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요나라 임황부.
요나라 황제 야율배는 연방에서 온 사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신이 기이한 말을 했다.
"그러니까 귀국의 총리가 이번에 중원으로 함께 나아가자 짐에게 제안을 했다고?"
중원으로 나아갈 테니 함께 가자는 제안. 듣기만 하면 구미만 당기는 제안을 연방의 총리인 금강이 한 것이다.
"예, 폐하. 연방의 총리께서는 폐하와의 의리를 생각하여 함께 연합해 만리장성을 넘고 싶다 하셨습니다."
연합해 만리장성을 넘는다라. 듣기만 하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말이다. 그러나 그 속내가 궁금하다.
"만리장성을 넘는다라."
"이미 아국의 총리께서는 10만의 군대를 준비 중이십니다. 아국이 요동반도에서 당으로 넘어갈 터이니. 폐하께서는 기병을 동원하여 남하하셨으면 합니다."
10만의 군대라. 10만으로 중원을 노릴 수 있을까?
당장 당나라만 해도 병력이 상당할 텐데.
물론 요군이라면 당나라군을 깨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금강이 그걸 원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음."
"폐하?"
이것이 과연 옳은 방법인가.
아무리 봐도 이건 요나라를 이용해 먹으려는 수작으로만 보인다. 기껏 애써 모은 군대를 금강을 위해 쓸 수는 없다. 양심이 있으니 연방과는 싸울 생각은 없으나,
"생각해볼 일이다. 아직 우리 요는 준비가 안 되었어."
"하오나 폐하, 이번에는 요나라도 중원의 땅을 먹을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네놈들에게 아무런 속내가 없다면 그렇겠지.’
아무리 저리 달콤한 말로 유혹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음, 분명 그렇지만, 중원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우리는 부족하네."
그래. 분명히 그런 기회다. 자신도 생각 같으면 하고 싶다. 그런데 말이다. 괜히 금강이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연방에서 온 사신은 이미 황제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더 설득하지 않고 물러났다.
"싱거운 놈. 이건 총리도 예상했다는 거겠지."
뭐 매달리면서 제발 군대를 내놓으라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건 이거대로 기분이 묘하게 더럽다.
어차피 형식적이었던 거니 됐어, 라고 말하는 듯하여 괜히 화가 치밀었다.
잠깐, 이거 잘하면 오히려 기회가 아닌가?
‘우리가 만일 이종가와 연합하면 어떨까?’
이종가와 연합하게 된다면, 어쩌면 연방군을 몰아낼 수도 있다.
요나라가 한 번의 대패로 군사적 수세에 몰리기는 했어도, 당장의 군사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작정하면 못해볼 것도 없지.
‘음,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야율배는 앞에 이 열로 앉은 신하들을 쭉 둘러보았다.
이중 절반이 연방 출신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은 요나라의 조정을 맡고 있지만, 그 속은 연방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일단 지금은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굳이 당이 손을 내밀지 않는데 도박을 할 이유가 조금도 없으니까.
지금은 신중한 것이 나았다.
* * *
석경당이 후당으로 돌아가 군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군사지원 대가로 우리는 연운 16주와 매년 40만의 비단을 약속받았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이득이었다.
고려와 총포대를 중심으로 우리는 군사를 준비했다.
말갈과 고려군 7만. 요동에서 내가 키운 부여군 2만과 1만의 총포대. 합 10만에 함대의 수군까지 합하면 연방군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 정도면 나름 준비는 한 것이 아닐까."
당 황제가 얼마나 병력을 가지고 있는지, 또 석경당이 얼마나 대단한 군세를 지녔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마 후당의 황제가 작정하고 군사를 일으킨다면 내가 끌고 가는 군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속전속결이다.
"기병의 비율도 높으니까, 석경당과 합류해서 총포대를 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어차피 해전으로 싸울 것도 아니고, 일단 가능한 많은 함선을 동원하기로 했다.
목표는 산둥반도다. 산둥반도에 상륙 후 곧바로 석경당의 세력과 합류하여 낙양으로 진군하면 된다.
후당의 황제가 토벌군을 낼 경우에는 격파하면 그만이다.
"관흔 장군, 장군은 원정군을 이끌게 될 것이네."
"각하, 저는 그럴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럴 인물이 되지 못해도 해야 한다.
"내가 이끄는 것은 그 중 부여군 중에서 정예 1천뿐. 총사 관흔 밑으로 상귀, 애술, 그리고 고려계 장수들이 군을 이끌어야 할 것이네."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 위험하지. 석경당의 물자를 받는다 해도 결국 그 땅은 중원이고 후당이다. 그러나 나는 낙양을 보다 빨리 점령해야 한다.
왜? 낙양을 포위하게 되면 이종가는 자살한다. 이때 중국의 전국옥새가 소실되어버린다. 이후에도 전국옥새랍시고 좀 만들어진 모양이지만, 진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전국옥새는 중국의 천명을 상징한다.
전국옥새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천명을 쥐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전국옥새를 쥐고 중국의 천명을 손에 쥐어서 석경당을 반쪽짜리 황제로 만들 셈이다.
"나는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어서."
굳이 전국옥새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천명을 중국놈들이 오랑캐라 여기던 삼한이 가져간다는 부분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놈들은 입에 거품을 물 수밖에 없다.
"각하, 그게 어인 말씀이시온지."
"아니네. 말한 대로 관흔 장군이 총사가 되어 석경당과 함께 하지."
어차피 나를 따르는 놈들은 이전부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미친놈들이다.
그리고 나는 절대 죽지 않는 몸. 이종가는 이종가 대로 잡고 전국옥새를 최우선 목표로 삼을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대군을 이끌면 오히려 이종가에게 들킬 수 있다. 낙양에 몰래 잠입해야 하니 굳이 소란 떨 이유가 없다.
내가 가는 이상 이미 전쟁은 끝난 셈이다. 10만이라는 병력은 석경당에게 연방의 군사력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각하께서 이미 직접 부여군을 이끄신다니 이미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만.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당을 삼키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우리한테는 화북을 삼킬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고 우리에게 저항할 각지의 반군을 상대할 여력도 없네."
나도 생각 못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후가 너무 답이 없다.
이제 연방은 어느 정도 사정이 나아졌으나, 일본까지 삼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대로 후당을 집어삼키려 한다면 곳곳에서 반군들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적어도 당나라 놈들에게 우리는 만리장성 너머에서 내려온 북적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저 아래에 있는 수많은 왕조들도 우리에게 대항하려 할지도 모르고 괜히 피곤해진다.
지금은 연운 16주로 만족하는 게 낫다.
"아쉽군요."
"배가 부르면 그만큼 소화하기 어렵네."
하물며 나라를 삼키는 일이다. 어디 그게 쉬울까.
여진의 금나라는 화북지역을 얻었으니, 솔직히 욕심은 난다.
이제 원 역사와 달리 연방이 요와 금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화북을 삼키고자 하면 요와도 결단을 내야 할 것이고, 일본도 최근에 삼켰으니까.
일단 그 앞길은 뒷전으로 한다 쳐도 나는 연방이 중국계 국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화북의 그 어마어마한 인구에 부여족이 버틸 수 있을까?
"그…… 각하, 결국 각하께서는 인구가 문제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가끔 애술은 엉뚱한 소리를 해서 문제인데.
"그럼 화북을 싹 비우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음?"
화북을 비운다?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나? 혹시 내가 아는 비운다랑 다른 의미의 비운다는 뜻인가?
"한족들을 싹 저 밑으로 쭉 밀어내는 겁니다. 우리는 땅만 가지고. 그러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애술 장군, 그거 말이라고 하시오?"
상애 장군이 한심하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그거 은근히 말이 되는데.
결국 연방이 중국계 국가가 된다는 것은 한족의 머릿수 때문이다.
그 한족들을 모조리 밑으로 내려보낸다면 어떨까?
"그거 의외로 말이 되네."
"각하?"
지금 저 남쪽은 전국시대다. 수많은 국가가 흥하고 망했다.
당연히 전쟁은 끊이질 않을 테니, 생산력 넘치는 중원이라 해도 대규모 피난민이 내려가면 군량이 감당이 안 될 것이다.
결국 한족들 사이에선 굶어 죽는 놈들이 나타날 테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인구는 크게 줄 것이다.
심지어 먹지 못해서 화가 난 피난민들은 결국 산적이 될 것이고.
"나쁘지는 않네. 오히려 굶겨 죽이고 산적으로 만들어 죽이고 다양하네. 다만 뒤에 요가 있는 것이 문제지."
후당을 몰아내고 석경당도 죽인다면 야율배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래도 애술이 제법 좋은 안을 일러주었네."
어쨌든 언젠가 쓸 만하다.
요나라의 야율배를 잡은 이후에 말이다. 지금 야율배가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만 봐도 꿍꿍이가 있다.
"그럼 출발하지."
연방의 함대가 가는 루트는 요동반도에서 함대로 동주로 가는 길이었다.
연방의 함대는 동주 앞에서 후당군의 함대와 조우했다.
몇 척 안 되는 것을 보니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하러 온 것 같다.
"어느 나라의 군대인가!"
저 당군은 석경당의 군대가 아닌가?
아니야, 그래도 진양에서 들고 일어났다면 이미 동주도 석경당의 세력권일 것이다.
"연방의 함대다! 당의 천평군 절도사가 지원군을 요청하여 동주로 가는 길이니 길을 비켜라!"
"부여연방의 함대인가?"
"그렇다!"
당군은 우리 함대의 깃발을 보는가 싶더니 오히려 우리를 동주까지 안내했다.
상륙하고 나서도 이미 석경당의 세력권이었는지, 당군이 적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진양으로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갔다.
* * *
당나라 낙양.
천평군 절도사 석경당이 진양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이 소식은 후당의 수도 낙양에도 전해졌다.
황제 이종가는 진양에서 석경당이 들고 일어났다는 소식에 몹시도 분노했다.
"천평군 절도사가 기어이 그 속내를 드러냈구나."
"폐하! 부여연방이라는 오랑캐들이 석경당의 뒤를 봐주고 있다 합니다."
심지어 어느새 오랑캐 국가가 그 뒤를 봐주고 있다니 놀랄 노자다. 이러니 자신 있게 군사를 일으킨 거다.
"연방은 대체 무엇을 하는 해괴망측한 나라란 말인가?"
"그 옛날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한 국가로 최근에 열도까지 평정하고 요와 더불어 북방을 평정한 강국입니다."
고구려와 백제? 재건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 둘이 합쳐진 국가?
황제 이종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봤자 오랑캐가 아닌가. 그 정신 나간 작자는 혼자서 안 되니까 오랑캐에까지 굽신거렸다는 말인가!"
어쩐지 이럴 줄 알았다. 차라리 그냥 일찍이 목을 벴어야 옳았는데. 그냥 좌천으로 끝내지 말았어야 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군사를 일으킬 생각을 하다니."
설마 석경당이 연방과 동맹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토벌군을 내는 수밖에.
"지금 당장 토벌군을 꾸려라! 한시가 다급하다! 낙양의 전군을 소집하라!"
어차피 상대는 오랑캐와 연합한 석경당일 뿐이다.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황제 이종가는 그저 가벼운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