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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02화 (102/154)

102화

석경당과 손을 잡을 거라면 분명 다짐해둘 것이 있다.

"내 입장에서도 당나라는 멸망하는 것이 좋겠지. 석경당. 자네는 그럼 당 황실을 무너뜨리고 연방을 적대하지 않을 수 있겠나?"

어차피 석경당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원 역사와 내용이 달리 흘러가지만, 외적을 불러 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황실을 세우는 놈이 과연 얼마나 갈까.

"각하께서 좌천되어 절도사의 지위에 머무는 이놈을 황위에 올려주는 것입니다. 각하의 은혜를 입는 처지에 어찌 부여를 적대하겠습니까?"

"흠…… 좋다. 그러나 결국은 너를 위해 연방의 백성들이 피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만큼 얻는 것이 있어야 하겠지."

슬슬 떡밥을 키우기로 했다.

"예. 각하."

"연운 16주에 비단 40만 필. 어떤가?"

원 역사에서는 원래 30만 필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석경당을 미리 길들이려면 40만 필은 받아야지.

내 말에 석경당이 헛숨을 들이켰다.

"영토 할양과 조공 40만 필 말씀이십니까?"

"조공과는 다르네. 우리는 든든한 우방국이 되어 자네를 돕고 자네는 그 대가로 매년 수고비를 내는 것뿐."

한마디로 네놈을 지켜주는 수고비라고 생각하라는 뜻이다.

물론 그 속은 조공이나 다름이 없지만, 하사품이 없으니 조공무역은 아니지. 우리 연방은 받기만 할 것이다.

"그, 그것은 좀……."

"대신에 내 확실히 이종가를 잡아서 네게 생사를 맡기지."

사후처리 서비스는 확실히 해주겠다. 그 정도 먹잇감은 던져줘야 열이 받은 석경당이 내 말을 들을 것이 아닌가.

"각하,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당 황실을 위해 헌신하는 자네를 뒤통수쳐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이 아닌가?"

어차피 석경당은 개인적인 사심과 자기 황위가 더 중요한 놈이다. 그러니 원하는 것을 주면 연운 16주는 넘겨줄 것이다.

"연운 16주를 할양하겠습니다."

원래 이건 요나라가 해야 할 일인데. 역시 요가 고려에서 패배한 탓이 큰 것 같다. 석경당은 요가 아닌 연방을 택했고. 연방은 마침내 중원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다.

"어차피 긍정적인 답변은 나오겠지만 내 총리부에서 관리들과의 중론을 거쳐 연방의 군대를 동원할 것이니 돌아가면 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하게."

"예, 각하."

이번만큼은 월권행위를 부려도 되겠지. 석경당이 모처럼 길을 열어줬는데, 배가 불러도 지금은 먹으려고 애를 쓸 때다.

석경당을 내보내고 장관들을 소집했다.

"후당의 석경당이라는 자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건 믿어도 되네. 내가 요나라에 있는 백제인들을 움직여 후당의 사정을 알아보게 하였으니까."

처음부터 석경당을 믿는다고 말하면 연방의 장관들은 쉽게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요에 있는 백제인들을 선동했다고 하는 것이 낫지.

"지금 연방은 대동강 이남의 태봉 땅을 막 수습했습니다. 만일에 중원의 일에 개입했다가 패배라도 한다면……."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과거 삼국시대로부터 중원을 끈질기게 겪은 부여족이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 중원의 나라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라가 상당히 강해졌으나, 역시 중국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석경당은 내 뒤통수를 칠 만한 그럴 위인이 아니다.

"그러나, 석경당이 굳이 우리를 속일 이유가 없네."

원 역사를 밀어놓고서라도, 실제로 석경당이 뭣 하러 굳이 나를 잡겠다고 당나라로 부를까? 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당이 연방과의 전쟁에서 피해를 입고 몰락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상식적으로 놈이 그 땅을 내어주겠습니까? 심지어 매년 40만 필의 비단을 갖다 바치겠다니."

그래. 솔직히 나도 믿기가 힘들어.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연방은 중원까지 세를 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석경당을 도와 당 황제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중원의 천자를 잡는 행위. 그래.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

"불가능하지 않네. 지금의 당은 우리가 아는 예전의 당이 아니야.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석경당과 황제의 불화. 그리고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르는 절도사들. 무엇보다도 지금은 당나라가 통일된 상황도 아니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살얼음판 같다고 해야겠지.

특히나 후당은 황제가 꽤 많이 바뀌었다. 그만큼 나라 사정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고려나 후백제의 장관들은 아직 중원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음, 기회라면 기회지만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소 무리하더라도 연운 16주는 먹어야지. 우리는 그만큼 땅을 더 회복할 수 있네. 과거 백제의 근초고 대왕이나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을 넘어선 강역을 키울 수 있는 거네."

내 말에 고려와 후백제의 장관들이 서로 쑥덕거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들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신들은 찬성하겠습니다."

"각하께서는 지금까지 연방을 크게 키우셨으니, 믿을 수 있겠지요."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거부하던 놈들도 찬성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석경당과의 동맹이 통과했다.

본격적으로 평양에서 고려와 요동의 군사를 소집할 무렵. 상좌평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석경당이라는 자가 총리의 자리를 황제 위에 있다 여기는 것 같습니다."

"뭐 나쁜 일은 아니지요."

어쩐지 그래 보이더라

황제 위에 더 큰 존재가 있다. 이건 자연스럽게 중원에서 칭제하는 놈들 모두가 우리 밑에 있다는 뜻이니까.

"전쟁이 너무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 아닌지요?"

"그리 생각하십니까?"

"예, 전하. 당장 일본을 삼키고 있는데. 중원의 전쟁이라니요."

일본은 지금 문제가 없다. 그저 삼키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 중원의 전쟁도 이제 끼어들 때라 낄 수밖에 없다.

"군량은 넉넉합니다."

"전쟁에 대한 극심한 피로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최승우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게 후백제의 이야기라면 그렇겠지. 일본에 투입된 3만의 연방군 자체도 백제인의 비율이 더 높다.

"백제 본국이라면 그렇겠지요. 그러나 요동에서 키운 신식 군대와 고려군은 입장이 다릅니다."

"으음."

"하루빨리 이종가의 목을 석경당에게 쥐여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상좌평이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연운 16주만 먹어두면 이보다 좋은 일도 없다.

"예?"

"전쟁의 피로라 하나 일본과 싸울 때는 나에게 충성을 바친 호족들과 부여군만으로 끝장을 봤습니다. 다타라야 피곤하겠지만, 그쪽은 열도를 통제하기 위해 빼지 않을 생각이고. 그럼 군대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상좌평이 걱정하는 것은 다른 데 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최승우식이나 되는 인물이다. 아마 걱정은 다른 데 있겠지.

"네, 전하."

"상대가 중원인 것이 문제라는 것."

중원은 너무 넓고 인간도 많다. 최승우는 진작에 당나라에 유학해서 누구보다 중원 사정에 밝다.

"예. 중원은 너무 큽니다. 지금이 저들을 공격할 시기기는 하나, 각하께서는 고작 연운 16주로 만족할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상좌평,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분명 좋을 때이기는 하나 필요 이상으로 중원으로 나아갈 생각은 없다.

중국이 많아지면 나야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이대로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정말 연운 16주로 만족하실 참입니까?"

그럴 리가 없지. 16주? 나는 그보다 더 아래를 보고 있다.

최소 금나라만큼의 영토는 가져야지.

"당장은 그래야지요. 그러나, 연운 16주를 제가 왜 얻으려 하겠습니까?"

"중원진출의 교두보로군요."

연운 16주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방을 방비하는 방어선이다. 그곳을 석경당이 내게 내어준다면 중원으로 내려가는데 더 힘을 쏟지 않아도 된다.

"중원이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곧바로 남하할 수 있는 위치지요. 만에 하나 놈들이 통일하려 든다면야, 무력을 통일해서라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는 중국이 통일해도 맞설 만큼의 국력을 가지기 위해 지금의 연방을 이룬 것이지만, 이제 여유가 생기니 달라졌다.

중국이 통일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렇게 고착시킬 참이십니까?"

"서로 싸우고 싸우도록 만들어 북방을 넘보지 못할 만큼 머릿수를 줄여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와 비슷한 급으로.

"그 과정에서 연방의 군대도 꽤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이이제이라 하지 않습니까. 현 상황을 잘 이용하면 불가능한 것도 없습니다."

일본은 정리가 되었다. 이제 먼 미래의 제국주의 일본, 혹은 그보다 더 먼 미래에 역사를 왜곡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일본은 없다. 그들은 연방의 깃발 아래에 백제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천년의 적이다. 반드시 인구를 줄일 만큼 죽여 그 세를 약화시켜야 한다.

결국 중국이 강한 이유는 광활한 대륙의 땅덩어리도 있지만, 결국 머릿수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많으니 국력도 한반도랑 체급이 다르게 회복할 수 있다.

머리가 많으니 인해전술도 가능하다.

먼 미래에 열강들에게 뜯어먹혀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러니 뜯어낼 만큼 뜯어내야지.

그 거대한 시장도 미래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게 될 거다. 한민족. 이제는 부여족이라 불리는 민족의 수도 역사가 바뀌었으니 미래에는 더 많아질 것이다.

"굳이 우리 대에 끝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힘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언제고 신무기에 대한 정보는 결국 중원 놈들에게 흘러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화약을 사용해왔다. 다만 전쟁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한참 후일 뿐이다.

"석경당이 세울 나라는 그럼 우리의 괴뢰국이 되겠군요."

"예."

깊게 내정간섭을 할 생각은 없으나, 우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 셈이다. 중국과 조선의 관계처럼 말이다.

"병력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10만 정도로 봅니다. 요군과의 연합도 생각하고 싶은데."

우리만으로 충분하지만 요군을 내버려 두면 불안해진다.

단순히 지원군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10만의 병력을 빼면 요하가 불안정하다. 야율배 그놈이 미쳐서 요하를 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주력군 빼면 요동의 상비군들은 아직 약한데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요군을 끌고 만리장성을 넘는 게 낫다.

"야율배라는 자가 요나라가 수습되니 우리와 관계를 달리하려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적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연방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곤란하다. 유목민족들은 언제나 위험한 족속들이 아닌가.

왕씨의 고려가 여요전쟁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요나라를 그대로 살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마 우리가 입힌 은혜가 얼만데."

그놈이 생각이 있으면 나한테 뭐라 할 수 없지.

"그러나 각하께서 야율아보기를 사살하였으며 20만이 넘는 거란군을 몰살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자신이 황위에 오르면서 각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음."

"거기다가 조정의 절반은 한족과 요동, 백제 출신입니다. 그 마당에 각하께서 열도까지 평정하시어 연방을 크게 일으키셨으니 경계를 할 만합니다."

요나라 전체가 지금 연방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슬슬 황제로서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야율배는 연방이 탐탁지 않겠지.

"경계를 해야겠군."

"그렇습니다."

"넌지시 이야기는 꺼내 보도록 합시다. 명색이 그래도 교역국이니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오히려 말하지 않으면 자기들을 견제하냐고 뭐라고 그럴 것이 뻔하다.

"예, 각하."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아마 야율배는 쉽게 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를 경계하고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요를 이용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형식적인 일일 뿐.

요도 언젠가는 멸망시켜야 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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