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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04화 (104/154)

104화

진양에 도착했다.

군사를 일으킨 석경당은 갑옷 차림으로 자기 신하들과 함께 나를 맞이했다.

"대군을 이끌고 각하께서 친정을 오셨으니 참으로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석경당이 대뜸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래. 그래. 그렇게 꿇어야 내가 할 맛이 나지.

"일단은 10만만 끌고 왔으니 이걸로 승부를 내지."

"10만? 혹시 연방의 전 군사력입니까?"

이 새끼 봐라. 무슨 생각으로 묻는 거지?

분명 동맹이지만, 이 질문은 이놈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지. 일단 자네를 지원할 군대만 10만이라는 것이고, 만일 전쟁이 위급해지면 20만을 추가로 파병할 것이네."

이건 허세다. 연방이 징집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석경당이 지금 우리 군사력을 확인하려 드는 것은 필시 후일 우리 뒤통수를 칠 수 있을지 계산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보다 몇 배에 달하는 군사를 더 보낼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려야지.

"군대가 그리도 많습니까?"

왜? 오랑캐의 국가라고 적을 줄 알았냐?

"어차피 원정군에 불과한데 많고 적고 할 것이 있겠는가. 중원을 치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대단합니다."

"여기는 이번 군대를 이끌 총사 관흔이네. 화포부대가 함께 하니 관흔에게 지휘를 맡기게."

관흔에게 총사의 자리를 맡기는 만큼 화포부대도 이끌게 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산둥반도 일대는 전부 점령한 건가?"

"예, 각하. 이제 낙양으로 진군하면 됩니다."

고작 낙양으로 진군하는 것이 어려워 이 지경인 건가. 그렇다면 단 한 번의 전투로 전부 끝이 나겠군.

하기야 석경당 혼자라면 이종가도 무리하지 안 하고 이길 수 있겠지.

"홀로 낙양을 도모하기가 힘든 것인가?"

"예, 각하. 세력을 꽤 탄탄하게 다져두었으나, 황제 이종가가 대규모 토벌군을 보내면 아군은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황제의 세력이 석경당을 무찌를 정도라. 그렇다면 우리가 석경당에 힘을 보탠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마 황제에게 붙는 놈들은 자연스레 떨어져서 사태를 관망할 것이다. 그러다 독립을 하거나 석경당에게 붙겠지.

그렇다면 거품을 제거하고 황제의 알맹이와 거품 낀 석경당이 싸우는 거다.

"서로 한방 싸움이라는 건가."

"예?"

"아니네. 그럼 다른 지역 놈들은?"

"어차피 낙양에서 천자가 바뀌는 일입니다. 뒤에서 지켜볼 것입니다."

아마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결정을 하겠지.

"진양에 지휘부를 세우지."

"그럼 총리께서는 함께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나는 뒤에서 낙양을 노려야 하니 말이야.

말하면 석경당의 행보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살짝 미끼만 던져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천자가 바뀌는 일이네. 내가 직접 군을 이끌어 돕는다면 절도사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내 직접 여기서 본국으로부터 원군을 데려와야 하지 않는가? 관흔은 전장에서 수없이 적들을 베어온 불세출의 명장이네. 믿으시게."

"그러면 황제를 잡으신다는 것은……."

"나를 믿게. 이종가는 충분히 잡을 수 있으니 말이야."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 말에 석경당은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이 표정을 잠깐 찡그리다가는 고개를 숙였다.

석경당이 제법 싹싹하다.

관흔의 지휘 아래에 10만에 달하는 군대가 마침내 진양에서 출진했다.

그리고 나는 부여군들을 시켜 석경당의 출진을 살폈다.

"출발했나?"

"예."

"그럼 우리도 움직이지. 부여군은 모두 준비되었나?"

"예."

슬슬 밤중에 낙양으로 가야겠다.

"헌데 계획은 있으십니까? 아군은 낙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알고 있네."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 내가 온 것이지.

그간 요에 있는 백제 출신의 관리들도 멍청하게 있지는 않았다. 일찍이 중원정벌에 뜻을 두고 있던 나는 백제 출신들에게 낙양을 알아보게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요에 보낸 사신이 그 정보를 가지고 온 것이다.

"낙양성은 예로부터 중국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나, 그만큼 공격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지. 자리도 자리인지라 관문들이 많은데, 그 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병력이 그만큼 많아야 하네."

"그렇다면 1천으로는 무리가 아닙니까?"

그렇지. 낙양을 1천으로 도모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어디까지나 낙양이 제대로 방비가 되어있다면 말이다.

이종가는 결국 연방군이 지원 왔다는 소식에 토벌군을 낼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낙양이 비게 되겠지.

"이종가는 토벌군을 내려 할 테지. 당연히 낙양의 병력도 빠질 테고. 그렇게 되면 낙양은 어떻게 될까?"

"관문을 지키기 어려워지겠군요."

군대가 빠지면 관문은 비어있을 것이다.

그 관문으로 우리 군대가 들어가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래. 틈이 많다는 뜻이네. 확실히 낙양은 헤이안쿄와 비교할 수 없을 테지만, 군사가 빠지면 결국 낙양을 점령하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네."

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럼 관문은 어디를 노리십니까?"

"남쪽 지형으로 가지. 그곳에 큰 틈이 있네. 다른 방위선은 강과 관문으로 차단되어있지만, 거기는 다르거든. 그러니 들어가기 쉬울 테지."

적이 틀어막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종가는 그만한 위인이 되지 못할 테니까. 그럴 위인이었으면 당장 석경당을 좌천시키지 않고 오히려 자기 밑에 두었겠지. 아마 밤에 남쪽으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낙양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관흔도 출발했고, 지금이 낙양으로 갈 절호의 기회였다.

곧바로 밤중에 말을 타고 나와 휘하 부여군 1천이 낙양으로 달렸다.

낙양에 도착한 이후, 나는 척후를 풀어 낙양과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혹시 모를 복병을 대비한 것이다.

"어떤가?"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남쪽에 틈이 큽니다. 적군도 없습니다."

흐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했는데. 이종가는 연방과 석경당의 연합만 잡을 생각만 하지 설마 낙양이 공격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건가.

"낙양의 군대는 빠져있는 것 같나?"

"예. 낮에 대군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더 두고 볼 것도 없겠군.

"지금 당장 진입한다. 화약은 다들 챙겼겠지?"

"예, 각하!"

"좋아, 단숨에 황궁을 장악할 것이야."

빨리 끝을 보고 연운 16주를 접수할 준비를 해야지.

* * *

관흔과 석경당의 군대는 진양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당의 토벌군과 조우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병력도 한참 떨어지는 군대로 전면에서 대결을 하려 하니 관흔은 코웃음 쳤다.

"설마 낙양에 가기 전에 부딪힐 줄이야."

차라리 낙양에 박혀서 수성을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나 싶다. 아마 지금 당은 석경당과 연방군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가 대군인데도 저러는 것을 보니 이길 자신이 아니겠습니까?"

"장군. 저기를 보시오. 놈들이 전면전을 하려나 보오."

가만히 보니 당군 측에서는 아예 덤벼들 진형까지 갖추고 있었다.

주력은 기병들이었다. 연방과 석경당의 군대에도 다수의 기병은 보유하고 있었으나, 총리의 명으로 압도적인 화력을 꺼내기로 했다.

"애술 장군은 기병대를 끌고 후방에서 대기하시오. 우리가 놈들의 기선을 제압하면 곧바로 난입해야 할 것이오."

"예. 총사."

연방군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저건 생각 외로 너무 무지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감히 연방을 우습게 보는 작자들에 대한 철퇴를 내리는 것이다.

"저놈들만 잡으면 우리가 승리한다. 전군 전투준비!"

"이길 수 있겠소?"

석경당이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 마시오. 아군의 수가 이미 놈들을 넘어서지 않았소? 더군다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무기의 질도 우리가 한참 앞서고 있소. 놈들이 적어도 우리 군을 상대하려 했다면 최소한 황제가 나왔어야 했소."

그 말에 석경당도 내심 긍정했다.

정말이다. 황제 이종가는 나오지도 않았다. 아예 자기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숫자가 상당히 많음에도,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막을 수 있다 여긴 모양이다.

솔직히 석경당이 볼 때 이종가는 결코 무시할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저 자신도 이종가한테 밀리고 연방에까지 손을 뻗쳤다.

‘어리석은 황제 같으니,.’

뭐 따지고 보면 황제는 낙양에 있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군사적 재능이 출중하다해도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황제도 나락이니까. 낙양에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방법이었겠지.

게다가 당군은 멍청하게도 달려들고만 있으니 우스울 따름이다.

"화포를 쏴라!"

공격해오는 당나라군의 사이에 포탄이 우수수 떨어졌다.

퍼엉! 콰앙!

떨어질 때마다 당나라 병사 서너 명이 한 번에 죽고 있다.

그 모습에 석경당도 눈을 깜빡였다.

저런 무기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나. 한번에 몇 명씩 죽는 것이 다가 아니다. 대오가 흔들린다.

"화총부대는 무얼 하느냐! 쏴라!"

탕! 탕탕!

화총부대가 쏘는 총탄에도 당병들이 픽픽 쓰러져갔다.

그 광경에 석경당은 그저 두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연방군도 수만 밀어붙이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군사 규모도 그렇고 무기도 그렇고.

오히려 호랑이 새끼를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석경당은 연방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부여연방의 기병들이여! 당나라놈들을 잡아 과거의 원한을 풀 때가 되었다! 공격하라!"

"""부여연방 만세!""."

중장갑을 걸치고 있는 기병들은 오죽할까. 애술의 기병대는 이미 대오가 무너져 우왕좌왕하는 당군들을 그대로 격파했다.

‘이거 내가 여우 새끼를 몰아내려다 호랑이를 들인 것이 아닌가.’

승리를 하면 좋기야 좋은데, 설마 연방이 저런 무서운 무기를 가졌을 줄 예상이나 했을까.

석경당은 당군이 패퇴하여 퇴각하는데도 마냥 기쁠 수는 없었다.

"절도사께서는 무엇을 하시오?"

"무슨 뜻이오?"

무엇을 하냐니, 열심히 전쟁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설마 연운 16주에 비단 40만 필씩 바치는데 더 군대를 내라는 뜻인가?

"아니, 절도사의 군대는 나서지 않는다는 말이오? 우리가 이만한 지원을 하였으면 절도사께서도 공격해야 할 것이 아니오? 이 전쟁이 어디 우리만 좋자고 하는 일이오? 절도사께서는 천자가 될 몸이시오. 동맹군으로 함께 하고 있으나, 마지막 일격은 절도사께서 끝내셔야 명분이 있지 않겠소?"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자신은 황제가 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연방과 연합은 하였으나, 연방에만 모든 것을 맡기면 훗날 황제로서의 권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연방군이 주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안 그래도 연운 16주에 40만 필이나 바치게 생겼는데. 여기서 연방군의 활약이 더 커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크흠, 알겠소이다."

"지금 승기가 완전히 우리에게 넘어온 상황이니 절도사께서는 전군을 내어 총공격하셔야 할 것이오."

참 급하기도 하다. 누가 군대를 내지 않는다고 했나.

"알았소이다. 전군! 연방군을 도와 황제의 군대를 격멸하라!"

석경당의 기병대가 일제히 후당군을 향해 진격했다.

그리고 전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방과 석경당의 승리로 끝났다.

후당군은 포격과 화총수에 이미 전의가 꺾여 전장을 이탈하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으니, 남은 군사들은 기병대에게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렇게 전쟁은 너무도 쉽게 끝이 났다.

"황제의 군대란 것들이 저렇게 약해서야. 쯧쯧쯧."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 기대했는데 중원도 별거 아니었소."

연방의 장수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승리를 축하하지만, 석경당은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불안했다.

혹시라도 저들이 그대로 마음을 바꾸어 당 전체를 먹겠다고 달려들면 자신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연방이 군을 물릴 때까지 최대한 비위를 맞춰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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