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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16화 (116/154)
  • 116화

    납치당한 천황을 구하려는 그 충성심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만이 넘는 군사로 북해도를 들쑤실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내 백성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오. 장인께서 승천하시는 것도 내 참으로 안타까우나 어찌 1만의 목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연방에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목숨이 아닌가.

    오히려 지금껏 잘 대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하지 않나.

    "그래서 죽게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러니 한쪽을 지원하고 다른 한쪽으로 장인을 빼는 방법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오?"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 있지. 졸렬한 놈들에게는 졸렬함으로 대해줘야 한다.

    아무리 세상 보는 눈이 어두워도 눈치가 있어야지. 자기들이 누구를 상대로 협박하는지 전혀 모른다.

    이미 내 눈에 들어온 이상 가만히 둘 생각이 없다.

    "졸렬함에는 졸렬함으로 맞서줘야지."

    "그 졸렬함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좋은 계책이 있다. 오히려 천황을 빨리 빼 올 수 있다.

    "이렇게 합시다. 일단 다른 원주민에 사람을 보내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황을 찾으러 왔을 뿐인데 저놈들이 협박한다고. 반대로 군사를 지원해줄 테니 천황을 구하는데 협력하라고 말이지."

    보아하니 쓸데없는 걸로 싸움이 붙은 모양이니까. 반대로 우리가 저쪽에 물자며 군사를 지원해주면 어떻게 될까.

    "나쁘지 않습니다."

    "커흠, 각하. 조금 졸렬한 방법이 아닌지."

    "졸렬함에는 졸렬함으로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저들에게 상국으로서 겸손과 자비를 보여줄 이유는 조금도 없어요."

    지금은 일일이 자비를 베풀면서 아군의 피해를 늘릴 때가 아니다. 한 번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지.

    "일단 우리가 천황폐하는 좀 봐야지. 그래야 거래를 하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역관은 우리에게 잡혀 온 아이누족을 설득했다. 그 덕에 우리는 아이누족의 땅과 우리 진의 중간쯤에서 천황을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그, 금강."

    이건 뭐 거지도 아니고. 입고 있는 비단옷은 이미 그 빛을 잃은 지 오래고, 머리도 풀어 헤쳤다.

    간만에 만난 천황의 모습은 너무 불쌍해 보였다.

    아주 꾀죄죄한 모습이 어디서 걸인으로 구걸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 인간이 천황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막상 보니까 화낼 마음도 쏙 들어간다.

    그래도 지금은 내 나름대로 사위로서 장인을 위로하기로 했다.

    나는 그의 양손을 꼭 붙들었다.

    "장인,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쩌다 이런 망극한 일이……. 심려 놓으십시오. 이제 이 사위가 온 이상 반드시 구해드릴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니 동정이 가더라. 구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 미안하네."

    "무엇이 말입니까? 장인께서는 조금도 제게 미안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실망만 있을 뿐이지.

    그나마 이 양반의 쓸모는 북해도까지 세력을 넓힐 구실, 딱 그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북해도를 점령해 아메리카를 노릴 해군기지를 설치한다든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아닙니다. 금방 구해드릴 테니, 조금만 더 이곳에 계십시오. 요시코도 많이 걱정하고 있으니 기운을 내시지요."

    정작 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웃었지만, 그래도 딸이 걱정한다는 말은 해줘야 할 것이 아닌가.

    "알겠네."

    기운만 내라. 모든 일이 끝나고 열심히 갈궈줄 테니까.

    천황을 데려온 아이누 놈들은 자기 부족으로 다시 천황을 데려갔다.

    군영으로 돌아온 즉시 나는 반대편 원주민들에게 역관과 병사들을 보내어 내 의견을 전했다.

    * * *

    북해도 북부.

    북해도 북부에 터전을 잡던 아이누족은 얼마 전 포로로 잡은 비단옷을 걸친 인물이 천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방이라는 국가에서 천황을 구하러 왔다는 소식까지.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남부의 아이누족들을 쳐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연방이라는 자들을 이용해 남쪽의 부족들을 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냥 그 천황을 내어 주시는 것이……."

    "흥 내어 주면 어떻게 변할 줄 알고? 그냥 데리고 있다 약속을 다 지키면 내어줘도 늦지 않을 일."

    지금 북부의 상황은 좋은 편이 아니다.

    식량이고 뭐고 많은 것이 부족하다. 이것이 다 남부의 부족들 탓이었다.

    설마 전리품을 나누는 일로 이렇게 싸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니 이왕 이렇게 갈라졌으면 이참에 연방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다가 천황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놈들은 더 발달된 군사로 우리들을 몰아칠 것입니다."

    "흠, 설마하니 그러겠습니까? 보아하니 겉모습만 번지르르해 보이던데. 일단 두고 봅시다. 우리 손에 피만 안 묻히면 되는 것이 아니겠소? 어차피 저들도 그냥 돌아갈 생각은 없을 것이오."

    천황을 내어 준다고 저 작자들이 그대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까 이용해 먹어야 한다. 가능한 많이 말이다.

    "그렇게 합시다, 그럼."

    * * *

    북해도 남부.

    북해도 남부의 부족들은 북부와 달리 천황을 비롯한 다른 호족들을 잡지는 않았다.

    다만 저번 북부와의 마찰에서 전리품을 얻은 것 정도였다.

    이곳에 총리 금강이 등용한 역관 마사오가 사신으로 오게 되었으니, 마사오는 입이 바짝 마를 지경이었다.

    이 사신 일을 제대로 못 하면 까일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화폐를 준다는 소리에 낚이면 안 되었는데.’

    그러니 마사오는 바짝 마른 입에 애써 침을 발라가며 남부 아이누 족과 협상을 해야만 했다.

    "연방이라는 나라에서 오셨다? 그것은 어디에 있는 국가요?"

    "저 동쪽에 있는 대국입니다. 일본 열도와 반도, 북방에 걸쳐 요서까지 뻗어있는 나라지요."

    요서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국가라는 건가. 데리고 온 병사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니 확실히 대국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여기까지는 왜 찾아온 것인가.

    남부 아이누들은 북부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으니 다른 적을 만들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연방의 사신을 정중히 맞이하였다.

    "오오, 그런 나라에서 왜?"

    "지금 연방의 수장이신 총리 각하의 장인 되시는 분이 이 북해도에 표류하였다가 북쪽의 원주민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자들이 재밌게도 각하의 장인을 구하고 싶으면 남부 원주민들을 쳐달라 주문을 하였습니다."

    그래. 먼저 운을 띄우는 거다.

    "뭣이! 그래서 연방은 순순히 따르겠다는 게요?"

    그럴 리가 있는가. 절대 그럴 생각은 없다. 누구 좋으라고 그들 좋은 일을 시켜줄까?

    "그럴 리가요. 오히려 각하께서는 분통해 하고 계십니다. 천황 구출에 협력하면 연방이 반대로 남부에 군사를 지원한다 하셨습니다."

    남부에는 결코 나쁜 제안이 아닐 것이다.

    "음. 나쁘지 않군."

    "연방이 원하는 것은 천황뿐이오?"

    그저 천황뿐이라고 하면 필시 이후 뭐라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

    지금 총리는 대마도에 대한 지배권을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단순히 물러서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아국의 총리께서는 교역 창구를 두어 아이누족과의 교역을 원하십니다."

    "대신 조건이 있소이다."

    "말씀하십시오."

    맨입으로 도와줄 리는 없겠지. 당연하다. 다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그 하늘 같은 총리의 명이다. 어떠한 조건을 걸지도 않은 탓에 마사오에게 모든 것이 걸려있다.

    비록 연방이 대국이라고 해도 불합리한 협상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군수물자를 지원해주시오. 우리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소."

    "군사까지 지원을 바라는 것입니까?"

    군사 지원이라니. 거기까지는 권한 밖의 문제다.

    "그렇소. 설마하니 우리에게만 피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맞는 말이다. 협력해달라면서 마냥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그게 맞는 말이다.

    "그냥 총리께 그런 조건을 듣지 못하였을 뿐, 총리께서는 그대들을 충분히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역은 하겠지만 군사는 물리셔야 할 것이오."

    "그리하겠습니다."

    연방은 아이누에 비하면 하늘보다 높은 나라다. 총리는 그 나라의 영웅으로서, 지도자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런 인물이니 여기서 마냥 거절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

    역관 마사오는 군영으로 복귀하면서 자신이 왜 이런 일에 휘말렸는지 몰라 신세 한탄을 했다.

    * * *

    남부로 보낸 역관 마사오가 돌아왔다.

    "음 저들이 받아들이겠답니다. 단 모든 일이 끝나고 충분한 식량을 지원하고 군사를 물리라는 내용입니다."

    "음. 그런가."

    생각 외로 말이 통하는 무리였던가. 북부의 그 거지 같은 놈들에 비하면

    "그리고, 전투 시 군사의 지원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뭐 당장은 점령하는 것이 급한 건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식량을 지원해달라니. 뭐 그런 뻔뻔스러운 것들이 다 있을까.

    이렇게 두면 결국 우리는 어느 한쪽에게 이용당하는 격이다.

    그래서 나는 병사들에게 그 반대 파벌 아이누의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일단 아이누의 사정에 대해 알아보았는가?"

    "예, 각하. 현재 아이누는 북부의 아이누와 남부의 아이누로 나뉘어있다고 합니다."

    허, 끽해야 부족 수준이 북부 남부로 갈렸다고?

    대체 일본의 호족들이 얼마나 못된 일을 벌였으면, 그 호족들의 전리품을 가지고 또 반으로 갈린다는 말인가.

    호족들이 상륙하고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연방의 발흥으로 결국 아이누의 역사도 바뀌었다.

    바뀐 백제의 역사가 동아시아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줬을 줄이야.

    북아이누와 남아이누. 어감 참 좋다.

    아이누에게는 이전까지 별다른 감정은 없었지만, 서로 쌈박질 끝에 나를 이용해 먹으려 하니 어쩌겠나.

    "천황을 데려간 부족은 북부입니다."

    "그럼 우리가 손잡을 대상은 남부로군."

    북부 아이누, 남부 아이누 이렇게 나눠야 하는 건가.

    "남쪽의 원주민들과 손을 잡으면 북부의 원주민들은 전부 잡는 것입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정복자가 아니니 최대한 많은 영토를 얻고 난 이후, 세계경찰 노릇 정도 하면 되겠지.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지향하는 연방에게 있어 무식하게 칼로 아이누를 다스리는 것은 좋지 못하다.

    "전부는 아니다. 다른 수단을 생각해야지. 아무래도 방법을 조금 달리해야겠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차라리 전투를……."

    장수들은 너무 호전적이다. 무조건 다 잡자고 하니.

    "생각해 보게. 저놈들이 너무 건방지지 않나?"

    아주 주제도 모르고 너무 나대는 꼴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 다른 수를 써야 한다. 감히 연방에 저항하는 자를 멀쩡히 살려둘 수는 없지.

    스스로 분열되었으니, 지금을 노릴 때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과거 돌궐은 중원의 여러 나라로부터 조공까지 받았으나, 결국 내분으로 동서로 갈라졌지. 그래서 결코 밀릴 전력이 아님에도 수나라에게 제대로 맞서지도 못하고 조공국 신세로 떨어졌어."

    결국 수가 멸망할 무렵에 다시 들고 일어났지만, 돌궐이 반으로 갈라진 것은 유목민족에 늘 조공 바쳐 온 중원에게는 좋은 시기였지.

    사실 아이누가 강대국도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좋다.

    "헌데 돌궐 일은 어째서."

    "설마 원주민들을 반으로 가를 계획이십니까?"

    역시 최승우 내 생각을 정확히 꿰고 있다.

    그렇게 해야 이 욕심 많은 것들에게 벌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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