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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09화 (109/154)
  • 109화

    백제에 놓일 도로에 대해서는 장관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호오, 확실히 튼튼해 보입니다만……."

    "그렇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인력은 포로들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돈이 많이 들 것 같습니다."

    솔직히 포로도 아직 부족하지.

    당에서 붙잡은 놈들과 우리한테 적대했던 신라 놈들, 그리고 일본 호족 놈들까지 싹 끌어모아도 부족하다.

    "그래서 한동안은 모은 것들로 도로를 깔 생각이야."

    "호족들도 죽어 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결국 호족들 영지에 도로를 깔게 되는 거니까, 결국엔 호족들도 사람을 내야 할 것이다.

    "호족들 배도 줄이고 좋지 않은가. 어차피 자네들이야 장관직에 있으니 돈 좀 내놓는다고 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장관들이야 어차피 돈을 쓸어 담지 않았나.

    "크흐으음."

    "그 장관직에 있는 것이 누구 덕인가?"

    내가 올리지 않았으면 지금도 고려나 백제 조정에서 떠들어대기만 하는 앵무새가 되었을 텐데. 심지어 고려 조정과 백제 조정의 자금이 연방정부에 의해 넘어오는 식이다. 연방정부의 결정에 양국의 황제가 황실 국고를 열어 정책을 시행한다.

    여기서 도로정비사업이 시작되면 황실이 국고를 열겠지.

    "아니, 신들은 상관없습니다. 이미 연방의 장관이 된 이상 나라의 살림살이에 보태야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자네들의 이름도 역사가 기록할 텐데."

    떡하니 연방의 사서에 장관들의 이름이 기록된다.

    얼마나 멋진가? 그리고 먼 훗날 장관들은 로마에 버금가는 도로망을 구축한 위인들로 남을 것이다.

    "신이 보건대, 아무래도 일을 한 번에 진행하려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상좌평 최승우의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일단 국제무역항과 다수의 항구가 있는 백제 지역부터 시작하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쪽이 가장 좋기는 하겠다마는.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흠. 단계적으로 하자는 건가."

    "네. 우선 마한에서 서라벌, 평양까지 있는 대로를 만들고 아직은 불안정한 열도를 연결해야 합니다."

    대씨 고려도 넓은 건 아니지만 도로는 좀 있었다.

    애초에 요동 쪽은 나름대로 갖추고 있었지. 해동성국답다고 할까.

    "좋다. 그럼 마한지역으로 시작하지. 나주 호족 출신들은 있는가?"

    "예, 각하."

    나주 호족들도 총리부 회의에 대거 참가하고 있었다.

    어쨌든 내 기반이니, 저들도 연방정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네."

    "저희들이 어찌 각하의 명에 토를 달겠습니까? 당장 가산을 내놓고 도로 정비에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래서 내가 나주 호족들을 싫어할 수가 없다니까.

    아직 석경당과 요가 조용한 지금이 백제 땅이라도 도로를 정비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그저 나 하나를 위한 것이라 여기지 마시게. 연방을 위해, 나아가 그대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니까."

    "예! 각하!"

    도로정비사업이 백제 전역에 알려질 때쯤.

    저번에 당을 잡은 덕인지. 새로운 신의 기운을 느꼈다.

    [오대십국 중 하나, 후당을 멸망시키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후손이 마침내 당나라를 계승한 국가를 무너뜨려 묵은 원한을 풀었습니다!]

    [대다수의 호족들이 당신에게 충성을 바칩니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오로지 YES맨이 될 것입니다!]

    [고대의 백제는 도로의 틀을 미리 마련하였습니다! 정비사업에 발 벗고 나선 나주의 호족들이 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중원의 많은 나라가 연방의 힘에 놀라 연방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문화 발전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부여연방에 황금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오?"

    이번 보상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 * *

    완산주.

    천황은 신검으로부터 별궁으로 받은 완산주 궁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서라벌에 가도 될 일이지만, 천황은 반대했다.

    "대체 일본에는 언제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부여광 왕자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넘겨주기로 했지.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도 어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천황께서는 어찌 이러십니까?"

    "후지와라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일본을 그대로 백제에 바치는 꼴이 아닌가!"

    "그것은……."

    확실히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러나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 아닌가. 이미 호족 연합군에 의해 일본이 박살 났고, 황실은 백제로 넘어왔다. 이 상황에서 일본으로 돌아간들 무슨 소용일까.

    당장 후지와라 일족도 완산주에 자리 잡았다. 심지어 백제의 성씨를 따로 받는 일족까지 있었다.

    그런데 천황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보였다.

    "짐은 바보가 아니네."

    "예?"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바보가 아니라니.

    "이건 전부 술수가 아닌가. 백제가 일본을 얻기 위해 우리를 이곳에 가둔 것이야. 안 그런가?"

    대충 그런 낌새는 알고 있었다.

    아마 부여금강. 잘난 사위 놈의 계략일 것이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백제는 일본의 혈맹이 아닙니까?"

    "내 백제 황실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지. 지금의 백제는 그 옛날 부여씨가 아니야. 설마설마했더니 그게 진짜였네."

    수하들을 시켜 얼마 전에 조사하고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예? 그게 무슨……."

    "견훤은 상주의 아자개의 자식이었고, 그 성도 본래는 이씨였다는 군. 그러다 견씨로 고치고, 다시 그걸 부여씨로 고친 게야."

    이런 놈들을 과연 진심으로 백제라 할 수 있나?

    과거 부여씨의 백제와 동일한 백제가 맞나.

    솔직히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성을 그렇게 수차례 바꾼 것을 보면 과연 부여씨의 후손이 맞는가 말이다.

    백제 멸망 당시의 기록은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부여풍조차도 고구려로 망명하였으며, 부여씨들은 성을 바꾸고 살아남았다.

    당연히 백제의 혈맹인 일본 입장에서는 꽤 예민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알아봐도 상주의 이씨는 오히려 신라계지 백제계라는 것은 영 말이 되지 않는다.

    즉, 지금의 부여씨는 그 피를 알 수 없는 성씨다.

    "그간 신라나 고려 탓에 숨죽여 있었으니, 좀 강성해진 후에 옛 백제를 자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후지와라는 그럴듯한 말을 했다.

    "그걸 정말로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정말로 백제가 부여씨의 국가라면 모르겠네. 그러나 근본도 모르는 나라에 일본이 넘어간다면 내 조상들을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부여씨 백제는 그래도 혈맹이었고 황실이 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근본도 없는 지금의 백제라면 어찌 일본을 맡길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이제 와 우리가 돌아간다 한들……."

    "이렇게 당할 수는 없네."

    "요시코 내친왕 전하는 어찌하시려고."

    그래. 요시코 내친왕도 있지. 그러나 믿을 수 없다.

    딸이라고는 이미 백제의 사람이 된 지 오래다. 금강의 여인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직접 요시코에게 어떤 말을 하든 소용이 없다.

    오히려 자신들을 백제에 묶어두려 하겠지.

    "딸아이는 이미 연방 사람이네. 게다가 야망이 있지. 듣지 못했나? 부여광을 마한황제 겸 일본 천황으로 삼겠다고. 이게 무슨 의미인가?"

    "모후의 자리를 노린다는 말입니까."

    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럴 것이다. 요시코의 눈에는 야망이 있었다. 백제 황제 겸 일본 천황의 어머니가 되겠다는 야망이. 욕심이 말이다.

    "본래 권력 앞에서는 부모 자식이 없는 법이지. 후지와라는 잘 알지 않는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 요시코 내친왕이 설마……."

    백제로 시집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욕심을 부릴 여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믿어서는 안 될 것이야. 애초에 나는 황태자에게 양위를 하려고 했어.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갑자기 황실에 급변이 일어났지요."

    법명까지 받고 출가하려 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급변은 일본의 상황을 꼬아버렸다. 때맞춰 호족들의 일 때문에 자신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네. 벼락이 떨어져 다들 죽었지. 이미 요시코가 충분히 노리기 쉬운 상황이 아니냐 이 말이야."

    결국 그래서 요시코의 자식인 부여광에게 황위를 넘기기로 하였으나,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영영 사라질까 두려웠다.

    설령 일본이라는 국호를 백제에서 가져온 것이라 해도, 일본은 독자적인 국가다. 결코 근본도 없는 왕족에게 나라를 넘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어떤 생각을?"

    "일단 백제에서 나가야 하네. 나주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 추천할 수는 없지만, 굳이 가겠다고 하면 못 갈 것도 없다.

    일단 백제 황실은 서라벌로 와도 되고 완산주에서도 머물러도 된다고 일본 황실과 후지와라에 말했으니, 사실상 자유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까 일본으로 떠난다면 알려지기는 해도 당장 저들이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의 절반은 백제가 취하고 있습니다. 굳이 가시려면 혼슈 북부로 올라가야 합니다. 아직 호족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서쪽은 이미 친백제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아직 중립에 가까운 호족들이 있는 혼슈 북부로 올라간다면 받아줄 호족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나는 일본에 갈 것이네."

    "일본으로 돌아가신다면."

    후지와라는 더 말하다 말았다. 돌아간다면 천황으로서 할 일은 하나뿐이다.

    "백제에 맞서 싸워야지. 이건 아니야. 이대로 일본을 포기할 수는 없어."

    아무리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고 해도 여전히 백제의 지배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선동하여 백제에 대항한다면 못 싸울 것도 없다.

    "그럼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이왕이면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 하네. 우리가 완산주에 거처할수록 일본은 점점 백제에 떨어질 테니까."

    "예, 폐하."

    이판사판이다. 일본을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

    천황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반드시 일본을 되찾기로. 백제의 마수에서 일본을 되찾아 독립하고 말 것이다.

    * * *

    상좌평 최승우와 함께 마한 땅을 시찰해보았다.

    이유는 도로 탓이다. 나주 호족들이 본격적으로 도로를 정비하기 위해 사람을 풀어보니 무슨 여기저기서 펑펑 도로의 흔적을 찾아냈다.

    "과연 백제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로를 남겨두다니요."

    최승우가 백제가 남긴 도로의 흔적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래. 솔직히 나도 감탄했다. 도로 기술자 없이 저 틀에다가 돌이랑 흙만 층층이 채워 넣으면 도로는 뚝딱이니까.

    "정확히는 그 틀일 뿐이지만, 뭐."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정교했습니다. 아마 신라가 다 파괴했을지도 모르지요."

    그게 사실이라면 신라가 더 개새끼지만. 뭐 이건 그냥 가설에 지날 것이다.

    백제 전국 도로망 구축설. 일단 한두 개면 몰라도 이렇게 정교한 도로망은 필시 신들이 간섭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부정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신이 깔아둔 거다. 심지어 그 주변 토지만 묘하게 도로를 만들기 적합한 환경도 갖추고 있지 않은가.

    고대 백제가 일일이 그런 걸 따졌을까?

    "아무리 백제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조선은 돌멩이 천지에 질척거리는 흙바닥으로 수레도 지나가지 못할 그런 도로인데 말이다.

    어쨌든 이 정도만 연방 전국에 깔린다면 중원이 서로 치고받고 싸울 동안 우리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평양까지 이어지는 것이로군요."

    "음. 뭐, 어려운 건 생각하지 맙시다."

    노년의 나이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최승우를 애써 진정시켰다.

    어차피 줄 거, 신들이 이왕이면 좀 티가 덜 나게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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