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석경당은 마침내 낙양에서 황위에 올랐다. 국호는 진이라 하여 오대십국 중 하나였던 후진이 되었다.
석경당은 연방과의 굳건한 동맹을 위해서, 또 남벌을 하여 전국 통일을 하겠다는 핑계로 연운 16주를 연방에 바쳤다.
물론 반발하는 무리가 있었다.
"폐하! 연운 16주는 아니 됩니다! 연방이 우리를 도운 것은 사실이나, 연운 16주를 내어준다면 장차 북방이 어지러울 것입니다!"
후진을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유지원과 강경파들이 거세게 반발한 것이다.
"어허! 연방이 우리의 든든한 동맹국인데 어찌 그러는가? 후진과 부여연방은 동맹이니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나?"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연방의 군대는 강군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북방을 지켜준다면 거란군도 무섭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고전한 당의 폐제를 단숨에 물리쳤으며, 총리께서는 소수의 군대만 움직여 황제를 붙잡았습니다. 이런 대국을 상대로 어찌 척을 지려 하십니까?"
연방군을 적으로 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중론이라 묵살당했다.
특히 그 대부분은 장수 출신이라 더 그러했다.
연방군이 가진 힘을 본 덕이다.
"그렇다면 본래 약속한 대로 연운 16주에 비단 40만 필이겠지?"
"예, 총리. 그러나 확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을?"
무슨 조건을 걸려고 하는 건가?
"우리 진을 적대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아무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당을 잡는 것은 우리 숙원이기도 했네. 고려와 백제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수당을 제외하고 중원의 왕조와 나쁘지 않은 관계였지."
따지고 보면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백제도 중국과도 당나라 전까지는 관계도 좋았었지. 그러니 굳이 진과는 싸울 이유가 없다.
"그렇습니다. 우리 진은 부여연방과 영원한 평화를 원합니다."
영원한 평화라, 그런 건 존재하지 않지.
석경당이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나는 진을 유지해줄 셈이다.
그 대신, 중국은 절대 통일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대놓고 통일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진정한 중원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은 황제의 힘으로 해야 할 것이네. 나는 북방에서 거란을 막아주지."
"예, 각하."
이 정도만 해주면 만족하겠지.
연운 16주의 진나라군은 신속하게 빠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 연방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연방의 영토는 중원까지 뻗어 나갔다.
연운 16주는 중원 전체에 비하면 그저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원정벌의 교두보를 점령한 것에 그 의미가 크다.
석경당은 남벌을 시도할 수도 있고, 반대로 놈이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면 연운 16주를 기반으로 후진을 잡으면 그만이다.
"너희들의 피와 땀이, 중원에 우리의 땅을 만들었다! 광개토태왕께서도 이만한 업적은 이루지 못하셨으니 모두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계속된 전쟁으로 피로한 연방군도 중원의 땅 일부를 차지했다는 업적에 하늘을 찌를 듯이 함성을 질러댔다.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우리 민족이 중원에 땅을 만들다니요."
"이것이 전부 총리 각하의 혜안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심지어 석경당을 각하께서 친히 황제로 책봉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역사의 어느 임금도 해내지 못한 일이 아닙니까."
기회를 잘 잡은 것이 크다. 요가 고려에서 패배하였기 때문에 석경당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덕이 아닌가.
이제 이 연운 16주로 본격적으로 중원의 일에 개입하고자 한다면, 연방에도 보다 안정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는 연운 16주를 비롯하여 연방의 서북방에 있는 군사력을 증강하고 해군을 키워 중원이 연방을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네."
"예, 각하."
주둔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대와 함께 평양으로 개선했다.
연운 16주를 얻었다는 소식은 연방의 백성들에게도 알려졌다.
"""총리 각하 만세! 부여연방 만만세!""."
총리관부로 향할 때까지 줄을 이은 백성들이 부여연방의 깃발을 흔들었다.
이번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피해가 적기는 했다.
관흔이 석경당의 군대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킨 것이다.
연운 16주에는 이주민 역시 들이기로 했다.
태봉과 고려에서 일어난 전쟁 탓에 아직 유랑민 신세인 백성들의 수가 꽤 있다.
계속되는 전쟁이 터지니 피해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이참에 그런 백성들을 모아 연운 16주에 보내기로 했다.
"각하. 이번에 얻은 연운 16주는 어떻게 관리하실 것입니까?"
"석경당을 따라간 백성들의 수도 꽤 있다 들었습니다."
"각하. 각하께서 연방군을 이끌고 석경당을 지원하는 동안 연방 내에 전쟁으로 인한 유랑민이 다수 발생하였습니다."
총리관부에서는 장관들이 내가 미리 생각해둔 문제를 꺼내 들었다.
연운 16주에 대한 관리는 총리부에서 관리를 파견하면 그만이고.
"그래서 연방의 영토를 떠도는 유랑민들을 이주시킬 생각이네."
"연운 16주로 이주한다면 유랑문제도 연운 16주의 백성 문제도 해결되겠지만, 저들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것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예. 만일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그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힘들어지겠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네. 평양의 장관과 군사들을 파견할 것이니까."
"연운 16주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까?"
"자네들은 그럼 제 주인을 죽이겠다고 군사 일으킨 놈을 계속 믿을 수 있나?"
"아."
절대 믿을 수 없다. 무슨 이유든 석경당은 반역을 저지른 놈이다.
"게다가 거란도 막아야지. 거란도 믿을 수 없어."
자기들 국익을 생각해서 발을 뺀 것은 좋게 쳐줄 수 있다. 오히려 마냥 우리 말만 따른다면 야율배는 나라를 그르칠 상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법.
야율배는 지금 나와 선을 두려 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야율배는 언제고 우리 연방에 칼을 휘두를 수 있다.
그러니까 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럼 혹시 또 전쟁을?"
"각하, 더는 안 됩니다."
"예. 이주작업도 해야 하는데 또 전쟁이라니요!"
한 장관의 말에 모두가 앓는 소리를 했다.
누가 전쟁한다고 했나. 오히려 나도 이제는 쉬고 싶다.
그래서 석경당과도 그런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닌가.
전쟁을 계속할 셈이었으면 석경당도 잡고 당을 낼름 먹었을 것이다.
"아, 나는 전쟁을 치를 생각이 없네. 지금은 우리도 쉬어야지. 다만 방비만 해두는 거야. 그 지역을 가지고 있어야 중국에 나중에 함부로 우리를 노릴 수 없으니."
"허, 설마 연방을 중원 놈들이 노릴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우리 연방의 영토도 이미 저들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군사력도 고씨 고려 시절에 비하면 몇 배나 강하지 않습니까."
그래. 당장 전투 가능 인원이 10만이고, 이주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군사를 모집하여 중국의 침입에 대비할 병력을 보유한다면 상당한 숫자가 될 것이다.
나는 최대 50만까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저렇게 방심하면 큰코다친다.
늘 말하는 거지만 중국의 생산력은 어마무시하지. 그래서 지금부터 방심하지 말고 일본열도와 비옥한 백제 땅을 발판으로 농업이나 상업을 크게 키워내야 한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되네. 중원의 비옥한 영토를 무시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전쟁은 하지 않겠지만, 저들이 통일하지 못하게 적당히 작업을 쳐야지. 그러니까 잡소리는 그만하고 연운 16주에 주둔시킬 병력에 관해서도 논의하게."
"예. 각하."
지금 당장은 석경당을 지원한 군대를 주둔시켰다만 언제까지 거기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 * *
서라벌.
신라 서라벌은 이제 백제의 중경으로 불리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진 백제인들에게서만 그리 불릴 뿐 신라인들에게 중경은 서라벌로 불리고 있었다.
수도 천도는 금강의 추진과는 다르게 그리 빠르게 진척되지 않았다. 황제 신검이 한 번 서라벌을 둘러보고 중경 금성부라고 개칭하였으나, 당장에 완산주에서 호족들을 설득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게 된 탓이다.
그리고 그 서라벌이 마침내 신라인에게도 백제의 수도로 탈바꿈하였음을 백제군들이 천명했다.
"들으라! 이제부터 이 서라벌은 백제의 땅이 될 것이다!"
"뭐야, 이게. 서라벌이 백제의 수도라고?"
백제군의 말에 신라인들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대체 저 백제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 서라벌이 백제의 수도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야? 백제의 수도라니?"
"우리보고 서라벌을 떠나라는 말인가?"
한 신라인의 말에 백제의 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한황제 폐하의 행렬이 서라벌에 당도할 것이다. 신라인들은 모두 대세에 따르라."
백제군들의 명령은 신라인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일반 백성들 대다수는 따르고 있었으나, 서라벌은 천년왕국의 수도답게 많은 호족들이 있었다.
점령할 때 항복한 호족들과 금강이 이끈 소수의 군대로 기습 점령당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그 호족들은 백제의 서라벌 지배를 용납할 수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이미 신라는 망했다고 해도, 서라벌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터를 잡아 산 곳이다. 최소한 신라인으로서 명맥을 잊고 싶었다.
"그럼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고?"
"맞아. 우리는 이제 전쟁이 끝나서 돌아왔는데, 우리 땅을 빼앗겠다고?"
"전쟁 때 서라벌에서 빠져나간 백성들이 어찌하여 다시 돌아와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응당 전쟁이 끝났으니 돌아온 것이 아니오!"
백제의 병사들은 당황했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도망쳤으면 그걸로 끝이지 왜 다시 와서 이 난리란 말인가.
"나라가 국난일 때는 도망치더니만 다시 돌아와서 이 꼴이라니. 네놈들이 있을 곳은 없다!"
"우리는 호족이오!"
"호족이면 다인가?"
이미 망한 나라의 호족이 제 권리를 주장하다니. 우스울 따름이다.
"우리는 백제 황실을 받아들일 수 없소!"
"어떻게 백제인이 신라를 지배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의 호족들이다!"
"뭐라! 망국 놈들 주제에 감히! 뒤통수나 쳐대다 운 좋게 통일한 주제에 말이 많구나!"
백제의 서라벌 천도로 신라에 주둔한 백제군과 신라 호족간의 다툼은 치열했다.
처음에는 기를 쓰고 집에 눌러앉아 반발하던 백성들도 호족들에게 붙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니, 이놈들이! 뭣들 하느냐! 이놈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놈들을 포박해라!!"
"""예!""."
기어이 무력충돌을 일으켰다.
* * *
당분간은 나라가 바쁘게 돌아갔다.
연운 16주에 대한 군사력 증강. 여기에 평양의 장관 여럿이 파견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각하! 서라벌의 신라인들이 백제의 수도 천도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그놈 자기들 주제도 모르고 그런 헛소리를 하나?
"그놈들, 우리에게 항복하지 않았던가?"
"결국 밥그릇을 지키려고 저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완산주의 호족들이 대거 서라벌로 이주하게 되는데, 반발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완산주의 귀족계층에 있는 호족들은 거의 우선순위로 신라 서라벌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간 전쟁에서 사병을 내고 물자를 내고 가장 많은 고생을 해온 자들인 만큼 어느 정도 특권을 주자는 뜻에서 내가 추진한 것이다.
결국이 시대의 호족은 대빵이거든. 앞으로 한세월 동안은 호족들의 권한이 강할 테니까 이번에 군사력이 꽤 빠진 틈을 타 적당히 특권만 주고 끝내려 했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진작에 백제에 저항하는 무리들을 색출해서 잡았는데?"
"백제인에 대한 신라인의 반감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흐으음."
확실히 항복한 호족들을 제외하면 딱히 우리를 호의적으로 보는 시선은 없었다. 오히려 군주를 무릎 꿇린 것이 큰 타격이었다.
"이거 참 곤란하게 되었군. 그렇다면 피를 봐야 하는 것인가?"
"일단은 전쟁을 피해 달아난 신라인들이 꽤 되니 그쪽으로……."
"그러면 백제의 호족들이 반발하겠지. 생각해보게 신라놈들은 여전히 서라벌 중앙에서 버티고 앉았는데, 자기들은 밀려났으니."
백제인과 신라인의 좋지 않은 감정은 삼국통일 이후에도 쭉 이어져 왔다. 특히 호족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신라가 이제 망했으니, 백제의 호족들은 신라 호족들의 위에 서려 할 것이다.
"이대로 라면 신라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결단이라 결단. 그렇다면 잡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회유같은 귀찮은 수단은 이제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