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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13화 (113/154)

113화

장관들은 이번 북해도 원정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얻을 것이 너무 적다. 그냥 영토만 넓히는 것뿐 딱히 얻을 것이 없지 않을까.

주로 그런 의견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고. 하지만 그냥 두기에는 역시 찜찜하지.

"내 그걸 왜 모르겠는가. 생각 같으면 나도 그냥 내버려 두고 싶다네."

"연유가 있습니까?"

워낙 급하게 알려진 것이라 아직 장관들은 알지 못한다.

"천황과 그 측근들이 그 땅에 기반을 마련할 생각이네. 언제고 그 땅을 기반으로 열도를 공격할지도 몰라."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일본 천황이 말입니까? 아니, 완산주에 계셔야 할 분이 왜 그곳에 있다는 말입니까?"

장관들도 놀랐다.

그래, 놀랍지. 나도 놀랍다. 그 인간 발 하나는 빠르더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 화가 치밀어서 일본으로 넘어갔는지 직접 잡지 않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호족들과 함께 있다는 뜻은 우리들로부터 도망치겠다는 이야기니까 결코 좋은 뜻을 품지는 않았겠지.

설마하니 믿는 구석도 없이 넘어가지도 않았을 테고.

"그러게나 말이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위험하겠군요."

내 말이 그 말이다.

물론 솔직히 말해서 북해도로 커지면 얼마나 커질까. 한계는 분명히 말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등짝에 난 여드름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뭐가 되었든 귀찮지 않게 싹 쓸어버리는 것이 낫지.

"그렇네. 천황이 예전만 못해도, 후지와라를 비롯해 일부 호족들이 따르기 시작한다면 다시 거센 불이 될지 모르네. 시작은 저 북쪽의 섬이겠지만 그 원주민들을 선동해서 다시 열도로 들어올 수 있고, 점차 세력을 확장할 수 있겠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적을 얕보다가 당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던가. 그러니 북해도를 마냥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이다.

"위험하군요."

"천황은 일본의 중심. 만일에 호족들이 점차 따르기 시작한다면 저 북도는 새로운 일본이 될 것입니다."

총리부의 장관들은 그 대부분이 전쟁의 고통을 잘 아는 자들이다.

"그러니 북해도에 군대를 파견해야 하네."

군대를 파견한다면 얼마나 해야 할까. 나는 한 1만 정도로 보고 있다.

최대 3만으로 보고 있는데, 훈련도를 생각하면 1만이면 될 듯싶다.

"저희는 찬성하겠습니다."

"기껏 일본을 얻었는데 천황 탓에 흐지부지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제야 말들이 통하네.

"장수는 누가 좋겠습니까?"

"상귀나 애술을 보내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하네."

솔직히 나는 상귀 쪽이 더 좋다.

"확실히 상귀 장군은 백제의 수군을 이끌었으니, 상륙전도 잘 해낼 거라 생각합니다."

"군사는 요동군 1만으로 하지."

요동의 군대 1만이면 아마 지금 중원의 군대를 싹 쓸어버리고도 남을 정예들이다.

그들이 북해도에 상륙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눈에 훤하다.

"화약부대를 끌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 점에서는 걱정이 없네. 연방 일본부에서 해결할 테니."

"원정이 실패할 경우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원정이 실패한다라. 굳이? 아이누족을 상대로 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도 마냥 방심할 수는 없겠지. 상귀가 아이누족과 싸워본 것도 아니니까. 전투력을 떠나 아이누족들의 앞마당에서 싸운다면 일단 불리한 조건은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좀 무리하더라도 대군을 사용해야 하는가?"

"일단 서라벌의 황제께도 군사를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서라벌의 백제군도 꽤 강하다.

그 대부분이 신검과 함께 전장을 뛰었던 군사들로 신검이 패배할 때마다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우선 그들을 후방에 두었다가 혹시 모를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 좋은가.

하지만 고작 북해도를 치는 건데.

"음, 고작해야 북해도를 치는 건데."

"발해의 경우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고작 사신들 뿐이었다지만, 북해도의 원주민들은 외부인을 마냥 곱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나도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다 죽이라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천하가 우리를 어찌 보겠는가? 교화가 가능하면 되도록 그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정작 북해도에 가는 것은 난데 장관들끼리 떠들고 있다.

아, 교화. 그래, 교화 그거 참 좋지.

호족들이 아이누를 어떻게 구워삶을 건지 몰라도 말이야.

"각하, 교화도 그럴듯합니다."

"설마 상좌평의 말씀은 압도적인 군세를 보여 저들을 굴복시키자는 겁니까?"

"예, 각하."

상좌평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나.

일단 가서 봐야 알겠지만 살리는 쪽으로 생각해야겠다.

"어쩔 수 없군."

그래, 애초에 아이누족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처음부터 힘의 논리를 펼 필요가 없다. 그저 그자들은 자기들 땅에서 살아가는데 외침이 있었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달리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상귀 장군은 전쟁에는 뛰어나지만, 이번 일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머리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장관 한 명이 머리를 툭툭 쳤다.

그 말이 맞다. 상귀는 영 머리가 좋지 못하다. 아마 이번 일도 그저 아이누족을 싹 다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다. 바로 내가 직접 가는 것.

생각해보니 그게 가장 낫지 않은가. 굳이 국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아이누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럼 내 직접 가지."

"각하께서요?"

뭘 놀라나. 늘 그렇듯 내가 나서는 것뿐이다.

이쪽이 더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다. 아이누족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마당에 굳이 애꿎은 병사들만 보낼 이유가 없지.

"내가 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네. 상귀를 보내 일침을 맞는 것보다는 내가 가서 저들을 설득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일단 열도에서 저들과 대화가 가능한 인물들을 수소문해 보게."

"각하. 이제 각하는 각하 한 사람만의 몸이 아닙니다!"

내가 그럼 뭐 임신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건 좀 아니지.

"각하께서는 이제 두 제국을 하나로 묶은 연방의 영웅이시자 통치자이십니다! 이것은 결단코 아니 될 일입니다!"

다른 나라로 치면 황제가 직접 나서는 격이니까.

"차라리 애술 장군을 보내시지요. 애술 장군은 점령지 민심을 수습하는데 도가 튼 인물이 아닙니까?"

애술도 나쁘지는 않다. 애술은 견훤이 믿고 의지했던 장수 중 한 명으로, 신라로부터 얻은 땅의 백성들을 잘 다독여 교화시키는데 나름 능력이 있었다.

다만, 그것은 삼한이나 중원에 한해서다. 못 배워먹은 아이누들이 애술의 말을 듣겠나? 심지어 언어도 통하지 않을 텐데?

"애술 장군은 확실히 뛰어난 장수지만, 그것뿐이네. 그 방법은 삼한에서는 먹히겠지만 언어와 문화 풍습이 전혀 다른 북해도의 원주민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 걱정들 하지 마시게. 뭘 그리 걱정들이 많나?"

기가 찼다는 내 목소리에 장관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고려계 귀족이 입을 열었다.

"각하. 그것이 아니옵고…… 도로 정비며 뭐니 전부 각하께서 친히 왕림하시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그게 왜?"

보통 그렇게 되면 좋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각하의 부인이 되시는 고려의 황제께서 신들을 얼마나 압박하는지 정녕 모르십니까?"

"그래도 가독부 한 분뿐이면 모릅니다. 본디 여인네가 지아비를 보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백제의 마한황제께서도 계십니다. 마한황제께서도 더는 각하가 친히 움직이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둘 다 나름대로 나를 걱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내가 가야 한다. 연운 16주는 괜찮다지만, 북해도에 관련해서는 지금 나만큼 적임자도 없다.

"황제도 친정하지 않나?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나?"

"각하!"

"이번만이네. 딱 이번만 내가 직접 나서지."

장관들은 한참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나 싶더니 수락했다.

"예.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음에는 저희 목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나도 장관들이 죽는 꼴은 볼 수 없다.

* * *

북해도.

연방군으로부터 도망친 호족들은 바다를 타고 그대로 북쪽의 섬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도무지 일본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환경이었으니까.

숲도 그렇고, 지형도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우리가 대체 왜 이곳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냥 중원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았겠습니까?"

"당장 해양에서 연방의 수군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 연방군을 뚫고 중원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사병들이라도 많으면 그들을 방패로 세우고 튈 수 있겠으나, 불가능하다.

천황을 인질로 잡기는 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도 알 수 없고, 애초에 천황을 끌고 온 것도 그냥 혹시 모를 변수 때문이었다.

"애초에 중원도 지금 분열 중이고, 죽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이오."

"그럼 이곳밖에 대안이 없었나."

"그래도 식솔들은 다 데리고 오지 않았소? 이 정도로도 만족해야지."

이런다고 과연 연방이 오지 않을지는 미지수다. 그저 이렇게 도망쳐서 가만히 있다면 연방이 가만히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바랬다.

그리고 이번 일의 모든 원흉인 천황은 조용히 끌려오다가 마침내 불만이 터졌다.

"내 명색이 천황인데, 이건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천황은 후지와라 일족과 함께 죄인처럼 끌려 북해도까지 왔다.

"우리가 살려면 별수 있소? 아까 추격군 못 봤나?"

일본을 벗어날 때 연방의 추격군들이 따라붙길래 천황을 보여주었더니 어쩔 수 없이 연방군은 뱃머리를 돌렸다.

"이런다고 우리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우리라니, 말조심하시오. 천황께서는 포로이자 인질이오. 적어도 한동안은 이 섬에 있을 테니 그런 줄 아쇼."

적어도 이 섬에서 한동안은 터전을 일구어야겠다.

여기서 숨죽여 산다면 필시 저들은 굳이 건들지 않으리라.

"진짜 이런 건 너무한 것이 아닌가?"

호족들은 기가 찼다.

지금 그 말을 자기 입으로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데. 한심한 인간이다. 나라를 망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자신들까지 죽이려는 무서운 인간.

"역사를 되짚어보시오. 누가 더 너무한 것 같소? 심지어 그냥 숨죽여 살려던 우리를 들쑤셔 연방으로 하여금 쳐낼 빌미를 제공한 것이 누군데?"

호족들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섬까지 도망 온 것은 전부 천황 탓이니까.

"그건……."

"애초에 이제 와 혈통이 뭐라고 백제에서 호의호식하다 갑자기 넘어와서 이 난리입니까? 그것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천황은 답답했다.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이리도 마음을 모를까.

자신은 절대로 저 근본도 없는 신라계 백제의 밑으로 갈 수는 없다.

그간 신라와 일본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관계였었나. 신라인들은 일본에 사기를 쳤으며 대규모 해적집단을 보내기도 했다.

뿐만인가. 일본 내에 머물던 신라인들이 반란까지 일으켰으니 일본으로서는 신라에 안 좋은 감정만이 있었다.

애초에 지금의 백제가 본래 신라에서 흘러나온 탓에 일본은 백제를 못 미더워했다.

그나마 백제가 세워지고 좀 잠잠해졌으나, 설마 그 백제의 황실조차도 신라 쪽이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혈통 때문이니 뭐니 헛소리는 치우셔야 할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혈통은 중요한 문제네!"

그래. 중요한 문제겠지. 그런데 그것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

혈통 따위,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제 더는 천황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이 북쪽의 섬까지는 도망을 쳤으니까, 오히려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그렇다면 처리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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