니. 다다히라는 일본에서 나름 입지가 있는 인물이며 지금은 백제에 정착한 후지와라 일족의 수장이다.

군사를 다룰 줄은 알 것이다. 비록 그 수는 적다고 하지만, 부여군 소속 최정예들만 내놓았고, 북부 아이누 땅에 천황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안다.

딱 천황만 빼 오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 소리다.

"다다히라 공이 군을 이끌고 갈 때, 무척 조급해 보였습니다."

그래. 조급해 보이기는 하더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휘관이라는 자가 전장에서 조급해하거나, 공명심이 앞서면 그 전투는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마, 때에 맞추라고 했는데."

"다다히라 공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릅니다."

맞다. 가만히 보면 그 인간만 한 충신도 없어. 그러니 다른 후지와라의 가신들로 내 눈을 속인 채 천황을 끌고 그대로 열도로 도망친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다다히라도 알 것이다. 천황이 열도로 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천황이 바라는 길을 열어주었다.

참 대단한 남자지.

나는 그의 충성심이 이성적으로 천황을 구하길 빌었다.

그런데 내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다다히라에게 혹시 모르니 숨어있으라고 서신을 보냈는데 어쩐지 답이 없었다. 대신 서신을 가져갔던 병사가 급하게 진영으로 돌아왔다.

"각하! 큰일입니다!"

여기서 일어날 큰일이 있는가. 앞으로 기다릴 일은 승전보와 더불어 아이누족들이 저들끼리 싸우다 말아먹는 것뿐이다.

"무슨 일입니까?"

"다다히라 공이 군사들과 함께 저들의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대체 가서 뭐 하는 짓이야?

다다히라에게 내어준 군사만 수백이다. 그들을 다 죽게 했다는 건가.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대충 왜 그랬는지는 알 것 같다. 그러나 일단 따질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천황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만일에 다다히라가 아이누족에게 피해라도 입혔으면 천황의 목숨은 정말 장담할 수 없다.

북부 아이누족도 살아남아야 하니 함부로 죽일 거 같지는 않다만.

"다다히라 공이 어쩌다 그리되었나?"

대체 그 트롤러는 뭔 짓을 저지른 거야.

"그게 무모하게 천황을 구하겠다고……."

멍청한 인간 같으니. 적의 함정에 낚이기라도 한 것인가.

이거야 원, 무능력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않나. 그래. 천황을 일본으로 데려갈 때부터 알아봤다.

"병사들의 피해는?"

"수십 명이 그대로 북부 놈들에게 잡혀있습니다. 그나마 나머지는 겨우 도망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북부 놈들에게 병사들이 잡혔다고? 뭐 이런 한심한 일이 다 있나.

"뭐? 다 잡혀갔다고? 남부에 지원 나간 애들은?"

"지금 남부에 합류해서 북진하고 있다 합니다."

큰일이다. 하필이면 천황을 구해야 할 다다히라가 전부 말아먹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북부가 천황을 구할 틈 없이 곧바로 진압되고 말 것이다.

이건 좋지 못한데.

"내가 직접 가야겠다. 군사 1천을 끌고 북부 아이누족을 털고 천황을 구해야겠다."

"아니, 그럼 소장들이 가겠습니다."

장수들은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내가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애초에 그러려고 내가 이곳까지 온 게 아닌가.

"장인의 목숨이 걸려있으니 내가 가는 것이 맞아. 다들 여기 진을 잘 구축하고 만일을 대비하라.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부에 사람을 보내라."

"예, 각하!"

일이 급해졌다. 여기서 장인도 죽고 다다히라 마저 죽으면 출정을 한 의미가 퇴색해버리는 것이다.

정말 다 때려치우고 아이누족을 싹 다 잡아버릴까?

"남부가 쳐들어갈 때 함께 가는 것입니까?"

남부가 쳐들어갈 때 치려 하면 아마 약속을 어겼다면서 죽이려 들겠지. 아마 지금만 해도 사신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그러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지도 하나를 폈다.

"이것은."

내가 장수들에게 보여준 것은 북해도의 지도다.

대충 어림잡아 그린 거 같은데, 어느 날부턴가 지명이 세세하게 나타났다.

아마 이것도 신이 나를 가지고 논다는 증거겠지. 잘해보라며 콩고물을 던져둔 것이다.

이 지도를 가지고 어떻게 써먹을지는 결국 내 자유지만 즐기는 것은 신들이 될 것이다.

역시 신들이 즐기려면 무쌍 같은 것이 좋겠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지금까지 보상을 준 것이 아닐까. 무쌍으로 북해도를 휘어잡으라 뭐 그런 것이다.

"앞으로는 이 지도를 참고할 것이네. 병사들을 보내 두 세력이 있는 곳을 알아보고 지도에 점을 찍도록 하지."

이런 것도 만들어둬야 그나마 북해도를 후일 관리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부에서 사람이 왔다.

"대체 약속을 이렇게 저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정말 천황이라는 자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오?"

이 정도면 오기가 생겼다. 조금이라도 저자세는 유지해주겠다. 천황만 되찾는다거나 천황이 죽으면 반드시 민족을 근절시켜주겠다.

"그건 오해네."

"오해는 무슨 오해?"

"천황의 충성스러운 측근이 감히 내 병사 수십을 끌고 쳐들어간 거네. 부디 노여워하지 말게나."

이건 진짜다. 다다히라가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갈 줄 몰랐지.

그 덕에 지금 우리만 아이누족들을 설득해야 하게 생겼다.

내 말에 아이누족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흥! 그 말을 잘도 믿으라고 하는군."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통역관 마사오가 말하는 건데, 어째 아이누 놈들의 얼굴이 너무 여유만만이라 한 대 치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좋소이다. 대신 우리도 조건을 걸 것이오."

"조건이라니?"

이 미친놈들이 또 조건을 단다는 말인가. 그래. 이번에는 무슨 조건인가.

아무래도 자기들이 유리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우리 쪽은 천황을 포기하면 어렵지 않게 털어버릴 수 있는데.

"우리가 싫다고 할 때까지 식량을 지급하는 것."

"뭐 이런 미친."

아니다. 지금은 화낼 처지가 아니지.

"설마하니 천황이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니시겠지요."

"허. 말이나 못 하면! 마사오! 네놈은 저걸 계속 통역하는 건가?"

괜히 역관 마사오만 장수에게 얻어맞았다.

아니, 마사오도 억울하겠지. 본인도 딱히 통역하고 싶지 않을 텐데 말이다.

"괜찮네. 괜찮아. 원래 그러라고 있는 역관이 아닌가?"

"송구합니다, 각하!"

"어쨌든 천황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지. 안 그런가?"

다들 분해하는 건 알겠는데, 저놈들도 자기 살길 찾으려면 저런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알겠네. 지원은 아끼지 않지. 천황과 다른 살아있는 이들은 그냥 두게나."

"흥! 당신들이 하기에 달렸소."

아이누족들은 자기 할 말만 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것들이 돈을 맡겨놨나. 아무리 인질을 잡고 있어도 그렇지 정도를 모르는 것인가?

"이제 이 일을 어찌합니까? 솔직히 저런 놈들과 협상하라니. 말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쩔까?"

협상을 하지 않고 천황을 구할 방법이 있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