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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10화 (110/154)

110화

상좌평 최승우는 도로를 보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열심히 흥분했다.

"참 기이하게도 각하께서 일을 추진하시니 이렇게 발견되었습니다. 한성 땅까지 이어지는 도로라면 백제 초기부터 존재했다는 것인데. 그러면 백제가 전성기를 일찍 구가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아니, 그건 절대 아니다.

"반대로 백제가 밀리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백제가 방심했을 때, 고구려가 이런 대로를 타고 군대를 남하시켰다면……."

아니, 그것도 아니야. 다 신 탓이니까.

솔직히 무려 당나라를 잡았는데 이 정도 보상이라면 좀 짜지 않나?

뭐 후당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기는 했다. 그 옛날 고구려가 상대했던 당나라의 국력은 떨어진 지 오래다. 황실도 그렇고, 중원이 분열될 꼴만 봐도 후당은 석경당이 요와 손잡아도 이겨냈을 거다.

지금은 적당히 비위 맞춰줄까.

이게 다 내가 마한패왕이라 신이 굽어살펴준 거라 할 수는 없다.

"예. 아마 고구려는 이런 대로를 통해 남하했을 것입니다."

"당군이 넘어온 것도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도로 탓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백제는 도로 탓에 망했다고 정신승리를 할 수 있을까.

"일단은 쪽팔리니 계속 진척합시다."

"예?"

"아닙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백성들은 제대로 일은 하고 있습니까?"

"예. 충분히 임금을 쥐여준다 하였습니다. 저기 보시지요."

최승우가 가리킨 곳에서는 백성들이 돌을 옮기고 배수시설을 비롯한 도로의 틀을 다지고 있었다. 석공들도 알아서 돌을 갈아 최상층에 깔 석재들을 만들었다.

"아직은 화폐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으니 적당한 물품으로 주다가 나중에 화폐로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 각하."

도로를 정비하면서 화폐도 만들고 있는데. 고려나 백제의 주요 도시에만 풀리고 있었다.

백제 본토에도 꽤 풀리기는 했으나 도로 정비 작업을 하는 백성들에게 전부 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설마하니 포로들 말고 이만한 인력을 끌어들일 줄이야. 대단합니다. 곧 포로들도 집어넣어야지요."

"예, 각하. 그리할 것입니다."

작업을 빨리 마치려면 인구를 갈아 넣어야 한다.

그나마 백제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알아서 일을 해준다 하니, 수양제나 진시황제마냥 나를 폭군이라 칭할 놈들은 없을 것이다.

굳이 있다면 포로들이지만.

그놈들 목숨은 내 알 바인가?

"그나저나, 완산주의 천황을 잘 지낸다고 합니까?"

"서라벌로 가지 않은 것을 보면 기이하기도 합니다마는."

"흠. 적당히 둘러보다가 서라벌로 가 형님을 보려 했거늘. 귀찮게 완산주에 한 번 들렀다 가야 하겠지."

명색이 사위니 완산주 근처까지 가면 보러 들러야 할 것이 아닌가. 그 양반이 서라벌에 있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후지와라노가 기이하지 않습니까."

"예?"

"후지와라노의 가신들까지 재산을 내놓고 도로 정비에 힘을 다할 줄은 몰랐지."

"그건 그렇습니다."

당장 기반을 잡기에도 벅찰 텐데. 후지와라노가 일본에서 가져온 재산을 다 털어 백제의 도로 정비에 힘을 보탰다.

심지어 가신들 일부가 직접 이 대규모 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상당히 충성스러운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각하! 각하!"

"무슨 일인가?"

복장을 보니 완산주에서 천황을 보필해야 할 호위 병력들이 뭐 저리 급하다고 달려오는 건가.

"천황과 후지와라노 일족이 백제를 떠났습니다!"

백제를 떠났다? 백제 땅을 떠났다 그 말인가?

"이상한데. 그들이 떠난다면 어디로 떠났나?"

"일본이 아니겠습니까?"

최승우가 의견을 냈다.

"황위를 광이한테 준다면서 갑자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황위를 광에게 넘긴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이유인가? 굳이 백제를 떠나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그렇습니다."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따지고 보면 지금 천황은 모든 걸 잃은 셈이니, 그럼 차라리 서라벌에 따라가서 황제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허면."

그래. 작정하고 일본에 갔을 것 같다.

"굳이 완산주에 남아있다가 일본으로 가는 이유는? 혹시 돌아가서 일본인들을 선동하여 연방에 맞설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설마. 요시코 내친왕께서 잘 설득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무리 딸이 그랬다 해도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천황에게 딸은 모후의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로 보일 테니까.

이거 참 일이 곤란하게 되었다.

"그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솔직한 말로 천황은 자기도 모르게 모든 권력을 뜯긴 격이 아닙니까."

"가서 군사를 일으킬 수도 있겠군요."

군사를 일으킨다고 해봐야 얼마나 일으키겠냐마는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우리에게 충성은 아니고 적당히 협조하는 호족들이 있다 들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예. 일본 전역을 지배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중립이 있습니다."

슈코쿠랑 혼슈 북부 쪽에 했던가.

"그들이 호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당장 대봉예에게 연락하여 전국의 호족들을 관리하라 하세요."

"예, 각하."

다른 반군과 달리 천황이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천황은 어쨌든 일본의 상징. 왜 갑자기 천황이 넘어갔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로나 호족들만이 아니라 화약에 관해서도 제대로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염초를 얻기 힘드니까요. 호족들을 다스리고 중국을 제어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물량보다 군사와 무기의 질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의 인구를 생각하면, 지금 조금이라도 무기의 질이 앞설 때 잡아둬야 한다.

거대한 시장? 알 게 뭐야. 어차피 이대로 성장하면 대국이 되는 것은 연방이다.

"그것을 신이 왜 모르겠습니까."

"상좌평, 나는 중국이 좋습니다. 좋아도 너무 좋지요."

이 세상에서 나만큼 중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중국은 많아져야 한다. 아주 많이.

아주 통일하지 못할 정도로, 각국이 우리에 비하면 국력이 거의 밑바닥을 칠 정도로 아주 많이.

"예?"

"하여 저는 중국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막강한 군대의 힘으로 적들을 그대로 찢어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결국 뭐니 뭐니 해도 화약 무기가 결정타를 찍을 것이다.

연방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의 드넓은 대륙과 생산력은 지금의 연방도 이겨낼 수 없다.

출산 장려정책을 벌이고 생산력을 크게 늘려야 한다.

"연방도 우리 대가 지나면 결국 황실의 핏줄이 하나로 이어져 새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중국의 나라들은 우리를 천자국으로 부를 것입니다. 바닷길을 여는 것조차 연방의 허락을 받아야겠지요."

먼 훗날 한반도 국가에 방해가 되지 못하도록, 민폐를 끼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야만 한다.

"예, 각하."

"그리고 천황이 만일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설령 장인이라 해도 끝장을 봐야지요. 감히 연방에 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것입니다."

오히려 이번이 좋은 기회기도 하다.

장인이라 해도 나를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 *

부여연방 일본부.

한참 대봉예에 의해 안정을 찾아가는 일본이었으나, 문득 본국에서 떨어진 훈령이 연방 일본부에 떨어졌다.

"도독 어른! 중앙정부에서 훈령이 떨어졌습니다!"

"무슨 훈령이?"

수하의 보고에 대봉예는 미간을 좁혔다.

"천황과 후지와라 일족이 일본으로 갔으니,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잡아들여야 한다 했습니다."

일본의 천황이 도망이라도 쳤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인가?"

"천황은 단순히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주권? 설마 독립전쟁을?

"왜 그런 멍청한 짓을? 연방을 적대하다니! 장수들은 병사들을 풀게. 아마 천황과 그 측근들은 슈코쿠나 북부로 올라갔을 것이네!"

"예!"

대봉예는 금강이 남겨둔 일본의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슈코쿠와 혼슈 북부는 중립적인 호족들이 있는 지역이다.

일본에는 마냥 친백제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은 중립 호족들의 구역이다. 지금은 백제를 따르고 있으나 천황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봉예는 함대를 풀어 백제와 일본의 항로를 뒤지고 심지어 병사들까지 동원하면서 천황을 찾았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젠장.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열도를 샅샅이 뒤져도 천황과 후지와라 일족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단 한 곳밖에 없겠지.

"여기 혼슈에서 가장 끄트머리 쪽에 있겠지."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천황이 세를 모으기 전에 군대를 모아 한 번에 토벌해야 한다.

"군사를 몰아라. 혼슈까지 밀어버릴 것이다."

"도독. 본국에서 각하께서 밀서도 보내셨습니다."

"또 무엇이냐?"

대봉예는 금강이 보낸 밀서를 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천황을 숨겨놓고 내놓지 않으면 아예 무력으로 다 짓밟아버릴 것. 피해는 상관없음. 본래 왜인들은 배움이 얕아 신의가 없으므로 이번 일로 호족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완전히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 본국에서도 수군을 지원하겠단다.

아예 작정하고 일본을 두드려 잡을 생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호족들일까.

어쩌면 그냥 좋은 명분을 쥔 것이다.

하기야 단순한 중립 세력인 호족들도 연방 입장에서는 걸리적거린다. 특히나 일본은 백제가 수도를 서라벌에 둔다고 한들 저 바다 건너에 존재한다.

언젠가 처리해야 했겠지.

그리고 그때가 지금이다. 그러니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명을 내린 것이 아닌가.

"각하께서 작정하셨군. 지금 동원할 수 있는 군대가 얼마나 되나?"

"2만은 될 것입니다."

2만이라면 지금 당장 일본 호족들의 사병들보다 많다.

"2만이라, 당장 몰아붙이지."

"예. 도독."

지금 일본에 남은 호족들은 친백제와 중립파. 친백제계는 구주를 중심으로 뭉쳐있으나, 알게 모르게 다른 지역은 연방 일본부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아마 이참에 아주 호족들의 뿌리를 뽑을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본부의 도독으로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 * *

대봉예에게 중앙정부의 훈령이 떨어질 무렵, 혼슈 북부의 호족에게 후지와라의 밀서들이 도착했다.

그 내용은 천황이 일본에 있으니 와서 맞이하라는 것.

본디 혼슈 북부의 호족들은 연방이 일본을 통치하자 자기들끼리는 모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물론 백제에 맞서는 조직이 아니라 지방자치라는 느낌으로 만든, 그냥 호족들끼리의 친목회에 가까웠다.

그 친목회를 천황과 후지와라는 이용했다.

천황은 그렇게 한 호족의 도움을 받아 겨우 호족들을 모을 수 있었다.

"대체 이제는 힘도 없는 우리 호족들을 누가 불렀다는 건가?"

"천황이라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어느새 정말로 호족들의 앞에 천황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호족들 중엔 천황의 얼굴을 제대로 모르는 자도 있었으니 뭐 당연한 일이다.

"천황께서 이게 대체 무슨 모습이란 말입니까?:."

"모두, 모두 속고 있네."

"천황폐하. 그게 어인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나타난 이 천황이란 작자는 무슨 생각인가.

속고 있다니. 또 무슨 소리를 하여 일본을 혼란에 빠트릴 속셈인가.

기껏 나라가 안정되었는데, 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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